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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893 추천 수 0 2015.04.25 23: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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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9-1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우리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6:9-13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범입니다. 이 주의 기도를 중심으로 기도의 뜻이나, 모범이나, 어떤 내용의 기도여야 하느냐 하는 것에 고민과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주의 기도’는 진지한 신앙적 고민을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독교 행사의 시작이나 말미에 뚜껑처럼 덮고 여는 신앙제도의 경직된 틀로 남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신앙은 지나치게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물질과 탐욕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백이면 백 사람이 각기 다른 욕망을 갖고 살지 않겠습니까? 바라는 바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서로 다르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이걸 모두 자기기도 속에 담고 있는 거예요. 이래서는 공동의 선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어렵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예수의 제자들은 제각각인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주의 기도’는 그저 의례용으로만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르게 예수를 믿고 따르려면 하나의 기도, ‘주의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의 기도를 회복한다는 말은 ‘주의 기도’정신을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기도 속에 담긴 예수님의 뜻을 실감나게 이해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몇 년 전에 이런 고민 속에서 새벽시간인지 아니면 특별예배에선지 몇 시간에 걸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걸 참고삼아 좀 더 깊은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주의 기도는 세 곳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6:9-13
  
그러니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하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일용할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했듯이 우리에게도
우리 빚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서 빠지지 말게 하시고 오히려 악에서 구출하소서.”  

                 눅11:2-4

그러자(예수께서)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도할 때 (이렇게)말하시오.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우리가 일용할 빵을 날마다 우리에게 주조서.
그리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모두 용서하오니, 우리에게도 우리 죄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

               디다케 8:2-3

여러분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오히려 주께서 당신 복음에서 명령하신 대로 이렇게 기도하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일용할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하듯이, 우리 빚을 용서 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악에서 구출하소서.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세 번씩 이렇게 기도하시오.

세 번째 나오는 ‘디다케’는 주후 50-100년 사이에 시리아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고백되던 기도문입니다. 당시에 이 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규범서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의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는 누구나 이 기도를 하루에 세 번 씩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6:9-13, 눅11:2-4, 디다케 8:2-3절 에는 예수님이 가르쳐줬다는 기도가 서로 약간씩 다르게 기억되고 있죠. 물론 디다케는 마태복음과 몇 절을 제외하곤 토씨까지 동일합니다. 그 첫 구절은 모두 신을 부름으로서 시작됩니다. 마태와 디다케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했고, 누가는 그냥 “아버지”합니다.

이든저든 간에 이 부름은 거의 비슷한 시기의 유대교 회당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기도문과 비교해보면 예수님이 왜 이런 기도문을 가르쳐 줬는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당시에는 기독교인들만이 기도를 한 게 아니었잖습니까? 이미 유대교도들은 오랜 역사동안 기도를 하고 있었고, 성전에서 바치는 통일된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주후 80년경에는 그들의 유대교 회당에서 매일 암송하는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카톨릭에서도 모든 교우들이 공동으로 하는 기도문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18개조의 기도문]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성전의 타종과 동시에 길에 있든지 시장에 있든지 서서 이 18개조문의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예루살렘은 서기 70년경에 망했습니다. 그토록 그들이 보존하고 유지하며 긍지를 삼았던 역사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겁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겪는 시련 속에서 다시 한 번 고강도의 정체성 확립운동이 필요했습니다. 방황하는 백성들에게 ‘우리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를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기도를 매일 세 번씩 했던 것입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복되십니다. 오 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천지의 창조자이시고, 우리의 방패시며, 우리 조상들의 방패십니다. 당신은 복되십니다. 오 주, 아브라함의 방패시여!
  당신은 굳세고 강하셔서, 영원하시며,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며, 산 자들을 붙드시며, 죽은 자들을 살려내시옵니다. 당신은 복되십니다. 오 주, 죽은 자들을 살려내시는 분이시여!
  당신은 거룩하시며, 당신의 이름은 경외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신 외에는 어떤 신도 없습니다. 당신은 복되십니다. 오 주,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여!

이 부름에는 역사적인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정체성이 응축된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오랫동안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온 피맺힌 절규와 절절한 구원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를 보세요. 이런 구구절절한 역사성을 쏙 빼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달랑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럽니다. 마태복음에는 주기도 앞에 “여러분은 기도할 때 이방인처럼 수다를 떨지 마세요.”하잖아요? 여기서 이방인의 기도가 어떤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죠. 그걸 짐작케 하는 대목이 [집회서]라는 외경에 나와요. 집회서 7:14에 보면 “기도할 때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지 마시오.”했습니다. ‘같은 말’과 ‘중언부언’은 같은 의미죠. 그런데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유대인의 18개조 기도문에서 쏙 뺀 게 있어요. 아시겠죠, 뭔지?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에는 ‘역사성’이란 게 없어요. 바로 이것이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부름의 요체예요. 조금만 더 하고 끝내죠.

유대교 회당의 18조 기도문을 만든 건 바리사이들이죠. 그들은 마카비혁명에서 비롯된 하스몬 왕가를 거부하면서 등장한 중간 지도자 그룹이었어요.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민족성을 회복하고 재무장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죠. 그들은 중앙과 지방의 회당에서 율법을 통해 민족성을 고취강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대중의 삶과 의식을 규정하는 규범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회와 신앙의 법이 된 겁니다. 이제 바리새들에 의해 율법이 온 나라의 행위와 의식의 규범이 되다보니 그걸 이행치 못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런 사람은 조직 즉 유대사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배제하는 기능으로 작동되기 시작한 거예요. 공동체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자들 이른바 ‘죄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거지, 창녀, 세리 가 대표적인 계층들이죠. 물론 어린아이도 있고, 부정한 사람도 있고, 율법을 어긴 사람들도 있죠. 이들은 바리사이가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국경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내부에 존재하는 외세를 솎아내야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강화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왜 우리도 계나 모임 하다가 회원 중에 하나가 모임의 성격에 맞지 않으면 출회를 시키잖아요. 그런 것처럼 유대인의 기도문은 그런 죄인들을 솎아내고 남은 자들로 민족사를 재건하겠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가 가르친, 선포하신 ‘아버지’는 바로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들은 이미 쫓겨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기도문에서 그걸 빼 버린 겁니다. 쫓겨난 이들, 죄인들이 부를 수 있게 말입니다. 역사의 주역, 승자의 시선이 아니라 쫓겨난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는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쫓겨난 자들이 부르는 ‘아버지’가 다시 역사를 이끄는 자들이 부르는 ‘아버지’로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승리자의 부름이거나, 승리를 도모하는 자의 부름으로 변형이 된 겁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아버지’라는 혼의 부름은 유실이 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한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의 의미로 기도하며 산다고 한다면, 승리를 꿈꾸며 빅 파더로서의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 서 내 이기적 욕망이 성취 될 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이미 승리한 사람이라면 내가 승리자가 되기 위해 쫓겨난 이들이 필경  있을 테니 그들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면서 그들이 다시 일어서게(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도와야 하는 겁니다. 또한 제도나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하고 기도할 때, 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대신 그 기도에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 스며든 승리의 가치관을 소독해 내고, 그 이름 속에 매달려 있는 권력의 흔적을 지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어떤 존재든지 공평하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든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긴 자의 아버지, 가진 자의 아버지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날이 되기까지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하고 그리고 기도한대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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