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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보다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역대상 이서영 목사............... 조회 수 468 추천 수 0 2015.09.24 05: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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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대상20:4-8 
설교자 : 이서영 목사 
참고 :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대상20장 4~8

사실보다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2010.06.27. 부산시, 하신번영로 199


2차 대전 때 가시철망으로 울타리가 쳐진 포로수용소에서 갇힌 포로들이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군의관들은 이 병명을 ‘가시철망병(Barbed-Wire Sickness)’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시 철망을 바라보면서 갇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낙망해서 생긴 병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을 비관해서 생긴 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리지 않은 포로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시철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가시철망을 너머에 있는 희망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사물과 사실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정탐하고 난 후에 10명의 정탐꾼이 보고할 때 ‘네피림(창 6:4)의 후손인 아낙자손’으로 인해 새파랗게 기가 질려버렸습니다. 정탐한 지역의 사람이 거대한 거인이었기에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작게 보았습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히려 ‘밥’으로 여겼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0명의 정탐꾼은 사실을 바라보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거인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는 절망과 탄식과 원망불평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2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사실을 보았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실의 뒤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실한 정탐꾼일까요? 얼핏 보면 10명의 정탐꾼이 진실한 정탐꾼처럼 보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명의 정탐꾼은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대로 보고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해석해서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실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해석했기에 더 진실한 정탐꾼이었습니다.


이들은 가시철망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본 것입니다. 사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축복을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를 두르고 있는 온갖 가시철망과 앞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인 거인족에 주눅 들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함께 계신다고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함께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습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작게 본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인 축복이 가득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크게 본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가서 차지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4절을 보면 부정적인 사람들의 태도가 나옵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눈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온통 현실만 보였습니다. 자신들의 문제와 상대방의 문제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5~9절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신들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처럼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고 살면 큰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작게 보면 작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와 함께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크게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역대기상 20장 8절을 보면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가드의 키 큰 자 중에 골리앗과 같은 거인들이 있었지만 다윗과 그의 신하의 손에 다 죽었습니다. 정상적으로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기에 이긴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인족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듯이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을 보고 사울 왕과 모든 군대와 백성들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이때 조그마한 소년인 다윗이 나타나서 거인인 골리앗과 싸워 단숨에 이겼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골리앗의 동생인 라흐미는 엘하난에게 죽었습니다. 라흐미의 창자루가 베틀채 같아도 골리앗처럼 패배했습니다. 다윗의 형인 요나단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여섯 개씩이나 달린 거인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능욕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육신적으로 키가 커도 다윗과 다윗의 신하의 손에 모두 다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사는 성도는 거대한 거인족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계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크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대부분 황무지와 불모지에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조할 당시를 보면 어둡고 무질서하고 혼란한 가운데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하늘 새 땅의 창조 역시 혼란스런 세상의 끝 날에 새 창조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황무지와 불모지에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이사야 43장 19절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아멘.


이처럼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허허벌판인 광야에 길을 내어주시고 내 인생의 물 한 방울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 강을 내어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황무지에서 일하시고 불모지에서 일하시고 가시철망 가운데서 일하시는 창조의 주 하나님, 능력의 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큰 사람의 인생은 무기력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재활용해주시고 재생산해주십니다. 삼손이 이성 관리를 못해서 머리카락이 밀려서 힘을 쓰지 못해 블레셋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소용없었습니다.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그만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큰 인물이었던 삼손은 이제는 작고 힘없는 어린아이보다 더 작은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삼손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희망마저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매일 매일 눈이 뽑히고 놋줄에 "꽁꽁" 묶인 채로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쓸모 없는 황페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황무지와 불모지와 가시철망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기회를 다시 주셨습니다. 사사기 16장 22절입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아멘. 힘의 원천이었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손은 마지막 힘을 두 기둥을 무너뜨리는데 사용해서 살았을 때도 보다 죽을 때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인생이 마치 끝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끝장이라고 여기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진행 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디도서 3장 5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더욱 더 새롭게 성화시켜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과 사실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사라는 90세나 되었지만 결국 이삭을 낳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롬 4:17)께서 아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은 것을 알았지만 그 하나님을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릴 때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실을 뛰어 넘어 약속을 바라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땅을 보고 자신을 보면 도무지 불가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큰 사람, 큰 일꾼이 됩니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을 한번 둘러봅시다. 모든 면에서 참으로 막막해 보일 때도 많습니다. 절망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신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과 사실 앞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승리하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큰 사람은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가 살아난 사람이고, 작은 사람은 현실을 바라보고 기가 죽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점점 작게 보다가 모든 일에 자신감과 의욕과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큰 사람, 큰 일꾼은 현실 앞에 있는 골리앗을 보고 벌벌 두려워 떨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이름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골리앗처럼 키가 크다고 가진 것이 많다고 큰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다윗과 같이 키도 작고 갑옷과 무기도 가지지 못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형적인 조건을 잘 갖추고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빠지면 허수아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 생애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 앞에 우리나라 앞에 그 어떤 것이 허풍을 떨면서 무섭게 위협을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기에 필승을 거둘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보다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을 깨달으시고 현실과 사실을 보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인생에 찾아오신 크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로막고 있는 온갖 거인족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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