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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창조세계의 이치

마태복음 김부겸 목사............... 조회 수 412 추천 수 0 2015.06.15 23:55:20
.........
성경본문 : 마13:1-9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blog.naver.com/malsoom/101472749 

2010년 3월 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3장 1절~9절

설교제목 : 하나님 창조세계의 이치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이르셨다.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해가 뜨자 타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3:1~9).】


  <덧셈교 이야기>

  얼마전 경향신문에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이 쓰신 칼럼, ‘세계 최대 신자의 덧셈교’라는 제목의 글을 인상 깊게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그리스도교일까, 이슬람교일까 하고 머리를 굴리는 독자가 있다면 동작을 멈춰주시길 바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종교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세계 인구 대부분이 신자이면서도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름이 없어서 자신이 신자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름하여 ‘덧셈교’이다. ‘슬로 라이프’ 제창자인 쓰지 신이치가 붙인 이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제 기분에 맞게 달리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덧셈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대형서점 서가의 절반을 채울 정도로 많은 교리서가 나와 있지만 그 많은 말을 줄이고 줄이면 ‘다다익선’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쓰지 신이치가 덧셈교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종교의 신자들은 어떤 경우든 더할 줄만 알지 뺄 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경제성장의 수치가 전년도보다 감소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종교가 새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덧셈교 역시 지금은 막강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단명할 가능성이 무척 높은 종교 가운데 하나이다. ‘많을수록 좋다’는 근본교리가 더 이상 먹혀들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끝없는 경제성장의 절대 조건인 지구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자원이 바닥났는데 더 이상 무엇을 가지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겠다는 건가? 무엇보다 덧셈교는 신자가 너무 많아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들은 발달된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적이라고 의심되는 모든 생물종을 멸절시킴으로써 생태계의 대원칙인 먹이사슬의 법칙을 어기고 있다. 원래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종은 개체수가 적어야 하나 천적이 없는 인간이라는 생물종은 무한정 불어나고 있어 자연계가 더 이상 견뎌내질 못하고 있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나 괴질, 지진, 홍수 등은 모두 자연계가 스스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남아 있는 한 자연계의 이 몸부림은 막을 길이 없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현대문명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결함, 그것은 덧셈만 할 뿐 뺄셈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인생과 역사와 우주 가운데 분명하게 있는 ‘덧셈과 뺄셈’ 중에서 우리 현대인류는 덧셈만을 인정할 뿐 애써 뺄셈은 부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부정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책 이야기>

  제가 인터넷에서 즐겨찾기로 분류해 놓고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 중에 ‘미디어 오늘’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얼마 전 아주 좋은 책이 그곳에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책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서평 제목은 ‘착한 돈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이정환 기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런데 돈은 어떤가. 이자가 붙어서 계속 불어난다. 돈이란 건 애초에 물건과 물건의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돈이 돈을 낳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30조달러인데 유통되고 있는 돈은 300조달러나 된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거래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보다 10배나 많은 돈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나카 유 일본 미래은행 이사장 등은 최근 번역·출간된 '굿머니'라는 책에서 "자연은 이자를 낳지 않는다"는 화두를 던진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원은 유한하고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의 세계에서는 복리 이상의 수익률을 요구한다. 올해 3%의 이익을 냈다면 내년에는 그 이상의 이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가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모두 '에이시드 재팬 에코저금 프로젝트'의 활동가들인데 에이시드(A SEED)란 'Action for Solidarity, Equility,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연대와 평등, 환경, 개발을 위한 행동)'의 줄임말이다. 이들은 "이자와 배당의 요구가 작은 사회, 가능한 한 단리로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 대안으로 "지역에서 얻은 이익을 지역으로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일본에서 미래은행을 비롯해 여러 NPO(비영리기구)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시민단체나 지역의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1~5%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 이 은행들은 어디에 얼마를 대출해줬는지를 출자자들에게 모두 공개한다. 이 은행의 출자자들은 이자 수익을 얻기 보다는 좀 더 나은 곳에 자신들의 돈이 쓰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 은행들은 지역의 돈은 지역에서 돌게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많은 사람들이 이자를 많이 주는 예금, 더 많은 수익을 내는 펀드를 찾아 옮겨 다닌다. 그런데 사실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따져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익도 좋지만 내 돈의 일부가 미국 국채를 사는데 들어가고 그 돈이 다시 전쟁무기를 사는데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 은행에 30만엔을 예금할 경우 이 가운데 0.33%인 1천엔이 전쟁물자로 활용된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지역의 돈이 중앙으로 빠져나가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엉뚱하게도 건설회사들 배만 불리는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다국적 기업이나 박리다매의 물량공세를 퍼붓는 대형 할인점 역시 지역 경제를 무너뜨린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도 모르는 돈의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돈의 지역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란 어느 개인이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산자였던 마을 사람들이 어느 순간 소비자로 둔갑해서 소비 중심 사회로 변질될 가능성도 경계한다. 그래서 "돈의 힘의 휘둘리지 않도록 사회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역통화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배추 한 포기를 살 수 있는 지역통화는 물가가 오르거나 말거나 환율이 오르거나 말거나 균일한 가치를 갖는다. 물건과 돈이 1 대 1로 대응하는 지역통화의 비중이 유의미할 정도로 늘어나면 금융회사들이 신용창출이라는 마술을 부리기도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지역통화는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내 경제 선순환이 가능하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절, 오스트리아 베르글이라는 마을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자유화폐를 도입한 바 있다. 1개월 마다 액면가의 1%를 내고 도장을 찍어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돈의 유통속도가 빨라졌다. 10실링의 화폐가 한달 사이에 12번이나 유통되면서 실업자가 크게 줄어들고 상점도 크게 번성했다. 이자가 돈의 순환을 막는다는 실비오 게젤의 철학을 구현해 성공한 사례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경제와 금융시스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면서 "일터를 대기업에만 의족하지 않고 꼭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만 생산·제공하자"고 제안한다. 금융을 이자의 산실이 아닌 경제의 윤활유로써 기능하도록 바꿔나가자는 이야기다. 자급자족적 경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하는 물물교환이 가능한 지역장터, 사회책임투자와 사회책임소비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노동시간의 단축도 중요한 화두다. 일본의 경우 1975년에서 1995년 사이 노동생산성 향상의 효과 가운데 4분의 1이 여가시간의 연장으로, 나머지 4분의 3은 소비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1970년에 2천시간 일하고 연봉 400만엔을 받는 사람이 2005년에는 1600시간 일하고 800만엔을 받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노동시간은 20% 줄었는데 수입은 2배가 됐다. 이렇게 늘어난 수입의 대부분이 서비스와 에너지 소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묻는다. 노동생산성이 늘어났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이들은 만약 우리가 소비를 줄인다면 훨씬 더 적은 돈으로 훨씬 더 많은 여가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1970년과 비슷한 420만엔 정도의 연봉을 받으면서 하루 3시간씩만 일하거나 아예 8시간씩 1주일에 이틀만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덜 일하는 대신 덜 벌고 더 많이 놀자는 이야기다.


이 책의 결론은 욕망을 자제할 것, 그리고 욕망을 자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굿 감세와 배드 과세'라는 조세원칙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좋은 상품이나 활동에는 세금을 낮춰주거나 면제 또는 보조금까지 얹어주고 나쁜 상품이나 활동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는 이야기다. 인건비에 대한 세금을 낮추고 에너지의 사용을 늘려서 생산성 중시 사회에서 자원 효율성 중시 사회로 가자는 제안이다.


  다나카 유는 "생활은 작은 범위 안에서 해 나가고 정보 교류는 세계 사람들과 해 나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세계화 해야 할 것은 교류와 정보이지 경제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여러차례 인용된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배운다'를 쓴 헬레나 니르베르 호지가 "우리의 행복한 미래는 지역 안에서 자급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착한 돈이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는 너무 추상적이고 순진무구하게 들린다. 그러나 자본의 무한증식과 극단적인 양극화, 노동의 소외에 맞서는 유일한 대안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투자와 올바른 소비를 선택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공정무역과 마이크로크레디트, 지역화폐, 자급자족적 지역 경제 등은 막연한 이상이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작은 실천의 힘을 의식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정말 훌륭한 글입니다.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습니까!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이르셨다.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해가 뜨자 타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3:1~9).】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 한국교회가 아주 오래전부터 교회성장과 기복신앙의 근거로서 활용하던 성경구절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교회에 나오면 30배 60배 100배로 ‘재물과 명예’가 점점 더 커진다”는 이야기를 해대던 근거로서 애용되던 성경구절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대한 엄청난 오독(誤讀)입니다. 잘못 읽은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이 비유의 마지막 구절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는 구절 덕분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조용하게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 비유의 말씀이 어떻게 해서 ‘예수 믿으면 돈과 명예를 몇 십 배로 벌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구절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제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짝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마태 13:18~23)】


  오늘 이 비유는 재물이나 명예를 크게 한다는 차원의 반대이며,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 가운데서 성장한다는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치 봄날의 씨앗이 가을에 열매 맺는 것처럼, 백배로 육십배로 삼십배로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임락경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건 지극히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벼나 콩, 무와 배추 …… 등등의 씨앗들을 밭에 뿌리면,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배, 어떤 것은 삼십배의 결실을 맺는, 지극히 자연적인 이치를 설명하는 차원인 것입니다. 폭발적 성장이 아니라, 자연적 성장인 것입니다.


   <말씀의 적용>

  인생과 역사와 우주는 ‘생멸’(生滅)하는 것입니다. 생(生)도 인생이고, 멸(滅)도 인생입니다. 덧셈도 인생이고 뺄셈도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덧셈’, 즉 생(生)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쪽의 진실일 뿐입니다. 그런 집착은 절반이 거짓입니다. 인생과 역사와 우주는 생과 멸을 반복하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창조세계의 이치입니다.

 

 얼마 전에 동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은 메달을 따와서 온 나라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의 정신에 열광하는 현대인류, 그러나 그 반대의 단면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약하게.” 왜냐하면 그런 강과 약, 모두가 인생과 역사와 우주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하나님 창조세계의 이치’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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