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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09 추천 수 0 2015.09.20 15: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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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4:30-42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4장 30절-32절: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0절-32절에서 뭐가 생각이 되느냐? 작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되었다는 것은 혜택을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뭐가 중요하냐? 씨가 중요한데, 생명 있는 씨가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씨가 심기어질 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말씀을 주는 교회의 인도자, 그 교회의 영적 관할자,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마음바탕이 참 중요하다. 그냥 말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만한 생명의 씨앗인가’ 하는 이걸 인도자들은 잘 구별 분별해야 한다. 씨앗은 논밭이 구별 분별하는 게 아니라 씨를 심을 주인이 구별 분별을 하는 것이다. 목사님들의 책임이 크다.


33절-42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33절: 말씀을 척척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신령천국의 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잘 입고 갈 수가 있다. 못 알아들으면 그만큼 사람이 저질에, 소득 없는 것에, 고통에, 걱정 근신 번민에 머물게 된다. 말뜻을 못 알아들어서 거저 주는 것도 못 받고 가게 된다면 소득을 아는 입장에서 그걸 보면 얼마나 답답할까?


씨가 나쁘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 망쳐버리는 거기에서 오는 손해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풍년이 되면 걱정 근심이 없고 마음이 편하고 기쁘지만 흉년이 들면 배가 곯고 병들고 도둑이 생기고 살인이 일어난다. 그러니 먹는 게 참 중요하다. 영적 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면에 있어서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마귀도 거짓 종들도 다 성경구절을 이용 응용한다. 그들이 성경구절을 이용하는 목적관을 모르면 그들의 말에 넘어간다. 십자가나 예배당 간판 이름을 이용하는 목적관을 모르면 그냥 넘어간다.


다른 복음 전하는 자나 받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는 심판의 노선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복음은 세상에 속한 것, 눈에 보이는 것, 일에 속한 것들이다. 어쨌든 눈에 보이는 것 전체를 말하니 한 마디로 세상 것을 전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게 해서 욕심내게 만드는 이걸 예수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다른 복음이다. 신령한 천국복음이 아니다. 성경에 구절적으로도 나오는 건데 ‘예수 믿어 세상에서 복 받고’ 하는 건 다른 복음이다. 이 세상은 지금 다른 복음이 꽉 들어찼다. 웬만하면 방송이고 책이고 간에 보고 들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치우쳐 있는 것은 다른 복음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려면 계속 성경을 읽고 밝은 이치를 깨닫는 게 좋지 말씀이치를 깨닫기 전에 신앙이 좋은 사람의 전기 등을 보게 되면 그리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나도 그래야지’ 하는 건 인간이 기준이 되는 거다. 그러나 그런 걸 참작은 할 수 있다. ‘아, 저런 사람은 예수 믿어서 저렇게 되셨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되셨구나.’ 그러나 오직 주님만 기준으로 가져라.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은 것은 이용 활용 차원에서 일반과로 먹어라.


34절: 예수님께서는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는 무리들이 다 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만 있을 때 비유를 해석해 주신다. 여기에도 뜻이 있다.


무리들은 신경을 써서 잘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런 마음의 태도를 예수님께서는 ‘무리’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세상을 살고 오면서 경험적으로 아는 것, 또는 남이 말한 세상 것을 듣고 나가서 그것을 기준하여 자기 생각대로 딴 말을 한다. 그러니 기준이 없다. 이런 무리들은 자기 집 복음이 아닌 딴 짓을 하는 자들이다.


무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에게 방해 짓을 한다. 방해하려고 해서 방해가 아니라 자신들은 옳은 것으로 알고 하는 거지만 세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진리이치의 정신에서 흐트러지게 한다.


무리들에 속한 목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에 속한 이치가 아니고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 그러니까 그 목사나 그 교회는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다. 아무리 예배당 건물에 십자가 간판이 붙어있어도 교회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은 본질이다. 여기서 흩어지면 안 된다.


제자들은 각자 마음 가운데 무리들로부터 이런 저런 소리를 들었다. 이제 그 무리들은 다 갔다. 무리들이 있을 때는 주님이 해석을 안 해 주신다. 일반적인 비유로만 하지 뜻은 알려주지 않으신다. 무리들이 물러갔을 때 뜻을 해석해 주신다. 이게 성령님의 역사다. 성경해석은 성령님의 역사로 들어가는 거다.


오늘날 교인들은 말씀이 인격적으로 다가오지를 않는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귀로 듣고 그게 인격화 돼야 하는데 그저 ‘옳다’ 하는 수준이니 영적 차원에서 굉장히 둔감하다. 인격화가 되려면 이웃들에게 식구들에게 친구들에게 옳은 생각을, 옳은 것을 쓰면 된다. 그 면에 사람이 용감해야 한다. 활동적으로 안 나타나고 속으로만 알고 있으면 관계성이 안 된다. 사람에게 몸을 입힌 것은, 육신을 갖게 한 것은 아는 것, 옳은 것으로 관계성을 가지라는 뜻이다.


에덴동산에서 부부를 매어놓은 것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생명계대 운동을 하라는 뜻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냥 안 믿는 사람들이 시집 장가가는 식의 사고방식은 있을 수가 없다. 자기 집으로 통해서, 자기로 통해서 생명계대가 흘러가야 한다. 이게 창조목적에 들어있는 가정이다.


잡생각들이 다 물러갔을 때에, 자기 머릿속에 예수님께서 홀로 남으셨을 때에 비유 안에 들어있는 계시성을 각성적 영감으로 조명적 영감으로 다 말씀해 주신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자기 마음 가운데 잡다한 생각이 들어있으면 깨달음이 없다. 마음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니 자기 속에 주님과의 통일성이나 의사단일성은 없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의사를 찾게 한다’ 하는 여기에는 자기의 영적 정신면에 병이 낫고, 자기 정신면을 정화시키고 하는 이게 들어있다. 이게 사람이 사는 거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는 건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고 나를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만들어 주려는 표현이다. 자기 속의 옛사람을 먼저 죽이려 해서는 안 되고 그 옛사람이 힘을 못 쓰도록 먼저 진리를 붙잡고 진리를 생각하며 가는 거다. 옛사람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안 죽는다. 그러나 진리를 잡고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사람은 옛사람이 힘을 쓸 여지가 없다.


옛사람은 자꾸 뒤를 쳐다보게 하고, 세상 불타질 것을 자꾸 보게 한다. 그러나 내가 진리 붙잡고 진리 쪽으로 생각하고 소원하고 활동하려고 자꾸 애를 쓰면 옛사람이 힘을 못 쓴다. 안 그러면 옛사람이 힘을 쓰게 돼 있다.


35절-41절: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날이 저물었으니 이제 곧 밤이 올 텐데 건너가자고 하신다.


사람이 밤에 길을 간다거나 밤에 배를 타고 건너간다는 것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더군다나 안개가 낀 날이라면 배끼리 부딪힐 수가 있다. 사고가 많다. 그래서 안개가 끼어있으면 이쪽에서 뱃고동을 울린다.


그러면 저 편에 가서 또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심인지? 가자고 할 때는 그 이유가 있다. 어쨌든 무리는 다 가고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을 독차지한 셈이다. 독차지하고 모시고 간다는 건 참 잘한 거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큰 광풍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가면 광풍이 안 일어나야지, 일어나려고 하는 광풍도 안 일어나게 해야지. 그런데 왜 일어날까?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가 이 배에 탔으니까 광풍이 일어나던 것도 말하자면 ‘아, 창조주 하나님이 저기 계시니 우리가 잠잠하자’ 하며 파도도 스스로 멈춰야 하는데 잠잠해지기는커녕 파도가 더 심하게 쳐서 배 안으로 물이 차 올라온다. 아무리 퍼내도 소용이 없다.


이 때 예수님은 배의 고물 즉, 뒤쪽에서 깊이 잠이 드셨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나서 뱃전에 부딪히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깊이 잠이 들 수가 있을까? 배는 자꾸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고 파도가 일어나서 예수님의 얼굴을 덮치는데 어떻게 저렇게 깊이 잠이 들 수가 있을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님을 흔들어 깨워야 하나, 예수님을 혼자 버려두고 모두 탈출을 해야 하나? ‘안 되겠다. 예수님을 깨우자. 우리가 죽게 생겼나이다. 선생님 우리를 돌아봐 주십시오’ 한다. 제자들이 그 때까지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다. 바람과 바다가 귀가 있느냐?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는 것은 예수님이 창조자라는 것이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니 바람도 그치고 파도도 조용해졌다.


예수님은 무리가 없고 제자들과 같이 있을 때 비유 속에 들어있는 계시성을 말씀해 주시는 분인데, 그렇다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예수님과 같이 갈 때에 무리들이 없으니까 제자들이 마음만 있으면 건너편에 도착할 때까지 밤새도록 얼마든지 천국에 관한 비유의 해석을, 영적 이치를 주님께 묻고 깨닫고 갈 수가 있다.


사실 제자들이 탄 이 배에는 창조주께서 타고 계시니까 바람이 불던 태풍이 일어나던 파도가 치던 상관이 없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게 일어도 그 파도가 예수님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같이 타고 계시다면 같이 그 배에 탄 제자들도 안 죽는 거다. 안전하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자고 해서 그 말씀에 순종해서 가는 것이니까 예수님께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39절로 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고, 제자들을 책망을 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고 겁을 먹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했다. 우리 역시도 믿음 없는 짓을 많이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건너가자’ 하셨고, 이 예수님께서 같이 배에 타셨고, 예수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바로 알았더라면 아무리 풍랑 파도가 치면서 물이 배에 들어와도 ‘천지의 주재되시는 분을 바다가 집어 삼키겠느냐?’ 하며 겁을 먹지 않았을 텐데 겁을 먹은 것은 예수님을 확실히 몰랐다는 증거다.


그런데 궁금한 게 왜 풍랑 파도가 일어났느냐? 1. 예수님께서 주무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 스스로가 깨어있어야 하는 건데 예수님께서 주무셨기 때문에? 2. 모든 나쁜 일은 마귀가 일으키는 것이니 역시 풍랑 파도도 마귀가 일으켰기 때문에? 풍랑 파도가 마귀의 말을 듣느냐? 마귀는 창조주가 아니다. 그러니 정답이 아니다. 3. 제자들이 창조주 예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4. 예수님께서 지금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마귀에게 ‘제발 풍랑을 좀 일으키지 말라’고 부탁을 안 했기 때문에? 5. 제자들이 기도를 안 했기 때문에? 6. 예수님께서 깨어있었다고 해도, 제자들이 기도를 했어도, 예수님과 대화를 했어도 풍랑은 일어난다? 6번이 맞다. 예수님께서 그 배에 계셔도, 깨어 있거나 주무셔도 풍랑은 일어나게 돼 있는 거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풍랑이 안 일어나야 되는 거냐, 일어나더라도 그거와 상관이 없이 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냐? 그 원칙은 풍랑이 일어나도 안 죽는 거다. 그러니까 풍랑은 대화를 해도 일어나고 안 해도 일어나고, 잠을 자도 일어나고 안 자도 일어나고, 기도를 해도 일어나고 안 해도 일어나는 것이니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안 빠져 죽고 안 죽는 거, 두려움이 없이 가는 게 원칙이다. 그렇게 갈 때 파도에 막 흔들리며 가야 더 재미가 있는 거냐, 조용하게 가야 더 재미가 있는 거냐? 조용하게 가면 재미가 없다.


첫째는 예수님은 창조자시요, 모든 만물과 세상의 역사는 성도들의 훈련 연단의 재료들이다. 두 번째는 모든 만물은 성도의 이룰구원을 위해 움직인다. 일반 자연이치와 법칙으로 보면 바다에 가끔 해일이 안 일어나면 안 된다.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나야 물이 소통이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구나’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세상의 시대적 역사적 환난 풍파는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는데 이 때 성도가 기도함으로써 자기 안에 풍랑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겉의 것이 아무리 야단을 해도 자기 안이 잔잔하면 그 사람은 평안하다. 그러나 밖은 조용해도 자기 안에서 풍랑이 일어나면 못 견딘다. 예수님과 대화 상태에 있으면 자기 밖에서 어떤 풍랑이 일어나도 자기 안에서는 잔잔하다. 주님과 대화가 없으면 자기 안의 풍랑이 더 크다. 자기 안의 주님을 깨워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바람을 더 크게 보느냐? 1. 태평양에서 올라오는 바람? 2. 전쟁바람? 3. 세상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 가르침을 더 크게 본다? 어느 걸 더 크게 보시느냐? 세 번째다. 믿음 없는 사람은 두 번째라고 할 것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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