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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① 서론
 


                                                                          이필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칼빈이 주석책을 쓰지 않은 유일한 성경이 요한계시록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여러 이유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중세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을 우민화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에 종교개혁자들이 분노했으며, 이들 중 쯔빙글리나 루터 등은 요한계시록의 정경성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그러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책에 대한 주석을 굳이 저술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의 뿌리는 초대 교회에서 일어났던 정경화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콘스탄틴 대제 때까지 매우 중요한 지역(동방교회)에서와 매우 유력한 교회 지도자(유세비우스, 갑바도기아 교부인 가이우스)에 의해 그 정경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주후 2세기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초기 교부들의 저작들에서도 좀처럼 인용되지 않았다.

 

반면에 몬타니스트들이나 천년 왕국적 분파들과 같은 기독교 주변에 존재하던 무리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해 급속도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한계시록이 분파들의 신앙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자 기독교의 주류 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그 분파적 광신주의를 조장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요한계시록의 정경성에 대해서도 의혹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정경성 문제는 해석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요인보다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서 많이 좌우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에 어떠한 결함이 있었다기보다는 요한계시록을 사용하는 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오늘날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 이미 정경으로 인정을 받았고 종교개혁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어 모았던 바울 서신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역사는 길고도 풍성하다.

반면에 초대 교회나 종교개혁시대에, 그 정경성을 의심을 받았던 요한계시록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역사는 짧고 빈약하다. 만일 종교개혁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날의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교회들에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은 여러 가지 신비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늘 이단적 분파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주류로부터 분리되어 자의든 타의든 고립된 여러 분파들은 자신들의 분파적 유익을 위해 요한계시록의 곡해된 해석들을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 안에 있는 시비적인 요소들을 자의적으로 강조하여 그 분파의 지도자인 자신들을 더욱 신격화시키고, 분파적 집단을 특수집단화함으로써 그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사용하였다.

성경에 대한 객관적 비판 능력이 없는 일반신도들은 그러한 엉뚱한 해석들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일단 그런 해석을 듣고 고정관념이 형성되고 나면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오늘날 요한계시록은 불행하게도 거의 이단적 분파들의 전용물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셋째로, 요한계시록의 정경화의 과정은 우리가 어떻게 요한계시록을 대할 것인지 말해준다. 한국 교회는 이단적 혹은 분파적 집단에 의해 요한계시록이 전횡되고 있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을 이단적 집단들이 왜곡하여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냉철하고도 열정적으로 노력하기는커녕, 요한계시록은 해석하기 난해하기에 잘못 해석하다가는 이단과 동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전통적으로 내려온 무미건조한 해석들에 안주하여 왔던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한국 교회의 이해는 여전히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것은 내가 약 2년 동안 요한계시록을 여러 장소에서 강의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목회자든 신학생이든 평신도든, 누구도 성경으로서의 요한계시록을 상식적인 차원으로 읽는 경우마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21장 2절과 9절에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새 예루살렘은 곧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21장 9절에서 22장 5절의 말씀을 소위 ‘내가 본 천국’으로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는 천국을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천국을 묘사하는 데 이 본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내가 본 천국으로서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이해로는 특정 소수 집단만이 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단적 해석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이 교회를 상징하며,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는 열두 문은 약속으로서의 구약의 백성을, 열두 사도의 이름이 쓰여 있는 열두 기둥은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면, 새 예루살렘의 구성원은 어느 소수 집단이 아닌 전체로서의 교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교회 공동체라는 자명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어느 소수 집단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방지하고 반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적어도 교회사에 나타난 교회의 오류를 더 이상 반복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취급하시며, 교회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필찬 지음

좋은나무교회 87또래 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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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여름에 CMF 수련회의 주제말씀이 요한계시록이었고 내가 조장으로 가게 되어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은 갖추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수련회에 가기 전에 이 책 초반에 나오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총론 부분만 간신히 읽었고 수련회가 끝난 후에는 이 책을 잠시 덮어뒀다가 최근에 다시 마음먹고 힘내서 드디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어렵고 난해하며 이단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접근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설교자 입장에서도 다른 성경 본문에 비해 더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고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를 아예 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정말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이고 요한이 언급한 일곱 교회들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게 유효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할지에 대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며 그릇된 해석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으면서 나의 성경적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을 내가 절반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혹시 신학생들을 위한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용어들이 많았고 저자는 구약과 신약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풀어나간다. 이 책은 그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첫 장에서 요한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시작한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난해한 작업이다. 구조분석에 관한 한 학자들 간에 일치하는 유일한 견해는 구조분석에 있어서 역사상 일치한 것들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조 분석이 일치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복합적 사건 전개 방법 때문이다. 단순히 일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한 사건 전개 방법이 아닌 점층적 반복에 의한 표현 기법과 묵시 문학적 초월적 성격이 혼합되어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1장의 첫 단락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웠고 실제로 책을 쭉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상징들 속에 어떤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물론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제대로 된 해석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글이나 책을 읽을 때 나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과연 정말 맞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품으며 논리비판적인 자세로 참과 거짓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책은 평소보다 더 긴장하며 읽었던 것 같다. 저자 이필찬 교수의 해석이 모든 면에서 타당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경우에는 내가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내 기본 지식이 거의 제로(zero)에 가깝기 때문에 ‘아... 잘 모르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1장 첫 단락의 내용처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단순히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기보다는 사도 요한이 문학적 기교를 통해 내용을 나선형으로 전개시켜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부각시켰다고 보는 저자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 요한의 다른 책인 요한복음과 같이 구조적 패턴이 분명히 보이는데 그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의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인류의 역사 속 특정 사건들과 일대일대응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성경의 예언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고려하는 것이 더 건강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런 방식으로 성경 안에서 성취된 예언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다. 다윗 왕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에 의해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경우에도 한 내용을 역사의 한 사건으로 성취되어 끝난 것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포함하되 그 이후에 점층적으로 성취되어갈 여지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완성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님,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건가요?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렇게 난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불평도 있었고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여 답답함을 느꼈던 제자들의 심정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며 ‘아!’보다는 ‘엥?’을 더 자주 중얼거렸던 나의 마음과 비슷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조금씩 더 깨달아갈 것이라고 믿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웃는 얼굴로 이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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