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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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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5.3.22주일설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 4장 26절
분냄은 범죄함을 통한 고통 가져오나
십자가 보혈을 통해 분노의 감정 이기면
분노 대신 사랑과 용서하는 삶 살게 돼
분노는 불꽃과 같습니다. 화를 내거나 심히 노를 발한 후에 그 남은 분노가 불꽃같이 마음에 분을 뿜습니다. 분을 삭히지 못해서 계속 품고 있으면 그 영향으로 죄를 짓게 되며 해가 지도록 분을 내면 그 기회를 쫓아 마귀가 들어와 큰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살인, 상해, 방화, 폭력 등의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제대학교 스트레스센터가 분노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인 7000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인가”를 조사했더니, 1위가 바로 분노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갖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주로 우울이나 불안이 나타나는데 반해, 한국인의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엇이 어째? 죽어볼래?”하며 분노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분노는 단지 부정적인 감정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보여주듯이 분노가 범죄나 폭력 사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해 전체 폭력범죄의 약 40%가 욱하는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난 우발적 ‘분노 범죄’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1. 분을 내면 죄를 짓게 된다
분을 내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요사이 무시무시한 범죄의 배후에는 분노가 반드시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 방송매체를 통해 크게 회자한 ‘땅콩 회항 사건’은 참지 못한 분노로 인해 생겨난 사건이었습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항공사 간부가 승무원들에게 윽박지르고, 비행기를 회항시키기까지 해서 결국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 입니다. 또 보육교사가 어린아이에게 주먹질을 한 사건 역시 참지 못한 분노가 터뜨린 사건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참지 못하고 터뜨려 버립니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분노는 뇌졸중, 심장마비 등의 위험을 높인다고 하며,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화를 내면 건강상 위험 상태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또 화를 낸 상태에서 잠을 자면 깨어났을 때 마음에 불행도가 높아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더 악화된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을 낼만한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분을 내서는 안됩니다. 그 분을 통해 마귀가 틈을 타게 됩니다. 결국 마귀가 틈을 타면 큰 상처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했고, 잠언 29장 11절에도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분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자였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둘에게 분명히 1년에 한 번씩 하나님께 올 때 제사를 드리되 어린 양을 잡아 피를 쏟고 향기로운 제물로 불을 태워 하나님께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년간 농사를 짓고 난 다음 가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내가 손으로 지은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야지. 하나님 내 손의 열매를 받으십시오” 하고 열매 맺은 곡식단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고개를 흔드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자기 원하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순결하고 깨끗한 어린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피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향기로운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은 것에 분을 품고 아우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창 4:5∼8) 분을 참지 못함으로 인한 첫 살인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했습니다. 분의 결과로 악을 행하여 살인도 하게 되고, 파괴하며 무서운 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범죄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헤어진 애인이 밉다며 자동차로 들이받고, 재산 문제로 불화를 겪다가 엽총을 발사하는가 하면 연인과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이처럼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2. 화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
욥기 5장 2절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고 했습니다.
2005년 ‘최장수 부부’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인 퍼시 애로스미스와 아내인 플로렌스 애로스미스인데, 남편이 105세였고, 아내가 100세였습니다. 그들이 기네스북에 올랐을 때 한 기자가 금슬이 좋게 장수한 비결을 묻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남들처럼 다투지 않겠어요? 우리도 종종 다투는데 그러나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항상 화가 나면 그 화를 다 풀고 난 다음에 잠자리에 들어가고, 등을 서로 대고 자지 않습니다” 이들은 화가 났어도 잠들기 전에 다풀고, 언제나 친구처럼 포옹한 채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는 부부에게 장수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 부부가 평생 실천했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3. 분을 품거나 화를 내지 않기 위하여
분을 품거나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신속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보혈로 마음을 씻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분이 올라서 감당할 수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여 미쳐 주님께 도와달라고 할 시간이 없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이라도 씻기 바랍니다. 손을 씻든지, 춤을 추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분을 빨리 가라앉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시편 62편 8절에도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단한 믿음을 가지면 요새가 되어 적군을 맞아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시편 91편은 어려운 일을 당한 우리에게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시련과 환난이 있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서 결국에는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기를 “형들은 나에게 해를 주려고 애굽의 종으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돌이켜 선이 되게 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건지는 아버지 노릇을 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이 말씀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분을 내거나 화를 내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모든 일을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놀라운 기적의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질하는 로마 군인들과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닙니까? 자기를 죽이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좌우편에 있는 강도 중에 한 명이 예수님을 보고 “주님의 나라에 임하는 날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자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시며 그 즉시 고백을 한 사람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구원이 철저히 주님이 주시는 공짜 선물이지 우리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어가는 흉악한 강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그는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 한 것을 통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서 낙원으로 들어가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죽어서 음부로 들어갑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낙원으로 데려가기를 원하시기에 십자가에서의 그 모든 일들을 참아내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도망쳤던 베드로가 다시 슬그머니 돌아와서 예수님이 죽으신 모습을 십자가에 밑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배신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니 주님은 욕을 당하고 계셨지만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고 계셨지만 위협하지도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오히려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하셨고, 그것을 보는 베드로는 심히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에게 노하는 것을 살인행위와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형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엄하게 심판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바울도 분냄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버려야 할 죄악의 목록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철저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 제물이 되어서 제사를 드렸으니 우리에게는 다시 드릴 제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 보혈이 “이 제사로서 영원히 사함을 받았다”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철저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면서 거룩하게 살게 되도록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터를 다 닦아 놓으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19절에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원수 갚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원수는 주님이 갚아 줄 테니까 주님께 다 맡기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에 용서와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분노를 기도와 찬송으로 삭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그들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며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것으로 인해 그 주인에게 고발당해 감옥에 갇힌 사건이 있습니다. 밤중에 그들은 배도 고프고 매 맞은 곳에서 피가 흐르고 쓰라렸지만 그 억울함에 불평이나 원한이나 분을 내지 않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송소리가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좋았던지 찬송소리에 맞춰 하나님이 지진으로 온 빌립보 시를 흔들었습니다. 지진이 나자 죄수들이 갇혀있는 방문들이 열리고, 수갑이 풀려 자유와 해방이 온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가지면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 돌아와서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말씀하실 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로 하여금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려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제일 첫째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난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가난을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부요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즉,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우울 같이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는 고쳐주는 것 즉,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고 은혜의 해를 전파하십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케 된다는 사실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눈먼 자는 보게 해주시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은혜의 해를 전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항상 알아야 될 것은 마음에서 먼저 일어난 일이 우리의 밖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알아야 죄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허물에서 씻음 받은 것을 담대하게 믿을 때 성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병에서 놓여남을 받은 생각을 하게 되면 육신에 치료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아서 형통하고 아브라함의 부요함이 들어온 것을 능력으로 믿으면 환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천국이 가득하고 죽음이 겁나지 않는 사람은 죽으면 낙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을 통해서 바꾸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나는 믿음으로 산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창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의식이나 형식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고,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현실 생활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포스트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의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던 청년은 나중에 의사가 되어 ‘알츠하이머병’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참으로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환자들의 가족을 통해 ‘주는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는 사랑의 효과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설립했고, “사랑은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 더 많은 유익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심장병을 예방하는 아스피린의 효과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아스피린보다 두 배나 더 효과가 좋은 약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치료제입니다. 사랑을 캡슐에 넣어 팔 수 있다면, 제약회사들은 획기적인 신약이 출시되었다고 광고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랑으로 분노를 이겨야 합니다. 분노는 자기 마음을 파괴하고 같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나 사랑은 받는 사람도 좋고 주는 사람도 좋습니다. 사랑은 아스피린보다 더 좋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분노 대신에 사랑을 베푸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마음속에 상처를 싸매 주시며, 위로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분노는 우리의 인생을 죄 짓게 하고, 그에 대한 결과로 고통 속에 헤매게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안에 치고 올라오는 분노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여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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