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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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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말씀으로 여는 하루
2010년 12월 31일 신년수련회 둘째 날 아침기도회
본문: 시편 1편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있다. 일본의 사이쇼 히로시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동서의학을 다 접한 의사인데,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은 문명이 야행성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책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몸과 정신에 가장 바람직한 습관임을 구체적인 사례와 근거를 통해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먼저 야행성 생활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문제점과 그것이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말하고 있고, 이어서 '아침형 인간'의 필요성과 긍정적 효과를 언급한다. 후반부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본격적 100일(14주간)의 실천계획 및 내용이 담겨져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정한 것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몸에 배게 해서 자연스럽게 습관화하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23시~5시가 가장 적당한 수면시간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 근거로 체온이 내려가는 시간대가 오후 11시~오전 1시인데 이때가 잠을 깊이 들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체온이 올라가는 시간대인 오전 5시~6시는 잠이 얕아지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체온이 상승 곡선에 접어드는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면시간이라고 말한다. 또 아침의 1시간은 오후의 3시간과 맞먹기 때문에 이때의 두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24시간 중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법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깨어있는 동안 무엇이든 온 힘을 다해라'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즐겁게 식사하다 보면 잠도 '열심히' 잘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전 5시, 딱 새벽기도 시간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침형 인간으로 훨씬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벽기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유익과 능력이 주어질까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말은 한다. 사위감이나 며느리감을 고를 때, 신랑감이나 신부감을 고를 때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을 고르라. 왜? 적어도 그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사람은 그의 믿음과 생활을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아내가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어서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자체 건물이 없어 새벽기도회를 못하고 있지만, 집에서 가능하다. 오전 5시든 6시든 일어서나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 말씀과 기도로 시작한다면 그 하루는 어떠할까? 나의 영혼과 인격과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영향력이 생기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능력이 주어질까? 어떤 지혜가 생길까?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훨씬 더 정화되지 않을까? 우리의 믿음도 성장하고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가 더 쉽지 않을까?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가 주어지지 않을까? 시험을 이겨내는 능력과 영적 은혜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성경 66권 중에서 말씀에 대한 묵상에 대한 것이 바로 시편이다. 시편은 고난 중이든 평안할 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이고 노래이며 시며 삶이다.
나는 시편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큐티를 제일 먼저 하는데,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큐티지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큐티는 교회 큐티지를 가지고 하지만 틈틈이 시편을 많이 읽고 묵상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무 좋다. 우리 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있으면 시편을 가지고 했을 것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 '말씀으로 여는 하루'라고 했는데, 시편을 통해서 말씀으로 하루는 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유익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면서 새해에는 말씀으로 하루는 여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
시편에 보면 말씀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율법, 법, 법도, 규례, 율례, 도 등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는 시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시편 119:147-148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기도다. 새벽기도가 한국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이스라엘 땅에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면 참 머리가 맑고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아침에 두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24시간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집중력과 판단력을 말씀 묵상과 기도에 쏟는다면 얼마나 깊이 있는 영성의 시간이 되겠는가?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작해보자. 30분을 하던 한 시간을 하던 시작해보자. 당신의 영성의 깊이가 놀라울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시편 143:8도 역시 말씀과 기도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아침 이른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의 유익이 여기에 있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묵상하는 말씀 속에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늘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내 영혼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게 맡겨주신 오늘 하루의 시간도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회사나 학교를 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러다가 가족끼리 말다툼하면서 집을 나서는 어수선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이렇게 아침 일찍이 일어나 주님과 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위해 기도함으로 시작하는 삶과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무엇이 달라질까?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마치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순도 100%의 은 같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순결하다는 의미지만, 이처럼 순결한 말씀이 나의 영혼을 정화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나의 영혼과 내 영혼의 깊은 곳까지 찔러 조개며 나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판단하셔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나의 문제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결단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영혼을 순전한 은처럼 단련시켜 주신다.
시편 19:7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이 바로 그 영혼이 소생됨과 지혜이다. 에스겔서에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들로 가득한데 하나님의 영으로 마른 뼈들이 소생하여 군대가 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른 뼈와 같았던 죽어있고 메마른 영혼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거룩한 군대가 된다는 환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마른 뼈와 같은 영혼, 메말라 있는 영혼, 병들어 있는 영혼, 상처 난 심령을 고치시고 살리시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마다 먹으라. 그 말씀이 당신의 영혼을 더욱 더 살리고 강하게 할 것이다.
또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혜가 주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며, 옳고 행복한 삶에 대한 지혜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말씀을 듣는 자, 말씀을 묵상하는 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어지고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된다.
호세아서에서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취직을 못해서 승진을 못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나라가 망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면 인간이 가는 길이 뻔하다.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불순종이다. 내 탐욕과 죄성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망하는 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따라서 이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하고 읽고 듣고 배우기를 힘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으나 꾸준히 하다보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다.
또한 삶의 지혜도 얻게 된다. 인생의 지혜도 얻게 된다. 시편의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씀을 한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시 119:100)
인생의 지혜는 노인에게 물으라는 말이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생긴 경험적인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나은 지혜가 바로 말씀에 있다는 것이다. 노인의 지혜는 인생의 지혜지만 개인적인 것이기에 때로는 그리 지혜롭지 않은 고집과 편견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경을 묵상하는 자에게는 참된 인생의 지혜가 주어진다. 성경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고 의미있고 풍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인지를 말씀하고 계시다.
아는가? 세상의 많은 경영 원리, 대인관계의 원리, 리더십 등등이 다 성경에서 나온 원리라는 것을. 세상에서도 성경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말씀을 묵상하라. 읽고 듣고 배우라. 그 말씀이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지혜를 줄 것이다.
시편 37:31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 말씀이 있는 자는 그의 걸음이 실족함이 없다는 말씀이다. 걸음이 실족하다, 인생의 길에서 넘어짐을 뜻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유혹과 시련과 시험이 있다. 그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시련으로 인해 실족하고 시험에 들어 낙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는 이러한 유혹과 시련과 시험이 와도 걸려 넘어져서 실족하지 않는다. 왜? 119:101 말씀에 그 답이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왜 유혹에 넘어가고 시련으로 인해 실족하고 시험에 드는가? 나의 발을 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는 사람은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한다. 당연한 귀결이다.
시편 119:11 말씀도 같은 내용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게는 유혹과 시련과 시험을 이길 힘이 없다. 그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어진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 말씀이 나의 발을 지켜주셔야 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발을 금하는 실천을 통해 유혹과 시련과 시험을 이길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간직하여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발을 금하는 자들이 되라.
또한 말씀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에게는 고난 가운데서도 주어지는 위로가 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
어느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고난이 찾아온다. 예외는 없다. 그럴 때 나를 살리는 위로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나를 살릴 위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고난 가운데서도 나를 살리시는 위로의 말씀이 있으면 거뜬히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아하! 기가 막힌 말아닌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고난을 이긴 자요 고난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사람이다. 고난을 통해 얻은 유익이 무엇인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전에 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욥도 같은 말을 했다. 극심한 고난을 통해 그는 엄청난 유익을 얻었다. 무엇인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룰 뵈옵나이다."(욥 42:5)
이전에는 귀로만 주의 말씀을 듣다가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안이 열린 것이다. 영적인 안목과 통찰력과 분별력이 생긴 것이다.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고난은 무익한 것이 아니라 유익하다.
단, 어떨 때?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붙드는 사람에게!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붙들며 살라. 고난이 왔을 때, 인생의 위기에서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들라.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위로하고 나를 깨우쳐 영적인 안목이 열리게 할 것이다.
시편 119:105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의 인생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우리 인생의 본질이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바로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염려하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이러한 염려와 불안과 걱정에서 자유할 수 있다. 왜? 주의 말씀은 영원하고 나를 향한 불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말씀이 내 인생의 길에 등이 되고 빛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왤까? 좀 멀리 비추어 주시면 안 될까? 주의 말씀은 내 앞 100미터, 1000미터까지 비취어 주는 서취 라이트요 하면 속이 시원할 텐데 왜 내 발을 등이여 내 길에 빛이라고만 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0미터 1000미터 앞까지 비추어주는 빛이 아니다. 내 발 바로 앞의 빛이 있으면 된다. 그 빛이 비추어주고 인도해주시는 대로 가면 된다. 딴 길로 가니까 문제지 그 길로만 가면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끄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
앞이 가로 막혔다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 쌓였다고 답답해하지 말라. 내 마음대로 성급히 가려고 하지 말라. 인내하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여 말씀에게 묻고 기도하는 가운데 인도하심을 구하라. 그러면 주의 말씀이 내가 가야할 방향과 길을 비춰주실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시편 119:9을 보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특별히 청년의 때에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키우라. 청년 때는 혈기왕성한 시기다. 그래서 유혹이 많다. 청년 때에 더렵혀지려면 급속도로 망가질 수 있다. 그러나 청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년 때부터 아침형 인간이 되라. 청년들을 보면 많은 경우가 야행성 인간이다. 밤이 되어도 도무지 집에 들어가질 않는다. 거리에서 술에 취하고 오락에 빠져 흥청망청한다. 집에 들어가서도 도무지 자질 않는다. 뭐 그리 할 것이 많은지 자질 않는다. 그 나마 그 밤에 말씀 읽고 기도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청년들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나도 청년 때는 야행성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벽형일 때도 많았다. 원래 밤잠이 적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서 밤늦게 자는 편이었다. 그래도 밤에 늘 기도를 했다. 아침에도 가능하면 일찍 일어나서 새벽기도회를 가거나 못 갈 경우는 꼭 큐티를 했다. 한국에서 청년들을 지도할 때는 청년사역의 특성상 올빼미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목사가 새벽기도를 빠질 수 없으니 새벽형이 되었지만 굉장히 피곤했다. 지금은 아침형이지만 그러했다. 청년들이여, 야행성 올빼미에서 아침형 종달새가 되라.
나는 청년 때에 큐티 훈련을 받았다. 군 제대하고 중등부 교사를 할 때 중등부 전도사님을 통해 큐티 훈련을 받았다. 따로 큐티 노트까지 준비해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깨닫고 결단한 바를 기록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나눔을 가졌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큐티를 하고 있다. 이 큐티의 훈련이 말씀 준비에도 많은 유익이 되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응답을 나는 큐티를 통해 받았다. 그때 큐티를 통해 응답을 받았을 때 내 입안에서는 꿀보다 던 단맛으로 가득 찼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그전까지는 이 말씀을 비유적인 것으로 보았다. 꿀보다 더 단 맛처럼 느껴진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런데 청년 때에 큐티를 하던 중에 7년 동안 기도하던 기도 제목에 대해 응답해 주셨을 때 나는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내 입 안에서 꿀보다 더 단 맛이 가득 찼었다. 나 스스로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못 믿겠는가?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사모하면서 말씀을 묵상해보라. 말씀으로 응답해주실 때 그 맛이 어떤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떤 마음 자세로 해야 하는지를 보자.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13)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은 하나님도 잡고 세상의 다른 것도 잡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엘리야 선지자 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바알을 따른 것과 같은 경우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들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라. 그리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라. 거기에서 크신 은혜가 주어진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 119:72)
주의 말씀을 사랑함이 이 정도까지 가야 한다. 천천 금은이란 천천, 이천 개의 금은이란 뜻이 아니다. 천은 성경 히브리어에서 많은 숫자를 뜻한다. 그 천을 이중으로 반복했을 때는 매우 많음을 뜻한다. 즉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다는 말은 매우 많은 금은, 즉 재물이나 부귀영화보다 좋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그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심을 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축복이 주어진다. 이 축복을 받기를 축원한다.
말씀을 묵상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라. 시편 119:25 말씀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25)
성령께서 내 눈을 열어 주셔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해주셔야 말씀 가운데서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을 대하기 전이 이 기도를 드리라. 나는 늘 말씀을 묵상할 때든, 읽을 때든, 설교를 준비할 때든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한다.
또한 말씀에 대해 순종의 마음으로 대하라.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6)
기가 막히지 않은가? 나의 소유는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이 자신의 소유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34에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이 되고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나의 소유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을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들을 때마다 우리의 결심은 이러해야 한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6)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의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결단도 하고자 하는 의지도 노력도 없다면 우리는 큰 병에 걸리고 만다. 무엇인가? 귀만 커지는 병이다. 영적 비만에 걸리고 만다. 영적 교만에 빠지고 만다. 말씀을 가지고 이러 저리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교만에 빠지고 만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병을 갖고 있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정작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를 않다. 매우 심각한 일이다. 교인들 수는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영적 어린아이들로 우글거린다. 도무지 성장하질 않는다. 모태신앙이고 3대, 4대 째 신앙이고, 장로, 권사, 집사라는데도 여전히 어린아이다. 말씀이 들어가질 않는다. 말씀을 듣지 않는데 무슨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며, 말씀을 지키지 않는데 무슨 거룩한 삶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라. 그리고 결단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하라. 노력을 해도 다 못 지키는 것과 아예 노력조차 안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높이뛰기 선수가 하루아침에 높이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시도하고 끝없는 결심과 노력이 있을 때 자신이 목표한 높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결심하라. 굳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라. 오늘 열 중에서 하나를 했으면 내일은 열 중에서 둘을 할 수 있고 그 다음 날에는 열 중에서 셋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쌓여 당신의 영성을 만들어 주고 당신의 인격과 삶의 변화시킬 것이며 당신의 삶을 풍성하고 건강하고 능력 있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시편 1편을 보자. 시편 1편은 시편의 표제이고 결론이다. 제목이면서 내용이면서 동시에 결론이다. 시편의 핵심은 말씀이다. 읽어보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은 '복있는 사람은'이란 말로 시작한다. 이를 원어로 보면 "복되다 이 사람!"이다. 인생의 참다운 복이 무엇인가? 그것을 시편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요약이자 결론이 바로 시편 1편이다.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의 죄악된 모습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 대신 무엇을 하는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인생의 가뭄과 환난이 와도 결코 시들어 죽지 않을뿐더러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영혼의 열매, 인격의 열매, 삶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얻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형통하게 하신다.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고 의인들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인정하신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알다라는 뜻의 '야다'이다. 이 야다라는 단어는 오늘날 히브리어와 다르다. 부부간의 깊은 앎을 뜻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날마다 아침마다 밤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듣고 배우면서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을 아신다는 것이다. 깊이 아신다는 것이다. 그의 형편이 어떠한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곧 응답을 뜻한다. 그 능력의 손을 펴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하늘의 은혜를 주시고 영적 권세를 주신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주시고 내 길을 친히 인도해주신다. 이 놀라운 은혜를 맛보는 자들이 되라.
이제 내일이면 새해가 밝아온다. 오늘 이 시간 한해의 마지막 날에 결단하라.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하라. 그리고 당장 실천하라. 처음에는 힘들지만 두 눈 딱 감고 백일만 해라.
그러면 당신의 몸에 습관이 되어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고, 후에는 말씀의 맛을 알게 되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이 당신의 영혼과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하게 하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2010년 12월 31일 신년수련회 둘째 날 아침기도회
본문: 시편 1편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있다. 일본의 사이쇼 히로시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동서의학을 다 접한 의사인데,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은 문명이 야행성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책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몸과 정신에 가장 바람직한 습관임을 구체적인 사례와 근거를 통해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먼저 야행성 생활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문제점과 그것이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말하고 있고, 이어서 '아침형 인간'의 필요성과 긍정적 효과를 언급한다. 후반부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본격적 100일(14주간)의 실천계획 및 내용이 담겨져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정한 것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몸에 배게 해서 자연스럽게 습관화하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23시~5시가 가장 적당한 수면시간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 근거로 체온이 내려가는 시간대가 오후 11시~오전 1시인데 이때가 잠을 깊이 들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체온이 올라가는 시간대인 오전 5시~6시는 잠이 얕아지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체온이 상승 곡선에 접어드는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면시간이라고 말한다. 또 아침의 1시간은 오후의 3시간과 맞먹기 때문에 이때의 두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24시간 중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법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깨어있는 동안 무엇이든 온 힘을 다해라'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즐겁게 식사하다 보면 잠도 '열심히' 잘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전 5시, 딱 새벽기도 시간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침형 인간으로 훨씬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벽기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유익과 능력이 주어질까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말은 한다. 사위감이나 며느리감을 고를 때, 신랑감이나 신부감을 고를 때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을 고르라. 왜? 적어도 그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사람은 그의 믿음과 생활을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아내가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어서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자체 건물이 없어 새벽기도회를 못하고 있지만, 집에서 가능하다. 오전 5시든 6시든 일어서나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 말씀과 기도로 시작한다면 그 하루는 어떠할까? 나의 영혼과 인격과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영향력이 생기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능력이 주어질까? 어떤 지혜가 생길까?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훨씬 더 정화되지 않을까? 우리의 믿음도 성장하고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가 더 쉽지 않을까?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가 주어지지 않을까? 시험을 이겨내는 능력과 영적 은혜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성경 66권 중에서 말씀에 대한 묵상에 대한 것이 바로 시편이다. 시편은 고난 중이든 평안할 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이고 노래이며 시며 삶이다.
나는 시편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큐티를 제일 먼저 하는데,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큐티지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큐티는 교회 큐티지를 가지고 하지만 틈틈이 시편을 많이 읽고 묵상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무 좋다. 우리 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있으면 시편을 가지고 했을 것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 '말씀으로 여는 하루'라고 했는데, 시편을 통해서 말씀으로 하루는 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유익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면서 새해에는 말씀으로 하루는 여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
시편에 보면 말씀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율법, 법, 법도, 규례, 율례, 도 등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는 시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시편 119:147-148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기도다. 새벽기도가 한국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이스라엘 땅에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면 참 머리가 맑고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아침에 두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24시간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집중력과 판단력을 말씀 묵상과 기도에 쏟는다면 얼마나 깊이 있는 영성의 시간이 되겠는가?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작해보자. 30분을 하던 한 시간을 하던 시작해보자. 당신의 영성의 깊이가 놀라울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시편 143:8도 역시 말씀과 기도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아침 이른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의 유익이 여기에 있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묵상하는 말씀 속에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늘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내 영혼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게 맡겨주신 오늘 하루의 시간도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회사나 학교를 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러다가 가족끼리 말다툼하면서 집을 나서는 어수선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이렇게 아침 일찍이 일어나 주님과 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위해 기도함으로 시작하는 삶과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무엇이 달라질까?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마치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순도 100%의 은 같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순결하다는 의미지만, 이처럼 순결한 말씀이 나의 영혼을 정화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나의 영혼과 내 영혼의 깊은 곳까지 찔러 조개며 나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판단하셔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나의 문제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결단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영혼을 순전한 은처럼 단련시켜 주신다.
시편 19:7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이 바로 그 영혼이 소생됨과 지혜이다. 에스겔서에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들로 가득한데 하나님의 영으로 마른 뼈들이 소생하여 군대가 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른 뼈와 같았던 죽어있고 메마른 영혼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거룩한 군대가 된다는 환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마른 뼈와 같은 영혼, 메말라 있는 영혼, 병들어 있는 영혼, 상처 난 심령을 고치시고 살리시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마다 먹으라. 그 말씀이 당신의 영혼을 더욱 더 살리고 강하게 할 것이다.
또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혜가 주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며, 옳고 행복한 삶에 대한 지혜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말씀을 듣는 자, 말씀을 묵상하는 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어지고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된다.
호세아서에서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취직을 못해서 승진을 못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나라가 망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면 인간이 가는 길이 뻔하다.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불순종이다. 내 탐욕과 죄성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망하는 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따라서 이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하고 읽고 듣고 배우기를 힘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으나 꾸준히 하다보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다.
또한 삶의 지혜도 얻게 된다. 인생의 지혜도 얻게 된다. 시편의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씀을 한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시 119:100)
인생의 지혜는 노인에게 물으라는 말이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생긴 경험적인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나은 지혜가 바로 말씀에 있다는 것이다. 노인의 지혜는 인생의 지혜지만 개인적인 것이기에 때로는 그리 지혜롭지 않은 고집과 편견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경을 묵상하는 자에게는 참된 인생의 지혜가 주어진다. 성경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고 의미있고 풍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인지를 말씀하고 계시다.
아는가? 세상의 많은 경영 원리, 대인관계의 원리, 리더십 등등이 다 성경에서 나온 원리라는 것을. 세상에서도 성경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말씀을 묵상하라. 읽고 듣고 배우라. 그 말씀이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지혜를 줄 것이다.
시편 37:31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 말씀이 있는 자는 그의 걸음이 실족함이 없다는 말씀이다. 걸음이 실족하다, 인생의 길에서 넘어짐을 뜻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유혹과 시련과 시험이 있다. 그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시련으로 인해 실족하고 시험에 들어 낙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는 이러한 유혹과 시련과 시험이 와도 걸려 넘어져서 실족하지 않는다. 왜? 119:101 말씀에 그 답이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왜 유혹에 넘어가고 시련으로 인해 실족하고 시험에 드는가? 나의 발을 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는 사람은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한다. 당연한 귀결이다.
시편 119:11 말씀도 같은 내용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게는 유혹과 시련과 시험을 이길 힘이 없다. 그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어진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 말씀이 나의 발을 지켜주셔야 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발을 금하는 실천을 통해 유혹과 시련과 시험을 이길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간직하여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발을 금하는 자들이 되라.
또한 말씀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에게는 고난 가운데서도 주어지는 위로가 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
어느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고난이 찾아온다. 예외는 없다. 그럴 때 나를 살리는 위로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나를 살릴 위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고난 가운데서도 나를 살리시는 위로의 말씀이 있으면 거뜬히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아하! 기가 막힌 말아닌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고난을 이긴 자요 고난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사람이다. 고난을 통해 얻은 유익이 무엇인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전에 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욥도 같은 말을 했다. 극심한 고난을 통해 그는 엄청난 유익을 얻었다. 무엇인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룰 뵈옵나이다."(욥 42:5)
이전에는 귀로만 주의 말씀을 듣다가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안이 열린 것이다. 영적인 안목과 통찰력과 분별력이 생긴 것이다.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고난은 무익한 것이 아니라 유익하다.
단, 어떨 때?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붙드는 사람에게!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붙들며 살라. 고난이 왔을 때, 인생의 위기에서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들라.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위로하고 나를 깨우쳐 영적인 안목이 열리게 할 것이다.
시편 119:105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의 인생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우리 인생의 본질이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바로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염려하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이러한 염려와 불안과 걱정에서 자유할 수 있다. 왜? 주의 말씀은 영원하고 나를 향한 불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말씀이 내 인생의 길에 등이 되고 빛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왤까? 좀 멀리 비추어 주시면 안 될까? 주의 말씀은 내 앞 100미터, 1000미터까지 비취어 주는 서취 라이트요 하면 속이 시원할 텐데 왜 내 발을 등이여 내 길에 빛이라고만 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0미터 1000미터 앞까지 비추어주는 빛이 아니다. 내 발 바로 앞의 빛이 있으면 된다. 그 빛이 비추어주고 인도해주시는 대로 가면 된다. 딴 길로 가니까 문제지 그 길로만 가면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끄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
앞이 가로 막혔다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 쌓였다고 답답해하지 말라. 내 마음대로 성급히 가려고 하지 말라. 인내하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여 말씀에게 묻고 기도하는 가운데 인도하심을 구하라. 그러면 주의 말씀이 내가 가야할 방향과 길을 비춰주실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시편 119:9을 보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특별히 청년의 때에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키우라. 청년 때는 혈기왕성한 시기다. 그래서 유혹이 많다. 청년 때에 더렵혀지려면 급속도로 망가질 수 있다. 그러나 청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년 때부터 아침형 인간이 되라. 청년들을 보면 많은 경우가 야행성 인간이다. 밤이 되어도 도무지 집에 들어가질 않는다. 거리에서 술에 취하고 오락에 빠져 흥청망청한다. 집에 들어가서도 도무지 자질 않는다. 뭐 그리 할 것이 많은지 자질 않는다. 그 나마 그 밤에 말씀 읽고 기도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청년들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나도 청년 때는 야행성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벽형일 때도 많았다. 원래 밤잠이 적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서 밤늦게 자는 편이었다. 그래도 밤에 늘 기도를 했다. 아침에도 가능하면 일찍 일어나서 새벽기도회를 가거나 못 갈 경우는 꼭 큐티를 했다. 한국에서 청년들을 지도할 때는 청년사역의 특성상 올빼미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목사가 새벽기도를 빠질 수 없으니 새벽형이 되었지만 굉장히 피곤했다. 지금은 아침형이지만 그러했다. 청년들이여, 야행성 올빼미에서 아침형 종달새가 되라.
나는 청년 때에 큐티 훈련을 받았다. 군 제대하고 중등부 교사를 할 때 중등부 전도사님을 통해 큐티 훈련을 받았다. 따로 큐티 노트까지 준비해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깨닫고 결단한 바를 기록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나눔을 가졌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큐티를 하고 있다. 이 큐티의 훈련이 말씀 준비에도 많은 유익이 되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응답을 나는 큐티를 통해 받았다. 그때 큐티를 통해 응답을 받았을 때 내 입안에서는 꿀보다 던 단맛으로 가득 찼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그전까지는 이 말씀을 비유적인 것으로 보았다. 꿀보다 더 단 맛처럼 느껴진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런데 청년 때에 큐티를 하던 중에 7년 동안 기도하던 기도 제목에 대해 응답해 주셨을 때 나는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내 입 안에서 꿀보다 더 단 맛이 가득 찼었다. 나 스스로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못 믿겠는가?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사모하면서 말씀을 묵상해보라. 말씀으로 응답해주실 때 그 맛이 어떤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떤 마음 자세로 해야 하는지를 보자.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13)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은 하나님도 잡고 세상의 다른 것도 잡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엘리야 선지자 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바알을 따른 것과 같은 경우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들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라. 그리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라. 거기에서 크신 은혜가 주어진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 119:72)
주의 말씀을 사랑함이 이 정도까지 가야 한다. 천천 금은이란 천천, 이천 개의 금은이란 뜻이 아니다. 천은 성경 히브리어에서 많은 숫자를 뜻한다. 그 천을 이중으로 반복했을 때는 매우 많음을 뜻한다. 즉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다는 말은 매우 많은 금은, 즉 재물이나 부귀영화보다 좋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그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심을 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축복이 주어진다. 이 축복을 받기를 축원한다.
말씀을 묵상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라. 시편 119:25 말씀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25)
성령께서 내 눈을 열어 주셔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해주셔야 말씀 가운데서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을 대하기 전이 이 기도를 드리라. 나는 늘 말씀을 묵상할 때든, 읽을 때든, 설교를 준비할 때든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한다.
또한 말씀에 대해 순종의 마음으로 대하라.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6)
기가 막히지 않은가? 나의 소유는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이 자신의 소유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34에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이 되고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나의 소유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을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들을 때마다 우리의 결심은 이러해야 한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6)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의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결단도 하고자 하는 의지도 노력도 없다면 우리는 큰 병에 걸리고 만다. 무엇인가? 귀만 커지는 병이다. 영적 비만에 걸리고 만다. 영적 교만에 빠지고 만다. 말씀을 가지고 이러 저리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교만에 빠지고 만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병을 갖고 있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정작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를 않다. 매우 심각한 일이다. 교인들 수는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영적 어린아이들로 우글거린다. 도무지 성장하질 않는다. 모태신앙이고 3대, 4대 째 신앙이고, 장로, 권사, 집사라는데도 여전히 어린아이다. 말씀이 들어가질 않는다. 말씀을 듣지 않는데 무슨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며, 말씀을 지키지 않는데 무슨 거룩한 삶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라. 그리고 결단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하라. 노력을 해도 다 못 지키는 것과 아예 노력조차 안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높이뛰기 선수가 하루아침에 높이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시도하고 끝없는 결심과 노력이 있을 때 자신이 목표한 높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결심하라. 굳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라. 오늘 열 중에서 하나를 했으면 내일은 열 중에서 둘을 할 수 있고 그 다음 날에는 열 중에서 셋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쌓여 당신의 영성을 만들어 주고 당신의 인격과 삶의 변화시킬 것이며 당신의 삶을 풍성하고 건강하고 능력 있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시편 1편을 보자. 시편 1편은 시편의 표제이고 결론이다. 제목이면서 내용이면서 동시에 결론이다. 시편의 핵심은 말씀이다. 읽어보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은 '복있는 사람은'이란 말로 시작한다. 이를 원어로 보면 "복되다 이 사람!"이다. 인생의 참다운 복이 무엇인가? 그것을 시편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요약이자 결론이 바로 시편 1편이다.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의 죄악된 모습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 대신 무엇을 하는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인생의 가뭄과 환난이 와도 결코 시들어 죽지 않을뿐더러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영혼의 열매, 인격의 열매, 삶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얻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형통하게 하신다.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고 의인들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인정하신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알다라는 뜻의 '야다'이다. 이 야다라는 단어는 오늘날 히브리어와 다르다. 부부간의 깊은 앎을 뜻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날마다 아침마다 밤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듣고 배우면서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을 아신다는 것이다. 깊이 아신다는 것이다. 그의 형편이 어떠한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곧 응답을 뜻한다. 그 능력의 손을 펴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하늘의 은혜를 주시고 영적 권세를 주신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주시고 내 길을 친히 인도해주신다. 이 놀라운 은혜를 맛보는 자들이 되라.
이제 내일이면 새해가 밝아온다. 오늘 이 시간 한해의 마지막 날에 결단하라.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하라. 그리고 당장 실천하라. 처음에는 힘들지만 두 눈 딱 감고 백일만 해라.
그러면 당신의 몸에 습관이 되어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고, 후에는 말씀의 맛을 알게 되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이 당신의 영혼과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하게 하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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