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다시 복음으로'(4)"복음 앞에서 울다"

시편 김영봉 목사............... 조회 수 877 추천 수 0 2015.07.12 23:54:18
.........
성경본문 : 시51:1-12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 년 3 월 30 일 주일 예배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다시 복음으로'(4)"복음 앞에서 울다"
(Cry Before the Gospel)
시편 (Psalm) 51:1-12


1.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맞아 '다시 복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3 주일 동안 저는,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고 믿는 신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에 놀라 떠는 것이며, 하나님의 빛나는 광채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성에 눈 뜨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빛나는 광채 앞에서 자신의 죄성에 눈 뜨는 것을 가리켜 '회개'(repentance)라고 부릅니다. 회개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귀의하는 것으로 완성되지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두려워 떠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게 눈 뜨고 자신에게 눈 뜨게 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의미처럼, 숨처럼 혹은 바람처럼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감동시키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진정한 회개는 성령의 감화로 인해 일어납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며 자신이 잘못한 것을
따지는 것으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깨우시고 비추어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만,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만지시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죄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큰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죄들이 거대하게 커 보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죄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때 진정한 회개가 터져 나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을 영어로 Convicting Grace 라고 부릅니다. Convict 라는 말은
'유죄를 선고하다'는 뜻입니다. 유죄 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Grace 즉 은혜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죄성에 눈을 뜨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지만, 그것은 진정한 희망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어느 교우의 조직 검사 결과를 통보 받고 안심을 했습니다. 혹시 암일지 모른다 하여 염려를 했었습니다.
저도 경험해 보아서 아는데요, 자신의 몸 속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아주 기분 나쁘고 실망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은혜이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사가 오진을 하여
암인데도 암이 아니라고 판정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사람이 나중에는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육신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은 은혜 중에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보지 않고는 자신의 진상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다윗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납니다.


다윗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 한 순간의 유혹을 다스리지 못하여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합니다. 그는그 죄를 덮어 버리기 위해 전장에 나가 있는 우리야를 불러들여 아내와 하룻밤을 지내도록 배려합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전장에 있는 전우들 생각에 아내와 함께 지내기를 사양하고 궁궐에서 다른 병사들과 밤을 지내고
돌아갑니다. 참으로 모범이 될만한 군인입니다.


그 정도면 다윗은 상당한 가책을 받았을텐데 그의 범죄는 계속 커져만 갑니다. 그는 요압 장군에게 전갈을
보내어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전투에 내보내어 죽게 만듭니다. 완전 범죄를 계획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취해그 정도의 죄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나단을 보내어 그의 죄를
꾸짖으십니다.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윗은 무너져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2:13)


2.
오늘 읽은 시편 51 편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올린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는 그것을 기도에 담아 고백합니다. 적어도 네 가지 점에서 다윗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것을 '죄의 네 가지 속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다 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섬긴
사람이니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알던 것을 온 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4 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완전 범죄를 꿈 꾸웠습니다. 우리야가 죽은 후에는 당당히 밧세바를 아내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범죄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런데, 하나님을 망각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유혹에
넘어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정욕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그것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 까맣게 잊는
경우도 있고, 죄를 탐하는 마음 때문에 일부러 잊은 척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몰래 욕망을
채운 것인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코 앞에서 그 더럽고 악한 죄를 행한 것입니다. 그 자각에 그는 온 몸으로떨었을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 한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 절에서 고백합니다.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 말은 밧세바와 우리야에게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밧세바와 우리야에게도 죄를 지었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가장 큰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위에 앉은 그에게 두 사람의 목숨이 하찮아
보였지만, 하나님께는 온 우주보다 귀한 생명이었습니다. 밧세바가 능욕 당할 때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분은 하나님이며,우리야가 죽임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이 가장 아파하셨고,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밧세바가 통곡할 때도
하나님이 가장 아파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 죄를 통해 자신을 믿고 왕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뽑아 왕위에 앉힌 것은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오용했습니다.


죄의 무게는 그 죄의 종류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지만, 누구에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동일한
절도의 죄라 해도 누구에게서 어떤 물건을 훔치느냐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살인 중에서 가장 중한 죄는
'존속살인' (parricide) 즉 부모를 죽이는 범죄입니다. 같은 범죄라도 미성년자에게 하는 범죄는 더 큰 형을 받습니다.
동일한 죄를 이웃에게 범했을 떄와 왕에게 범했을 떄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웃에게는 큰 죄가 아니라도, 왕에게는 그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가
그만큼 중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 앞에서 그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인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3.
셋째,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죄에 속속들이 오염되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밧세바와 우리야에게 행한 죄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5 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모든 성적인 관계는 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원죄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original
sin)가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이 고백은 자신의
영혼이 속속들이 죄로 물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영혼 깊숙이 침투한 죄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고더 큰 죄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3 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구절은 <개역개정 성경>의번역이 더 좋습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입니까? 옛날 번역에는 "내 죄가 내 문지방에
있나이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자신을 참되게 아는
사람이라면 이 고백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 그냥 보고만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11 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주님의 성령을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존재가 죄로 속속들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과 수 많은 죄로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느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쫓겨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노'(wrath)가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기록들은 하나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기에 생긴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wrathful God)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loving God)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입니다.


4.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진노'라는 단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진노'라는 말을 들을 때
여러분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저에게는 할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요즈음의 할아버지들은 사랑과 인자함이 충만하지만,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는 형편이 녹록치 않았던 시기에 사신 제 할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면 늘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은 거의 없고 나쁜 기억만 있습니다. 그분은 밤에 휘파람을 부는 것을 특히 싫어하셨는데,어느 날 밤, 대청 마루를 지나가면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기분이 좋았던가 봅니다. 그 때, 갑자기 눈앞이캄캄해지면서 별이 보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할아버지의 진노하신 얼굴이 제 눈 앞에 있었습니다. 그때 그 표정이 너무도 무서웠기에 '진노'라는 말을 들으면 그 표정이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 기준도 없고, 원칙도 없이, 자기
기분대로 성질을 부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 진노라면 하나님과 상관 없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자주 성질을 부립니다. 점쟁이나 무당이 섬기는 잡신도 성질 머리가 고약합니다. 왜 괴롭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반면, 하나님에게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본성에서 솟아나는 진노가 있습니다. 그것을 '거룩한 진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진노는 하나님의 본성은 아니지만, 불의와 죄악과 거짓을 볼 때 형성되는 감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감정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거룩한 진노'의 감정이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서도 자주 발견합니다. 일본군에게 유린
당했던 종군 위안부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진노의 감정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워싱턴 DC 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을 둘러 보고는 그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진노로 인해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연약한 어린 아이를
성폭행한 범인의 얼굴을 볼 때에도 동일한 감정이 생깁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부패에 관한 뉴스를 읽을
때도 거룩한 분노의 감정이 부글거립니다.


그 진노의 감정은 어디에서 옵니까? 인류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정의에 대한 사랑에서 발생합니다.
그런 불의와 악행과 부정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성이 완전히 마비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잘 못 다루어 폭동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복수의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동력으로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그래도 이 정도로 돌아가는 이유는 그런 감정이
살아 있고 그 감정에 따라 정의와 진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죄악들을 보시고 "그래, 괜찮다.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하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기 기분대로 성질을 부리고
분통을 터뜨리는 하나님도 상상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불의와 죄악을 보시고 아무 감정이 없는
하나님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진리와 정의 그리고 사랑과 거룩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인간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불의와 악행을 바로잡기 위해서 행동하셔야 마땅합니다. 성질 부리고 분통을 터뜨리며 앙갚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대상이 되고 싶은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의와 죄악에 대해 진노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 분이라면 온 우주와 인류 역사의 주인이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머리를 숙여 경배하고 예배할 이유도 없습니다.

5.
이제, 한 나라의 절대 군주일 뿐 아니라, 주변 어느 나라에서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다윗왕이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하찮다고 할만한 죄를 두고 이렇게 절절하게 회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철저하게 죄에 오염되어
있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지은 모든 죄가 하나님의 코 앞에서 저지른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 때, 다윗은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하나님께 대해 두려워 떱니다. 자신의 엄청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진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 5:8)라고 절규하고 싶었지만, 다윗은 죽더라도
하나님 품에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다시 빚어 주십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성령의 Convicting Grace 를 받고 다윗과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노 앞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고 두려워 떨었던 기억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 속으로 한 없이 추락하고 있는 듯한 절망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장에라도벌 받아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무너져 내렸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절망감속에서 바라 보았던 십자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 부른 주님의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린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음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기억이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로부터 그리고 얼마나 무서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 늘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시시때떄로 그 앞에 나아가 '아빠'라고 부르며 사랑의 사귐을 나누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거룩하시며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난 주, 1 부 예배를 드릴 때, 찬송가 151 장의 후렴, 즉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때에"라는 구절을 부를 때,
제 심장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처음으로 십자가가 보였던 그 때의 감격이 새롭게 살아났던 것입니다.
저는 모태 신앙인이기 때문에 늘 십자가를 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제대로 보인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저의 죄를 깨닫고 다윗처럼 깨어진 심령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때, 비로소 십자가가 제대로 보였습니다. 그때의 그감동이 제 마음을 쳤습니다. 2 절, 3 절을 계속 부르는 중에 설레임은 더 커졌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4 절까지있었다면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은혜를 간직하고 지키십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잊지 않고 산다면, 그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은혜로 인해 인생에서 겪는 모든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겁낼것이며,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6.
여러분 중에는 아직 성령의 Convicting Grace 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고, 그 죄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진노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윗도 한 때 그랬고, 베드로도,바울도 한 때 그랬습니다. 이분들 옆에 저를 끼워도 될지 모릅니다만, 저도 한 때 그랬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앞에 서지 않고는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한 번의 설교로 여러분을
설득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다만,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회개 기도에 드러난 '죄의 네 가지 속성'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첫째, 하나님은 모든 죄를 보고 계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짓는 것입니다.
 둘째, 죄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짓는 것이기에 그만큼 죄의 무게도 무거워집니다.
 셋째, 죄의 행위도 문제지만 우리의 죄성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 넷째,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에 마주서게 합니다.


그리고 혹시 여기에 조금이라도 진실이 있는 것 같으면, 조용히 물러 앉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성령께서 마음을 만져 주셔서 예민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구하시다 보면, 주님께서 정하신 때에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에게도 십자가가 보일 것입니다. 그동안 늘
보아 왔던 십자가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전환점이며, 그 은혜 체험으로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꼭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시간,
성령의 은총을 구합니다.
저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시며
무뎌진 마음을 예민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저희의 진상을 보게 하는
성령의 은총을 구합니다.
허락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하소서.
그 은혜의 능력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4 년 3 월 30 일 주일 설교 '다시 복음으로'(4)
"복음 앞에서 울다"(Cry Before the Gospel)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149 장(통 147)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사무엘하 11-12 장을 읽으십시오. 이어서 시편 51 편 전체를 읽습니다. 다윗의 회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10 분)
4. 말씀의 요약 (웹싸이트에 있는 말씀 요약을 읽습니다. 10 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 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 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다윗의 회개 기도에 표현된 '죄의 네 가지 속성'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나누어 주십시오.
3) 당신은 성령의 Convicting Grace 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십시오.
4) 십자가를 바라보는 당신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지금 당신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는 얼마나
뜨겁습니까?
6. 기도
1) 십자가의 은혜가 늘 살아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2) 성령의 은혜를 입어 자신의 죄성을 참되게 깨닫도록 기도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282 장(통 339)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2337 사도행전 고넬료와 베드로의 껍질깨기 행10:1-2  한인섭 형제  2015-07-24 889
12336 에배소서 충만함에 으르게 하시는 하나님 엡3:14-21  강승호 목사  2015-07-24 579
12335 에배소서 삶의 반석되신 그리스도 엡2:11-22  강승호 목사  2015-07-22 642
12334 요한일서 행복을 만드는 말 요일3:4-24  최장환 목사  2015-07-22 804
12333 에스겔 최선을 다하는 삶 겔24:1-24  최장환 목사  2015-07-22 1241
12332 마가복음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2-28  김경형 목사  2015-07-21 512
12331 마가복음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막2:19-21  김경형 목사  2015-07-21 688
12330 고린도후 은혜를 받으려면 고후6:2  강종수 목사  2015-07-19 731
12329 시편 우리 위해 일하시는 주님 시121:3-6  강승호 목사  2015-07-18 704
12328 누가복음 탐심을 물리 치라 눅12:13-21  이승남 목사  2015-07-18 702
12327 마태복음 예수님의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마8:1-4, 14-17  이승남 목사  2015-07-18 726
12326 여호수아 믿음으로 축복의 그림을 그려라 수18:1-10  이승남 목사  2015-07-18 806
12325 고린도후 은혜의 자족성 고후12:2-10  정용섭 목사  2015-07-16 688
12324 마가복음 달리다굼 말씀하시다 막5:21-24  정용섭 목사  2015-07-16 801
12323 사무엘상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삼상17:32-49  정용섭 목사  2015-07-16 1573
12322 마가복음 씨 비유 막4:26-34  정용섭 목사  2015-07-16 532
12321 고린도후 하늘의 영원한 집 고후4:13-5:1  정용섭 목사  2015-07-16 613
12320 이사야 상투스 상투스 상투스 사6:1-8  정용섭 목사  2015-07-16 797
12319 로마서 성령의 도우심 롬8:22-27  정용섭 목사  2015-07-16 820
12318 사도행전 사도의 직무 행1:15-17  정용섭 목사  2015-07-16 617
12317 사무엘하 여호와가 지으시는 집 삼하7:1-14a  강승호 목사  2015-07-15 515
12316 사무엘상 마음을 얻는 길 삼상25:1-22  최장환 목사  2015-07-15 727
12315 에스더 낮아지면 높이신다 에6:1-14  최장환 목사  2015-07-15 738
12314 역대상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상1:1-4  박성철 목사  2015-07-15 356
12313 역대상 그리스도인의 가문 대상1:1-42  박우택 목사  2015-07-15 754
12312 마가복음 나는 무엇을 내 신랑으로 삼고 있는가? 막2:16-20  김경형 목사  2015-07-13 344
12311 마가복음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나니. 막2:16-20  김경형 목사  2015-07-13 531
12310 요한복음 어머니를 찾습니다(Mothers In Danger of Extintion) 요10:11-15  김영봉 목사  2015-07-12 596
12309 베드로전 거듭난 나그네(A Born-Again Foreigner) 벧전1:17-23  김영봉 목사  2015-07-12 898
12308 고린도전 다시 복음으로'(7)"복음을 살다"(Live the Gospel) 고전15:12-19  김영봉 목사  2015-07-12 800
12307 요한계시 다시 복음으로'(6)"복음 앞에 무릎 꿇다" 계3:20  김영봉 목사  2015-07-12 869
12306 로마서 다시 복음으로!' (5)"복음 앞에서 웃다" 롬5:1-11  김영봉 목사  2015-07-12 779
» 시편 다시 복음으로'(4)"복음 앞에서 울다" 시51:1-12  김영봉 목사  2015-07-12 877
12304 시편 다시 복음으로(2)- "복음 앞에서 떨다" 시29:1-11  김영봉 목사  2015-07-12 962
12303 고린도전 다시 복음으로(1) "복음이라 불리는 이유" 고전15:1-5  김영봉 목사  2015-07-12 1287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