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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3: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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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5.1.18 주일 설교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믿음의 선택
창13:10-18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선택할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나 이사를 할 때, 직장을 택할 때, 그밖에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신앙생활 하기에 유리한가, 이런 것들을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축이 많아지고 목초지와 물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롯을 찾아가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먼저 마음에 드는 땅을 골라 떠나거라. 그러면 내가 그 반대편을 택하마.” 삼촌이 양보하자 롯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남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선택이 되었습니다.
양보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질 때,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아브라함이 우선권과 주도권을 행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온 사람은 아브라함이었고, 조카 롯은 단지 삼촌을 따라온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연장자였고 어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혀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문제는 재산과 장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였는데,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런 양보를 할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 돈 잘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목숨을 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여 재산을 많이 늘리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이미 그 땅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이렇게 더 크고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은혜 많이 받은 성도는 여유가 있고 양보를 잘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양보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선택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합니다. 자기의 이해에 예민하며,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손해 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이 나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문제는 믿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양보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우리가 보기에는 악착같이 싸우고 이겨야 땅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온유한 사람이 어떻게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여기서 온유하다는 말은 본래 천성이 유약하고 온순해서, 남과 경쟁하거나 싸우지 못하고 늘 포기해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싸우고 양보할 줄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때문에 양보하고 포기할 줄 알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온유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은 사람이며,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에게, 특별히 이렇게 온유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절대주권의 하나님,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롯의 선택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헤어질 것을 제의했을 때, 롯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했으며, 이것을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앙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롯이 보기에 삼촌 아브라함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비합리적이며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영리하고 사리가 바르던 삼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영 딴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했던 롯에게는, 삼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이 기회에 아예 삼촌을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제의했을 때, 그는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 그래서 롯은 주저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1절) 이렇게 해서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늘 지나치게 믿는 불편한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롯은 동쪽으로 떠나가 마침내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절) 그래서 소돔에는 하나님의 큰 심판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롯이 소돔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 통에 롯은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 때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하고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은 불행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롯의 선택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어떤 위험이 올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선택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롯이 떠나고 아브라함은 이제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롯이 아름다운 땅을 선택한 반면, 아브라함은 거친 땅에 남았습니다. 롯이 도시에 정착한 반면, 아브라함은 성 밖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보다 훨씬 불리한 처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좋은 땅을 포기하고 가나안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이 세상 욕심에 의한 선택이었던 반면, 아브라함의 선택은 믿음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장은 아브라함의 선택이 손해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되는 역사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조카 롯이 좋은 땅을 택하여 아브라함을 떠났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떠나 계셨다가 다시 찾아오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후,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4상)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롯을 떠난 후 외로움에 잠겨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해주심으로 더욱 강건해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그로 인하여 손해와 외로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눈앞의 세상적인 욕심에 이끌려 선택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14절)
롯도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롯의 경우와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롯은 탐욕과 불신앙과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직 세상적인 풍요와 쾌락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하여 불행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메마른 광야밖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비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약속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5-17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두루 다녀보았습니다. 그 땅은 이제 아브라함의 것이었으며, 그의 후손들이 번성할 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래를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항상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비전의 눈으로 미래와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마지못해 직장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도록 하십시오. 사업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내가 번 돈은 장차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다. 내가 좀 더 수고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십시오. 눈을 들어 중국과 인도와 방글라데시와 아프리카 등 세계의 선교지를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그 땅을 밟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비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가 장차 땅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서 복음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비전을 품고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떤 성도가 이런 기도제목을 적어냈습니다. “우리 가게가 세계선교에 앞장서게 하옵소서!” 얼마나 가슴 뜨겁고 귀한 비전입니까? 세계비전을 바라보며, 세계를 가슴에 품고 뜨겁게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그 날을 바라보며, 이 비전을 이루어나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말씀이 당신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그 말씀이 당신의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 말씀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척박한 가나안 땅에 있었습니다. 비전을 보았다고 해서 당장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망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비전을 새롭게 본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8절)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비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우리는 예배와 감사와 헌신을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우리를 사로잡아주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실망하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외로울 때,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배를 사모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힘입으며, 큰 기쁨과 용기를 얻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선택이 있은 후 롯은 점점 이동하여 마침내 소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기근을 만나고, 갈등을 겪고, 손해를 당하면서, 아브라함은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성도는 선택을 할 때,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당장에 그것이 손해 보는 것 같고 외로운 길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미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롯처럼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게 보여도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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