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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99 추천 수 0 2015.06.09 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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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1-12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장 1절-12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 쌔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신다. 우리의 겉의 것은, 몸은 시간 따라 쭈그러지고 약해지고 병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 몸 안에 진짜 참 자기, 하늘나라 들어갈 참 자기가 있다.


영과 육으로 결합된 현재적인 내 육속에 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영을 만드신 것은 나를 하늘나라에 데리고 올라가서 하나님과 같이 살게 하려고이다. 그러니까 천국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천국에 갈 것을 염두에 두고 나를 만드신 것이다.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신체는 시간 따라 노쇠가 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내 속사람은 안 늙고 안 죽고 하늘나라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데 그 참 자기가 현재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가 미련하거나 어리석거나 건강하지 못하거나 하는 건 영적인 참 자기, 영인, 영의 사람, 하나님을 닮아갈 자기가 어떤 약점이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걸 갖고 와서 비유로 말씀하심이다.


현재 꾸그러질 자기가 참 자기가 아니라 그 자기 속에 죽지 않는 참 자기가 있으니 이게 진짜 자기다. 이게 하나님 말씀을 먹는 참 자기다. 이게 영적인 자기다. 예수 믿으면 깨달음이 밝고 말씀이치에 밝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게 영적인 참 자기다.


이 참 자기는 성령님의 생각, 하늘나라 생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그건 영의 생각이다.


이 영의 생각은 그 생각 자체가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살 것을 자꾸 생각을 하니 그렇다. 나도 좋고 다른 사람도 좋고 한 것을 생각을 한다. 그러나 육의 생각, 세상 생각, 육신 생각, 신체 생각은 주로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데, 믿는 자가 그 생각 그 소원 그 목적을 가지면 자기 속에서 자라날 수 있는, 하나님을 닮아나갈 수 있는 그 면이 자라나지 못하고 병자가 되고 약해지고 기형이 되고 죽는다. 자라나는 면에서 중단이 된다.


우리의 중생된 영은 안 죽는다. 예수 믿는 자가 죄를 지어도 중생된 영은 안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에 포로가 된다. 사망 안에서 살게 된다. 그러면 영인성장 면에서 성장이 안 된다. 이러면 육신은 성장됐다가 늙어지지만 참 자기 성장은 안 된다. 그건 기형적이다.


예수 오래 믿어도 하나님 뜻도 모르고 자기 고집만 피우고 세상만 구하는 건 좋게 말해서 어린아이다. 이건 영적 면에서 참 자기가 자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영적 면에서의 성장성이 엄청나게 자라고 힘이 있으면 그건 젊은 사람이다. 늙었어도 속사람이 힘 있게 자랐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젊은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젊은 사람에게 일을 시키신다.


그래서 영적 면에서 영인성장 면을 깨닫지 못하고 실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거다. 하나님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영적인 면을 깨닫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적 면의 일을 지도 인도하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서 교회를 많이 보는데 대부분 보면 인본주의이다. 말씀 깨달음의 이치는 없고 모이면 그 다음에 다단계 판매, 그 다음에 보험. 무슨 보험 무슨 보험. 모이면 그런다. 옛날에는 ‘무슨 계’ 하는 계놀이가 있었다. 어쨌든 깨닫지 못하면 모이기만 하면 맨 그런 소리다.


그러니까 마귀가 교회에서 활동하기가 참 좋은 거다. 그러면 교회가 쑥밭이 되는 거다. 이렇게 되니 교회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막 잡아 뜯고 싸움판이 벌어진다. 그러니 얼마나 힘드냐? 왜 그렇게 예수를 믿느냐? 자기 죄 짓고 남 죄 짓게 하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앞세우고 제자들을 찾아오시듯이 현재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영인성장 면의 속사람을 성장을 시켜 주시려고 크고 작은 사건, 좋은 사건 미운 사건, 돈을 갖고, 아니면 깡패를, 도둑을, 등등 별의 별 사건을 앞세우고 찾아오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건을 앞세우고 오시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 입장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심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되느냐? 내가 싫은 사람이나 사건이 오면 그것 잡고 싸우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그런 것을 보냈나? 왜 크고 작은 사건 환경 어려운 일을 보내주셨나’ 하는데 대한 하나님을 뜻을 잘 생각하고 평소에 진리이치를 잘 배웠으면 지혜가 생겨서 그런 걸 원만히 다 해결하고 나갈 텐데 평소에 깨닫지를 못해 놓으니까 모르는 상태에서 미련한 상태에서 그냥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맨날 ‘아버지 나 죽겠습니다’ 해 쌓고, 도와달라고 해 쌓고, 깨닫지를 못하니 자기에게 좋은 건 하나님이 갖다 주는 줄로 알고 나쁜 것은 마귀가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성경은 그렇지 않다. 마귀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누구에게 사건을 갖다 주었느냐? 욥에게. 배후에 하나님이다. 마귀가 제 마음대로 못하는 거다. 계:에 보면 마귀를 무저갱에 가뒀다가 뚜껑을 딱 덮어놓고 천 년 동안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가 무저갱을 여니까 마귀가 나온다. 하나님이 넣었다 뺐다 가두었다 다 하시는 거다. 이게 성경에 다 있는 건데 그런데 이걸 못 깨달아가지고 뭐 조금 어떻게 되면 ‘마귀가 어떻게 하나’ 한다.


하나님의 마음중심을 놓고 그걸 깨달아야 되겠는데 그건 제쳐놓고, 그건 죽을 때까지 모르고 맨날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싸우고 사건 잡고 싸운다.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영리하고 똑똑하고 총명해지겠느냐? 미련해진다. 자기 기분에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쁘면 나쁜 거고 하는 건 자기중심의 신앙이다. 이런 자는 자기 좋게 해주면 진짜라고 그러고, 옳은 소리하면 듣기 싫어서 가짜라고 그러고, ‘이단이 아닌가’ 한다.


성경에도 보면 바리새교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믿음 좋다고, 율법대로 한다고 하지만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니 병들었고 마귀처럼 닮았고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 무덤을 밟아놓으면 겉이 길처럼 납작해진다. 그런데 그 밑에는 뼈가 썩어서 있는 것처럼. 그리고 회칠한 담과 같다. 담이 오래되면 갈라지고 보기가 흉하다. 그런데 페인트로 칠해놓으면 깨끗하게 새로 세운 것처럼 보이나 금방 무너진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점을 지적을 했다. 역시 본문 성경에 기록을 해서 중풍병자를 우리에게 데리고 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면의 속사람이, 네 정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이걸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성경을 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안다면 그 사람은 영의 눈이 밝은 거다. 영의 눈이 밝으니 성경이 재미가 있어서 깨가 쏟아지는 거고, 영의 귀를 가진 사람은 말씀의 이치와 뜻을 잘 알아듣는다. 말속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그런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참 많다. 일반적으로도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면 소리 그대로 알아들어서 막 싸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대부분 속이 좁고 이해심이 없다. 자기 고집만 하고 자기 주장만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보면 나눠줄 줄을 모른다. 나눠줄 줄 모르는 사람이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으면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다. 그러니 평소에 인심을 다 잃어버렸으니 자기 어려울 때 누가 도와주느냐? 도와줄 사람이 없다. 성경은 사람 사는 이치를 가르쳐 준다.


‘주는 자가 복되다.’ 왜 복되다고 하는 거냐? 내가 딴 사람에게 하나를 주면 하나님께서 두 개를 주니까 복되다고 하는 거냐? 복된 자는 마음이 하나님을 닮아간다. 친구도 많이 생긴다. 좋은 걸 주면 좋은 복의 친구가 많이 생긴다. 주님 것을 주면 주님을 닮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그런 교인들은 내 육신의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보다 몇 배나 낫다. 그걸 알아라. 육신의 부모형제들은 맨 돈 가지고 이해타산을 따지고, 일가친척도 돈 가지고 이해타산을 걸고 산다. 그 마음 못 쓴다. 정말 못 쓴다. 사람이 안 됐구나.


오늘도 주님은 성경을 통해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와서 내 속에 무엇이 막혔나를 가르쳐 주신다. 중풍 병은 왜 드는 것이냐? 머릿속에 핏줄이 막혀서 운동신경이 눌려서 생긴다. 이건 왜 그런 거냐? 속에서 울컥 하니까 눈이 번쩍하면서 머리에서 피가 터지는 것이냐?


진리에 의해서 성격 성질을 바로 가져야지 자기 기분에 의해서 성격 성질이 급해지고 씩씩거리고 눈이 시뻘게지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머리에서 핏줄 터지지 말라는 보장이 있느냐? 이건 전부 선악과 따먹은 데서 나온 성격 성질들이다.


중풍병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의 구원으로 죄 사함을 받고 자유함을 얻어 자기가 누웠던 그 침대를 들고 집으로 간다.


집으로 갈 때에 ‘괜히 일어났다’ 할까? 발목에 힘이 있어서 좋아서 춤을 추면서 자기가 누웠던 침대를 머리 위에 뱅뱅 돌리면서 간다. 이게 무슨 뜻이냐? 죄를 지으니 사람이 사망으로 묶여지는구나. 포로가 되는구나. 침대에 눕혀지니 포로가 되는구나.


지금도 병원에 가면 침대 위에 누여진 사람이 많다. 그 침대에서 얼른 일어나야 자유가 되는 건데 일어나려고 하면 또 눕혀진다. 말하자면 환경의 구속이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니 어떤 환경에 가두어지는구나. 이렇게 되면 자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자유자가 되니 자기가 누웠던 침대를 들고 가는 것처럼 자기 환경을 자기가 다스린다. 그런데 자기 환경인데도 자기가 그걸 못 다스려서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이 많다.


죄를 지으면 수갑을 차고 경찰에게 끌려간다.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를 안 먹고 선악과를 먹으면 자기는 세상이라고 하는 거기에 가두어진다. 그러니 세상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닌다.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고. 지금 중풍병자를 통해 그걸 보여준다.


중풍병자를 들고 온 네 사람의 인도자들은 사람을 죄 사함 받고 구원되는 주님께로 적중으로 인도한 인도자들이다. 병자를 데리고 구원의 주님께로 적중적으로 들어갔구나. 그런데 오늘날 교회 교인들이 교인을 한 사람 한 사람 인도하여 어디에 갖다 놓는가 하니 비진리, 세상 쪽으로, 거짓 종들에게, 이단자들에게 인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거기에 노예가 된다. 미쳐버린다. 가정파괴 사람파괴 사회에 물의가 일어난다. 이단자들만이 아니고 큰 교회도 이걸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내가 알기로 어느 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집 식구들이 예배시간에 찬양할 때 율동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그러니까 찬송할 때 앞에 나가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율동을 한다. 그런데 성질은 참으로 더럽다. 성격이 좋나, 성질이 좋나? 그러니 그게 무슨 은사냐? 귀신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자기 속사람이 고쳐진다. 사람이 바로 된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고 자기 성격 성질을 못 고치는 사람이 그런 은사를 받느냐? 그건 귀신을 받은 거다. 밤에 잘 때는 남편이 잠을 못 잔다. 왜냐? 밤새도록 방언한다고 그러고 있으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천만마디 방언보다 사람이 깨달아서 연관이 잘 돼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돼야지 내가 바로 되지 못하고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남을 아느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부모형제를 알 수 있느냐?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지.


‘왜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습니까? 나를 만든 목적이 뭡니까? 사는 목적이 뭡니까?’ 이게 성경에 다 있다. 일반 세상공부는 그런 게 없다. 참 사람 되는 공부가 없다. 학식만 잔뜩 쌓아서 맨 남 욕이나 하고 헐고 뜯고, 날 찍어줘야 편하게 되고 통일이 된다고 한다. 다 하나님이다.

예수를 따라다니면 예수를 닮아야지 예수 따라다니는 사람이 왜 마귀를 닮느냐? 왜 이치를 어기느냐? 진리는 정확한 건데.


이 네 사람의 인도자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적중적으로 인도가 됐구나. 딴 데로 안 데리고 가고. 중풍병자를 두고 비상수단을 쓸 줄 아는 네 사람의 인도자.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는다는 건 비상수단을 쓴 것이다. ‘예수님 앞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예수님 앞으로 가긴 해야겠는데 예수님 앞에는 쓸데없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 성경도 모르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래서 못 들어가고 있다. 자기도 바로 못 믿으면서 바로 믿고자 하는 자들을 못 가게 진을 치고 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지금 그러한 상황이 교회 안에 많다. 직분자가 모범이 돼야 하는데 모범이 아니고 본인도 잘못 믿고 다른 사람 보기에도 ‘저 사람 같으면 안 믿으련다’ 하는 식으로 나쁜 본보기가 된 자들이 교회 안에 많다.


비상수단을 쓴 네 사람의 인도자가 아니었더라면 중풍병자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땅에서 일어나는, 환경에서 탈출하고 일어나는 그것을 못 봤을 것이다.


예수 믿느냐? 그런데 땅의 소원 목적을 가졌느냐? 이건 앉은뱅이다. 앉은뱅이는 길가에 앉아서 돈바구니 앞에 놓고 옷 잘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돈 안 주나’ 하고 있다. 앉은뱅이는 사람 많은 곳에 앉아서 ‘돈 많은 사람이 안 오나’ 하고 있는 거다.


성경에는 소원 목적이 땅에 붙은 사람, 그러니까 땅에서 소원 목적적으로 부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각이 땅에 붙은 고로 앉은뱅이가 땅에 붙은 것처럼 그 사람은 영의 눈으로 보니 앉은뱅이라고 한다. 앉은뱅이가 세상을 구걸하는 거다. 돈을 구걸한다. 성하면 일을 한다. 앉은뱅이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돈 구걸이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을 달라고 하고 부귀영광을 자꾸 달라고 하는 건 영의 눈으로 보면 앉은뱅이다. 그러나 옳은 진리이치를 주님 앞에서 바로 깨닫고 그 정신이 소원 목적이 천국으로 향해져 있다면 그 사람은 고침을 받은 사람이다. 그게 영광이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는 종교는 없다. 오직 성경 주님뿐이다. 성령님의 역사뿐이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그 면이 하나님 앞에서 병들어 있는지 앓고 있는지는 모른 채 안 믿는 사람도 알 수 있고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눈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낫게 하느라고 야단법석하고 안수하다가 사람 죽이고 한다. 성경은 사람을 영원히 살리고 영능의 실력자로 만든다. 성경은 후패하는 그 사람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가 하는 말은 영이니라’ 하니까 모인 무리들이 다 도망을 갔다. 제자들보고 ‘너희들도 가려느냐’ 하니까 ‘생명의 말씀이 있으매 어디로 가오리까’ 했다.


오늘날 교인들은 육위주로 믿는 거냐, 영위주로 믿는 거냐? 대부분 보면 육위주로 믿고 있다. 세상 육신 썩을 것, 불에 타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 한다고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진리로 되는 참 자유. 식구가 보아도 좋고, 친구들이 보아도 좋고,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렇다면 이 중풍병자가 천국에서 네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게 고마울까?


진리로 자유가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사람이 고쳐져서 나와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게 간증이 되는 거다. 간증이 뭔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척척 걸어가니 참 보기가 좋다. 본인 자신도 살맛이 난다. 그런데 그게 보기 싫은 자가 누굴까? 죄에 붙잡혀서 죄에 종노릇이 되고 환경에 종노릇이 돼 있던 중풍병자가 나아서 침대를 들고 춤을 추면서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그게 안 좋게 보일까? 성경에 안 좋게 보는 자가 누군가? 성경을 안다고 하는 성경 학박사들, 주님을 때려잡으려고 늘 노리고 있는 그들, 옳은 것을 이상한 눈으로 늘 쳐다보는 그들이다.


그런데 그 전에는 사람들이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인지를 몰랐다.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냐? 하나님께 영광은 사람이 죄에서 놓여지고 속사람이 풀려나오는 것. 속사람이 자유롭게 되는 거. 이게 돈 가지고 되는 거냐? 정신병원에 가면 되는 거냐?


만일 일반병원에서 중풍병자를 낫게 했다면 속사람이 병든 것은 어떻게 하느냐? 속사람이 병든 것은 병원에서 못 고치는 거다. 못한다. 이건 하나님의 신, 성령님이라야, 하나님이라야 할 수 있는 거다. 기독교 안의 역사가 바로 그거다. 속사람이 고쳐지는 이것은 교회에서 하는 것.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옳은 하나님의 진리이치로서 되는 거다.


한 이치라도 깨달았으면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다. 말씀을 듣고 하나라도 ‘아, 이건 하나님 앞에 내가 고쳐야 되겠구나’ 하는 건 이미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가는 거다. 사람이 고쳐지는 게 무슨 좋은 말로 되는 거냐? 돈으로 되는 거냐? 가장 고치기 힘들고 안 되는 게 뭔 줄 아느냐?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고쳐져야 할 텐데 이걸 안 고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자기 성질대로 하고, 툴툴 거리고. 그런 성격 성질이 겉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 주로 많이 있다. 이러면 부모들도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부모도 그걸 못 고친다. 그걸 고치게 하려면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 다음에 그런 자식이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바로 서도록 본을 보여야 한다. 쉽게 말하면 부모가 안 고쳐지면 자식이 안 고쳐진다고 보는 거다.


성경에 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가 시돈에서 나오면서 예수님께 부르짖으니 ‘왜 개 같이 살았느냐’ 하는 개 같은 소리를 주님으로부터 들으면서도 주님 앞에 겸손으로 내려간 그 어머니 때문에 딸이 나았다. 그것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중풍병자에게도, 지금 우리 많은 교인들에게도 무엇이 참 영광인지를 알려주는 성역을 하시는 거다. 그 거룩한 역사를 우리에게 하시는 거다.


누구를 누구 앞에 영광스럽게 만들어 놓는 것이냐? 우리를 하나님 앞에 존귀 영광스럽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게 성경의 교훈이요, 이게 성령님의 역사요, 이게 주님의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돼야 한다.


믿는 자라도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런 소원 목적을 가지면 그 사람은 저질이 된다. 사망적인 사람이 된다. 목사라도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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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9 시편 굳건한 믿음을 얻는 길 시62:1-12  이한규 목사  2015-06-12 791
12228 마가복음 은혜가 넘치는 가정 막10:13-16  이한규 목사  2015-06-12 851
12227 시편 약속을 잘 지키십시오 시61:1-8  이한규 목사  2015-06-12 529
12226 시편 승리를 위한 3가지 재료 시60:1-12  이한규 목사  2015-06-12 729
12225 욥기 운명을 사명화하십시오 욥3:1-26  이한규 목사  2015-06-12 510
12224 시편 정의는 결국 승리합니다 시58:1-11  이한규 목사  2015-06-12 479
12223 시편 새벽을 깨우는 삶 [1] 시57:1-11  이한규 목사  2015-06-11 725
12222 시편 자기를 극복하는 6가지 길 시56:1-13  이한규 목사  2015-06-11 727
12221 베드로전 교만과 겸손 벧전5:5-6  강승호 목사  2015-06-11 762
12220 골로새서 예쁜 마음 그릇 골2:1-17  최장환 목사  2015-06-10 990
12219 열왕기상 부서진 사람 왕상12:1-20  최장환 목사  2015-06-10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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