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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호1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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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호세아11장1-11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 예수를 믿고 나서 시간이 갈수록 내 인격이 고매해지고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인격도야에 정진하고 내가 더 착해지고 정직해지고 훌륭해지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나를 더 개발시켜주고 내 인격에 도움이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말씀이고 설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 감동적이고 도움이 되는 내용을 듣고 더 훌륭하게 변할 수 있고 인격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천국에도 갈 수 있는 자격까지 획득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의 복음이 그런 것이라면 그건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의 십자가를 몰아내는 반복음의 내용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착한 행실도 구원을 이루지 못하며 모든 인간이 벌이는 행위는 전부 죄에 불과하고 인간 자체가 썩었고 부패했기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결과물도 전부 악하고 더러운 것이어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롬3:9-12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즉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전부 죄인이라고 성경이 선언을 해 버립니다. 의인도 하나도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나의 기준과 판단으로 착한 일을 좀 했다고 하면 선을 행했고 그것이 천국에 저축을 하는 것처럼 쌓여 내가 더 선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것은 전부 죄뿐이라고 성경이 피할 수 없고 반박할 수 없는 선언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성경을 보지도 않고 믿을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구원입니까? 인간이 내놓는 모든 행위가 전부 악한 것이라면 과연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 복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롬4:3-5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그러니까 어떤 인간의 선한 일이나 자격을 얻으려는 노력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내용입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 곧 불의한 자, 계속해서 악을 좋아하고 죄를 따르는 자들, 곧 우리들을 아무 조건과 대가없이 의롭다고 여겨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임을 믿으면 곧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복음입니다.
오늘 호11장이 딱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불러냈습니다. 저들이 착하거나 자격이 돼서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저들에게 불러낼 아무런 자격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점점 바알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하였습니다. 바알이라는 뜻에는 ‘남편, 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멜과 같이 음란하여 부정한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아 사랑하였지만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남편으로 삼아 점점 더 세상을 사랑하였습니다.
마치 자식을 낳아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고 업어서 양육하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음란한 고멜의 상태에서 불러내어 자식을 만드셨음에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해주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거룩해지고 착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안에 있는 죄는 똑같습니다.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란 여전히 악하고 늘 악하고 애굽의 죄의 노예의 상태에서 예수십자가의 피의 대가로 구원하여 생명과 자유를 주었음에도 여전히 자기 자아의 행복과 가치향상을 위해 바알을 섬기는, 다른 남편,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는 자아의 패역함을 깨닫는 것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내가 착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의 은혜만 꼭 붙들 수 밖에 없는 자임을 날마다 깊이 알아가 하나님의 은혜만 찬송하는 자가 되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며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교회 다니고 종교행위를 잘 하면 진짜 내 안에서 거룩이 격발되어 나옵니까? 아니잖아요. 우리의 존재는 겉으로는 착한 척을 하고 흉내를 내지만 실제로는 똑같지 않습니까? 똑같이 자아를 추구하고 똑같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만 살면서 표면적으로만 성숙하고 거룩한 척을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이미 증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바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의롭게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내가 경건하지 않은 자임을 자인하지 못하면 복음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의로움을 내가 만들지 않는 것이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음을 믿고 오직 예수만 나를 의롭게 만드실 것이라고 오로지 그 십자가의 은혜만 꼭 붙드는 것입니다. 그걸 구원이며 영생이라고 합니다.
본문 4절이 그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여기 ‘줄’이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가 ‘약속, 맹세, 서약’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과 줄로 단단히 묶듯이 약속을,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단어가 ‘아담’입니다. 최초의 사람과 맺으신 언약, 즉 최초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사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여자는 곧 교회, 성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를 말하는 것이죠. 예수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멸하실 것이랍니다. 사람의 줄, 즉 사람과 맺은 언약이란 예수가 성도의, 곧 교회의 원수인 사탄을 멸하시고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이 되려고 하며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기만 위하고 자기의 영광만 취하는 인생이 되려고 합니다. 그게 사탄입니다.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너희의 아비는 마귀이니라(요8:44)’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마귀를 멸하시겠다는 것이 우리 인간과 맺으신 최초의 언약입니다. 마귀의 본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안에 있습니다. 사탄의 실체가 내 안에 살아있고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사탄을 멸하시겠다는 것은 바로 내 안의 그 마귀, 내 안의 마귀의 본성을 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죠? 그게 구원입니다. 그걸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의롭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로마서에서 확인했습니다. 즉 불의한 자, 내 안에 마귀적 속성을 가지고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악한 자아를 십자가로 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그 언약(약속)을 믿으면 그게 구원입니다. 그리고 다시 본문 4절에서 말하듯이 이 약속이 바로 사랑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 그 아들을 죽여 그 피값으로 마귀의 자식들을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으로 만들어내시겠다는 약속이니 이것이 곧 사랑의 언약 아닙니까? 바로 이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4절에서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입니다. 죄의 노예로 태어나 마귀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목에 걸고 살아야 하는 우리를 그 언약을 지키심으로 자기 생명의 대가를 주고 풀어주시니 곧 예수가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시는 것이며, 죄를 먹고 악한 것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 사는 것인 줄로만 알던 자들에게 예수의 살과 피, 다시 말해서 진리를 먹는 것이 사는 것인 줄 알게 하시는 이것이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착해지고 선해지고 고매해지는 인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진리로 들어갈수록 내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더러운지를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가며 예수와 십자가만 절대적으로 붙드는 것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8-9절입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무리 찾으시고 설득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용서하셔도 인간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7절에서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은혜와 자비하심을 동원하셔도 누구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다고 일어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기만을 사랑하며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오직 자기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긍휼의 마음이 불붙듯 하신다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긍휼의 불붙듯 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나는 저주 받아 마땅하며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행복만 추구하는 사탄의 자식이지만 하나님의 나를 향한 긍휼의 불붙듯 하심을 믿고 그 긍휼하심을 이루고야 마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 구원입니다.
나는 맹렬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고 하나님의 멸하심을 받아 마땅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하고 착하게 살면 그 진노와 멸하심에서 벗어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불붙듯이 오늘도 내게 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대상이라는 깨달음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교회 다니고 착한 일 하고 있으니 성숙하며 거룩한 자라는 생각이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자아 인식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어떤 착한 일을 해서 그 은혜를 갚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11장의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인생들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모두 거짓과 속임수로 하나님 앞에 정한 자가 없습니다. 구원이란 그런 자신의 절망 상태를 명확하게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불붙는 긍휼하심이 없다면 그저 저주의 자식임을 깨닫고 예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주의 자식, 멸망의 자식, 마귀의 자식임에도 십자가에서 아들의 피를 흘려 생명의 자녀로, 언약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내가 저주의 자식이며 마귀의 자식이라는 자각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만 붙드는 믿음은 격발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착한 일 하고 의로운 일을 하면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믿는 악함에서 건짐을 받게 하옵소서. 오직 경건하지 않은 자를 아무 일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만드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만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며 의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오늘도 불붙는 긍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만 붙듭니다. 은혜를 내리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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