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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있는 영혼에도 기쁜 소식

요한복음 새길교회............... 조회 수 342 추천 수 0 2015.05.23 23: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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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5:16-18 
설교자 : 권영환 형제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137135 

갇혀있는 영혼에도 기쁜 소식

(요한복음 5:16-18, 베드로전서 3:18-19)

 2013년 6월 30일 주일예배


권영환 형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은퇴 목사)


지금부터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이 주간으로 있는 <사상계> 지를 통해서 함석헌 선생과 천주교의 윤형준 신부가 논쟁을 벌인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 논쟁 가운데 함석헌 선생이 천당, 지옥이 없는 것은 중학교 2학년 학생도 다 아는 일이라고 하니까, 윤형준 신부는 천당, 지옥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갈 곳이라곤 지옥이라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천당,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던 터라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했었지요. 당시에는 신학교 강의 시간에 어느 교수가 천당, 지옥이 없다고 하는 얘기를 했다고 해서 이런 교수의 강의는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절대적인 하나님이 천당과 지옥을 설정했다고는 결코 믿겨지지 않습니다. 만인구원설을 주장한 노르위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 서울 명동 성당에서는 별세한 김수한 추기경을 조문하는 긴 행렬이 이루어졌는데 마침 성당 경내에는 추기경의 업적을 기리는 사진전도 함께 열렸고 사진 가운데는 김수한 추기경이 테레사 수녀와 담소하는 사진이 보였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사진을 보니 문득 오강남 교수가 자주 인용하는, 테레사 수녀는 천국에서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하나님께 떼를 써서라도 고통 받는 영혼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지옥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조문의 긴 행렬에 저도 함께 이어서 갔습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어느 여자 분들이 ‘김수한 추기경님은 분명 지금 천국에 계실 것’이라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혼자 속으로 ‘추기경님은 예수님, 테레사 수녀와 함께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계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떠올려 봤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 제 3곡 9절에 보면 지옥문의 꼭대기에 적힌 글,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되어 있는데, 물론 성서에 있는 지옥과 단테가 말하는 지옥이 서로 다르겠지마는, 희망이 없는 곳, 절망이 계속 되는 곳이 곧 지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옥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평생을 봉사한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 테레사(Mother Teresa) 수녀가 봉사한 인도의 캘커타와 같지 않을까요? 희망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의 지옥, 바로 여기에서 이들은 ‘살림’의 과업을 벌여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사상가인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은 종교는 본래 설명이 아니고 체험이라고 갈파했는데, 우리 예수따르미 또한 모두 말씀증거를 통해서 전해지는 성서의 증언이나, 이론 등 설명에만 만족해서는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옥이 무얼까 하고 생각을 해보면, 사후에나 전개되는 희망이 없는 영원한 절망이 존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만이 전개되는 바로 그런 곳이 지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홍수, 대형 산불, 산사태, 지진, 화산폭발 같은 사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비극의 현장 같은 곳 말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도 위로와 조문을 위해 대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바로 이 현장이 절망, 암흑, 끝없는 고통, 죽음의 현장, 생지옥... 이런 곳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덴마크의 종교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은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병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한 편 진정한 절망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생명에 이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공인된 원문에는 ‘예수께서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부활하신 예수는 그렇다면 그곳에서 무얼 하고 계셨을까? 오늘 성경 본문을 공동번역본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갇혀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살림(살리는)’ 운동을 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보면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는데, 뜻을 풀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는 정도가 될 겁니다. 물은 속성상 높은 곳에서 흘러 낮고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흐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한 높은 곳에서 물처럼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이 세상 지옥의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빌립보서 2:6-7)이라고 저는 생각는데, 그러면 제가 너무 비약한 것일까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삶을 누리고 있는 바로 이 세계가 분명 절망, 불안, 희망이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성경의 본문 요한복음 5장 16-18절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따르미인 우리가, 일할 곳을 찾읍시다. 가급적 환경이 열악한 곳, 지옥 같은 곳까지 찾아가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셨고,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셨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시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셨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셨습니다(마태복음 25:35-36). 예수님은 이와 같은 섬김의 일뿐만 아니라 유대사회의 불합리한 고정관념에는 가차 없이 뒤집어엎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예수의 행태는 일거수일투족이 자비와 반항의 구분이 안가는 삶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의 태도도 자비를 베푸는 섬김은 물론, 우리 사는 세상 곳곳의 구조악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삶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도대체 갈피를 못 잡고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도덕적인가?’라고 서슴없이 비판하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있었고, 미국의 몰락을 강하게 예고한 예일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며 미래학자인 폴 케네디(Paul Kennedy)가 있었지만,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5% 밖에 안 되는 미국이 전 세계 자원의 30%를 사용하는 파렴치한 나라, 목사인 성직자들마저 호신용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어처구니없는 나라 등등이 그러하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미국을 모델로 삼겠다고, 추파를 보내는 한국의 정치인, 종교인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저는 우리 국가도 몰락하지 않을까 염려될 뿐입니다.

 

과거에 구소련이 무력으로 헝가리를 잔인하게 점령하여 피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세계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헝가리 문제에 어찌하여 침묵을 지키는 가’라고 정치적 항변을 했습니다. 이때 바르트는 침묵했는데, 그의 젊은 문하생들이 신학자는 정치학자가 아니라면서 바르트의 침묵을 옹호하자, 니버는 강력하게 질타하며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인도의 간디(Gandhi)는 종교와 정치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교를 모른다고 얘기 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대부분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정치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단지 정치적인 문제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절실한 현실적 문제인 만큼 니버와 같이 항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은 존재한다.’는 데카르트(R. Descarte)식 사고에 머무르지 않고 ‘반항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까뮈(Albert Camus)식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개신교의 프로테스탄트가 반항을 의미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예수는 불법적으로 위대하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반항하기 때문에 예수의 존재성이 이토록 뚜렷함을 보여준 까뮈식 태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지구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의 비관적인 삶의 태도, 이상의 ‘날개’에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버리고 싶었다.’에 동조 하여 OECD 국가 중 자살 1위의 기록은 희망이 없는 절망의 지옥에서의 연출이 아니겠습니까. 21년 전 (1992년 8월 13일) 백두산 천지에 우뚝 섰을 때, 7년 전 (2006년 8월 26일) 일본 후지산 정상을 밟고 섰을 때, 한-중-일 지질학자들의 과학적 근거를 가진 예언이 실현된다면, 대폭발이 야기 될 것 같아 섬뜩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기온의 2℃ 감소가 지속되어 생명체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진정한 삶의 각오, ‘영원한 현재’의 순간에서 영원을 살겠다는 각오만 되어 있다면, 홍수, 대형 산불, 산사태,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체르노빌 원전 사태, 토네이도 등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위기 속에서도 지옥에서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살림’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34)라고 했습니다. 혹여 이 생의 삶에서 실패했을지라도, 기쁜 소식을 듣고 다음 생의 패자부활전에 참가하는 영원한 희망을 가지는, 꿈이 우리 모두에게서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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