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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믿음

마가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538 추천 수 0 2015.08.06 23: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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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12-1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5.6.7 주일설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중략)…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중략)…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12∼14, 20∼25절

 

열매 맺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한 삶 아닌
4차원의 영성으로 의심의 마귀 대적하고
주님 주신 믿음으로 변화의 기적 누려야

 1. 평범한 삶에 나타나는 변화의 기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특별한 일과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 기적을 나타내주실 때가 더욱 많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일상에서의 기적을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꿈을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지 말고, 입술로 정확하게 표현 할 때 굉장한 힘이 되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꿈을 마음속에만 그냥 가지고 있으면 속에 있다가 사라질 뿐이지만 그것이 입술을 통해 말하게 되면 4차원의 영성을 좇아서 입술의 고백을 따라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13절∼14절에 예수님이 바로 그 원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고 생각하시고 그냥 지나가셨으면 무화과나무가 마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당신이 생각하시는 바를 분명히 말씀 했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고 했습니다. 이어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막 11:20∼21)라고 하며 제자들은 놀랍니다. 저주 하지 않은 무화과는 마르지 않았지만 실제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4차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차원이 높은 신령한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신령한 세계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심으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속사람이 4차원의 신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말에 위력이 있고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잘 믿는 신령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정체성이 4차원의 신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글을 적더라도 분명하게 적고, 말을 하더라도 분명하게 말할 때 우리를 따라서 창조적인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은 사람들 중 약 95%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기록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글로 기록한 5%의 사람들 중에 95%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글로 기록하면 그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목표를 적고 입술로 표현해야 합니다. 입술로 표현하면 3차원의 세계에서 4차원의 창조적인 세계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4차원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자 빛이 생기고, 궁창이 생겨나고 세계가 창조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영이 죽어서 창조적인 영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이 살아나면서 성령과 더불어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오늘날 교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우리 속에 창조적인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아무리 기승을 부릴지라도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선포하게 되면 한방에 물러가 버리게 되는데, 겁을 먹고 떨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종은 울려야 종이지 울리지 않으면 종이 아닙니다. 믿음 역시 행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아니며, 사랑도 사랑한다고 하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4차원의 영성도 창조적인 명령을 하기 전까지는 4차원의 영성이 아닌 것 입니다. 우리의 삶이 열매 맺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한 삶이라면 주님의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7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고, 열매가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분명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차원적인 사람, 2차원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3차원의 물질의 세계 속에서 끌려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부모님들은 “잘한다. 훌륭하다. 씩씩하다. 건강하다. 좋은 일을 할 것이다”라고 자녀들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간 4차원적 말은 창조적인 말씀이 되고, 그 일은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환자들을 고치실 때 직접 가서 손을 얻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하라”고 하시면서 말씀으로 고치시고 돌보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종교를 믿고 있었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3차원의 물질세계는 4차원의 영의 권세에 지배를 당합니다. 우리는 영의 권세 즉, 영적으로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질병, 고초, 시련, 괴로움 같은 것들은 우리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마귀의 권세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4차원의 영성의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성경을 읽어봤자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게 되는 능력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 말씀이 우리 영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실제로 우리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는 영의 사람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성령은 우리들의 영인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18절을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배짱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뒤로 물러가고 부정적이고 두려워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그와 같은 담대함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으며,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인 영의 사람은 육의 사람이나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적이 있는 꿈이나 환상을 믿고 그 믿은 바를 입술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동안에 다가오는 태산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4차원의 영성의 입술로, 말로써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심령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직업의 문제, 이 모든 문제는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처럼 그 기도를 통해 결국은 그 문제의 산이 옮겨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마음속에 자꾸 의심이 생겨나는데 이 의심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의심의 순간 우리는 의심을 대적해야 합니다. 의심을 쫓아내야 하며, 의심과 정반대되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와에게 마귀가 유혹하기 위해 다가와서 “정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순간 하와가 “하나님께서 마귀하고 대항해서 말도 하지 말라 하더라! 물러가라!”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아닌데”하며 의심을 주는 마귀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하와가 “다 따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라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 하자 마귀가 “아니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까해 그렇다”라고 하면서 하와의 마음에 의심을 잔뜩 심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의심이 다가올 때 속삭이는 마귀와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의심은 누구에게든지 다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이 다가올 때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의심은 물러가라! 나는 믿음이 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느 검보다 예리하니 물러가라!”고 의심의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심에 맞서서 대결함으로 이기면 의심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의심을 받아들여서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물 위로 걷다가 의심으로 말미암아 물에 빠졌습니다. 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내가 그의 손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하며, 결국 그 옆구리와 못 자국난 손을 만져보기까지 했습니다. 의심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중요한 것은 의심이 다가올 때 믿음으로 물리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영적인 4차원을 활용하고,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큼 하나님이 높이 보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아들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똑같이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19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을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사랑을 따라 생기는 것이며,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습니까? 그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서 음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깁니까?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습니까? 온 지구를 품에 안고 있으니 그 넓이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이 높고, 깊고, 넓고, 길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3. 믿음이 역사하는 조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사랑하면 우리 믿음은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들어오면 미움은 마귀를 끌어 들이기 때문에 마귀는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가져와서 우리를 패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람을 제일 먼저 사랑했지만 나무도, 풀도, 짐승도, 물질도 즉, 모든 만물도 사랑하십니다.

 저는 오래 전에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오렌지를 심어 놓고, 매일 아침 오렌지 밭을 지나가며 “사랑한다. 예쁘게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칭찬을 해주면 오렌지들이 그 농장 주인만 오렌지 밭에 들어오면 웃는답니다. 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벌레도 먹지 않고, 병도 안 걸리고, 아주 잘 자란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해준 오렌지와 사랑을 말 하지 않은 오렌지가 그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유명한 농학자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벼농사를 짓는데 벼가 한참 알맹이가 들어갈 때, 벼 고랑을 지나가면서 “벼야 잘 자라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칭찬을 하면, 칭찬을 하지 않은 벼보다 몇 배나 수확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을 하면 사랑에 반응을 하는데 우리의 자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훌륭하다. 참 잘 자라라.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칭찬해주면 기막히게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만물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은 용서해줌으로 말미암아 4차원의 영성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가를 보여 줍니다. 우리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모래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은혜는 모래 위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깁니다. 원한이 내 마음 바위에 새겨져서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사랑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데 미움은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렵지만 용서를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셨으니 하나님의 용서의 본을 받아서 이웃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용서가 우리에게 큰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쉽게 부서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신학자 R. C 스프라울은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어머니 뱃속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할 때 우리 자신의 삶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예수님을 더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숨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감사하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39절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목숨같이 사랑하는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해주시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냐? 그 대답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말할 수 없이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웃과 서로 미움과 분쟁 속에 불화를 갖게 되면 사랑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장 25절은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우리가 이웃을 그 사랑의 대가로서 용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이 특별히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용서하고 살면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자기를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한 힘을 가진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는 중생하여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 높은 차원은 낮은 차원을 다스린다. 나의 속사람은 겉사람을 다스린다’는 확실한 고백만 하더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겉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스리고 돌보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이 생겨나며,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신 믿음을 사용하며 평범한 일상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

  늘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과 십자가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사랑을 통한 믿음의 확신 속에서 늘 응답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귀의 세력은 미움과 의심을 우리에게 줄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며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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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72 디모데전 교회의 본질은 딤전3:15  한태완 목사  2015-08-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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