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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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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본문: 마 5:1~12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처럼 우리도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족, 교회, 나라, 열방을 긍휼히 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 5)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한 여덟 가지 복이 있는데, 이 여덟 가지 복이 연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심령 가난의 복이고, 두 번째는 애통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온유한 것이고, 네 번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며, 그 다음 다섯 번째 복이 오늘 전할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품이 긍휼이시기 때문에 죄로 타락한 우리 인간의 구원 역시 긍휼에 의한 것입니다. 긍휼을 나타내는 히브리말의 라함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하다, 측은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친절히 대해주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신약성서를 기록한 헬라어에 보면, 엘레네모네스 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죄인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과 함께 무엇인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선행을 우리는 긍휼이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성숙된 인격의 하나님 편에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가짐이 예수님이 우리를 대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남을 긍휼히 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럼 먼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타락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벧전 1:3절 말씀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 많으신 하나님의 긍휼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22절에 보면,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하였습니다. 만일 사람이 죄를 범한 대로 즉시 하나님이 형벌을 가했다면 지금 살아있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긍휼이 우리를 진멸하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나타난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가?
1.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입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은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잘 가르치는 말씀이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눅 15장에 보면, 어떤 도시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언젠가 나에게 주실 재산이 있지요? 그것을 미리 좀 주십시오. 그래서 그 많은 재산을 받아서 아버지 간섭없이 자기 맘대로 쓰고 싶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 가서 친구 잘못 사귀었습니다. 술친구, 불량한 친구, 또 나쁜 여자친구 많이 만나다보니 있던 것 다 허랑방탕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취직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돼지를 치는데 그 돼지 치는 일을 돕기 위해서 머슴살이로 들어갑니다. 흉년들어 사람 먹을게 없으니 돼지 먹을 것도 없겠지요. 사람은 먹을 수 없고, 돼지만 먹을 수 있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것마저도 없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내가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사는 길은 없을까? 아버지 집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열심히 일하고 많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얼마나 많은고. 그런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겠구나. 내가 사는 길이 있다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생각하고 스스로 뉘우쳐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했으니 내가 우리 아버지더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이제 아들의 자격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품꾼의 하나가 되어야지. 그래서 아버지가 가라 그러면 가고, 오라 그러면 오고, 이것을 하라 그러면 이것을 하는 그냥 주인의 명령에 순복하고 살아가는 종의 모습으로 나는 돌아가야지, 그렇게 의식의 변화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때에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내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발견하고 측은히 여겨, 여기서 측은히 여겼다는 말이 긍휼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달려나와 그를 잘 영접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인데 내 마음이 기쁘다. 이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새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돌아온 아들을 긍휼히 여기신 아버지, 어떤 아들을 긍휼히 여겼느냐면 자기 잘못을 중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님 도움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아버지 간섭,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내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아서 나도 한번 자유스럽게 살아보겠다 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살아보려 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입히셔서 구원에 이르게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호 6:1절 이하 말씀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어리석은 것과 미련한 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 떠나 살았던 것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은 한없는 자비와 긍휼로 감싸주시고 우리에게 새 은혜로 입혀주시는 줄 믿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2.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가를 보면 주와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다가 고난 당하는 사람, 주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빌립보교회에 에바브로디도 라고 하는 신실한 일꾼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들려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도와야 된다 하고 특별선교헌금을 하여 에바브로디도에게 갖다 주라 하였습니다. 요즘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때 당시 교통수단이라고 해봤자 약대밖에 없습니다.
약대가 없으면 걸어가야 합니다. 먼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걸어가는데 몸에 돈을 잔뜩 지녔으니 강도의 위협이 있습니다. 도적의 위협이 있습니다. 여러날 긴장 속에서 지냈습니다. 단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했는데 그만 병이 났습니다. 쓰러졌습니다. 생명이 위독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이 그를 붙들고 울면서 기도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힘쓰다가 병난 에바브로디도를, 주님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바브로디도의 건강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27절 말씀 보면,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성도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다가 때로는 기진할 때 있습니다. 너무 힘들 때 있습니다. 육체는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자에게 긍휼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한때는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도록 기도하여 닫혔던 하늘 문을 여는 그래서 단비가 쏟아지게 했던 엘리야, 이세벨이라는 왕후가 자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삼일동안 도망가다가 광야의 로뎀나무아래에 쓰러지며 하는 말이, 하나님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생명을 차라리 거두어가 주십시오. 그러다가 쓰러졌는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지쳐있는 그를 마사지해 주면서 피곤을 풀어주시고, 그리고 떡과 물을 마시게 한 이후에 새 힘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시고 다시 한 번 새 힘을 얻어 큰 힘을 감당하게 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은 구경만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달려오셔서 그 자비와 긍휼의 손으로 어루만지시고 치료의 은총 주심을 믿습니다.
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4.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자를 주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마 9:27절 이하 말씀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던 두 소경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은 긍휼히 여겨달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전심을 다하여 부르짖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눈을 뜨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14:10절 이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건너편 마을에 계시다 하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도보로 걸어서 주님 계신 곳으로 나옵니다. 그때 주님은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그들 중에 병든 자를 고치셨다는 말씀이 있고, 마 15:29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주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줄로 믿습니다.
5. 하나님께 긍휼히 여기어 달라고 애통하며 부르짖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마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 앞에 와서 부르짖었지만 주님은 외면하였습니다. 한 말씀도 대답치 않았는데 낙심하지 않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시험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외에 다른 데로 보내심 받지 않았다. 그래도 매달립니다. 또 시험합니다. 자녀에게 주려고 준비한 떡을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 이 말은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고 개는 가나안 여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여인을 주님은 무시합니다. 멸시합니다. 인격을 짓밟아놓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너를 무시해도 나를 메시아로 믿겠느냐?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주여,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냥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십시오. 하고 전적으로 매달리니 주님은 그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그 딸이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기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야 합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까? 부르짖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에스겔서 36:37,3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왕하 20:1절 이하 말씀에 보면, 히스기야왕이 죽을병에 걸리게 되자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말합니다. 왕이여, 며칠 후에 죽게 될 것인데 유언을 하십시오. 기막힌 노릇입니다.
그때에 히스기야 왕이 유언을 한 게 아니라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삼일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고 전심으로 주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음성이 이사야에게 들려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왕에게 이르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에서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고쳐줄 것이니 네가 삼일 안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수를 15년 동안 더 연장시켜 줄 것이라. 하나님은 전심으로 매달리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음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와 같이 전에 우리가 고난당할 때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았으면,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 주님이 언제 우리를 긍휼히 여겼습니까?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긍휼히 여긴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내가 저들의 죄를 대신 담당할테니 나의 흘린 피를 보고 저들의 죄를 사해 주십시오. 주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상은 우리의 마음에도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관에서 일보고 있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불러냅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손가락 당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일부는 로마에 바치고 일부는 자기들이 착복을 하다보니 허가된 도둑놈들이라고 욕을 먹고 있었습니다. 자기 같은 죄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자기를 주님께서 제자로 삼아주신 일에 대해서 너무 고마와서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잔치를 배설합니다. 잔치를 배설할 때 자기 동료 세리들과 당시 사회로부터 죄인 취급받고 인간대접 받지 못하던 친구들 다 불러 모아서 같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쑥덕거립니다. 아니! 저 예수라는 사람, 거룩한 선지자인줄 알았더니 어떻게 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친구노릇하고 있네 하고 비방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하시고 너희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6. 병자와 굶주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15:32, 막8:2)
성도가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택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3:12)
2.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마땅한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14:31)
어떤 사람들이 죄를 범한다고 하여 내버려두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는 의인들만의 교회가 되면 안됩니다.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만을 위한 교회가 되면 안됩니다. 지금 교회밖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당한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많은데 우리도 예수님의 긍휼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구원해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긍휼에 대하여 가장 잘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이 마 25장에 나오는데,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양은 구원받게 될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고, 염소는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인데 그 때에 양같은 사람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주님이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들이여, 너희를 위하여 천국이 예비되었으니 그리로 들어가라. 이유가 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이유가 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3. 긍휼을 베푸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4.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가 복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5. 하나님께서 선행을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6. 긍휼 없는 심판을 면하고, 이기기 위하여
긍휼 없는 죄는 긍휼 없는 형벌을 받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긍휼 때문에 살면서 긍휼을 베풀지 못하고 삽니다. 차머스라는 분이 쓴 「정오의 강풍」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런 얘기입니다. 건축 기사인 피어홈은 도처에 많은 다리와 터널을 건설했습니다. 이 때문에 큰 명성을 얻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질병과 실패로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낙향하여 삽니다. 피어홈의 이웃에 한 몰인정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매우 사나운 개를 기르고 있어 피어홈은 늘 위협을 느꼈습니다. 피어홈은 개가 너무 사납다고 여러 번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히려 번번이 피어홈은 모욕만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불행은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그 개가 피어홈의 어린 딸을 물어 죽인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일제히 개 주인인 이 노인을 비난했습니다. 파종기가 되었지만 그 노인에게 한 톨의 곡식 종자를 주거나 팔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은 맨 밭을 간 후에 씨를 달라고 애걸하였지만 그 노인이 거리에 나오면 사람들은 냉소하였습니다.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본 피어홈은 다음날 아침 일찍 광에서 자신이 쓸 씨앗 반 되를 가지고 나와서 열심히 노인의 밭에 씨를 뿌려 주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노인의 밭은 파릇파릇한 반면 피어홈의 밭은 그 일부가 아직도 빈 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긍휼은 원수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도록 요구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 자신의 밭 일부가 맨 땅으로 남겨집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베푼 후에 내가 손해보는 일입니다. 그러나 심판을 면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인격이 성숙하고 믿음있는 사람이 맺히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남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 나오다 안 나오면 구렁텅이에 빠진 양이라 생각하고 가서 건져내야 합니다. 누가 어려움을 당하고 병들어 누워있으면 찾아가서 문병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영혼 바라보면 안타까워 저 영혼 지옥 가고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할꼬. 찾아가서 강권하여 구원자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의 응답을 하십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다 주십니다. 응답을 하시되 더디 하지 아니하시고 신속하게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8:7절 이하에 나옵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형제자매가 고난 당하고 강도 만나서 죽어가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고 지나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되면 되겠느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게 있는 포도주와 기름으로 상처에 쏟아 붓고 싸매고 그를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고 있는 돈 다 털어 주면서 이 영혼 살려주십시오. 부비가 들면 내가 더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신속한 치료, 신속한 기도 응답, 고난당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선행을 베풀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신속히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복이 있고,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37: 25, 26)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을 움켜쥐고만 살지 말고 좀 펴십시오.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흩어서 도와주고 살아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잠언서 1:24절 말씀에 보면,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대하는 대로 대해주십니다. 남의 마음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마음 아픈 일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치지 마십시오. 손해 볼 일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 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 돕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와주는 것은 더 큽니다.
그래서 눅 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너희의 계산하는 대로 너희가 계산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헤아리고 따지면 헤아리고 따진 만큼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사십시다.
북한 사람들이 그동안 우리 남한사람들에게 행했던 소행을 생각하면 도우면 안됩니다. 다 굶어죽도록 내버려둬야 마땅합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우리 아군이 삼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백오십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이 전쟁의 범인,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고 그들은 망해야 하지만 복음적 사고로 돌아가보면 무지한 백성들, 알지 못해서 죄 범하고 저렇게 고통 당해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기 때문에 밀가루도, 옥수수도, 의약품도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 안에서 이 민족이 구원받기 원하는 것, 예수님의 마음인줄로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미국 사람들이 돈을 세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돈 셀 때 보면 왼손에 돈 뭉치를 꽉 움켜잡고 손에 침을 발라서 앞으로 잡아당깁니다. 내 꺼다, 내 꺼, 두 개, 세 개. 그러나 그들은 돈을 그렇게 헤아리지 않고 돈을 쥐고 바깥으로 셉니다. 포유, 포 용, 당신을 위해서. 어떤 의식이 있냐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고 너를 위하여 쓰라고 주었다.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전 세계를 돕고 있습니다. 다 돕습니다. 도우니까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긍휼입니다.
긍휼은 믿음이 어리거나 인격이 성숙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실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벌써 이 긍휼을 베푼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돕고 싶은 마음,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돕는 것은 벌써 신앙과 인격이 어느 수준에 오른 것입니다.
심령가난으로부터 출발된 천국, 죄를 회개하는 애통의 과정을 거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은혜 사모하는 사람, 그 다음에 가서야 우리가 긍휼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습니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잠21:21)
네 번째, 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무슨 복을 받느냐 하면 천국에 갑니다. 왜냐하면 마 25:34절 이하에 그 임금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긍휼을 베푼 사람들입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 아버지께서 예비한 나라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 죄 용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가 무슨 도움을 청할 때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더 채워줄 것이니 이 놀라운 비밀을 여러분은 깨닫고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 5:22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이 라가라는 말은 바깥으로 나가라는 뜻이 아니고, 나쁜 놈이라고 욕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사랑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차원은 육정적이거나 혈통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꼭 돈으로만 돕는 게 도운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둘 중의 하나가 있는지 오늘 이 시간에 확인하십시오. 베드로는 시간을 정해놓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기도 시간이 되어서 요한과 함께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다가 길가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니 한 푼 주세요 하고 손을 내밉니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하는 말은, 네가 나에게 구하는 은과 금은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손을 내밀어 앉은뱅이의 손을 붙들고 일으켰더니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을 주시고, 걷게 하시고, 뛰게 하셨습니다.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돈이 없어 다른 사람 구제를 못할지라도 다니면서 구원받아야할 대상을 붙들고 예수의 이름을 전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앉아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유익되게 하든지 아니면 사업을 열심히 해 돈 벌어서 선교사업에 투자하면서 협력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무슨 일꾼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모셨으니 긍휼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약 2:13절 말씀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그랬습니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방언하고 예언하고 능력을 행해도 사랑실천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긍휼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영에 속한 사람, 하나님 마음가진 사람, 예수님 마음 가진 사람이 이런 사람들을 천국백성이라 일컫고 이렇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 하나님이 역시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니 이 긍휼히 여겨주는 역사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긍휼을 베풀었던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삼상 2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을 수색할 때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듣고 사울왕이 삼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잡기 위해서 나가다가 거기 길목에 들염소 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 그 바위 굴속에 일보러 지금 사울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굴속에는 누가 있었느냐면 다윗과 그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굴이 컸고 안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캄캄하니까 이 사울 왕이 들어와 대변을 보면서 앞을 향해서 즉 바깥을 향해서 일을 보고 있는데 그때에 다윗과 함께 병사가 말을 합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셨지요? 다윗이여, 아무도 없는 이 굴속에 혼자 들어왔으니 단칼에 목을 베서 선한 자를 악하게 대하는 이 원수를 이 시간에 죽이십시다. 그렇게 말하고 지금 다윗과 함께 한 용사들이 사울을 단칼에 죽이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다윗은 조용히 일어나서 일보고 있는 사울의 뒤로 가서 옷자락을 잘랐습니다. 일을 다 보고 이제 사울이 굴 바깥으로 나갑니다. 사울이 나가니 다윗이 또 따라 나갑니다. 따라 나가서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주 왕이여, 그 소리에 사울이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찾고 있는 그 다윗이 그 굴속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놀랐습니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왕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이르기를, 다윗이 왕을 해치고자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어찌 왕은 믿으시나이까? 저는 왕을 모시는 사람일뿐, 왕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나이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바윗굴 속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 왕을 죽이자고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으로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자를 해칠 수 없다 하고 내가 왕의 옷자락을 베었을 뿐입니다. 보소서 하며 이것이 왕의 옷자락이 아니나이까? 이래도 내가 왕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곧이 듣고 나를 그렇게 해치려 하시나이까? 이것을 보시고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십시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지만은 나는 왕에게 죄를 범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내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을 하자, 사울의 온 몸에서 기운이 빠졌습니다. 몸둘 바를 모릅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엉엉 울면서 나는 너를 학대하였으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사람이 원수를 만나면 어찌 그가 평안히 보내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나는 네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고 있노라.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왕이 된 이후에 내 가족을 해치지 말아달라.
성도 여러분, 육신적으로 말하면 사울은 다윗보다 어른입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말하면 다윗이 더 어른이었습니다. 인격으로 말해도 다윗이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육신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왕이 되어 권세를 잡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다윗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도망치듯 가고 다윗은 제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뉘우쳤으면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그 이후에 사울의 마음이 다시 강퍅해져서 또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하나님이 보다 못해 사울은 죽게 하고 때가 되니 다윗을 임금으로 세워 40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니 나라가 태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악한 자가 득세하는 것같아도 나중에는 하나님 편에 선 사람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 용납하기 어려워도 하나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바로 살아갈 때, 때가 되면 우리 하나님이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긍훌히 여겨 주심을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으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시며 주님 주신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후원: 연혼 결혼정보회사 (連婚 結婚情報會社) 홈페이지: http://yeon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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