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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심판의 날에 대한 호세아의 선언

호세아 구하라 목사............... 조회 수 316 추천 수 0 2015.04.28 23:25:28
.........
성경본문 : 호9:1-17 
설교자 : 구하라 목사 
참고 :  

호세아9장1-17절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호세아서는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취하고 부정한 자녀들을 낳는 내용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음란한 여인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며 즉 지금의 우리들, 성도들이며 호세아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호2:19-20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이 땅에 내려와 교회인 바로 우리들, 성도들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사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장가드는가 하면 공의, 정의, 은총, 긍휼히 여김입니다. 그것들을 다시 정리하면 20절에 진실함입니다. 여기 진실함이라고 해석한 단어는 원어로는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믿음으로 장가들고 그러면 성도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알게 됩니다. 예수이신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신약에서 들음으로 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듣는 것입니까? 진리를 들어 알게 됩니다.

내 안에서 생긴 믿음이라거나, 내 열정과 열심이 만들어낸 믿음이 아니라 즉 내 안의 원인이 근거가 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외부에서 진리이신 예수로 밀고 들어와 내 안에 만들어내신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은 진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은 곧 진리로 네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음행하였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진리로 장가를 들겠다고 하셨는데 그 진리를 몰아내고 비진리, 거짓진리를 따랐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비진리와 거짓진리에게 자신을 신부로 내어주고 그 비진리를 남편을 삼았으니 그것이 곧 음행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비진리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타작마당이나 술틀이란 같은 것을 말하는 어구입니다. 곡식을 타작하던 곳이며 수확한 포도를 가져다가 발로 밟아 술을 만들던 곳이 술틀입니다. 전부 농사의 수확을 말하는 것들입니다. 그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진답니다.

즉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나를 든든하게 받쳐준다고 생각하는, 내 자아를 위로해주고 내 자아를 책임져준다고 생각하는 타작마당과 술틀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로 내 안에 들어와 나와 연합하여 결혼하신 하나님이 내 짝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해 주는 세상, 나를 만족케 해 주는 이 땅의 것들이 바로 나의 신랑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음행이며 그것이 음란입니다. 남편 되신 진리를 버리고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여인은 성경에서 전부 부정한 여인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남편이신 진리를 버리고 남편이 아닌 세상을 붙잡으면 그것이 곧 부정입니다. 세상이란 곧 나 자신입니다. 그 세상을 추구하고 음란하게 사랑하는 욕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곧 내가 타작마당이고 술틀임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진정 남편이신 하나님에게 종속되어진 신부로 사는 것이 맞습니까? 우리가 진리와 혼인을 하고 진리가 나를 다스리며 나는 진리에게 종속되어진 존재로 살고 있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이 땅의 술틀과 타작마당에게 종속되어 그것들에게 순종하는 죄의 종입니까? 성경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예배 잘 드리고 종교행위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진리이신 예수와의 연합, 그 진리와의 혼인을 말합니다.

우리는 전혀 하나님이 아내로 삼아 결혼할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입니다. 진짜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반쪽으로 삼아 그 세상을, 즉 자아의 가치와 영광을 붙든 음란한 자들입니다. 음란한 아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아 결혼한다는 것은 그 여인의 부정함과 불의함과 음란함을 모두 남편이 대신 뒤집어쓰고 대신 돌에 맞아 죽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하는 순간, 그 여인의 모든 책임과 의무는 남편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종속된, 남편이 책임지는 존재가 됩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이 진리를 버리고 자기 자아의 욕망과 가치를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자아를 선택한 아내인 우리와 혼인하신다는 뜻은 하나님이 우리대신 돌에 맞아 죽겠다는 뜻입니다. 대신 조롱과 침뱉음과 채찍질과 저주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음란한 고멜인 우리와 혼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로 우리 안에 들어와 나를 신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작마당과 술틀을 여전히 섬깁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여전히 그렇게 살아갑니다. 나를 섬깁니다. 악하고 음란한 신부인 나와 결혼하여 대신 돌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으신 진리이신 신랑을 버리고 오늘도 타작마당의 돈과 술틀의 욕망을 남편으로 삼아 그 비진리, 거짓진리를 붙잡고 거기서 기쁨을 누리고 거기서 만족을 삼으며 거기서 영생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좋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부 남편이신 예수보다 그 쾌락과 자랑과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9절에서는 그 상태를 기브아의 시대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사사의 시대를 말합니다. 이는 삿19-21장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한 레위 사람이 첩을 얻었는데 그 첩이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도망을 가서 도로 데려오려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거기서 몇 날을 유숙하다가 그 첩을 데리고 집으로 가던 중 기브아에서 유숙할 때 불량배들을 만나고 그 불량배들이 레위인을 강간하려고 할 때, 집 주인이 자기 딸과 그 첩을 줄테니 이 레위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첩을 내주자 불량배들이 밤새도록 능욕하고 새벽에 풀어줍니다.

이후 그 첩이 동틀 때에 자기를 첩으로 삼은 그 레위인이 묶었던 집 앞에 쓰러져 죽었고 그 시체를 발견한 레위인이 그 시체를 가져다가 12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냅니다. 이에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모여 전쟁하기로 하고 보병 40만명이 모여 베냐민 지파의 씨를 말리기로 작정하고 전쟁을 벌여 베냐민 지파가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처음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라는 어구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도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렇게 마칩니다. 그 왕이 누구십니까? 바로 진리이신 예수입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아무리 종교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그 진리이신 예수를 남편으로 삼지 않으면 그 상태가 바로 저주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자기 욕망과 쾌락만이 남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인간은 도덕도 윤리도 상식도 없는 극악무도한 일이 자행되는 것입니다.

자기 쾌락을 위해 첩을 두는 장면을 보세요. 자기 쾌락과 자기의 욕망을 위해 남편인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남편으로 삼는 우리가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자기의 쾌락을 위해 남자가 남자를, 불량배들이 그 남자인 레위인을 내놓으라는 장면에 누가 있습니까? 내가 나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편이신 진리의 예수가 아닌 다른 남편인 세상을 취하는 모습이 바로 내가 아닙니까? 거기엔 도덕도 윤리도 상식도 없습니다. 동성연애라는 도덕적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남편이신 하나님을 붙드는 여자로서의 교회, 그 본질을 잃어버린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죄라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에는 분노하지 않으면서 겨우 레위인의 첩이 죽임을 당한 일에는 도덕적으로 의분을 내면서 그놈들을 죽이자고 단합하여 11지파가 한 마음으로 뭉치고 일어나는 모습에서, 진리와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 신앙이라는 개념도 관심도 없으면서, 남편을 잃은 부정한 자신의 모습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으면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일에는 의분을 내면서 이웃을 죽이려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열심을 내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바로 내가 들어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진리이신 예수를 내 남편으로 붙들지 않고 세상의 욕망을 남편으로 붙들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나’라는 욕망과 ‘나’라는 가치를 신앙으로 삼는 자들에게 진리를 남편으로 붙들어 그 남편에게 모든 권리와 주체성을 차압당하고 오직 그 진리라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진리에 종속되는 것이 신앙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차원이 신앙이라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오직 ‘나’만 살면 되고 나만 행복하면 되며 ‘나’의 의분과 ‘나’의 종교적 열심만 내면 됩니다. 그걸 붙드는 것은 남편이신 진리를 버리고 음란하게 세상과 혼인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나의 남편되신 하나님, 내 안으로 성령을 보내셔서 진리로 파고들어와 나의 악한 영에 거룩하신 진리의 영으로 아들이신 예수를 낳으시고 거기에 생명을 만들어내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타작마당과 술틀을 섬기고 거기서 만족을 얻으며, 그것들을 취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사 기브아의 패역한 상태와 같이, 진리이신 왕이 없이 나의 욕망으로만 살아가지 못하게 막아서시고 나의 원하는 대로 세상을 남편 삼으려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사 절망케 하셔서 남편이신 예수를 붙들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패배도 감사요 절망도 기쁨이요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오직 예수의 뜻대로, 신랑의 뜻대로 음란한 아내인 나와 혼인하셔서 나의 모든 허물을 대신 감당하셔서 아름다운 신부로 이뤄내시는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오늘도 그 남편이신 진리만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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