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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62 추천 수 0 2015.06.23 10: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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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13-1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장 1절-12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 쌔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절-10절: 중풍병자를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달아 내린 그 일이 왜 일어났느냐? 어떤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비켜주지도 않고 누가 진을 치고 있었느냐? 성경을 안다고 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또 교회적으로 말을 하자면 목사들 또는 직분을 가진 집사 장로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야 중풍 병이 고쳐지는 거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구원이 된다. 뭘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하늘의 도로서 사람이 구원이 된다. 하늘의 도가 아니면 구원이 안 된다.


이 이치를 놓고 보면 땅에서 보낸 사자가 아닌 하늘로부터 보낸 사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이라야 사람이 구원이 된다. 구원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속 성품이 온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하는 이거는 우리가 신경을 안 써도 된다. 그거는 주님이 주권과 독권적으로 이뤄놓은 것이니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진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진을 치고 있으을 알아야 한다. 교회마다 진을 치고 있다. 먼저 믿은 자가 모범이 되고 앞서가야 나중 믿은 자가 그 뒤를 따라갈 텐데 먼저 믿었다고 하는 자가 앞서 가지도 않고 앞서 가려는 자도 막아버린다. 참으로 악하다. 쉽게 말하면 자기도 부분적으로나 지엽적으나 자기의 인격적인 모든 면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하지를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자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직분을 가지고 막아버리고 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쪽으로 믿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충성봉사 쪽으로 뽑아낸다. 이게 주님 앞에서 주님께로 가지 못하게 진을 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고, 모르는 사이에 그런 짓을 하는 게 너무 많다. 먼저 믿는 자가 본이 돼야 하겠는데 본이 되지는 못해서 나중에 믿은 자들이 먼저 믿은 그 사람을 보고 ‘아무개도 저렇게 믿는데 나는 뭐’ 하고 합리화 하게 된다. 어정쩡하게 이상하게 믿으려면 앞에서 걸그적 거리지 말고 한 쪽으로 나가라. 그래야 잘 믿으려는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냅다 찾아가고 뛸 수가 있다.


교회 안에는 잘 믿는 사람도 있고, 못 믿는 사람도 있고, 중간쯤 믿는 사람도 있다.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그런 모든 사람을 나로 인해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면 안 된다.


시편에 보면 성도들이 앞을 가는데 걸려 넘어질 것을 천사들이 치우는데, 그런데 마귀의 수법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성도가 앞으로 갈 때 걸려 넘어지는 것을 치우라는 그 성경구절을 그렇게 가르치지를 않고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받들어 줄 것이라고 변개를 했다. 즉 땅의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이치가 죽는 거냐, 날개가 달려서 새가 되는 거냐? 뛰어내리면 땅으로 꽂혀져 죽는 거다. 마귀는 그 수법을 쓴다.


거짓된 종들은 성도들을 하늘을 바라보게 하지 않고 땅으로 뛰어내리게 하는 수법을 쓴다. 땅의 것을 가지라고 하고, 땅의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하고, 땅의 이해타산을 가지라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되면 수준적으로 떨어지고, 신앙의 가치적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되게 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의 교훈을 못 받게 한다. 이게 거짓 종들이다.


오늘날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인데, 이런 자는 은연중에 자기의 언행심사를 가지고 모범이 아닌 모범이 돼서 자기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다른 데로 넘어지게 하고 있다. 이거 정말 안 된다.


자타의 구원이 뭐냐? 자기도 구원이 되고 다른 사람도 구원이 될 수 있는 그 자기로 살아야 하는 건데 나의 잘못으로 다른 형제들이 구원에 걸려 넘어지게 할 요소가 있으면 안 된다.


중풍병자의 상태가 어떤 상태냐? 꼭 사람이 하나 옆에 붙어야 한다. 사람이 아파도 사람이 꼭 옆에 붙어있어야 되는 환자가 있다. 그렇지 않고 화장실도 스스로 가고 밥도 스스로 떠먹고 하면 사람이 항상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식물인간은 항상 사람에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식물인간이 뭐냐? 노력도 안 나오고 건설도 안 나오고 의사소통도 안 나오고 남에게 유익되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순전히 남의 노력으로 먹고 사는 거다. 이게 식물인간이다.


사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기가 아프지 않은 이상 움직여야 한다. 손 발이 다 성하면서 순전히 남의 덕으로 산다면 이건 식물인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생활하고 다 사는데 그런데 사는 위주와 목적이 먹고 마시는 위주로 들어가 있다면 이 또한 식물인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향해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게 없다는 말이다. 영인성장 면으로 구원 면으로 살아나오는 게 없다.


그렇다면 이건 뭣과 같은 거냐? 손발이 다 성하고 사람이 멀쩡한데 환경에 의해서 환경이 ‘이리 가라’ 하면 가고, ‘저리 가라’ 하면 가고 하는 환경의 소산으로 사는 건 하나님 앞에 식물인간으로 찍히는 거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과를 먹고 세상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건데, 이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라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온전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러면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고,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을 다스리게도 된다. 돈 많은 사람은 돈을 가지고 사람을 다스린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면 돈을 따라가게 되고, 결국은 옭아매진다. 끝이 비참하다.


사람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운동은 교회밖에는 없다. 딴 데는 없다. 세상은 전부 땅의 운동이다. 환경의 소산으로 사는 사람은 식물인간이다. 그러니까 환경이 그 사람을 본문의 중풍병자처럼 들어다 놓아야 한다. 소경도 그렇고 앉은뱅이도 그렇고.


중풍병자는 밥 먹고 똥만 싸고 건설도 없고 환경의 노예고 남의 손에 움직여야 한다. 사대육신이 성한데 영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면에서 중풍병자가 참 많다. 환경의 소산으로 사는 사람, 유행의 소산으로 사는 사람은 중풍병자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적인 뚜렷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11-12절: “‘네 죄 사함을 받았다’ 하는 말과 ‘네 상을 들고 가라’ 하는 말과 너희들 생각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느 것이 쉬우냐? 신앙의 생각 말고 사람을 생각으로는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 중풍병자가 죄를 지어서 중풍 병이 들렸다고 보느냐, 아니면 그냥 병이 들어서 그렇게 누워있다고 보는 거냐? 그냥 병이 들어서 누워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거라’ 하는 게 쉬운 거다.


성경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다고 하느냐, 서서 섬기는 자가 크다고 하느냐? 예수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들 중에 있다’ 라고 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섬기는 자니까 작은 것이 아니냐? 보통 인간의 생각은 앉아서 먹는 자가 크다고 본다. 섬기는 자가 크다고 안 한다. 이게 인간의 생각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어린아이는 앉아서 먹는다. 어머니는 서서 아이를 섬기고 있다. 그러면 누가 크냐? 어린아이가 크다. 일반 사람들은 앉아서 먹는 자가 크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들 중에 섬기는 자로 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이걸 어떻게 새겨들어야 하느냐? 앉아서 먹자면 어디에 앉아 먹어야 하겠느냐?


지금 예수님이 일반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앉아서 먹는 자가 큰 자가 아니냐’ 라고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일반기준을 가지고 그 말을 하신 것이냐, 아니면 천국의 개념을 가지고 일반적인 표현으로 그 말을 한 것이냐? 후자다.


섬기는 자가 크다. 왜 그런 것이냐? 실력이 없으면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으면 섬김이 안 나온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자들은 자꾸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 섬김을 받는 자는 실력이 안 커진다. 섬기는 사람이 실력이 커진다. 예수님께서 섬기는 자가 크다고 하시는 것은 그런 면이 들어있다.


집에서 부모가 다 해주는 것으로 곱게 곱게 자란 자식은 시집장가 가서도 자기 살림을 잘 할까? 부모 곁에서 부지런히 수종들고 반찬도 하고 이런 걸 다 보고 자라면 시집가서도 살림을 잘 한다. 안 그러면 맨 사먹고 나가 먹고 한다. 그러면 돈이 모이지를 않는다.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봤을 때 어떻게 해야 이 자가 일어날까? 이 자가 왜 그렇게 매여져 있는 것이냐? 죄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를 사해주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죄가 무엇이냐?


일반적으로 보면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못 먹고 하면 중풍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속에서 움직이는 그 정신이 그 소원 목적이 세상에 가서 있는 것이다. 이건 땅의 성질이다. 하늘의 성질이 아니다.


생명과를 먹으면 하늘의 정신을 갖고 있을 텐데 생명과를 안 먹으니 선악과를 먹게 되고, 그게 죄다. 그렇게 되면 먹기는 먹어야 되겠는데 세상 소원 목적 취미 추구성을 먹게 된다. 그게 선악과다.


그런데 보통 보면 육의 생각을 가지고 일반적인 중풍 병만 보는데, 성경에 보면 환경의 소산으로 사는 자가 몇 명이 있다. 중풍병자가 있고, 앉은뱅이가 있고, 소경이 있다. 이것은 환경의 소산들이다.


우리가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실상을 뽑아내면 그 사람의 소원 목적 취미가 다 나온다. ‘아, 이건 환경의 소산적인 취미구나. 환경의 소산적인 소원성을 가졌구나. 아, 이건 포로구나’ 이게 나오는 거다. 그래서 중풍병자도 일반적인 병이지만 이걸 인간을 창조하신 주님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람은 죄 때문에 그 병이 걸린 것이다.


그러면 죄가 뭐냐? 생명과를 안 먹은 것이 죄다. 그러니까 중풍병자를 통해 생명과를 안 먹은 사람은 환경의 소산이 되어있다는 것을 지금 말해주고 있는 거다.


교회에 올 때도 꼭 가서 깨우고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데리고 와야 오고, 데리러 간 사람은 밖에서 시간이 촉박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꾸물거리고 있고. 이것도 중풍병자다.


이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여져 있다. 즉 환경에 놓여졌다. 꼼짝도 못하는 침상에 매여 있는 이게 그의 환경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보니 죄 때문에 그 병에 걸렸다. 그래서 그의 죄를 사하니까 벌떡 일어난다. 그 앞에 보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인간을 자유케 하시는 분이다. 이게 구원의 복음이다. 천국복음이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상에 실려 왔던 그가 이제는 자기가 누웠던 상을 들고 간다. 상에 의해서 자기가 꼼짝없이 잡혀져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그 상을 메고 자기 집에 갖다 놓는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침대는 집에서 필요한 거다. 나음을 받은 이 사람이 집으로 가서 정신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또 중풍병자처럼 살까? ‘내가 여기에 38년 동안 누워 있을 때 굉장히 좋았다’ 하면서 침대를 집에 갖다 놓고 옛날 생각하면서 또 그러고 있겠느냐?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는 이것은 자유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너의 집이란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중풍 병이 든 채로 나왔던 집과, 고침을 받고 상을 메고 들어가는 집도 같은 그 집이고 상도 같은 상인데 이제는 달라졌다. 뭐가 달라졌느냐? 사람이 달라졌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의 원 뜻은 ‘자유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곳이 너의 집이다. 네가 자유하고 싶으면 그리로 가라’ 그 말이다. 여기에는 신앙사상이 들어있다.


이 면을 조금 더 이해를 해 보자면 동방박사들이 꿈에 주님의 지시함을 받고 헤롯이 요구하는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해서 자기 집으로 갔다. 그러면 이들이 나올 때의 자기 집과, 그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고향으로 가서 도착한 자기 집은 글자는 같고 출발지는 같으나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달라졌다.


동방박사가 처음에 출발할 때는 메시아를 갈망하고 별을 따라 출발을 했다. 그렇게 되면 소망과 희망의 메시아를 만나는 것이다. 구주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만나고는 꿈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자기 집으로 간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마음과,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의 박사들의 마음은 다른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집으로 달 때는 메시아를 만날 마음이 아니고 구주 예수 메시아를 만난 것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다. 그러면 집에 가서도 그 기쁨의 충만성은 꺼지지 않는 것이다. 예수 만난 후는 그것이 바로 자기 집이다. 이게 이해가 되어지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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