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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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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교회
요한8:12, 요일 1:5-7
2014. 1. 5, 신년주일
2014 청마해가 밝았습니다. 작년에는 뿌리깊은 신앙으로 무장하여 기초를 새롭게 다지는 해였습니다. 금년도 교회표어는 총회표어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에 걸맞아 교회창립 30주년에 다시 한 번 우리 교회의 상을 확고히 하는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헌신이 전제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마을에서, 지역과 나라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삶의 자리에서 십자가 정신으로 헌신 봉사하여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교회창립 30주년 행사는 물론, 세상을 섬기는 세광공동체로 교회생일을 기하여 경로 효잔치를 베푸는 등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목회의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부디 우리 세광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누구나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인디언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는 어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컴컴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둠이 완전히 사라져 어둠을 보여 줄 수 없었습니다. 해가 있는 곳에 어둠은 없습니다. 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해 자체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햇빛이 가려지는 곳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어둠이 없습니다.
초막절을 참여하기 위하여 올라온 순례자들이 성전 뜰에 어두운 밤에 하늘 높이 솟아 오른 등불을 바라보며 놀람과 경의와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고 말씀하셨습니다.
1.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없다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혼돈과 흑암이 온 우주공간을 덮고 있을 때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빛 때문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빛이라 하였습니다. 1:14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죽을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그를 따를 때에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며 어둠의 자녀, 진노의 자녀가 아니고 빛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면 아비규환입니다. 화재가 있기 전, 지하상가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가게를 계약하고 예쁘게 인테리어까지 해 놓았는데 며칠 장사도 못해보고 문을 닫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고도 대학생활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버릴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에게 안전한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북한의 핵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입니다. 이 빛은 더 이상 어두움에 다니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2.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인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행할 때 밤에는 하나님의 불기둥이 길을 인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14에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그의 빛을 받아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합니다. 에베소서 5:8-9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는 죄와 불의로 어둔 세상에 길을 안내하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의 상황을 어두운 밤으로 생각하셨습니다. 물론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현실은 광야를 방황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가운데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앞날이 어둡고 불투명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민족의 장래가 어둡기만 합니다.
한때 마카비 형제가 나타나서 이 불투명한 정국으로부터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는데 그들에 의해 세워진 왕조도 결국 로마에 의해 멸망함으로 그들은 어디가 그들이 가야할 길인지 그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으로라도 그 길을 분명하게 깨달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으로도 서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를 대표하는 네 개의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두개파입니다. 그리고 열심당과 엣세네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리새파는 율법주의자들이고 사두개파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열심당은 혁명 투사적 성격이 강했고 엣세네파는 현실을 도피해서 은둔 생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빛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도 그때와 다를 바 없습니다. 혼돈으로 방황하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빛이 되어 역사의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어둠으로 가득한 죄 많은 세상에 빛을 비취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얻어 세상의 빛이 된 우리는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빛을 비춘다 함은 구약의 말라기 4:2에 이름 같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치료하는 사명이요. 요13:13에 이름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하라는 말씀이요, 막 16:15에 이름 같이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 하라.” 전파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정신 심리치료의사인 폴 투르니에는 "나는 정신과의사를 찾는 열사람 중 아홉은 꼭 의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회복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삶을 변화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놀라운 치료의 광선입니다. 모든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새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사랑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어린 소년이 심각한 정서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는 물론 학교친구, 선생님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닫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나쁜 행동만 일부러 골라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꾸중을 듣는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이 소년은 자신이 사랑을 거부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이해받지도 못하고 어떤 사람의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가 상담을 받게 했습니다. 이 소년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여러 방법으로 몇 주간 헛되이 수고한 정신과 의사는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시도해볼만한 방법이 있는데 당신의 아들에게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을 한 마리 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아이가 강아지와 친해질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는 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강아지를 한 마리 사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이는 강아지에 아무관심도 보이지 않는데 그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장난스럽게 짖어대며 어린 소년에게 두발을 들고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잔인하게도 힘껏 개를 발로 찼습니다. 개는 낑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잔디밭에 넘어졌습니다. 개는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신음하면서도 오히려 사랑의 눈으로 뚫어지게 소년을 쳐다보았습니다. 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꼬리를 흔들며 또 다시 두발을 들고 자기의 새 주인인 어린 소년에게 뛰어 올랐으며 소년의 손을 사랑스럽게 핥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소년은 너무 놀라 현관문을 열고 부모에게 뛰어 갔습니다. 전혀 말도 하지 않던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소리쳤습니다. "엄마! 아빠! 내가 강아지를 발로 찼는데도 강아지는 아직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 저를 사랑해요" 소년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정서적으로 마음을 닫고 살던 어린 소년의 마음 문이 열리고 그의 응어리진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강아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물며 예수의 사랑으로 빛이 된 우리가 베푸는 사랑에 치료되지 않는 병자가 있겠습니까?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이 사랑은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받고 너희가 빛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빛이 되었다는 것은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리라는 말과 빛이란 말을 같은 말로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빛이 되었으니 세상에 복음의 진리,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 믿고 은혜 가운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전도에 대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에 대해 들어 왔습니다. 전도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들이 귀를 닫아버립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왜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이웃에게 증거 하지 않는가에 대해 살펴보면 내가 영적으로 너무나 가난하고 궁핍하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웃과 주님을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나를 향하신 놀라운 구속의 사랑과 그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내 삶에 넘치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선하시고 인자하신 그 극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한다면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의 빛으로 산다는 말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빛으로 사는 삶입니다. 곧 전도하는 삶입니다.
전도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 방법입니다. 어느 사람을 즉각적으로 만나서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베드로가 그들에게 너희가 바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다고 그들의 죄를 가리키며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자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형제여 우리가 무엇을 할꼬"하며 베드로에게 얘기할 때 "너희가 예수 믿고 세례 받고 구원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날 구원 받은 자가 삼천 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죄짓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찾아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오 라고 용감하게 일대일로 권면 할 수 있는 전도 방법입니다.
두 번 째는 바울의 방법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풀고, 해석해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그들을 설득해서 예수가 바로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믿게 하는 전도방법입니다. 오늘날도 머리가 매우 이지적이고 분석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전도 할 때에는 성경을 들고 차근차근히 그들에게 설명해주고 해석해주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세 번 째, 개인간증을 통해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으로 부터 치유 받고 시력을 회복한 맹인이 간증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간접적 스타일로 전도하는 분들은 자기들이 삶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사역을 이야기 합니다. "나는 영적으로 맹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보게 되었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돌이키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고 나를 변화시키셨구나 하는 내 신앙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체험적 신앙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우정으로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더러운 귀신에 들려 무덤가에 살며 고통 받는 사람을 예수께서 치유해주시자 그는 너무나 기뻐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어떻게 너에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족에게 고하라"(5:19) 예수께서는 그에게 낯선 동네에 가서 축호 전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집에 돌아가 네 집안 식구들과 이웃을 복음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라일리 쉘러는 새신자의 3/4이 우정으로 전도하는 방법에 의하여 교회에 나온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초청스타일(와서 들으라)의 전도방법입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을 만난다음 동네에 뛰어가 빨리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초청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베드로처럼 1대1로 직면하여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바울처럼 말씀으로 설득하여 예수님 믿도록 못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간증을 잘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와서 들으라", 우리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맛보라고는 다 권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초청스타일의 전도자는 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봉사함으로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도르가라고 하는 여인은 친절한 선행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의복을 만들어 그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주변에 빛이 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빛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들로 인하여 공주가 밝아지고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며 주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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