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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켰다면 주인이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36 추천 수 0 2015.07.27 16: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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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23-2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장 23절-28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쌔 그 제자들이 길을 4)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창세 때에 율법이 있기 전에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은 여호와께서 쉬셨나니 그 날은 거룩한 날이라. 복된 날이라. 그러면 왜 그 날을 쉬게 했느냐? 안식일은 저주 받게 하는 날이냐, 복을 받게 하는 날이냐? 복을 받게 하는 날이다. ‘복’ 할 때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사람을 복되게 만든다는 말이다.


우리가 신:도 읽었지만 사람이 복되지 못하면 저주가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가 된다. 그러니 사람이 저주가 되면 그 사람의 꼴이 뭐가 되겠느냐?


그걸 알아야 한다. 저주 받을 사람은 그 소원 목적이 물질 소원 목적에 있다는 것 알라. 세상에다 소원 목적을 두고 부하려 하는 자들은 모든 시험과 올무에 걸린다고 했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건데 인간들은 그렇게 알아듣지를 않는다. 그래도 세상 소원을 먹겠다는 것이다. 그게 선악과를 먹는 거다. 선악과를 먹으니 영은 죽고, 육도 결국은 죽는다. 하나님 없이 죽는다.


저주의 죽음은 하나님 없이 죽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병들어 죽은 게 저주가 아니라 아무리 건강해도 하나님 없이 죽는 자가 저주의 죽음이다. 성경대로 보면 그렇게 나온다.


하나님께서 그 날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날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인자는 안식일 주인이니라.’ 그러니까 안식일을 만든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안식일을 날짜적으로 따지면 안 된다. 그건 왜냐?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의 속 중심을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속 중심이 예수님처럼 닮지는 않고 날짜만 따지고 있으면 안 된다. 예수를 닮는 건 하나님을 닮는 건데 날짜만 갖고 씨름하고 싸우는 건 마귀장난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그러면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신데, 안식일을 지켰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주일을 지켰다는 사람들이 그 주님을 만나보았느냐? 그 집에 들어가면 그 집 주인을 만나보고 주인의 말을 듣고 나와야 하는 건데 만나지 못하고 나왔다면 도둑처럼 되는 거다.


그 집에 들어갔으면 집주인을 만나보고 대화를 하고 나와야 된다. 집안에 들어가서 주인을 만나보고 나오는데 대문 앞에서 그 집 주인의 아들을 만나서 ‘어디서 왔습니까’ 하면 ‘아,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인데 안에서 주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하면 의심이 풀리는데 주인도 안 만나고 그냥 나온다면 도둑으로 몰린다.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영의 양식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양식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요,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양식이요,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인간 너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의 양식을 먹으면 영인성장과 영능의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인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교인들은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키고 예배의식을 엄숙하게 지키면 거룩한 사람으로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자기들 잣대로 남을 정죄하고 있다.


우리는 주일날 단순히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이걸 원하는 게 아니라 말씀의 깨달음을 받아서 예수님의 말씀의 이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한 모퉁이라도 닮은 게 있어야 옳은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예수를 안 닮고 마귀를 닮겠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닮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의 평안이고, 나의 존귀영광이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올려준다.


예수를 안 믿는 일반세상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지혜롭고 기술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올려준다. 그러면 사람을 올려주는데 돈은 안 따라오겠느냐?


사람이 돈을 따라가는 게 옳은 거냐, 돈이 사람을 따라오는 게 옳은 거냐? 사람이 돈을 따라가야 옳은 이치냐, 돈이 사람을 따라가야 옳은 이치냐? 돈이 사람을 따라가야 옳은 이치다. 사람이 높은 거다. 그러나 기술도 없고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은 돈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마저도 안 하면 어찌할 거냐?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니 그렇게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못하지, 돈도 없지. 그렇게 되면 그 자는 어떤 사람이 되는 거냐? 이용물이요 이용감이다. 아무리 무식이라도 돈 많은데 가서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거지 ‘난 돈 안 따라간다’ 하고 가만있으면 누구만 배가 고프냐?


기술자는 돈이 막 그 사람을 부른다. 돈이 막 따라온다.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 그게 옳은 이치다. 사람이 이치적으로 살아야지 아무 것도 없으면서 돈 많이 안 준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면 이건 말이 안 된다. 돈 적게 준다고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누구만 답답하냐? 돈이 답답하냐, 사람이 답답하냐? 자기만 답답하다.


밥이 입으로 오느냐, 입이 밥으로 가느냐? 배가 고픈 사람이 밥상 있는 데로 가느냐, 자기 있는 데로 밥상이 오느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이치적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라. 이치를 모르면 사람이 미련하다. 지혜롭지 못하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많은 교인들이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보고 왔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을 한다. 교회에 다닌다면, 예수를 믿는다면 성격도 고쳐야 되고, 성질과 마음도 고쳐야 하고, 설교를 들으면 깨우침을 받고 사람이 바로 돼 들어가야 하겠는데 그건 없이 교회 가면 예수이름으로 부자 되는 거 가르쳐 주고, 자기의 소원도 부자 되기를 바라서 부자 되게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저질이다. 예수 믿는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저질이다. 사람이 못 써져 버린다.


당시 저들은 인간 자기를 온전케 하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까지 죽이고 했으니 어찌 하나님의 진노가 가만있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옳은 교훈을 죽이면 하나님의 형벌이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복음의 사람을 죽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던 그 시대던 그 가정이던 가만 안 둔다. 왜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놓은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죽였으니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저주하고 죽였으니 하나님께서 가만 안 둔다. 예를 들면 한국사람이 한국의 법을 어기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니 붙잡아 가는 것과 같다.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니까.


하나님의 옳은 종을 죽이고 하나님의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그릇되게 만들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못하게 되니, 즉 죽이는 일만 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방 세상 사람들이 깔아놓은 그 정신의 그 길을 가는 분이 아니시고, 또한 예수님 당시의 유대종교인들과 바리새교인들이 선악과 따먹은 정신 위에 성경구절을 둘러 덮어씌운 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 정신 그 길로 안 가신다. 그들이 신앙처럼 보일지라도 그 정신 그 신앙의 길로는 안 가신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보시는 눈은 성령의 눈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성령의 눈을 가져야 한다.


요즘 교회마다 성령을 받았다고 펄펄 뛰는데 그건 성령이 아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가는 그 길 그 정신으로 계속 가고 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 길로 안 간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저 사람에게 어떤 영들이 활동을 하고 있나? 어떤 정신 위에 그 일을 하고 있나’ 하는 그걸 보고 그런 길로는 안 간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만 간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그 길로만 간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면 신앙이 그 길로만 가야 한다. 그런데 영의 눈이라야만 그 길을 볼 수가 있다.


주님이 가신 길은 좁은 길 생명의 길이다.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에 적중으로 가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제 멋대로 가고, 또 제 멋대로 예수 믿는 자들은 넓은 길로 간다. 이 넓은 길은 멸망의 길 심판의 길이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 정신을 가지고 그 길로 간다. 예수님은 그 길로 안 간다.


후에 사도들도 유대 종교인들이 닦아놓은 그 길이 신앙처럼 보였어도 가지를 않았다. 왜? 영인성장 면에서 말씀을 깨닫고 자라나는 속사람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 속사람이 죽고 죽이는 운동인데 왜 그 길 가겠느냐?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느 교회에 가더라도 성령의 눈을 가지고 이게 내가 살 길인지, 죽을 길인지를 알아야 한다. 교회라고 다 성령님이 하고 주님이 하는 게 아니다.


계: 일곱 교회 중에 마귀가 뒤에 턱 버티고 있는 교회가 있다. 목사 뒤에 마귀가 버티고 앉아있다. 기독교인들이 이 성경구절을 보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할 텐데 그걸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말은 천만인이라 하지만 이건 성경을 안 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거짓교회의 종들이나 이단자들은 다 마귀의 종들이다. 나 자신도 어느 교회에 가든지 성경도 모르고, 기도하는 것은 세상 것만 구하고 있다면 마귀가 예수님께 세상 것을 구하라 하고 세상을 자랑한 것과 같은 것이니 이건 마귀가 좋아하는 신앙을 가지고 마귀를 따르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몇 년, 수십 년을 믿고 배웠으면 이치를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지 일 년 믿으나 그만, 몇 십 년을 믿으나 그만이면 학교라면 졸업장을 주겠느냐? 돈 버는 데는 열심이고, ‘몇 년 되면 돈이 얼마나 불어나겠다.’ 또 나이 들면 직장 마칠 때 돈 타는 게 뭐냐? 그런 거는 계산을 잘 한다.


사람이 ‘돈 돈’ 하다가 그 돈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기도 당하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으냐? 그렇게 되면 자기의 어리석음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을 못한다. 그러니 보통 어리석은 게 아니다. 짐승만도 못하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똥을 함부로 싸면 똥 쌌다고 주인이 막대기를 들고 ‘여기 똥 쌀래’ 하고 야단을 하면 개가 몽둥이에 얻어맞지 않으려고 ‘안 그러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딱 엎드려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몇 번 얻어맞으면 저 멀리서 땅에 긴다. 말하자면 짐승도 그만한 눈치는 있더라.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어찌 그리 깨닫는 면에서 눈치도 없고 그러냐?


사람이 눈치가 있으면 이게 다 자기 영광 존귀가 되는 거다. 남을 주는 게 아니라 자기 것이 된다. 자기가 올림을 받는 거다. 믿는 우리도 믿어갈수록 올림을 받아야지 밟힘을 당하면 믿으나 마나다.


세상에서도 한 공장에 계속 다니면 돈이 올라가고 그 사람은 높임을 받는다. 그게 이치다. 예수를 엉터리로 믿어도 그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봉사하면 성경은 아무 것도 몰라도 집사도 시키고 권사도 시키고 안수하고 올려주더라. 하물며 옳은 진리이치의 교훈을 받으면서 영능의 실력적으로 올라가면 그 자기는 높임을 받는 거다.


우리가 앞에서 본 신:에서도 이걸 봤다. 성경말씀은 틀림이 없는 말씀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나가도 복이고 들어가도 복이다. 그러나 사람이 못 돼 놓으면 나가도 욕을 얻어먹고 들어와도 욕을 얻어먹는다. 들어오면 나가라고 그러고, 나가서 있으면 저리 가라고 그런다. 그 얼마나 저주냐? 쉽게 말하면 사람이 좋으면 ‘아이, 어서 오라’고 그러고, ‘너 기다렸다’고 그러고, 만나면 ‘점심 같이 먹자’고 그러고. 그 얼마나 복스러우냐?


사람이 생각을 해도 이치적으로 생각을 하면 그 자는 이치의 사람이 되고 사람이 바른 정신을 갖게 된다. 그게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집을 지을 수 없는 모래에 터를 닦고 집을 세우면 물만 들어오면 그 집은 넘어진다. 그러나 바위 같은 참 터, 주님의 터, 주님의 그 정신의 터, 그 정신의 사상, 성령님의 감화가 있는 그 터 위에 믿음의 집을 지으면, 거기에 자기의 신앙을 올리면 자기는 자꾸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깨닫는 수입도 많고, 사람이 그만큼 영리하고 총명하고 똑똑해지니 세상 사는 것도 사람들이 다 좋아라 한다.


회사에 맨 뒤에 들어갔어도 먼저 들어온 사람보다 일을 더 잘 하면 나중에 회사에서 사람을 자를 때 먼저 온 자라도 일 못하는 자를 먼저 자른다. 게으르고 남 탓이나 하고 사장 말 안 듣고 한 자를 먼저 자른다.


이 마지막 시대에 거짓 인도자들은 터도 아닌 모래 위에 충성봉사란답시고 신앙이란답시고 쌓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상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은 그 교회에서 아무리 충성봉사를 해도 그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사람이 못 올라간다. 세상교회는 그런 사람을 칭찬하고 올려 세워도 사건의 바람 시험의 바람이 오면 다 넘어진다.


거짓 종들은 교인이 물질을 많이 내고 충성봉사를 할 때는 믿음 좋다고 하고 광고를 하고 그 사람을 기준을 하지만 그 사람이 사업이 안 되고 병이나 들면 그 때는 믿음 없다고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못해서 병이 들었다느니 한다. 그런 목사는 도둑이다.


사람은 속사람이 바로 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속사람이 바로 되면서 감사함에서 나오는 그 열심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건 사람이 칭찬하고 말고가 없다. 칭찬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다. 칭찬 받으려고 하지도 말라.


은혜 받은 게 감사해서 하는데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감사해서 하는 활동이나 언행심사를 안 받아주시면 나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겠느냐?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해 주려니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거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충성봉사를 받아서 당신에게 쓰겠느냐?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속일지언정 하나님은 못 속인다. 신앙의 일은 하나님 앞에서 얘기가 되는 거다. 그래서 단순히 행동 표면에 나타난 것만 보고 ‘믿음 있네. 없네’ 그러는 게 아니다. 더 정확한 것은 대화를 하며 그 자의 소원 목적이 뭔지 말을 할 때에 그의 속에 든 대로 드러나게 된다.


바리새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적중치 못한 신앙정신인지라 안식일에 양 잡아 제사를 드리고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양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을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 왜 기쁘게 안 받느냐? 그들의 속사람이 못돼서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듣고 예수님을 자꾸 잡아 죽이려 하니까 속사람이 못 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한다고 그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앞세우고 곡식밭으로 길을 내면서 가게 하시고, 제자들은 이삭을 따면서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잘 익은 곡식 밭, 진리 가운데로 가게 하시는데 믿는 자가 그 길을 가면서 영의 수입을 잡지 못한다면 안식일을 지키건 주일을 지키건 지킨 의미가 없어진다.


안식일을 바로 지킨 자가 누구냐?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순서를 잘 지키는 게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게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 본 자요, 진리이치를 깨달은 자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속성이 이런 거로구나. 아, 이것이 사람 사는 길이구나’ 하는 이걸 깨닫고 이 예수님으로 자기 인격화 시키고 성품화 시키고 속성화 시키는 자요, 이렇게 믿는 자가 예수 믿는 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이요, 구원의 사람이요, 천국복음을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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