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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koabbey.com/?mid=ab_monk&document_srl=329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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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영지주의
기독교 영성사전(2002, 초판)
1. 신비주의(Mysticism)
mysticism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어근은 'mu-'로서 폐쇄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부터 mystikon, mysterion, mystes 등 그리스의 신비 종교들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일련의 단어들이 생겼다. 이것은 플라톤에게 발견되며, 그 기원은 파르메니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가 기독교에서 사용된 것을 찾기 위해서는, 기독교 어휘에서 신비(mysterion)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 교부들은 myst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비(mysterion)란 비밀을 의미하지만. 신약 성서에서는 특별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이 사랑의 비밀을 언급한다. 그것은 선포되고 알려져야 하는 것임에도 비밀로 간직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비밀이다. 기독교에서 mystikos라는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비와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성경의 신비 한 의미에 대한 언급.
2. 기독교 성례전의 신비 한 의의에 대한 언급.
3. 신비 신학.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신비한 교제에 속하며(엡 3:9), 세례 안에서 우리와 통합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성례전적인 생활과 성장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결실을 맺는 신비의 생활화이다.
교부들의 저술에서 "신비"는 대체로 성경의 감추어진 영적 의미를 언급한다. 감추어진 영적 의미란 자의적이고 풍유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파악하는 성경 이해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교부들이 추종하는 오리겐*은 성경의 신비한 의미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사랑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갈망하면서 성경에 접근하는 사람에게 밝혀지는 것이라고 본다. 교부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단순한 학문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 이해는 기도와 정화, 겸손과 사랑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아들과 일치하며, 그럼으로써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교부들의 신비주의이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영적 해석"과 "신비주의"나 "신비 신학" 사이를 분리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또 성례전들과의 관계에서, 그것들의 "신비한"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성례전이 우리로 하여금 참여할 수 있게 해 주는 실체-그리스도의 신비. 그의 복음과 부활의 신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또 개인과의 관계에서, "신비한"생명이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골 3:3), 세례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연합이 우리 안에 심겨진 생명,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며 그의 부활의 생명의 표식들을 보여 주는 생명 안에 나타남에 따라 결실을 맺는 생명이다.
아레오파고의 디오니시우스*는 이모든 것을 요약했다. 그의 저술에는 교부들의 신비한 유산들이 수집되어 있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mystikos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세 가지 범위가 있다고 여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의 신비를 계시하시는 성경의 심오한 의미, 신자들이 이 신비에 참여하는 통로가 되는 성례전의 중요성, 그리고 수단보다는 영혼이 하나님께 복종하며 사랑의 신비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들과 개념들의 의미 속으로 들어가며. 스스로 그 사랑 안에서 파악되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는 곳을 지향하는 신비 신학. 우리도 디오니시우스처럼 정화, 조명, 연합이라는 세 가지 방법이 규칙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발견한다. 이 삼중 구조의 기원은 그리스의 신비 종교에 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세 가지 단계를 언급한다: 최초의 타락의 결과로서 초래된 인간의 운명인 죄와 무지로부터의 정화의 단계, 인간이 은혜의 생명으로 회복되는 조명의 단계, 그리고 인간이 낙원의 생활을 되찾는 연합의 단계. 낙원의 회복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는 신비 생활의 개념은 그와 관련된 몇 가지 현상을 타당하게 해 준다: 짐승들과의 교제,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능력, 신비주의와 관련된 육체적인 현상.
서양에서 디오니시우스의 영향력은 부분적이었으며, 그것은 아빌라의 테레사*에서 절정에 달한 중세 신비주의에서 발견되는 강조점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교부들에게서 발견되는 주관적인 현상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객관적으로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신비가의 영역인 주관적인 신비체험에 대한 관심으로의 변화이다. 그러한 변화는 서방에서의 개인 및 개인의 개성이 분명하게 표현되는 개인적인 감정에 대한 관심을 향한 전반적 인문화적 변화의 일부인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서방에서 12세기 이후 디오니시우스의 영향력이 증가한 것은 특히 영혼이 상징들과 개념들을 초월하여 사랑의 엑스타시 안에서 하나님이 알려지는 어두움 속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으로 이해되는 그의 신비 신학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러한 강조점의 변화에서 중요한 인물들은 클레르보의 버나드*와 성 빅톨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며, 그러한 내적이고 개인적인 경건 체험의 양상들과 내면성과 관련하여 분명히 나타난다(종종 성례전과 교회의 생활을 배제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종종 반-지성주의가 나타나며. 따라서 신학과 영성 사이의 분열의 초기 현상이 나타난다. 또 감정적 신비주의, 특히 스웨덴의 브리짓(Bhdget), 시에나의 캐더린* 노리지의 줄리안* 등의 여성 신비가들의 저술은 환상적인 경험에 대해 무척 개방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줄리안의 Showings에서 명시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리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특성은 이것들을 "비 신비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강조점의 변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아빌라의 테레사의 저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저술에서 각 단계의 정신적인 특성을 언급함으로써 여러 단계의 기도-침잠의 기도, 침묵 기도. 연합의 기도-를 구분하려는 시도를 발견한다. 교부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것들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무질서한 욕망과 정념의 상태에서부터 무정념(apatheia)*과 사랑*의 상태-이 상태에서 영혼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며, 순수한 기도 안에서 자유로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로 진보한 분량에 따라서 평가된 영혼의 여러 가지 상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은 주관적인 경험보다는 객관적인 상태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한 분석에서 주된 관심은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에 굴복하는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추적하는 데 있다. 테레사는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행위의 결과들과 심리적으로 정의된 특정 상태들을 동일시함으로써 혼동을 초래했다.
십자가의 요한*은, 어두운 밤*의 두 단계-감각의 밤과 영의 밤-안에서 영혼이 자신을 정화하고(적극적인 정화) 하나님의 정화하시는 행위에 복종함으로써(수동적인 정화) 하나님께 응답하는 방법을 엄격하게 정의한다. 요한의 분석은 영혼이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행위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에 대해 자신을 개방할 때에 겪는 일에 대한 신학적 이해 의 지배를 받는다.
성 테레사는 신비 생활의 핵심-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연합-에 관심을 갖지만, 여러 상태의 기도가 지닌 정신적인 특징에 따라서 기도의 상태를 분석하는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녀 자신도 인정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했다.
신비주의를 일종의 정신적인 상태로 생각하게 되면, 신비주의는 종교적동물인 인간에 대한 연구의 일부가 되며, 많은 신비가들의 저술의 매력 때문에 대단히 기분 좋은 연구가 된다. 계몽주의 및 그 이후의 사상에서 경험의 가치 입증을 점차 강조하게 되면서, 신비 체험 연구는 종교적인 주장을 확립하거나 평가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 밖에 또 하나의 요인이 등장했다: 만일 신비 체험이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신비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현상학적으로 관찰된 정신적인 상태들에 의해 정의된다면, 여러 가지 믿음을 가진 신비가들과 믿음을 갖지 않은 신비가들 사이의 교차 문화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이와 아울러, 20세기에 "신비주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특정의 교의적인 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종교의 가상 본질, 또는 신-의식에 대한 연구. 따라서 에블린 언더힐*은 "모든 인류와 신조를 신봉하는 신비가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의적 표현을 초월하는‥‥ 절대자의 열렬한 사"에 대해 말했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재너(R. C. Zaehner)도 "다양한 종교들이 배출한 신비적 저술들을 비교하는 것은 비슷한 것들끼리의 비교이골'라고 말했다. 보다 최근의 저술들은 그러한 가정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며, 각각의 신비가들의 교의적인 구조와 그들이 주장하는 경험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그러한 연구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것은 "신비주의"라는 용어의 기원인 교부들의 객관적인 "신비 신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것이 동일한 주제인지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Ruth Bun-ows, GuideKnesfor Mysticat Prayer,1976; Cuthbert Butler, Western Mysticism,'1927; John Chapman, Spirituat Letters,1935, and art on 'Mysticism (Christian,Roman Catholic)' in ERE, Friedhch vonHiigel, The MysticaI Etement of Retigwn,'1923; Steven T. Katz (ed), Mysticism andPhilosophical Anatysis, 1978; K. E. Kirk, TheVision ofGod, 1931; David Knowles, What isMysticism?, 1967; Vladimir Lossky, The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1957; The Vision ofGod, 1963; A V\I et al,Mystery and Mysticism, 1956; Anselm Stolz,Theotogie et ta mystique, 1939; EvelynUnderhill, Mysticism, 1911; R. C. Zaehner,Mysticism: Sacred and Profane, 1957; Hinduand Mustim Mysticism, 1960.
ANDREW LOUTH
2. 신앙의 척도(Reguta Fidei)
Reeutafidei는 이레내우스가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그와 터툴리안*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 개념은 다른 용어로도 표현될 수 있다. Reeutafidei는 기독교인의 규범적인 믿음, 그리고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한 간결한 진술을 의미한다. Reeulafidei는 항상 원래의 것을 언급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성경에 기록된 교회의 가르침. Regutafidei와 Reguta veritatis가 동의어라는 사실이 이 점을 분명히 해 준다: 진리의 척도는 있을 수 없다; 진리 자체가 표준이다. 이 런 의미에서, Regutafidei는 케리그마와 동일하다. 이레내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진리를 하나의 척도로서 소유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의 척도인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다" (Adversus haereses2,28,1; 4,35,4). 초대 시대의 작가들은 신앙의 척도에는 교리뿐만 아니라 도덕적 원리들, 의식들, 그리고 관습들이 포함된다고 가정한다(cf. Eusebius, Ecctesiasticat History, 5,24,6).
신앙의 척도는 후대(3세기 중반)에 발달된 세례의 신조들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신조들과는 달리, 신앙의 척도는 언어적으로 고정된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당면한 필요나 의도에 따라서 그것을 개작했다. 또 신앙의 척도는 성경과 어긋나서는 안 되지만 성경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 성경 해석의 지침이 된다. 이레내우스는 영지주의자들은 신앙의 척도를 소유하지 않으며 비유들을 해석하기 위해 애매한 표현들을 사용한다고 기록한다(Adv.haer. 1,9, 4:2,27, 1:3,12, 6:3,15,1).
척도(reguta)라는 단어의 원 의미는 "전통"-즉 교회 안에서 처음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I Ctement 7, 2를 보라). 역사적으로 보면, 신앙의 척도가 신약 정경 형성을 유도했다.
이레내우스는 Adv. haer. 1, 22, 1에서 그 척도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하면서, 만물의 창조주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유일하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그 척도에 대해 삼위일체적으로 요약한다(Adv. haer. 1,10,1:,3,4, 2:4,33,7; Proof of the Apostotoc Preaching 3).
터툴리안은 신앙의 척도가 지닌 규범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특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구원하는 교리의 유일한 규범이다 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 13-14는 그 척도에 대한 그의 가장 분명한 진술이다: 창조주이신 한분 하나님: 그의 아들이신 말씀. 족장들이 보았고 예언자들이 들었고, 마리아의 자궁 안에서 육신이 되신 분; 새로운 법 과 새로운 약속을 선포하신 분: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분; 장차 부활 때에 심판주로서 다시 오실 분. 터툴리안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 척도에 반대되는 것은 알지 않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Aeversus Praxean 2와 De virtinibus vetandis 1에도 신앙의 척도에 대한 진술이 있다. De Prae.haer. 35-47; De spectacuUs 4; Co기◎amarcionem 4,5를 참고하라.
신약성서 정경의 중요성과 선언적신조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신앙의척도라는 개념의 명확성은 감소되었다.
Iranaeus's Adversus haereses in Ante-NiceneFathers 1, Proofofthe Apostolic Preaching, trJ P. Smith, in Ancient Christian Writers 16,1952. D. Van den Eyned, Les normes det'enseignment chr<>tueb dans ta litEraturepatristique des trois premiers siSdes, 1933;R. P. C. Hanson, Origen's Doctrine ofTradttion, 1954(chs on the reguta m Elementand Origen), Tradition m the Early Church,1962 (esp ch 3, 'The Rule of Faith'); E.Flesseman-van Leer, Tradition and Scripturein the Early Church, 1953.
JOSEPHT. LlENHARD
3. 영지주의(Gnosticism)
영지주의란 2세기에 특히 활발했으며 유아기의 교회를 크게 위협한 다양한 운동들에게 주어진 명칭이다. 영지주의에 대한 전거들 중에는 교부들(특히, 이레내우스, 힙폴리투스, 터툴리안)과 셀수스와 플로티누스와 같은 이교 철학자들의 논박, 그리고 1945년에 낙 함마디(Nag Hammadi)에서 발견된 콥트어로 된 5세기 영지주의 문서들이 포함된다. Corpus Hermiticum의 글들도 영지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명사는 genosis(지식)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으며, 악한 우주로부터 도망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참 하나님의 세계를 되찾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비밀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언급한다. 따라서 영지주의의 특징은 우주와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이원론이다. 그것은 우주의 창조자를 무지하거나 악하거나 열등한 신으로 간주함으로써 표현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 그리고 헬레니즘의주요 철학 체계에서는 이 신을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영지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중동 지방의 거의 모든 종교적 · 철학적 운동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주장
할 수 있다. 이 다양한 전통들은 모두 천상의 존재들의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체계들 및 한층 더 혼란스러운 그들의 관계에 기여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적 지식의 본질은 은밀한 것이며 공공연하게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해석을 위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기독교와의 관계에서, 영지주의는 그 초기의 신앙을 유대교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하여 순수한 구속의 종교로 제시하려 했고, 우주와 관련된 헬레니즘의 근본적인 낙관주의에 도전했다. 이 이중 공격의 최종 결과는 이미 교회와 헬레니즘 철학적 문화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더욱 깊게 한 것이었다. 악의 문제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영지주의는 항상 공격성을 지녔다. 교회사에서 그것은 마니교* 카타리 파* 등으로 출현한다. 그러나 비밀 전승에 의해 중재된 고등한 지식을 소유한다는 영지주의적 주장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을 통해서 기독교전통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오리겐을 찬양한 에바그리우스의 영향을 받은 수덕적 문헌에서enosticos라는 용어는 관상의 높은 비상(飛翔)을 아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전통 안에서 영지주의자들의 비밀 전통에 영속적인 영향을 미친 노련한 사람의 개인적인 주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W. Forester (ed), Gnosis: A Selection ofGnostic Texts. 2 vols, ET 1972, 1974; R. MGrant, Gnosticism and Earfv Christianity,1959, H. Jonas, The Gnostic Retieion, M963;S. R. C. Lilla, CIement of AIexandria: A Studvin Christian Ptatonism and Gnosttcism, 1971.
ANDREW L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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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신비는[3] 감각 遮斷(차단)이나 초월한 사람과 직접으로 하는 접촉을 뜻하기도 한다.[출처 필요] 신비는 신비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태어나면서 갖추지 못한 사람은 啓發(계발)해야 한다.[출처 필요]
중요한 개념
신비주의에는 반드시 다음의 중요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1.엑스터시. 흔히 ?惚境(황홀경)으로 언역되고 말할 필요도 없이 이때 단순한 混亂(혼란)이나 混沌(혼돈)으로 의식의 沈滯(침체)나 忘我(망아)나 무기[출처 필요]와 구분되는 개념이다.[출처 필요]
2.합일. 절대적인 존재나 고등한 단계나 차원으로 跳躍(도약)하여 합일되는 체험을 칭한다.
3.비존재. 비대상[출처 필요]. 외양상 矛盾(모순)인 듯하나 중요한 진리가 含蓄(함축)된, 非有[출처 필요], 非無[출처 필요], 非無無[출처 필요]로 묘사되고 어떻게 불리는지를 떠나 부정의 부정으로 묘사된다.[출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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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B9%84%EC%A3%BC%EC%9D%98
-------------브리태니카 대영백과사전----------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
일반적으로 감춰진 진리나 지혜를 영적으로 추구하는 것.
신(神) 또는 신성한 존재(초월적인 영역)와 합일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모든 주요종교는 신비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미개한 문화의 주술, 입신(入神) 의식, 세속적인 체험에서도 그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종종 신비주의를 신학과 비교하여 우위에 두고 신비주의가 신학보다 더 진정하거나 더 주관적이며 열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이 두 형태의 종교사상은 사실상 병존해왔고, 한 개인이 2가지를 모두 지니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고 해서 신비주의 체험을 신학적인 의미로 환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신비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분석으로는, 신비스러운 정화(淨化)·계시·합일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파악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주장해왔다.
힌두교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힌두교 의식 가운데 최고의 이상으로 꼽히는 고행자, 즉 ' 목사'(mok?a : '해방'이라는 뜻)는 힌두교를 배우는 서구인들뿐만 아니라 힌두교 스승들에게도 커다란 주목을 받아왔다. 요가파(Yoga)는 전통적인 힌두교 안에서 선택된 소수가 신비스러운 통찰의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신비주의적 기법에서 유래했다. 요가의 기법들은 개인의 영혼이 삼라만상에 흡수된다는 힌두교의 전통적인 교리들과 결합되었다. 힌두교 신비주의의 어떤 형태들은 신자 개인을 힌두교 만신전(萬神殿)의 특정한 신(예를 들면 크리슈나 또는 시바)과 연결시켜주는 등 보다 개인적인 성향을 띠는 데 반해, 몇몇 형태들은 궁극적 실재의 은총과 권능에 의지하고 굴복하는 수동적인 신앙을 강조한다.
여러 불교 종파의 공통점은 명상과 관조를 열반(涅槃 Nirv??a)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강조하는 데 있지만, 그 목표에 대해서는 각기 해석이 다르다. 불교 신비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금강승(金剛乘 Vajray?na) (→ 색인 : 금강승)과 선종(禪宗 Zen) (→ 색인 : 선종)이다. 티베트의 금강승 또는 탄트라 불교의 구도자들은 신비적인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이르기 위해서 요가 훈련과 함께 절대주의적 철학과 고도의 상징언어(象徵言語)를 사용한다. 한편 일본의 선종은 실천을 강조하고 사실적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교의 신비주의 지류와 정반대되는 지류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종파도 일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얻는 부분적인 지식 대신 반야(般若 prajn? : '지혜'라는 뜻)를 얻기 위해 수련하므로 신비주의 사상과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의 수피(??f?) 신비주의는 선불교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대답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등장했으며, 기존의 이슬람교에 있던 신비주의 체험을 중시하는 일부 추세를 받아들였다. 수피 신비주의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 사이의 도취와 사랑에 관한 은유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알라의 절대주권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코란〉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언어였다. 그러나 수피 신비주의는 〈코란〉이 가르치는 '전적 타자'인 신이 너무 엄격하고 멀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신의 실재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성서의 예언자들이 본 환상과 성서시대 이후 유대교의 묵시적인 상상에 근거하고 있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가장 독특하고 심오한 주제는 카발라(Kabbala)인데, 이것은 13세기말경에 등장한 〈세페르 하 조하르 Sefer ha-zohar〉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 색인 : 카발라). 이 책은 하느님의 권능과 내면적 삶을 묘사했으며, 참된 신자는 원칙들과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인간이 천진한 순수성에서 타락함에 따라 무너지고 만 데베쿠트(devequt :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라는 뜻)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의 유대교 신비주의는 이러한 조하르의 지혜를 토대로 꾸준히 발전되어갔다. 특히 하시디즘형태는 일반인들의 신앙과 의식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 색인 : 하시디즘). 마르틴 부버의 사상에서 하시디즘은 그리스도교 사상뿐만 아니라 세속적 사상의 형태로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인 양상들은 동방 신비주의를 특징짓는 체계화된 비의(秘儀) 전승들과는 대조적으로 회상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사물의 본질이 본래 악함을 강조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이단인 영지주의(靈知主義)는 조로아스터교와 그외 동방 종교들의 정서를 지니고 있었던 유대교 신비주의의 잔재였던 것 같다. 바울로와 요한의 종파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도-신비주의'가 그 뿌리를 이룬다. 3~4세기의 사막 교부들은 신비스러운 계시를 받기 위해 의식(意識)을 갖고 준비하며 실천하는 은둔 전통을 세워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의 주제들과 표상(表象)에서 이끌어낸 '존재의 신성한 빛'은 후대 신비주의자들의 문헌에서 강하게 등장했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329 죽음)에게서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에크하르트는 이상세계의 실재를 강조했으며, 만물을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영원히 존속하는 요소들로 보았다. 14세기에는 신비주의가 교회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단 종파 안에서도 번성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뒤 여러 시대의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 신비주의자들은 신적인 빛 또는 불꽃이 보편적인 원칙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정하는데, 이것은 가톨릭의 가르침에 함축되어 있다.
중세 이래의 서양철학사는 우주적 신비주의(cosmic mysticism)라는 말로 가장 잘 특징지을 수 있는 사상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는 이 사상형태를 철학의 체계로써 가장 명석하게 설명했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문학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불합리하고 위협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주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우주의 구조와 목적에 일치시킴으로써, 그리고 존경과 헌신의 태도를 수양함으로써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고대의 서사시에서부터 윌리엄 블레이크, 스테판 말라르메, 그밖의 시인들의 시(詩)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에 잘 나타나 있는 신비주의적 환상과 문학적 영감의 관계가 미학(美學)의 주요쟁점이 되고 있다.
? 20세기의 신비사상가들 : 앤 밴크로프트, 양억관 역, 정신세계사, 1993
? 신비체험과 신앙 : 황영철, 나비, 1988
? 수피의 가르침 : 이드레스 샤흐, 박상준 역, 고려원, 1987
? 기독교 신비주의 철학 : 강영계, 삼문, 1986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 베르그송, 강용계 역, 탐구당, 1985
? 에크하르트와 선 : D. T. Suzuki, 강영계 역, 주류, 1983
?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 : 엄두섭, 혜풍출판사, 1980
? 이용도 목사 서간집 : 변종호, 심우원, 1953
? 한국교회 신비주의사 〈기독교사상〉 5 : 민경배, 대한기독교서회, 1971
? Mysticism in World Religion : Sidney Spencer, George Allen &Unwin, 1963
? The Theory and Art of Mysticism : Radhakamal Mukerjee, Asia Publishing House, 1960
? Mysticism, Sacred and Profane : R. C. Zaehner, Clarendon Press, 1957
? Major Trends in Jewish Mysticism, 3rd rev. ed. : Gershom G. Scholem, Schocken Books, 1954
? The Perennial Philosophy : Aldous Huxley, Harper &Row,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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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2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종교적 운동.
영지주의는 여러 전통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었지만, 초대 그리스도교에 가장 심오한 영향을 미쳐 교회법·신조·주교조직이 생겨나게 했다.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그노시스', 즉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서 유래했다. 영지주의 사상에 반대한 교부들(185경 이레나이우스, 230경 히폴리투스, 375경 에피파니우스)의 글과 영지주의 저작들 자체에 소개되어 있는 영지주의 현상은 신학·윤리학·의식 등과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엄격히 분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영지주의 분파들은 교육이나 경험적 관찰이 아닌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의 구속능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한 듯하다.
--------- 요약 정리-----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
신비주의란 감춰진 진리나 지혜를 영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신(神) 또는 신성한 존재(초월적인 영역)와 합일(일치)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신비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분석으로는 신비스런 정화, 계시(조명), 합일(일치)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파악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주장하였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영지주의는 신비하고 비밀적인 지식 또는 영지(gnosis)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종교적 철학적 이원론을 철저하게 표방하는 운동이다.
영지주의의 주장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모든 물질적 실체는 사악하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과 정통파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믿음이 아니라 지식(앎, Gnosis)이 구원의 수단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구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벌은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윤회의 교리로 악을 행하면 죽어 지옥 간다는 주장이다.
박노열, 「신비주의와 영지주의 - 수사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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