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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53 추천 수 0 2015.05.20 16:48:55
.........
성경본문 : 막1:40-45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장 40절-45절: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용어를 말을 글을 빌려서 당신의 뜻을 담아서, 하늘의 뜻을 담아서 성령으로 기록케 해서 우리에게 주셨다. 성령으로 기록하게 했다는 여기에는 예수를 믿는 너의 영인성장이 있기 때문에 그 면을 위해서 성령님이 즉, 하나님의 신이 기록을 했다는 말이다. 영인성장 즉, 인간 네가 하나님처럼 마음을 닮는 게 없다면 성령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책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성령으로 기록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인간 자기의 영인성장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은 그 목적대로 자라는 게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게 있다.


그리고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죽음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존귀 영광과 행복이 있는 그곳에서 이 땅의 우리들에게 내려오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늘의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거, 영원히 망하지 않는 거, 영원히 살아있는 거. 그런 곳에 사는 그 분이 이 땅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신 그 뜻은? 그 의미는? 왜 영원히 죽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내려오셨는가? 우리로 죽지 않을 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의 그 마음 그 정신, 주님의 그 머릿속에 있는 그 지혜지식 그 도덕성 그 소원 목적은 하나도 죽지를 않는다. 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유대인들에 의해 당신의 육신은 한 번 죽었다. 그러나 죽으신 그 몸이 변화 부활이 돼서 영원히 안 죽는 존재가 되셨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의 속에 죽지 않을 것으로 채워주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육신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라고 했듯이 안 죽는 자로, 그리고 영인성장 면에서 장성한 자가 돼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에게 속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짐승은 그걸 모른다.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쉽게 말하자면 영의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이 속사람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속사람을 모르면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 되는 거, 썩고 뭉그러지고 불타지는 걸 구하게 된다. 이런 거 백 날 구해봐야 세상에서 일등부자가 되느냐? 그런데도 속는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을 하면 예수 믿는 게으른 자보다 훨씬 부자로 산다. 그런데 믿는 자기는 부지런하지 못하고 왜 자꾸 예수이름으로 부자 되게 해 달라고 하느냐? 그것부터가 네 마음이 잘못됐다.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셔서 ‘나를 따르라’ 하는 것은 ‘나처럼 만들어 줄께’ 하는 것이다. 영인성장 면에서 인격이 자라고 성품이 자라고 지혜지식성이 자라고 도덕성이 자라고, 하나님의 것으로 자라는 것.


‘예수 믿는 가정은 잘 돼야 된다’ 하게 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부부를 만들어 줬으니까 가정이 잘 돼야 된다’ 할 때 ‘예수 믿는 것이 먼저이면서 그 가정이 잘 돼야 된다’ 하게 되면 옳은 말이지만 예수 바로 믿는 건 없이 ‘예수 믿는 가정은 잘 돼야 된다’ 이렇게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건 사고방식이 틀렸다. 단순히 ‘예수 믿는 가정은 잘 돼야 한다’ 하게 되면 ‘가정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도 된다’ 이렇게 된다. 말의 이치가 그렇게 돌아간다.


그러면 그렇게 가정을 위해서 예수를 믿으면 그 가정이 잘 돌아가겠느냐, 안 돌아가겠느냐? 여기에 뭐가 빠져 있는지 아느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만들기 전에 먼저 남자 아담에게 뭘 먹으라고 했느냐? 생명과. 그 다음에 여자를 만들어 놓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남편이 이제 아내를 데리고 생명과 쪽으로 먼저 가서 ‘우리 생명과 따먹어야 합니다’ 하고 생명과를 따서 아내에게 먹였어야 할 텐데 아담이 하와와의 대화 속에서 어설프게 가르쳤는지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하고 ‘...까 하노라’ 하는 확신성이 없는 어정쩡한 말을 마귀에게 해버렸다. 어정쩡하니 마귀가 의심을 품게 만든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냐’ 하면 ‘그래’ 하면 될 텐데 어정쩡하다. ‘네가 구원을 얻었느냐’ 하면 ‘그래 얻었다’ 하면 될 텐데 어정쩡하다. 이단자들이나 거짓 목사나 거짓 교인들이 그런 말을 갖고 걸고 들어온다. 물론 바로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하는 게 있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꾹 찔러보는 말일 수도 있다.


‘예수 믿는 가정이 바로 돼야 된다’ 하면 말은 맞는데 가정이 바로 되려면 먼저 생명과를 먹어야 한다. 생명과는 안 먹고 그 말만 하게 되면 가르치는 자가 선악과를 얼마든지 먹일 수 있다.

생명과가 아닌 일반 도덕성적으로 들어가면 인간 네 눈으로 보기에 좋은 보암직으로, 인간기준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그게 선악과가 된다. 그렇게 하는 게 거짓 종들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그 가정은 머리통들이 세상으로 다 돌아간다. 물질적인 사고방식이 가득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이제 물질적인 세상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걸 이뤄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거다. 이건 벌써 원리적으로 사고방식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교훈이 빗나갔고 정신사상이 빗나가 버렸다. 예수 믿는 이치가 완전히 땅으로 됐다.


남편이 먼저 생명과를 먹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라. 그리고 제일 가까운 아내에게 생명과를 먹게 해야 한다. 우리교회에서 전하는 것이 정말 생명과란다면, 그리고 남편이 안 믿고 아내가 믿고 있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가서 생명과를 먹도록 하고, 그리고 남편이 믿었다면 이제는 남편이 아내보다 생명과를 더 많이 먹어야 가정이 바로 돼 들어간다.


아내가 바로 나가고 정확하게 나가고 아내 역할을 바로 한다면 남편이 미친 자가 아니라면 그 사랑스런 아내를 버릴 수 없다. 예수 똑바로 믿고 참 사람이 되고 오장육부가 똑바르고 지혜지식이 옳고 한 그 아내를 버리는 남편은 하나님 앞에 간음자이다. 남편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내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 가정의 남편부터 생명과를 먹어야 가정이 바로 된다.


아내가 먼저 믿고 남편은 안 믿고 있다가 늙어서 기운이 빠지니 아내가 ‘예수 믿읍시다’ 하니 그제서야 아내에게 기대서 할 수 없이 교회로 끌려나오는 거. 이미 가정은 파탄 다 나버렸고 사람은 망가질 대로 다 망가져 버렸는데 어쩌겠다는 거냐? 그렇게 인간이 미련하다.


아내가 이치도 모르고 깨달음도 없고 세상을 구하는 그런 교회에 나가면서 남편이 예수 믿게 해 달라고 하고, 믿는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면 그런 기도를 하기 전에 믿는 가정이 되려면 먼저 생명과를 먹어야 하고, 옳은 진리지식을 받아야 한다. 옳은 진리지식을 받으면 양심이 바른 판단을 하고 생각이 바로 돼 들어간다. 지식이 비뚤어지면 그 양심도 비뚤어졌다.


사람의 양심이 왜 비뚤어지느냐? 옳은 지식을 못 먹으면 비뚤어진다. 세상 소원 목적적인 교훈을 받으면 그 양심이 하나님 앞에 비뚤어져 있다.


네가 하나님이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먹고 마시고 사는 게 지금 하나님의 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네 콧구멍을 막으면 너는 죽는 거다. 네가 공기를 갖고 나왔느냐? 공기도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공기로 숨을 쉬고 마시듯이 너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냐? 그렇다면 네가 성령의 기운으로 살아라. 창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 너를 만들어 놓고 네 콧구멍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게 인간 너다.


하나님께서 입김을 네 코에 불어넣은 것은 ‘인간아, 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인간이다. 하나님의 기운으로 사는 인간이다’ 하는 뚯이다. 그런데 네가 그 이치를 모르고 밥 먹는 힘으로 살려고 그러느냐? 이건 벌써 마귀의 시험에서 너는 진 거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하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했다. 이걸 믿으려면 믿고 말려면 말라.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다 하나님의 덕으로 사는 거다. 하나님의 덕으로 안 산다고 장담을 하고 한 번 살아봐라. 사람이 어떻게 되나? 건강을 장담하고 살아봐라. 며칠이나 가나? 그 하나님의 역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른다.


맨날 ‘예수 믿고 복 받자’ 하고 맨날 찬양을 하니 그 재미로 사느냐? 그 재미는 우리교회에는 없다. 오직 말씀 깨달음뿐이다. 말씀을 깨달았으면 세상을 향해서 돌격적으로 정복을 하고 살아라. 왜 세상에 쥐어 박혀서 질질 울고, 왜 하나님께 복달라고 하느냐? 네가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져 봐라. 생명과 먹은 사람에게 ‘통치하고 지배하고 정복하라’ 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왜 정복은 하지 않고 뭘 달라고만 하고 있느냐?


안 믿는 사람은 지금 자기 힘으로 노력 것 해서 세상을 가지려고 한다. 어떤 면으로 이건 보면 솔직하다. 그런데 저질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는 꼼짝도 안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보고 자꾸 갖다 달라고 한다. 이건 예수 믿는 이치가 못 돼 먹었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그 속에 품은 질이 똑같다. 예수님은 그렇게 안 가르치셨다.


우리는 문둥병을 구별해 내야 한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문둥병, 성령의 눈으로 보여지는 영적 면의 문둥병. 더 쉽게 비유적으로 이해를 하자면 일반적으로 마음은 좋은데 몸에 문둥병이 걸렸다면 이 육신의 문둥병은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보면 다 안다. 그 다음에 성령의 눈으로 보는 문둥병은 그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 즉, 아까도 말했지만 영인성장 면에서 성격 성질이 더럽게 못 돼 먹은 사람이다.


육신에 문둥병이 걸리면 보기가 안 좋다. 인간 본연의 형상이 뭉그러져 버린다. 그러니까 괴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몸은 문둥병이 안 걸렸고 인물도 좋은데 그 사람의 정신이나 성격 성질을 보면 ‘이게 사람이냐, 괴물이냐, 요물이냐’ 할 정도로 상종 못할 그런 마음상태 성격 성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


처녀총각들, 똑바로 알아야 한다. 몸만 육신만 껍데기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속사람이 병이 들었나 안 들었나를 봐라. 일반적으로도 그 사람의 정신 성격 성질 즉, 속을 봐라. 안 그러면 죽을 때까지 고통이다. 죽을 때까지 편한 날이 없다. 지옥살이다. 그걸 누구한테 원망을 하겠느냐?


예수 믿으면 사람 보는 눈도 열려야 한다.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눈을 가지고 볼 바에야 뭐 하러 예수를 믿느냐? 예수님의 눈이 그런 거냐? 예수님이 사람을 볼 때 일반적인 눈으로 보느냐?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 속의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그것을 보신다. 그러나 땅의 사람은 땅의 것을 본다. 뭐가 예수 믿는 거냐? 뭘 배우느냐?


사람은 잘 생겼는데 머리가 빈 사람이 있다. 또한 사람은 별로 잘 생긴 것도 아닌데 머리통 속에 보화가 가득 들어있는 사람이 있다. 육신의 눈으로 보여지는 물질적 부자, 영의 눈으로 보여지는 영의 부자가 있듯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 면에서 구별을 못하면 육신의 눈으로만 보여지는 문둥병만 알지 성령의 눈으로 보여지는 그 사람의 성격 성질, 마음 비뚤어진 거, 고약한 거 등등의 영적 면에서 보기 싫은 문둥병자를 모른다. 모른다면 못 고치고 가게 된다. 못 고친 상태로 그대로 일생을 마칠 수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속 즉, 신앙양심을 보신다. ‘인간 너희들은 겉을 보지만 나는 그 사람의 중심을 본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믿는 나는 예수 믿는 것을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왜 예수 믿으면서 세상 사람과 똑같은 눈을 가지고 맨날 부자 되고 잘 살고 하는 눈에 보이는 그런 걸 보고 쫓아가느냐?


세상을 쫓아가는 교인들 믿지 말라. 물질을 기준에다 두고 약속하고 자랑하고 말하는 사람은 믿지 말라. 그런 사람은 친구로 삼지 말라.


내가 지금 목사로서 ‘사람은 겉만 보지 말고 그 마음중심을 봐야 된다’ 하고 말을 하는데 이 말이 옳은 소리냐, 이단소리냐? 옳은 이치라면 그 옳은 이치의 지식을 가지고 옳은 이치의 인격을 가져라. 그러면 네가 존귀 영광스러워진다.


예수 믿는 것은 네가 존귀 영광스러워지는 거다. 그런데 왜 예수 믿으면서 없어질 물질을 자꾸 구하고, 사람이 믿지 못할 사람이 되느냐? 예수 믿으면서도 영적 면에서 문둥병이 들린 자기 자신을 모른다면 영원히 못 고치고 간다.


지금 이 문둥병자가 누구 앞에 왔느냐? 예수님 앞에 왔다. 예수님은 구원이다. 문둥병자가 구원 앞에 왔다. 예수님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사람 되는 이치를 가르친다. 속사람을 고친다. 속사람을 고쳐놓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다. 이치를 붙잡은 성령님께서 너를 고치신다.


병원에 가서 ‘무릎이 아픕니다’ 하면 의사가 쇼크망치로 아픈 다리를 때린다. 그러면 반응이 온다.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예수 믿는 건 마음에 자극을 줘야 어디가 아픈지 안다. 알고서 고쳐야 한다.


오늘날 예수 믿는 기독자들이 그림자 같이 다닌다. 그림자는 다니기는 다니는데 그림자 속에는 생명이 없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다. 실상이 아니다. 그림자는 허상이다. 허상적인 인생이 많다.


진리의 빛을 강하게 비취면 허상이 나타나지만 진리의 빛이 강하지 못하면 자기가 허상적으로 사는지 실상으로 사는지 그걸 모른다. 못 깨닫게 된다.


해가 지면 그림자가 길어진다. 자기 속에 진리의 빛이 어두울 때 실상이 커지는 게 아니고, 참 자기가 커지는 게 아니고 허상적인 못된 자기가 한없이 길어진다. 그것도 위로 솟구치는 게 아니라 땅바닥으로 늘어진다. 땅에 늘어져서 ‘내가 제일 크다’ 한다. 세상은 ‘내가 제일 크다’ 하는 그림자놀이다.


성경은 영인의 성장 면에서 이룰구원을 잘 이루라고 하는 거다. 너의 속사람을 부지런히 키워라. 그게 진짜 너다.


속사람은 불에 안 탄다. 예수 닮은 속은 불에 안 타진다. 물질세계를 건너서 신령세계에 들어가는 그것이 참 너다. 그 실상적인 참 자기를 예수님은 키워주고 깨닫게 해주고 주님 당신처럼 질적으로 고상하게 키워서 데리고 가신다. 너를 인간으로 지은 목적이 그렇다.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자가 불타고 썩고 진동되는 그런 것에 야단이냐?


어디서 지진이 났다고? 몇 명이 죽었다고? 지진에 죽은 사람들 속에 ‘큰 거, 큰 거, 더 좋은 거’ 하던 사람은 안 죽었을까? 하나님은 심심찮게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보여주신다. 지구는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자연이치 섭리 사건을 보고 전부 깨달아야 한다. 깨닫고 자기 처신을 하나님 앞에 바로 가져야 한다. 영인성장 면에 자기의 참 실상을 키우라고 하는 뜻이다.


성경 글자적으로만 자꾸 고집하면 이단자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된다. 예수 믿는 기독교 안에도 글자만 가지고 자꾸 물고 늘어지는 자도 있다. 그런 교인이나 목사가 많다. 그래서 성경구절만 자꾸 돌린다. 그렇게 되면 계시의 뜻은 없다. 성경구절을 자꾸 돌리면 목적이 세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못 만난다. 말씀 속의 뜻을 깨달아야 ‘예수=구원’을 만날 수가 있다.


육체적 신체적 문둥병자는 인간들과 인인관계적으로 완전히 단절이다. 왜냐? 피부가 감각마비가 돼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아픈 줄을 모른다. 손과 발 뼈까지 녹아들어가니 얼굴형태가 변한다. 사람의 본래의 얼굴이 아니니 부모 형제 처와 자식들도 알아보기 힘들다. 사람이 날 때의 본 얼굴이 아니다. 그러니 모두 피한다.


그 다음에 영적 면의 문둥병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으니까 인간은 모든 영적 감각이나 기능 지능 면에서 인격적 도덕성적으로 지혜지식성적으로 능력성적인 면으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 텐데 이게 전부 못 쓰게 된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이 됐다. 못 쓰게 됐다.


선악과 따먹은 그 정신 사상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부는 땅의 소원 목적으로 땅의 취미로 땅의 것으로만 돼 있으니 하나님 쪽으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하면 더럽다. 보기 흉하다.


자기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자기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얼굴과 비교가 된다. 그것을 느끼는 자기다. 다른 사람을 보고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 하던 외국 배우처럼 코도 세우고 깎고 찢고 밀고 한다. 이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게 싫다는 것이다.


이걸 왜 느끼게 하느냐? 영적인 면에서 느끼게 하려고. 느끼게 해서 고치도록 하려고.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주님이 보내신 진리의 종들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을 걸 때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한 것처럼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 되라고 하고, 세상에서 일등이 되라고 하고, 세상을 자랑하는 것은 마귀의 말이다. 마귀의 종이다.


‘박사다, 신학교다’ 하는 이건 껍데기다. 사람을 볼 때 껍데기만 보느냐? 세상적으로 말해서 사람을 껍데기만 보다가 일생을 피 본 사람이 많다. 왜 그렇게 됐느냐? 그 이치를 알고 자녀들에게 속사람을 보는 눈을 바로 가르쳐라.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힘들게 일하면서도, 고생하며 살면서도 편안하게 사든데 왜 어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돈도 많고 나이도 젊고 집도 있고 먹고 마시고 사는데 고통이냐? 그 이유가 어디서 오는 거냐? 사람 때문이다. 사람을 잘못 만났고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이다. 사람을 볼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고 마실 게 있고 돈이 풍부해도 사람의 성격 성질 소원 목적 취미를 못 고치면 지옥이다. 사람 때문에 그렇다. 옳은 이치를 못 깨달아서 그렇다.


우리 부모들이 생각할 때 자식들이 세상에서 공부 잘하고 일등 되면 잘 먹고 잘 살 것 같으냐? 그래서 자녀들을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느냐? 그렇다면 예수 믿는 이치가 어디로 가느냐?


너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왜 네가 하나님을 자르느냐? 하나님을 자르면 자기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안 자르면 진리말씀의 이치를 잘 따른다. 아버지를 사랑하면 아버지의 말씀을 잘 따른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말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말씀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도 기쁘고 너도 기쁘고 즐겁다. 그런데 예수 믿는 네가 하나님을 잘라놓고 예수를 믿고 있구나. 옳은 진리이치를 잘라놓고 예수를 믿고 있구나. 그러면 사람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


부자로 살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바로 서면 모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헤쳐 나간다. 멋있다. 그게 참 사람이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헤어지고 그게 사람이냐?


육체적 신체적 문둥병도 걸리면 그렇거든 하물며 영적 면에서 문둥병이 걸려놓으면 모든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의 감각성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도덕성 지혜지식성 사랑성 진실성은 없다. 그걸 받아야 되겠는데 그게 없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부자 되게 해 달라고 그랬느냐? 이걸 영적인 면으로 보면 성격 성질이 못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서 부자 되게 해 달라고 했느냐?


성경말씀을 껍데기로만 보고 있다면 자기는 눈에 보이는 문둥병은 안 걸렸지만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문둥병이 든 것이다. 속이 좁은 사람도 있고 낯짝도 좁은 사람도 많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 깨끗하냐? 다 잘 아느냐, 모르는 게 많으냐? 비뚤어지고 꼬부라지고 휘어진 것도 많고, 못된 고집 성격 성질이 얼마나 많은지? 이거 예수 믿으면서 안 고칠 거냐? 이런 게 딴 사람에게만 있고 자기에게는 없느냐? 한 번 미워하면 곱사가 돼서 도무지 펴지지를 않아. 그 성격 성질이 쇠망치로 치면 펴지겠느냐? 이게 다 문둥병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사건으로 얻어맞기 전에 진이리치로써 ‘네 속에 이런 게 있지?’ 하고 말씀으로 들어올 때 빨리 빨리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너만 고통이요 너만 얻어맞는다.


너에게 제일 안 고쳐지는 게 뭐더냐? 웬만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모르겠거든 집안 식구나 친구가 나에게 ‘아이고, 제발 성격 좀 고쳐라’ 한다면 벌써 다른 사람이 내가 고쳐야 할 것을 안 것이다. 그러면 고쳐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다 싫어하는데 자기가 안 고치고 놔두면 행복할 것 같으냐? 그것도 다른 면으로 보면 일종의 문둥병이다.


자기를 쳐다보고 말씀에 의해 고쳐라. 고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도 자기를 좋아한다. 그게 예수 믿는 거다. 예수 믿는 거는 그렇게 하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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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1 마태복음 가장 작은 컵으로 마5:3  김부겸 목사  2015-05-24 510
12170 마태복음 하느님의 동사(動詞)적인 뜻 [1] 마19:30  김부겸 목사  2015-05-24 639
12169 누가복음 예수인과 희년의 자유 눅4:16-19  김부겸 목사  2015-05-24 463
12168 고린도전 그대의 몸에 성령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고전3:16  김부겸 목사  2015-05-24 686
12167 마태복음 혈연(血緣)을 넘어선 사인여천(事人如天) 마12:16-19  김부겸 목사  2015-05-24 798
12166 마태복음 향상일로(向上一路)의 마지막 도약 마23:12  김부겸 목사  2015-05-24 849
12165 고린도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고전15:31  김부겸 목사  2015-05-24 1134
12164 요한복음 거짓된 종교상식 요8:44-47  강종수 목사  2015-05-24 316
12163 사사기 입다의 맹세 삿11:29-40  이오갑 교수  2015-05-23 640
12162 마태복음 평화로움 마6:10  이선근 형제  2015-05-23 343
12161 에스겔 1950년 6월, 2013년 여름 겔37:15-28  서광선 교수  2015-05-23 488
12160 사무엘하 예수의 욕망 삼하11:25-27  백소영 교수  2015-05-23 445
12159 요한복음 갇혀있는 영혼에도 기쁜 소식 요5:16-18  권영환 형제  2015-05-23 341
12158 요한삼서 복음의 감동 어디서 오나? 요삼1:2-4  한완상 형제  2015-05-23 9999
12157 누가복음 주인과 청지기 눅16:1-9  전인백 형제  2015-05-23 679
12156 창세기 경계를 넓히는/없애는 공동체 창12:4  정경일 형제  2015-05-23 518
12155 로마서 피조물,성도,성령의탄식 롬8:22-27  강승호 목사  2015-05-23 572
12154 마태복음 사순절과 금식 마4:1-2  이상호 목사  2015-05-23 353
12153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교회 요8:12  이상호 목사  2015-05-22 449
12152 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 미7:9  이상호 목사  2015-05-22 389
12151 로마서 공짜경제학(freeconomics) 롬3:23-24  이상호 목사  2015-05-22 302
12150 로마서 더욱 큰 은혜 롬5:20  이상호 목사  2015-05-22 504
12149 열왕기상 거지의 기도와 왕의 기도 왕상3:4-14  이상호 목사  2015-05-22 752
12148 전도서 지나치지 말라 - 지혜로운 삶 전7:15-22  이상호 목사  2015-05-22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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