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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6: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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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94) 2015.4.13 |
지혜로운 재물관리 (누가복음 16장 1-13절)
<
성공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
성공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바른 성공을 기뻐하십니다. ‘교만한 부자’보다는
‘겸손한 빈자’가 낫지만 역시 제일 나은 사람은 ‘겸손한 부자’입니다. 부자인데 겸손한 사람은 어둔 세상 들판에 핀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물질 유무보다 믿음 유무와 성품 유무가 중요합니다. 참된 성공은 ‘물질과 숫자가 많아지는 것’보다 ‘성공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잘 활용해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 참된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믿음 안에 있다면 실패가 때로는 인생이 좋은 약이
됩니다. 하나님은 실패도 사용하시고 반대로 성공도 사용하십니다. 특히 성공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기적적인 성공만 너무 바라지 않으면 됩니다.
성공은 대개 기적의 산물이 아닙니다. 기적은 자연법칙의 중단으로 생기지만 성공은 대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자연법칙을 지혜롭게 활용할 때
생깁니다. 실패는 하나님의 뜻과 질서와 법칙을 무시한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성공에 집착하면 안 되지만 진지하게 성공을 준비해야
합니다. 때로는 야곱처럼 나쁜 외삼촌 라반의 수중에서 도망칠 필요도 있습니다. 무조건 끝까지 버티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나쁜 것은
멀리하고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좋은 비전 동역자’을 붙여주십니다. 한 사람의 탁월성이 성공의 핵심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탁월성을
누군가 뒷받침할 때 그 탁월성이 빛을 발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좋은 비전 동역자는 비전 성취를 위한 엔진과도
같습니다.
혼자 활동하기를 좋아해서 동지가 없는 탁월한 사냥꾼은 자기 혼자 먹고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큰 인물은 될 수
없습니다. 탁월한 사람이 생산적인 20% 안에 드는 사람을 동지로 만나면 큰 힘을 얻습니다. 더 나아가 초생산적인 5% 안에 드는 사람을 동지로
만나면 큰 힘과 더불어 큰 영향력까지 얻게 됩니다. 결국 큰일을 하려면 거룩한 비전 동지를 통한 도움과 격려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근검절약’보다 ‘복된 성공’이 더욱 소중한 가치입니다. ‘근검절약’은 적게 나누는 방법이고
‘복된 성공’은 크게 나누는 방법입니다. 다만 성공을 추구할 때 병 고침과 같은 기적에 너무 기대지 마십시오. 기적적인 신비한 방법으로 성공을
추구하면서 간단한 성공법칙들을 무시하니까 성공은 없고 속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헌금하면 성공한다는 잘못된 기복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기복주의 부흥사들이 조장하는 복권신앙은 반드시 영혼에 상처를 낳고 하나님의 이미지만 나쁘게 만듭니다.
그런 기복주의
교리로 한 명은 성공합니다. 바로 기복주의 부흥사와 이단 교주입니다. 왜 이단들이 물질과 숫자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둡니까? 바른 성도들이
물질과 숫자 측면에서의 성공을 외면해서 영혼 착취자들에게 성공을 내주기만 때문입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멋진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과
문명을 혐오하는 것은 영성이 아닙니다. 병들면 기도원만 찾지 말고 병원에서 기도하며 고치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부정하고 특별은총만
찾으면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업도 그저 밥벌이 정도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명감을 가지고 이왕 사업을 시작했으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큰 성공을 꿈꾸십시오. 무뚝뚝한 행운의 신을 향해 기우제를 지내듯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면서 사업의 성공을 꿈꾸지
마십시오. 오늘의 활기찬 활동이 대개 내일의 성공을 예비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뛰는 20% 안에 드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고 더
나아가 5% 안에 드는 초생산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십시오.
성공을 혐오하지 마십시오. 성공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잘 활용하면
멋진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돈도 혐오하지 마십시오. 돈에 집착하지 말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돈을 혐오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과 재물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과 재물로 영혼을 얻고 친구를 얻으면 결국 하나님의 마음도 얻습니다. 그것이 본문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주는 교훈입니다.
< 남에게 퍼주는 불의한 청지기 >
어떤 부자에게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 청지기가 주인처럼 행세하며 주인의 소유를 맘대로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 들렸습니다(1절). 결국
주인이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들리느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절).” 본문 2절에서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는 말은 “네가 보던 일을 정산하라!”는 말입니다. 즉 주인이 그의 직무를 남에게 넘기려고 회계 정산을 시킨
것입니다.
그 위기 상황에서 청지기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3절).” 그 청지기는 허드렛일을 하는 집사가 아닌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였기에 땅을 파는 육체노동으로는 벌어먹을
힘이 없었고 또한 수치심도 견디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그가 위기를 타개할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어떤 꾀입니까?
나중을 대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자기 것도 아닌 주인의 것을 퍼주면서 인심을 쓰는 꾀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그가 기름 백 말을 빚졌다고 하자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기름 백 말은 노동자 약 3년 보수 정도 되는 약 1000데나리온 가치를 가진 물품입니다. 그렇게
채무증서에서 백 말을 오십 말로 채무자의 자필로 쓰게 해서 약 500데나리온의 빚을 줄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밀 백 석을 빚진
자에게도 말했습니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밀 백 석은 노동자 8년 보수 정도 되는 약 2500데나리온의 가치를 가진
물품입니다. 그렇게 그의 채무증서에도 백 석을 팔십 석으로 쓰게 해서 그에게도 약 500데나리온의 빚을 줄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빚을 줄여주면
본인은 인심을 얻지만 주인에게는 손해를 끼친 셈이 됩니다. 그 사실을 주인이 알면 더 진노할 것 같은데 주인이 알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이 불의한 청지기의 계산적인 행동을 보고 진노하지 않고 오히려 지혜롭게 행동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장면입니다. 마치 불의하고 계산적이고 약삭빠른 태도를 성경이 옹호하는 것 같습니다. 왜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을까요?
이 비유는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첫째, 이 주인은 작은 재물에 연연하지 않는
엄청난 부를 소유한 주인입니다. 둘째, 이 주인은 청지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주인입니다. 셋째, 이 주인은 빚진 자를 긍휼히
여기는 사랑이 넘치는 주인입니다.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의 계산적인 행동은 괘씸하지만 인생의 위기를 퍼주는 기회로 삼아 빚진 자의 빚을 줄여주는
것을 기쁘게 보고 칭찬한 것입니다.
이 주인이 누구를 상징할까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주인 것을 맘대로 쓰다가 인생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얄팍한 꾀를 부린 청지기는 누구를 상징할까요? 사람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남용도 잘하고 얄팍하고 계산적입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도 얻을 것을 생각하고 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가진 소유 중 어느 것 하나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빚에 허덕이는 어려운 사람에게 인심을 써서 그의 빚을 줄여주려는 모습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더 기뻐하신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에게 “지혜 있게 행동했다.”고 했을 때 그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를 뜻합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합니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성도에게도 세상을 잘 극복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지혜를 발휘하는데 성도들이 아무런 지혜와 준비와 계산도 없이 살면 안 됩니다. 불신자들의 지혜와 대처보다 성도의 지혜와 대처는 더욱
탁월해야 합니다.
< 재물로 친구를 사귀십시오 >
그렇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들려주신 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 구절에서 ‘불의의 재물’은 ‘불의하게 얻은 재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즉 부정직하게 재물을 얻어서 그 재물로
헌금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인심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불의한 재물’은 ‘불의하게 보는 재물’이란 뜻에 가깝습니다.
사실 재물 자체는 불의한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불의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을 불의하게 보지 말고 불의하게 보는 재물을
잘 나눠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도 얻지만 하나님의 칭찬도 얻습니다.
이 비유에서 ‘불의의 재물’은 간단히 말하면 ‘세상 재물’을 뜻합니다. 세상 제물은 언젠가는 없어집니다. 살다가 재물을 잃어서
없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음으로 재물이 남에게 가서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재물이 없어져도 평소에 자기가 가진 재물로 열심히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 하나님이 잊지 않고 그를 ‘영주할 처소’인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천국으로 영접한다는 말은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천국 상급을 크게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이 세상의 모든 제물은 어떻게 보면 불의의 재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재화 창출은 땀의 대가지만 이 땅의 한정된 재화를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정당하게 번 재물도 불의한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재물을 모으기만 하면 재물이 불의한 재물로 끝나지만 그 재물을 잘 나눠서 영혼을 구원하고 친구를 얻고 인심을 얻는데 활용하면
불의한 재물은 의로운 재물로 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돈을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재물은 대개
치열한 경쟁의 산물입니다. 그 재물을 얻는데 때로는 자기가 의도하지 않고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며든
재물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재물을 좋은 곳에 쓰지 못하면 계속 불의한 재물로 있게 되지만 잘 쓰면 불의한 재물이 아닌 의로운
재물로 변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전쟁 노략물을 하나님께 바친 예도 많습니다. 피로 얼룩진 전쟁
노략물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안 받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피의 제물은 받겠느냐고 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 노략물도 예물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피상적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일반은총’이 있듯이 ‘일반희생’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생명체의 죽음을 허락하신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남 유다의
신실한 아사 왕이 구스와의 전쟁을 통해 탈취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와 언약갱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습니다(대하 15:11-15). 치열한 인생 경쟁에서 정당하게 물질을 취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특히 물질을 의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물질을 취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쓰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질 전쟁에서도 이기려고 하십시오. 그 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잘 사용하면 됩니다.
< 재물관리를 잘하십시오
>
돈 자체는 불의한 것이 아닙니다. 돈은 잘만 사용하면 얼마든지 좋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땀이 아닌 꾀로 얻은
돈은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게다가 돈을 잘못 쓰면 영혼을 망치는 무서운 돈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폐단이 있다고 무소유로 살겠다고
하면 너무 소극적인 삶이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돈에 지배되지 말고 돈을 잘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 됩니다. 그것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에 담긴 깊은 뜻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속아서 큰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습니다. 너무 분해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무개야! 없어진 돈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어차피 선교와 나눔도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냐? 나눴다고 여겨라!” 그 음성을 듣고 새롭게 나눔을 결단하자 마음에 깊은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소유하려고 하면 분노할
일이 많아지지만 나눠주려고 하면 평안과 자유함을 얻습니다.
돈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천국에서 크게 영접 받는 꿈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마 25:40). 그
말씀에서 예수님은 ‘작은 자’를 ‘내 형제’라고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작은 형제자매들을 도와주고 돌봐주는 것이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소외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속마음을 외면하면 아무리 잘 믿는
것처럼 보여도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나눔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제자의 가장 기본적인 작은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
구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은 문맥에 의하면 ‘불의의 재물’을 뜻합니다. 재물은 복음이나 다른 위대한 도덕적인 가치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작은 것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고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재물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란 경제적인 책무에서 남에게 신뢰를 주면서도 힘써 나누며 섬길 줄 아는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재물관리를 잘하는 것을
기본적인 충성의 바로미터 중의 하나로 보십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합니다(11-12절).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이 재물관리
문제에서도 충성과 열심과 지혜를 발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돈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13절). 재물에 욕심을 가지면 하나님은 슬쩍 떠나십니다. 무엇이든지 다른 우상이 들어오면 하나님은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질투의 하나님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진리와 비진리는 본질적으로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에 지배되지 말고 돈을 관리하십시오. 돈을
남용하지 말고 돈을 활용하십시오. 돈을 섬기면 삶이 고단해지만 선교와 나눔의 도구로 활용하면 천국 평안을 얻습니다.
교회는
외형적인 성장과 건축만 추구하지 말고 선교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멋진 나눔의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평소에도 열심히 물질을 덜어내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기꺼이 분립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은 인물도 많이 배출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외형적으로 크지 않아도 선한 영향력은 어느 교회보다 크게 미치는 모델교회가 되어 많은 선한 목자들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저희 사역을 위해 그 동안 꾸준히 기도해주신 한 집사님의 헌신을 통해 인도 동북부 산지에 단층 40평짜리 아담한
교회 하나를 건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헌신하면서 “헌신을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의 헌신입니까? 그 동안 선교사님들의 차 등을 비롯해서 많이 돕기는 했지만 선교지 교회를 건축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말 기쁘고
감격이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강남에 있는 초대형 교회의 1평 건축비용이면 그런 교회를 5개 건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건축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고 화려한 건축은 신중하게 재고해야 합니다. 그처럼 돈의 지혜로운 사용을 통해 돈이 아닌
하나님만 섬김을 실천적인 삶으로 보여주면서 천국 상급을 예비하십시오.
또한 본문 13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은 확대 해석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좋은 길을 선택했으면 앞만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제자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고 배와 그물과 가족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중심은 하나가 되어야지 둘이 되면 안 됩니다. 마음도 둘로 향하면 안 됩니다.
한자에서 중심(中心)이 하나면 ‘충성 충(忠)자’가 되지만 중심이 둘이고 입이 둘이면 ‘근심 환(患)자’가 됩니다.
살다가 너무
힘들면 하나님이 숨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름에 해가 가려져도 해는 여전히 구름 뒤편에 있듯이 하나님은 힘든 현실 너머에서
여전히 미소 짓고 계십니다. 흔들리지 말고 꿈과 비전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최고의 재능이란 ‘재주가 있는 것’보다는 ‘꾸준함이 있는
것’입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보다 꾸준한 사람이 결국은 인물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힘써 얻고 힘써 나눔으로 사람들의 마음도 얻고
하나님의 마음도 얻으며 천국 상급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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