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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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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성탄, 찾아오신 하나님!'
2010년 12월 25일(토) 베들레헴 성탄예배,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누가복음 2:8-14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입니다. 성탄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의 현장인 이곳 베들레헴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성지에 사는 교회가 가지는 축복입니다. 갈릴리에서 신년수련회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성지에 있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은 목자들의 들판, Shepherd field라고 하는 곳이고, 여기에 세워진 교회를 목자들의 들판 교회 혹은 양치기 교회라고 부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했는데,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그 지역이 바로 이곳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약 3 km 정도 떨어진 베이트 싸호르(Beit Sahour)라는 마을에 위치합니다. 천사들이 들판의 목자들에게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주후 4-6 세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고, 지금은 새로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캐나다의 도움을 받아 1954년에 세운 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아 발루치가 설계를 했고 유목민인 베두윈의 천막을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이나 인근 지역에 보아스의 밭이 있던 곳으로 여겨져 룻기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대광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어서 양을 치기에 적합해서 예로부터 목자들이 양을 치던 곳으로 이용되었고 다윗 역시 이 지역이나 인근 지역에서 양을 쳤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동굴은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킬 때 추위를 피해 이용했던 곳입니다.
그때에도 이 지역에는 목자들이 양 떼를 치며, 밤에 이 동굴에서 추위를 피하며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양 떼를 칠 때는 한번 데리고 나가면 꽤 오랜 기간 동안 여기 저기 다니면서 풀을 먹이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밤에도 양 떼를 지키며 돌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제일 먼저 경배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목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줄 알지만 가장 먼저 경배한 이들은 바로 이들 목자들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군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고, 그래서 이들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가장 먼저 경배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것이 성탄의 의미와 딱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으로 누릴 수 있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포기하시고 피조물인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낮아짐입니다. 그것도 왕가의 아들로 오신 것도 아니고 귀족명문가의 아들로 오신 것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목수 요셉과 역시 평범한 여인 마리아의 집안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탄생이 신화라고 한다면, 기독교에서 만든 신화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싯다르타처럼 왕가의 아들이나 귀족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던가, 아니면 태어났을 때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알에서 태어나던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거나 기적을 행하던가 해야 합니다. 다른 탄생 설화들을 보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동정녀 탄생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십니다. 너무나도 연약한 아기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없는 사실을 꾸미면서 예수님을 신격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면 조작해야 합니다. 신화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을 때는 그 어떤 조작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기에 그저 사실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바로 그러합니다. 하나님이셨던 분이 철저하게 인간이 되신 사건이 바로 성탄입니다.
이토록 낮아지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군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하고 목자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성육신의 의미와 맞습니다. 가장 낮아지신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사는 낮은 자들인 목자들이 제일 먼저 경배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들 목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즉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목자들은 천국을 소유했습니다. 예수께서 곧 천국이십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자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과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입니다. 마음에 온갖 탐욕과 더러운 것들로 차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목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이들이 영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들은 마음이 가난했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 가난함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태어나셨다는 천군천사들의 말을 들었을 때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었던 근거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천국을 소유할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부요하면 하나님에 대해 등한시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이러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 교회가 그랬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생활적으로도 풍요합니다. 넉넉합니다. 그러면서 마음도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필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별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고 그리 손해 볼 것 같지 않은 괜찮게 여겨지는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이들은 어떠했습니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모습입니다. 자신들은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주님의 눈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영적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높은 자, 스스로 부유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닐 수 있어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질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너무 마음이 높아지진 않았는지요?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로 인해 마음까지 높아져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모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이고 영적인 눈이 밝지 않고 벌거벗은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저 물질적인 번영과 삶의 성공과 안정이 우리의 삶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의 영은 여전히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어둡고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리 되어야 합니다. 높아진 마음들, 교만한 마음들, 완고한 마음들, 하나님을 찾지 않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마음들, 모두 내려놓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명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성탄의 현장에 와서 너무 무거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성탄의 분위기에 취해 우리가 정작 붙잡아야 할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천국이 저들의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볼 것이라,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2천 년 전 목자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무슨 뜻일까요? 종교라 함은 인간이 신을 찾거나 영원을 추구하면서 생긴 산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이기에 종교라는 말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어라 불러야 하느냐? 계시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계시가 바로 성경이고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계시된 사건이 바로 성육신, 성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왜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만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약속 받을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너무나도 큰 사랑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시고 그 사랑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바로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이십니다.
당신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함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이 너무나 익숙해서 그 감사와 감격조차 식어져버렸다면 이 시간 다시금 새로운 감사가 샘솟듯이 터져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역시 목자들처럼 우리를 사랑하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그 기쁜 소식을 아직도 성탄의 소식을 모르는 이 땅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10년 12월 25일(토) 베들레헴 성탄예배,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누가복음 2:8-14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입니다. 성탄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의 현장인 이곳 베들레헴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성지에 사는 교회가 가지는 축복입니다. 갈릴리에서 신년수련회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성지에 있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은 목자들의 들판, Shepherd field라고 하는 곳이고, 여기에 세워진 교회를 목자들의 들판 교회 혹은 양치기 교회라고 부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했는데,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그 지역이 바로 이곳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약 3 km 정도 떨어진 베이트 싸호르(Beit Sahour)라는 마을에 위치합니다. 천사들이 들판의 목자들에게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주후 4-6 세기 비잔틴 시대에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고, 지금은 새로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캐나다의 도움을 받아 1954년에 세운 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아 발루치가 설계를 했고 유목민인 베두윈의 천막을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이나 인근 지역에 보아스의 밭이 있던 곳으로 여겨져 룻기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대광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어서 양을 치기에 적합해서 예로부터 목자들이 양을 치던 곳으로 이용되었고 다윗 역시 이 지역이나 인근 지역에서 양을 쳤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동굴은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킬 때 추위를 피해 이용했던 곳입니다.
그때에도 이 지역에는 목자들이 양 떼를 치며, 밤에 이 동굴에서 추위를 피하며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양 떼를 칠 때는 한번 데리고 나가면 꽤 오랜 기간 동안 여기 저기 다니면서 풀을 먹이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밤에도 양 떼를 지키며 돌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제일 먼저 경배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목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줄 알지만 가장 먼저 경배한 이들은 바로 이들 목자들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군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고, 그래서 이들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가장 먼저 경배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것이 성탄의 의미와 딱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으로 누릴 수 있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포기하시고 피조물인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낮아짐입니다. 그것도 왕가의 아들로 오신 것도 아니고 귀족명문가의 아들로 오신 것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목수 요셉과 역시 평범한 여인 마리아의 집안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탄생이 신화라고 한다면, 기독교에서 만든 신화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싯다르타처럼 왕가의 아들이나 귀족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던가, 아니면 태어났을 때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알에서 태어나던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거나 기적을 행하던가 해야 합니다. 다른 탄생 설화들을 보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동정녀 탄생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십니다. 너무나도 연약한 아기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없는 사실을 꾸미면서 예수님을 신격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면 조작해야 합니다. 신화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을 때는 그 어떤 조작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기에 그저 사실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바로 그러합니다. 하나님이셨던 분이 철저하게 인간이 되신 사건이 바로 성탄입니다.
이토록 낮아지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군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하고 목자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성육신의 의미와 맞습니다. 가장 낮아지신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사는 낮은 자들인 목자들이 제일 먼저 경배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들 목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즉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목자들은 천국을 소유했습니다. 예수께서 곧 천국이십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자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과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입니다. 마음에 온갖 탐욕과 더러운 것들로 차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목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이들이 영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들은 마음이 가난했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 가난함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태어나셨다는 천군천사들의 말을 들었을 때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었던 근거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천국을 소유할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부요하면 하나님에 대해 등한시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이러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 교회가 그랬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생활적으로도 풍요합니다. 넉넉합니다. 그러면서 마음도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필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별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고 그리 손해 볼 것 같지 않은 괜찮게 여겨지는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이들은 어떠했습니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모습입니다. 자신들은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주님의 눈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영적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높은 자, 스스로 부유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닐 수 있어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질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너무 마음이 높아지진 않았는지요?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로 인해 마음까지 높아져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모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이고 영적인 눈이 밝지 않고 벌거벗은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저 물질적인 번영과 삶의 성공과 안정이 우리의 삶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의 영은 여전히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어둡고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리 되어야 합니다. 높아진 마음들, 교만한 마음들, 완고한 마음들, 하나님을 찾지 않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마음들, 모두 내려놓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명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성탄의 현장에 와서 너무 무거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성탄의 분위기에 취해 우리가 정작 붙잡아야 할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천국이 저들의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볼 것이라,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2천 년 전 목자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무슨 뜻일까요? 종교라 함은 인간이 신을 찾거나 영원을 추구하면서 생긴 산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이기에 종교라는 말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어라 불러야 하느냐? 계시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계시가 바로 성경이고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계시된 사건이 바로 성육신, 성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왜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만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약속 받을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너무나도 큰 사랑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시고 그 사랑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바로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이십니다.
당신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함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이 너무나 익숙해서 그 감사와 감격조차 식어져버렸다면 이 시간 다시금 새로운 감사가 샘솟듯이 터져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역시 목자들처럼 우리를 사랑하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그 기쁜 소식을 아직도 성탄의 소식을 모르는 이 땅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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