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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켰다면 주인이신 주님을 얼마나 닮았습니까?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00 추천 수 0 2015.07.27 16: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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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23-2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장 23절-28절.


23절-26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쌔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부활의 예수님, 이건 영적 참 실상이다. 그러니까 역시 우리도 영 위주의 영의 사람으로 참 실상으로 된 게 참 주님 닮은 모습이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 그 교훈 그 소원 목적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를 못한다면, 또 그런 교훈을 못 듣는다면 주일날 예배를 했다고 해도 자기의 참 온전은 안 된다. 자기의 실상이 안 된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가면서 주님처럼 속성적으로 닮는 그게 자꾸 성장되고 확장되고 하는 그게 참 자기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한다. 그런 사람을 해치면 하나님의 심판이 가만있지를 않는다. 예수 믿으면서 그런 점을 알아야 한다.


27절-28절: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그랬으니까 주님은 안식일이 아닌 날도 주인이라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안식일이 아닌 날도 창조의 주인이요 안식일에도 창조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만들어 놓은 것은 인간 나를 위해서냐, 아니면 나를 골탕 먹이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냐? 나를 위해서이다. 어떻게 위해서냐? 나를 하늘나라의 옳은 교훈을 받게 해서 속성적으로 소원 목적적으로 취미적으로 간구적으로 당신처럼 만들어 주려고. 이런 나로 만들어 주시려고 나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했다.


그렇다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 기도를 해도 나를 지은 창조의 목적이 당신처럼 되는 것이니 그 면에 적중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몸이 불편하냐? 아프냐? 온전치 못하냐? 그럴 때에도 그 면에 적중적으로 기도하라. 소원 목적도 그렇게 가지고.


육신은 어떻다 해도 자기는 영원히 살아야 할 영인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창조함을 받아야 한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보라, 새사람이 되었도다’ 라고 했다. 영적 면의 그 실상이 인간 나를 만드신 원 목적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실상을 목적을 두고 우리의 육신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역사해 나가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을 바에야 하나님께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여져서 눈에 보이는 모든 면도 참 실상적인 그 자기를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동원이 될 수 있도록 좀 믿어보자. 이게 하나님과 같이 하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신앙을 갖기를 원하신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병 든 자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 쫓아내주신 것을 생각해 봐라. 그렇게 하심에는 먼저 영적 면의 온전의 교훈이 들어있고, 그게 실상이다. 그 다음에 영적 면의 그 실상을 성장시키고 키워가라고 육적인 면도 고쳐주시는 것이다.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그런데 영적 면에서의 실상을 모르고, 그걸 주격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을 모르고, 속사람을 키울 목적으로 믿지 않고 단순히 육신만 자꾸 신경을 쓰게 되면 영인성장은 언제 만들어지느냐? 육신이 살아있을 동안에 영인성장을 하는 것인데, 죽음의 선을 넘어가기 전까지인데 언제 그것이 바로 될까? 언제 고쳐질까? 육적 소원으로 들어가 있는 게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간다면 영적 실상적으로 속사람이 만들어지는 면에서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는 자로 예수 믿지 말라. 살아있는 기간 동안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생명 길 좁은 길 진리이치 길로 놔라. 그게 인간을 만든 목적대로 사는 것이다. 그게 자기를 인간으로 만든 목적이다.


내가 OO집사님의 간증을 해줘야 하겠는데, 여기로 오시기 전에 아주 귀신단지였던 분이다. 눈을 감고 기도만 하면, 그러니까 철야기도만 하면 이놈의 마귀들이 귀신들이 예배당의 의자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단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고 본인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들이 왜 의자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느냐? 앉지 말라는 거다.


사실 본인이 그런 정신에 속하니까 그런 게 보이는 거다.


그 후로 여기로 와서 이 진리를 들으니 처음에 한 동안 머리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게 왜 아팠는지? 못 먹어서 아팠는지, 아니면 중풍이 들리려고 아팠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머리도 안 아프고 그 귀신 떼들이 다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왜 그런 것이냐? 집을 깨끗이 소제를 하고 깨끗한 말씀의 물을 채워놓으니까 못 오는 거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은 잘 들어야 한다. 교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목사님들의 교훈에서 비롯되는 거다.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을 좋게 보면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본질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전부 병들고 냄새나고 귀신 집이고 그렇다. 선악과 따먹은 정신이 오죽하겠느냐? 이 상태에서는 환경만 달라지면 이런 성질이 튀어나오고 저런 성질이 튀어나오고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옳은 메시지를 들으면 그런 잡되고 병적이고 비뚤어지고 꼬부라지고 한 게 물러간다. 옳은 것이 들어오면 이질적인 것은 물러가게 돼 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운 것은 물러가게 돼 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들어가면 옳은 것은 선택하고 아닌 것은 내버리게 된다.


그 참 이곳에 오셔서 바로 되어지니 얼마나 감사한지! 다른 교회들을 보면 OO집사님의 과거처럼 그런 분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런데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그 말씀이 안착이 되니 그 사람의 정신에 나쁜 것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위에서 보면 교인들이 듣는 것도 썩는 것을 듣고 있고, 달라는 것도 썩는 것을 달라고 하고 있으니 그건 신앙이 아니다. 말은 예수를 믿어도 질이 신앙이 아니다. 그거 천하 못 쓴다.


교회의 목사님들의 가르치는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배의 자세에서 생명이 아니면 사망이 되는 거다. 저주가 아니면 축복이 되는 거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냐?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이 저주가 아니면 영광이 되고 생명이 되는 건데, 생명의 말씀이 아니면 저주라는 것이다. 이건 목사도 저주요 교인들도 저주다.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을 아무 교회나 가서 시간 땜이나 하고 설교나 듣고 헌금이나 하고 이렇게 생각을 말라.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니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받는 날이다. 거룩한 것은 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시대의 바람도 안 타고, 환경이나 장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질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가는 거다. 죽음 저편에 가서도 내 것으로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을 현재에서 내가 받고 가는 거다. 그게 실상이다. 그게 예수 믿는 거다. ‘예수 믿어 복 받고 잘 살고’ 하는 그건 복음이 아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거다.


안식일은 글자 그대로 보면 율법이 있기 전 하나님께서 세상창조를 6일 동안 다 마치시고 7일 째 되는 날 쉬시면서 안식을 하셨는데, 이 날을 거룩한 날, 복된 날이라 말씀을 했다. 그러니까 안식일은 복된 것을 받는 날이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하신 것은 6일간 창조의 일이 너무 힘이 들고 신경을 써서 ‘아이고 피곤해’ 하면서 하루를 쉬신 것이냐? 또는 인간을 흙으로 지으실 때 뼈도 만들고, 왜 인간을 문어처럼 안 만들고 뼈를 넣어 만들었을까? 이걸 영적인 면으로 생각을 해 봐라. 영인성장 면의 뼈. 그리고 교훈도 영인성장 면에서 인간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이게 뼈다. 신앙에는 뼈가 있어야 한다. 수학에 공식과 원리가 있듯이 신앙에도 원리가 있고 근거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사는 것도 그냥 보면 인간은 땅을 근거로 하고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땅의 것이 좋다는 그런 의미보다도 사람은 뭘 근거를 하고 서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땅을 근거를 하고 서는 사람은 땅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


우리 믿는 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신령계의 땅 그걸 딛어라. 그리고 현재 밟는 땅은 멀리 가고 가까이 가고 앉고 서고 눕고 하는 이용물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이치를 바로 알면 예수 믿기 쉽고, 싸우기도 쉽고, 사람이 안 넘어가고, 말이 옳고 명확하다.


인간을 만드실 때 뼈도 만드시고, 그 속에 골수도 만드시고, 뼈 위에 살도 입히시고, 그 속에 동맥 정맥 핏줄도 만드시고, 그 핏줄로 해서 피가 돌게 하셨고, 오각과 오감성에 느끼도록 하셨다. 참 신비롭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일수록 신비롭고 중요하다. 피가 돌아도 오각의 오감성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오각의 오감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인간의 두뇌가 얼마나 복잡한지?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전체 신경이 뻗쳐있고, 각각의 신경을 통해 운동전달 명령전달 영양전달이 된다. 그래서 어느 신경을 건드리면 웃음이 나오고, 어느 신경을 건드리면 울고, 어느 신경을 건드리면 잠만 자고 한다. 얼마나 복합한지?


하나님께서 인간 한 사람을 만드시는 것과 우주 천체와 땅의 모든 동식물들을 만드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어렵고 복잡할까? 우주만물보다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 자기의 존재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이 자리에서 인간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인간 외에 다른 만물들과 대조하면서 생각을 해 봐라.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나를 만드신 그 면만 보더라도 나는 다른 피조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자이다.


또 성경에 보면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 하나를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했는데 그것도 한 번 생각해 봐라. 하나님께서 온 천하 만물보다 나 하나를 원하실 런지, 아니면 나 하나보다 온 천하를 원하실 런지?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하실까? 그런데 인간 자기는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 것, 돈, 직장을 가지러 간다. 참 어리석다.


못 배우고 못 깨달으면 참 어리석다. 갈수록 깊이 빠진다. 그래서 성경에 전쟁이 있는 거다. 전쟁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면 그 전쟁은 이기고 들어가는 건데 세상을 더 크게 보고 비중을 더 두니 지혜도 안 나오지, 그러니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고 백기를 들고 들어간다. 이건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거다. 나중엔 나오려면 엄청나게 더 힘들다. 못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적당히 노력해서 하루 세 끼 밥만 먹을 정도면 된다. 미리 뭘 염려해서 쌓아놓으려고 하면 시대는 자꾸 바꿔지고 자기 몸도 자꾸 바꿔지는데 언제 자기의 소원 목적이 이뤄지느냐? 힘들다. 사람이 바로 서면 오히려 지혜도 나오고,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러면 인간 스스로가 편하게 서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 지혜도 안 나오고 그러면 사는 게 더 힘들어 진다. 사람이 일이 너무 힘들면 몸이 망가진다.


인간을 만들기가 얼마나 복잡한지? 그래서 사람이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피곤해지듯이 하나님께서도 인간 나 하나를 만드는데 너무 힘이 드셔서 이레째 되는 날은 쉬는 날로 정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힘든 건 누구 때문에? 인간 나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서 이레 되는 날을 쉬었느냐?


어떻게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왜냐?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잘 안 되는 것보다 사람이 애를 먹이면 이건 참말로 죽을 맛이다. 사람이 몸에 힘이 빠지는 힘든 노동보다 마음의 기운을 쏙 빼버리면 그 사람은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죽는다. 일반적으로는 그걸 기가 빠졌다고 한다.


사람은 몸은 건강해도 기가 빠지면 아무 것도 못한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먹으려는 의욕도 없고, 움직이려는 의욕도 없다. 아무리 건강해도 맨날 드러누워 있는 사람은 그건 죽는 거다. 이건 기가 빠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병이 들었어도 기가 산 사람은 벌떡벌떡 움직인다.


안식일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나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 이 안식일은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받는 날이고, 하나님이 것을 받는 날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되는 날이다. 하늘의 마음을 갖는 날이다.


우리에게 이런 안식일을 정해주신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렇게 힘을 쓴 것만큼 세상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존귀와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즉,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을 계시를 보여주는 것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이룰구원의 일을 하고 그 이레 되는 날에 안식을 하라’는 것을 확대시켜서 보면 이 세상이 끝나고 신령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는 것을 계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참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참 안식에 들어갈 자는 이 세상에서 늘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잘 받는다. 말하자면 인간 자기를 지으시게 된 원인 동기 목적을 듣고 배우고 깨닫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참 안식이 아닌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는 들어가는데 마치 안 들어갈 사람처럼 자기 속에, 자기 정신과 사상 속에 세상 것을 자꾸 집어넣으니 이런 사람은 그의 신앙성질이 썩은 거다.


우리로 인간세상을 경유케 하는 것은 ‘신령천국에서 그 천국을 다스리는 영능의 실력을 키워서 오너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심도 우리에게 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효력을 보게 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날짜적인 개념보다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신령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지 시간에 속한 날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날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들어간다.


시간적 가견적 역사적인 예수님을 기점으로 본다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아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체 곧, 인간 자기가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실상화로 되는 게 들어있는 것이고,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인데, 예수님의 부활의 실상체를 보았으니 나도 그렇게 온전하게 될 것 믿고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거다.


역사적으로만 보는 인간생각으로는 구약시대의 사람들보다 신약시대의 사람들이 더 믿음이 좋을 것 같으나 사실은 성령의 감화 감동은 순종자에게는 시대와 장소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똑같이 역사를 하는 것이다.


신약시대나 구약시대나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로서 중심이 되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중간에 오신 것이다. 역사적으로야 구약시대가 끝난 후에 주님이 오신 거지만 우리와 관계성을 말을 하자니 그렇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아를 믿고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의 나는 오신 메시아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그러나 구원은 똑같다. 신약시대만 성령님께서 역사한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신이 역사를 했다.


혹자들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 오시기 전이 사람들인 고로 신약시대의 사람들보다 믿음이 더 없기 때문에 천국에 곧바로 못 가고 천국에 가기 전에 중간의 정거장에 있다가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된다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사람이 모르면 그런 데 따라가기 일쑤인데 그런 소리 듣지 말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 즉 다른 날도 주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안식을 날짜적으로 지켰다고 해도 안식일에 안식의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안식일을 지킨 효력은 없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교인들이 율법주의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안식일 날만이 아니라 다른 날도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효력은 없다.


안식일에도 주님을 못 만나고, 다른 날도 주님을 못 만나고 하면 그게 뭐냐?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참 안식을 느낄 수가 없다. 참 영적 행복,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깨달음으로 들어오는 확신이 없다.


안식은 인간의 표현으로는 편히 쉬는 거지만 성경적 안식은 기쁜 거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날은 반 공일이라고 했고, 주일날은 온 공일이라고 했다. 요즘에는 토요일 날 학교에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토요일 날은 반나절만 공부를 했다. 그래서 토요일에 ‘내일은 공일이다’ 하면 어떻게 기분이 좋은지? 믿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기쁜 그게 안식이다.


그런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주님이 좋고, 교회에서 말씀을 깨닫고 이치를 터득하고 사람이 되는 것이 기뻐서 주일날 교회에 오는 사람이 있고, 또는 토요일 날엔 저녁 늦게까지 테레비보다가 주일날에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밥도 못 먹고 교회 나오기 싫어서 인상을 쓰면서 억지로 나와서 딴 짓이나 하다가 가는 사람이 있다. 이건 교회에 오나 마나다.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 토요일 날 늦게까지 테레비 보느라고 주일날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억지로 교회 나와서 졸고 있으려면 아예 교회에 나오지 말라. 예배시간에 졸면 참 보기 흉하다.


안식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깨달음으로 오는 기쁨이요 평안이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하나님 온전의 사람으로 성경이 깨달아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교훈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안식일이던 주일이던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이방 세상 사람들의 세상을 사는 형편과 수단과 방법을 말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중심해서 말씀하시는 건데 왜 썩어지고 불타질 것으로 말을 하느냐? 그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시다. 성경구절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으로 이뤄지는 구원도 없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온전케 살리고 온전케 고치는 일을 하신다. 그럼에도 이 예수를 죽인 자의 결과는 자기의 구원을 죽이는 것과 같다. 자기의 구원을 죽인 자는 남을 정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타가 온전해지는 면에 살리고 고치는 일을 열심히 한다. 이게 예수 따르는 자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심부름을 하지 마귀의 심부름을 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것도 잘 구별하고 분별해서 믿어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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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6 여호수아 믿음으로 축복의 그림을 그려라 수18:1-10  이승남 목사  2015-07-18 792
12325 고린도후 은혜의 자족성 고후12:2-10  정용섭 목사  2015-07-16 671
12324 마가복음 달리다굼 말씀하시다 막5:21-24  정용섭 목사  2015-07-16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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