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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사람들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573 추천 수 0 2015.09.11 15: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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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56-69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83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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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사람들

요 6:56-69,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2015년 8월23일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요 6장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이가 들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모아보니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본 유대 군중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처한 형편은 정치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어둠의 시절이었고,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도 힘겨웠기 때문에 뭔가 세상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민심이 부글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역사에 등장했고,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대 군중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피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유대군중들은 끈질기게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급기야 가버나움까지 찾아왔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급증이 작용했는지 모릅니다.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에게 이번 기회에 세상을 한번 확 뒤집어봅시다, 하고 말한 측근들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통해서 무력혁명의 꿈을 실현시켜보려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가버나움까지 찾아온 군중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이 발언 뒤에 만나 사건을 중심으로 많은 신학 논쟁이 벌어집니다. 유대 군중들은 만나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따라서 이런 초능력의 재현이 자신들의 살 길이라고 주장했고, 요한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이 영생의 양식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논쟁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그리고 세속 문명과 기독교 사이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유대 군중들의 생각과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풍요롭게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선전과 선동에 우리는 하루 종일 파묻혀서 삽니다. 정치인들은 입을 열었다 하면 정치의 목표가 오직 그거 하나인 것처럼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칩니다. 그런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민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대학사회도 삶의 근본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립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다 돈벌이 잘 되는 분야를 전공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전하는 교회도 역시 이런 점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고 약장사처럼 외칩니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게 바로 그런 문제이니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공평하게 나눠먹고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무리 절실하다고 해도 썩을 양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으며,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런 것으로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한다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게 뭐 대수냐, 잘 먹고 잘 산다가 죽으면 그뿐이지, 하고 주장한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이런 유대 군중들의 절절한 주장을 맞받아칩니다. 요 6:49-51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유대 군중들은 ‘저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먹을 수 없다.’고 서로 옥신각신했습니다(52절). 예수님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요 6:53)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하는 요 6:56-59절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57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입니다. 이어서 58절에 앞의 긴 논란을 마감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것으로 유대 군중들과 예수님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유대 군중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에게서 오병이어와 같은 환상적인 일들을, 즉 정치 경제적인 세상 혁명을 기대할 수 없다 판단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열광적인 콘서트 후에 찾아오는 적막감처럼 군중들이 떠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자리도 그랬을까요?

 

요 6:60절부터 새로운 장면이 시작됩니다. 앞의 이야기는 주로 유대 군중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이제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서 여러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어렵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앞에서 유대 군중들이 ‘세상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서로 옥신각신 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어렵다는 단어는 헬라어 ‘스클레로스’의 번역입니다. 말 자체가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들이 동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마음이 떠나면 언젠가 몸도 떠나게 됩니다. 66절이 그 사실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참으로 상황이 딱하게 되었습니다. 유대 군중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의 말씀을 불편하게 여겼다는 건 예상외의 상황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업으로 예수님을 추종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 한 마디로 베드로와 안드레는 모든 가족과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똑같은 건 아닙니다. 출가한 이들도 있고, 여전히 세속에 머무는 이들도 있습니다. 형편에 따라서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겼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제자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충격을 받으셨을까요? 그 모든 상황을 초월하셨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떠난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앞에서 짚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그들이 왜 예수님의 말씀을, 즉 예수님의 정체와 본질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를 생각해보십시오. 답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에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대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에게 이런 걸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격, 지성, 도덕성과 상관이 없습니다. 영적 관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기의 기대와 욕망을 실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 활동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속기도 합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그걸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과 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예수님과 그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신학 책을 읽고 싶어지는지도 보십시오. 예수님과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와 그가 다시 오신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알고 실제로 알고 싶다는 거룩한 열정이 없으면 사람은 진정성이 있든지 없든지 불물하고 어쩔 수 없이 자기의 욕망에 치우치게 되고, 언젠가는 예수님에게 실망하게 될 겁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예수님에게 관심이 가지 않는 분은 없으신가요? 신앙생활이 뭔가 지루하다고 여기지는 분은 없으신가요? 신앙의 위기입니다.

 

모두 떠나고 이제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런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너희들도 떠난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실망했느냐, 하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열두 제자들도 나중에는 다 떠납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견뎌냈지만 십자가 사건 앞에서 그들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여자 몇몇을 제외하고 열두 제자는 모두 패잔병처럼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를 미리 내다보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너희도 가려느냐?’는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영적 도전입니다. 양자택일의 강요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하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상투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기껏해야 교회에 더 열심히 나오라거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저녁밥을 집에서 먹을 건지, 외식을 한 것인지의 차원이 아니라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차원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선택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 삽니다. 그게 왜 썩을 양식인지를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외면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서 사는 것뿐입니다. 기독교는 지난 2천년 역사를 통해서 계속 ‘너희도 가려느냐?’는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던졌습니다. 지금 우리도 똑같이 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실감이 납니까? 베드로는 68,69절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행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7)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거칠게 정리하면 ‘우리는 예수님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신만이 유일한 선택입니다.’는 뜻입니다. 열두 제자들처럼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마 5장에 나오는 소위 ‘팔복’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세상은 불행한 인생이라고 측은하게 여깁니다. 반면에 갈 곳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만날 사람도 많고, 돈벌이 할 것도 많고, 취미생활도 많아야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한지를 돌아보십시오. 지천명(50세)의 나이에 든 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실 거 같은지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20-40년입니다. 그동안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으신가요? 많은 일에 남은 시간을 소진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에 시간을 쓰지 못하는 비극은 없어야겠습니다. 갈 곳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 머물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유일한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예수님을 영생의 말씀으로 경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을 단조롭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산만한 데서 벗어나서 훨씬 깊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만 생각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화염에 휩싸이는 경험이기 때문에 대상과 함께, 대상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마음도 들게 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말하는 순간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죽어도 좋다는 데까지 이르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기독교의 순교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게 과연 실제로 가능한 경험일까요? 어느 정도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참으로 아득한 경지입니다. 우리는 그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다른 한편으로 위험합니다. 광신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오빠부대의 소녀들처럼 일방적인 감정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사이비 이단들에게서도 자주 봅니다. 인간의 심리는 아주 심층적이고 다층적이라서 심리적, 육체적 자기학대를 사랑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결국 모두를 파괴할 뿐입니다. 실제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다는 자기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인격 안에서 공유되어야만 실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예수님과의 영적 소통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영생의 말씀이 주님에게 있다는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 아닙니다. 그걸 원하면 돈 버는 기술을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단순히 심리 치료를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걸 원하면 심리나 명상 센터를 찾거나, 또는 힐링 프로그램에 참가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래서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그게 뭔지가 손이 잡히지 않나요?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가요? 제가 늘 설명했고, 지금 다시 설명한다고 해도 억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은총 사건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않으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요 6:65)는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문제는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들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갈 곳이 많으신가? 그래서 재미가 넘칩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역동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삶의 과정으로 지나갈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히려 갈 곳 없는 영혼으로, 즉 산만하지 않은 영혼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은 한 분에게 몰입함으로써 영생의 말씀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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