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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83 추천 수 0 2015.04.25 23: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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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1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5.2.15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마6:10

지난 시간에 주의 기도는 마태복음의 것보다 누가복음의 것이 원형이 가까울 거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마태복음의 주기도가 틀렸다거나 옳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태공동체는 주의 기도를 재현해 내면서 하나님을 호명할 때,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첨가했죠? 이걸 ‘부가어’라고 합니다. 뭘 더 붙였다고 들으시면 되겠죠. 물론 누가복음에는 ‘하늘’이라는 이미지가 없어요. 그런데 마태와 디다케 공동체는 들어가 있었죠. 그런데 누가, 마태, 디다케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던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세 공동체 모두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그들이 사는 땅의 세상은 하나님의 부재, 신의 부재 상태라는 거예요. 그런 인식이 있기 때문에 세 공동체 모두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필시 기독교 공동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끝없이 계속되는 나라 없는 백성이 겪는 수난(주전 586년부터~예수님 시기까지. 실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직전까지이죠)을 통해 유대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죄를 지은 까닭이며, 그런 연고로 하나님이 깊이 참으시는 중에 있다는 신앙을 고백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오랜 피지배 생활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 부재’에 대한 원망을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기도를 보면 절반이 넘게 ‘감사기도’로 할애를 합니다. 유대인의 18개조 기도문 중에서도 절반, 9~18이 모두 감사기도입니다.

그러면 이런 기도가 잘한 기도냐? 어려운 중에도 감사를 했다니까 이게 기도의 모범이다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기도문 9조를 한 번 봅시다. “올해도 우리를 축복하여 주소서. 오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그리고 당신의 보물 창고에 있는 재물로써 이 세상을 만족시켜 주소서.” 이 기도문이 뭐 어떠냐고요? 유대인들에게 이 기도 속에서 ‘하늘’에 있는 ‘보물 창고’가 자신들의 땅의 고난에 대한 보상을 해 주는데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늘은 그런 하늘입니다. 땅에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는 보물창고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의 기도를 보세요. 유대인들처럼 하늘과 땅이 서로 협력하는 게 아니지요. 모자라면 보태주고, 안되면 되게 해주는 그런 협력관계가 아닙니다. 주위 기도에서는 하늘과 땅이 대립합니다. 땅에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았고,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지 그 나라의 도래란 염원의 회복이라는 점에서만 실현되고 있을 뿐, 하늘은 지금 땅과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르쳐주는 기도문엔 유대교 신앙, 유대교도들이 드린 기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 보셨듯이 마태, 누가, 디다케에는 모두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라는 구절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잇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은 여전히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땅에서는 그렇게 철저히 훼손된 하나님의 이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는 여전히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놈들이 제멋대로 하나님을 능멸했어도, 그래서 수많은 고난  당하는 백성들의 입에서 ‘하나님 맙소사, 하나님도 무심 하시지’라는 말이 도처에서 터져 나왔어도, 아무리 하나님이 없는 세상처럼 보인다 해도,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선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뜻이 굳건히 세워져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간구가 이어지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유대교는 또는 유대인들은 땅의 질서를 수긍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마의 규율 속에 갇혀 있는 땅에 대해서 일언반구하지 않고 그저 이대로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어 자기들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의 주기도 속에는 땅의 악마 같은 질서 속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보이십니까?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그 주의 기도 속에는 땅의 절망 상황이 들어 있지만, 유대인의 기도에는 땅을 절망 상황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 땅의 상황, 백성들이 살고 있는 땅은 어땠습니까? 주전 4세기 이래 팔레스타인에는 수많은 민중운동이 일어납니다. 특히 주전 1세기 언저리에는 이 저항운동이 정치적인 조직으로까지 발전을 합니다. 마치 우리가 독립운동을 만주에서 거국적으로 벌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백성들의 희망은 거기서 멈추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패배감의 절망속에서 등장하는 게 바리사이입니다. 그것은 바리사이들의 ‘율법을 통한 도덕적 재무장 운동’이었습니다. 이게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 지지를 얻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회당을 그들의 거점으로 썼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율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은 곧 법이었고 신앙이었으며 실천 윤리였습니다. 이 바리사이들의 율법의 눈이 바로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의 하늘과 땅을 묶는 질서였습니다.

그런데요 당시 백성들의 상황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로마 황제가 파견한 헤롯총독과 그 정부 권력, 그리고 다양한 기득권 집단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보이기 위한 대대적인 건축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이러면 백성들은 부역으로 끌려가야 합니다. 인근 지역과의 전쟁을 위해 군사동원도 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염병, 기근, 자연재해로 인한 재앙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촌락사회는 급격히 괴멸하던 시기입니다. 동네가 쑥대밭이 되어가던 때라 말입니다. 백성들의 삶의 터전은 뭡니까? 땅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들은 생존의 터전인 땅을 떠나 거렁뱅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데도 바리사이는 대중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희망만을 말하고, 유토피아적인 대망의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은 외면하고 오로지 율법을 통해 관념적인 희망만을 백성들에게 주입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은 대중들이 삶에 대한 분노와 행동을 억제하는 대신 정치권력과 같은 기득권체제의 횡포를 방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사이들은 백성들에게 땅과 하늘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연대하는 것으로 가르쳤던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땠습니까? 그도 예수님처럼 하늘과 땅의 바리사이식 연대를 거부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바리새는 이렇게 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요한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갑니다. 훨씬 명료하게 바리사인의 율법적 질서 관을 거부합니다. ‘죄인과 사귀고 먹기를 탐하는 자’라는 세간의 품평은 그의 삶의 양식이 얼마나 기성의 질서에서 일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기도문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간구가 아닙니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기도문인 것입니다. 썩어문드러진 세상 말고 하나님의 세상이 실현되길 구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 지금 이 땅, 썩어빠진 세상을 거부하라는 것이기도 한 거죠. 만약 이렇게 엉망진창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또 반대로 이 썩어빠진 땅이 하늘과 하나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관점에서 땅과 하늘은 결코 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시의 좌절된 지평이 오늘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는 어떻습니까? 땅을 그대로 두고 여기에 ‘하늘이 와도’되겠습니까? 만약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도록 땅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면 우리는 이 주의 기도문을 바리사이적 눈이 아니라, 예수의 눈, 땅에서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백성들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의 공통감각입니다. 그러니 생각 없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길’ 빌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약은 혼들이 생각해 낸 게 있습니다. 이렇듯 땅은 부패하고 더럽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만 땅을 분리해서, 이런 땅은 내 던지고 땅처럼 썩지 않은 저기, 하늘로 가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게 소위 땅과 분리된 ‘하늘’을 표상으로 하는 유토피아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천국 론을 믿습니다. 그러면 하늘은 땅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여길 버리고 저기로 가서 살면 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런 이해 속에서 하늘은 땅처럼 온갖 세균이 득실거리는 곳이 아니라 깨끗하게 위생 처리된 곳이 됩니다. 그리고 탈역사화, 탈 대지화 된 곳입니다. 이게 당시 바리사이들이 그들의 율법을 통해 역사적 현장을 외면하고 만들어 낸 ‘하늘’입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 그런 시각을 송두리째 박살내고 있는 겁니다. 땅을 버리고 하늘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런 깨끗한 하늘이 부디 이 더러운 땅으로 오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땅과 하늘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처럼 땅은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하늘에나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새 하늘이 더러운 땅을 갈아 치움으로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는 그런 기도를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 시대의 바리사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는 하늘과 땅의 야합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체험하는 하늘은 땅에 의해 오염된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은 땅을 오염시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  권력의 공간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절대 권력을 가진 공간이 아닙니다. 고난 받는 백성들이 울부짖는 땅으로 내려와야 할 공간이지, 더러운 땅에서 홀랑 벗어나 들어갈 절대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동안 이런 절대 권력과 공모를 하면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늘을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주의 기도를 그런 시선으로 보아왔습니다. 아니 농락을 한 겁니다.

우리는 예수처럼, 그를 따르던 공동체처럼, 주님의 기도를 다시 읽어 새기고 실행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공모를 해체하고 더러운 이 땅에 하늘이 내려오도록, 아니 더러운 이 땅이 하늘이 되도록,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힘써 지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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