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김교신13] 영원히 청년의 영으로

수필칼럼사설 백소영 교수............... 조회 수 272 추천 수 0 2015.07.25 12:17:41
.........
출처 : http://fzari.com/251 

꽃자리로고_mini.jpg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3)

 

“영원히 청년의 영으로”

- <청년의 종교> 1932년 6월/ <금후의 조선기독교> 1936년 2월 -


내 이름은 ‘소영’이다. 물론 한자어의 뜻은 다르지만 발음에서 착안하여 영어권 사람들을 만나면 늘 내 소개를 이렇게 한다. “I’m so~young~(저는 정말 젊어요)”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중년이 되어버린 요즘엔 그 웃음소리가 더욱 크다. 웃음이 잦아들 무렵을 기다렸다가 기어코 덧붙이는 한마디가 있다. “And, I want to be forever~young~(그리고 영원히 젊고 싶어요.)”


젊어 보이는 동안 얼굴이 대세라는 요즘에 나이보다 어려보이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사는 동안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싶은 것은 내 영이고 내 신앙이고 삶을 살아가는 내 자세이다. 나는 이것을 김교신을 비롯한 무교회 신앙인들에게서 배웠다. 김교신의 <성서조선> 동인이었던 함석헌은 무교회 정신을 “영원히 청년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부른바 있다. 김교신도 이에 동의했다. 어느 날, 종교를 논평하는 이가 ‘기독교는 청년에게 적당하다’고 논한 글을 접하고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혹은 그럴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한번 노쇠하여 버리면 다시 기독교에 돌아올 수 없다 함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 기독교는 특히 ‘청년의 종교’라는 사실이다. 이해에 담박하고 정의에 용약함은 이것이 청년의 넋이요, 인습을 물리치고 진리에 취하며 허위를 깨뜨리고 실질을 취하려 함은 청년의 의기요, 과거의 경험 속에 지구(脂垢)로써 신경을 은폐치 않고 예기발랄한 감수성으로 진위허실을 판별하는 것이 청년기의 본능이 아닌가.”


여기서 ‘노쇠함’이란 육체적으로 늙음이나 정신적으로 완숙해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김교신이 기독교의 청년성을 논하면서 언급한 위의 내용들을 뒤집으면 그가 말한 ‘노쇠함’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설명과 이해에 구구절절 자기를 드러내는 사족이 많고, 정의로운 일임을 알면서도 이미 가진 기득권을 상실할까봐 은근슬쩍 뒤로 빼며, 어느덧 몸에 익숙해진 습관은 그것이 거짓된 것인지의 판단 없이 고수하여 현재의 유익함을 취하려는 태도를, 김교신은 ‘노쇠함’이라고 불렀다. 마치 좋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혈관에 쌓여 혈류를 방해하는 지방층처럼, 과거의 경험들이 지성과 감성, 신앙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로막는 ‘기름찌꺼기(지구)’가 되어 있는 상태가 또한 ‘노쇠함’이라 했다.


빈들생명.jpg

   류연복 판화

 

기독교의 본질이 ‘영원히 젊으려는 정신’이라면 돌아볼 일이다. 김교신의 시대로부터 80여년이 지난 현재의 기독교는 과연 ‘청년성’을 가지고 있는가? 비평하기 좋아하는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나 신앙인의 본질이 ‘청년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인이 볼 때도, 오늘의 기독교는 여전히 젊은가? 한 때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도 ‘늙으매’ 그 아들들의 부당하고 불신앙적인 행동들을 제지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대부분의 사사들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영과 소통하며 말씀을 ‘맡아’ 예언(預言)을 했었는데, 그가 아직 사사이던 시절에 여호와께서는 엘리에게 말을 그치시고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지 않았던가? 엘리 가문의 ‘영적 노쇠함’을 경고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가감 없이 용감하게 전했던 ‘어린’ 사무엘은 이후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짐이 없을 만큼 여호와의 영과 함께 했었다는데, 그 역시 ‘늙으매’ 모자라기 짝이 없는 자신의 두 아들을 ‘관습’처럼 대를 이어 사사로 삼는 죄를 범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성서는 끊임없이 이 ‘영적 노쇠함’을 경고하고 있는 텍스트이지 싶다. 늘 새롭게, 하루하루 만나처럼 받는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어찌 ‘늙음’이 자리할 수 있을까? 어찌 ‘관례’에 눈감고 ‘인습’을 전통이라 고집하고 ‘진리’를 독점한 양 행동할 수 있으랴! 늘 배우고 또 배우는 겸손한 어린 아이처럼, 모든 것이 투명하고 분명하며 밝히 납득되어야 고개를 끄덕이는 순수한 아이처럼, 무엇보다 아버지 되시고 어머니 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늘 아이 같은 자세로 임하려는 신앙인은 결코 늙을 수 없다.


“기독교가 청년의 종교인 동시에 기독교는 청년으로 하여금 영원히 청년으로 머무르게 한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기독교 신자일진데 저는 비록 고희를 넘을지라도 오히려 청년일 것이다. … 우리는 초국 현인 노래자가 70에 오히려 오채의(五彩衣)를 입고 친전(親前)에서 영아희(?兒戱)를 떨었던 것처럼, 크리스천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청년일 것이다.”


우리가 자라 세상만사에 익숙한들, 세상 지식에 성숙한들, 하여 고희에 이른 현자처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어른’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존재가 된들, 하나님 앞에서야 어찌 ‘어른’ 행세를 할 수 있겠는가? 노래자가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렸듯이, 하나님 앞에 매 순간 서야하는 신앙인에게 ‘영적 노쇠함’은 불효요 불신앙이다. 하여 기독인이라면 어쩔 수 없다. 영원히 젊을 수밖에, 영원히 ‘청년성’을 가지는 수밖에, 하여 청년의 특성인 담백함과 용감함과 진리를 추구함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의 ‘노쇠함’에 저항하는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


김교신과 그의 동인들이 유난히 ‘이성적 기독교’를 주장했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서의 핵심 메시지와 조선의 근본적 문제점을 날카롭고 예민하게 분석·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은 까닭에, 조선의 기독교는 “성신이라는 미명의 열만 돋우고 이성의 상궤(常軌)를 억압한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유행성 열병”같이 되어버렸다고 한탄을 하였다. 이런 모습의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기독교적 무당”이라는 서슬 퍼런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과거는 그대로 가하다. 오순절의 성신강림이 없었다면 초대 기독교의 원기를 못 보았을 것이요. 20세기 벽두의 대부흥이 없었다면 반도 영계의 오늘이 없었을 것이요, 사람이 성신으로 인하여 중생함이 없으면 예수를 주로 믿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외치노니 “금후 50년은 이성의 시대요, 연구의 시대라”고. 식염주사 같은 부흥회로써 열을 구하지 말고 냉수를 끼쳐서 열을 식히면서 학도적 양심을 배양하며, 학문적 근거 위에 신앙을 재건할 시대에 처하였다.”


김교신이 말하는 ‘이성적 연구’라 함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신앙 없는 세속 학문연구방법론을 도입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이성적 연구 역시 “은혜로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학문과 신앙이 완전히 합금을 이룬 것이라야 금후에 닥쳐오는 순교의 시대에 능히 견디어 설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어쩌면 그의 우려처럼 향후 50년 동안 진행했었어야할, 진리를 탐구하는 청년의 열정과 순수성과 이성을 생략한 까닭에, 우리는 오늘날의 ‘노쇠한 기독교’를 대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 기독교를 다시 팔팔한 젊은 정신으로 살려낼 임계점은 이미 지났다는 비관적인 진단들이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현재 드러나는 현상만으로는 부인하기 힘든 정황이다. 그러나 김교신의 외침으로부터 80년이나 지나서, 이 늦은 시점에도 소망을 담아 사랑을 담아 다시 외치고 싶다.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다. 영원히 젊으려는 종교다. 인간의 것들을 절대화하고 영속화하려는 그 모든 교만과 탐심과 자만에 ‘영원히 저항하는 정신’이다. 그러니 기독인이여 늙지 말자, 젊자, 영원히 ‘청년성’을 가지자!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28 논문신학성경 칼빈이 주석책을 쓰지 않은 유일한 성경, 요한계시록 이필찬 교수 2015-08-02 973
2927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5] 부활의 믿음으로 file 백소영 교수 2015-07-25 238
2926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4] ‘위대한’ 인간의 품성에 대하여 file 백소영 교수 2015-07-25 261
»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3] 영원히 청년의 영으로 file 백소영 교수 2015-07-25 272
2924 목회독서교육 어느 무명인의 열린교회 비판과 김남준 목사님의 답변 [2] 안동서남 2015-06-30 1611
2923 수필칼럼사설 이재철 목사님의 목회단상 33가지 file [1] 청년사역연구소 2015-06-12 567
2922 목회독서교육 한국인 개신교회는 ‘유교적 개신교회’ file 뉴스엔넷 2015-06-06 328
2921 100가지,50가지 행복한 가정을 위한 101가지 조언 팀 키멜 2015-06-04 540
2920 목회독서교육 부천으로 이사온지 2년, 600여 명의 이웃이 생겼어요 콩나물신문 2015-06-02 290
2919 100가지,50가지 100가지의 마케팅 최용우 2015-05-29 280
2918 100가지,50가지 명상의 100가지 효과 최용우 2015-05-29 394
2917 100가지,50가지 심리학 용어 100가지 최용우 2015-05-29 383
2916 100가지,50가지 한번 뿐인 인생, 바른 신앙의 방법 50가지 이상헌 2015-05-28 397
2915 논문신학성경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file 이재룡 교수 2015-05-28 1530
2914 100가지,50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100가지 방법 Huffington Post US 2015-05-27 228
2913 100가지,50가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100가지 la국제공항 2015-05-27 414
2912 순전한신앙이야기 진리와 비진리 황부일목사 2015-05-27 445
2911 순전한신앙이야기 구원의 원리로 성경을 알아야 한다 황부일목사 2015-05-27 475
2910 순전한신앙이야기 요셉의 꿈은 몽상이나 비전이 아니다 황부일목사 2015-05-27 760
2909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2] 푸러리 이야기 file 백소영 교수 2015-05-23 298
2908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1]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file 백소영 교수 2015-05-23 311
2907 수필칼럼사설 [김교신10] 닮지 못한’ 세대를 탄식하다 file [1] 백소영 교수 2015-05-15 441
2906 수필칼럼사설 [김교신9]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file 백소영 교수 2015-05-15 333
2905 수필칼럼사설 [김교신8] 모기의 ‘도(道)’-「비전론 무용 시대」 1934. 3월 file 백소영 교수 2015-05-15 409
2904 수필칼럼사설 [김교신7] 망해도, 살아내기 file 백소영 교수 2015-05-10 304
2903 수필칼럼사설 [김교신6] 졸업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들 file 백소영 교수 2015-05-10 197
2902 수필칼럼사설 [김교신5] 을(乙)의 지형학 file 백소영 교수 2015-05-10 263
2901 인기감동기타 착각 강승호목사 2015-05-05 293
2900 수필칼럼사설 꽃에 관한 시 16편 모음 정연복 시인의 정연복 시인 2015-05-01 645
2899 목회독서교육 퍼져가는 가정교회, 집만한 예배장소는 없다 file 이상준 목사 2015-05-01 464
2898 영성묵상훈련 언약의 이름 요한 2015-04-23 265
2897 영성묵상훈련 그리스도의 이름 요한 2015-04-19 414
2896 영성묵상훈련 하나님의 이름 요한 2015-04-13 406
2895 순전한신앙이야기 주일을 지워가는 세대 황부일목사 2015-04-07 491
2894 순전한신앙이야기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황부일목사 2015-04-07 598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