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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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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
2011년 1월 1일(토) 신년수련회 셋째 날 샤밧예배
본문: 사도행전 9:31
2011년 첫 샤밧 예배다. 1월 1일 첫날에 샤밧 예배를 드리는 감격이 크다. 첫날을 드렸으니 시작이 반이다. 이제 반만 예배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매년 새해가 되면 교회마다 새로운 표어를 내 건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올해 교회 표어가 무엇인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이다. 뒤에 느낌표를 주목하라.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표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똑같은 표어를 쓰기 무엇하니까 새로운 것으로 내 거는 것이 아니다. 표어는 그 교회의 비전이고 소망이며 기도 제목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목표이다. 담임목사가 일 년 동안의 목회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정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 주님께서는 사도행전 9:31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과 소망과 방향과 목표를 주셨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할 목표이다. 이 말씀은 특별히 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 교회가 어떠한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말씀이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씩 보도록 하자.
먼저 본문 말씀을 헬라어 원어에서 직역하여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성경도 잘 번역되어 있지만 좀 더 분명하게 뜻을 알기 위해서는 직역이 필요하다.
"주님의 공동체, 즉 교회들이 평안하였고,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땅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졌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교회들이 나아가고 성장하였고, 성령께서 교회들을 이끌어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해주심으로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더욱 든든히 서 나가게 되었다."
보다 뜻이 분명해진다. 이제 직역한 본문을 가지고 하나씩 보도록 하자.
그 첫째는 평안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평안이라 함은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이고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기록은 헬라어지만 그 의미는 히브리어 샬롬의 뜻으로 봐야 한다.
샬롬이 무엇인가? 몇 번 말씀을 드렸다. 샬롬은 샬렘, 완전함을 뜻한다. 아무런 흠집도, 결함도, 손상도 없는 상태가 바로 완전함이다. 이러한 완전함은 하나님 밖에는 없다. 그러기에 진정한 샬롬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은 참된 샬롬을 누릴 수 있다.
교회의 샬롬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온전해야 교회는 샬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온전하게 올바르게 서 있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교회의 샬롬은 임하게 된다.
세부적으로는 예배에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이 받으실만한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샬롬이 임한다. 교회의 운영에 있어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사람의 뜻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운영되어야 주님의 샬롬이 임한다. 섬김과 봉사에서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의 모범에 따라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고 사랑하고 봉사해야 주님의 샬롬이 임한다. 복음 전도에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은 뱃놀이하라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배가 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에는 샬롬이 없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교회에는 샬롬이 있다. 우리 텔아비브 욥바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배와 교회 운영과 섬김과 봉사와 사랑과 선교에 주님의 샬롬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는 교회가 온 땅에 두루 세워지기를 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 곳곳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초대교회 때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땅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하면 예루살렘 교회만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물론 가정 교회의 형태가 많았지만 복음의 역사가 있었다.
실제로 갈릴리만 봐도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 생가에 교회가 세워졌다. 베드로의 집에서 예배가 드려졌다. 사마리아에도 초대교회 당시의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있는 욥바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그 교회가 바로 다비다와 피장 시몬이 있었던 욥바교회이다. 매우 아름답고 능력 있고 건강한 교회였다. 그 교회의 전통을 우리가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만 오천 명 정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있고 백여 개의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다. 또한 아랍 크리스천 수가 십만 명 정도 된다. 전체 인구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이들의 수가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하고 교회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 곳곳에 세워지기를 기도해야한다.
요즘 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 유대교 정통파 종교인들 수가 약 10만 명 정도 되는데 속히 메시아닉 유대인들 수가 이들을 뛰어넘어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존중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슈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유대교인들과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이제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비난을 받고 차별을 받는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지난 성탄 거리찬양 때 유대인 여자분 한명이 우리가 찬양하는 옆에서 찬양을 듣고 있었다.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다. 조금 있더니 그런다. 자기 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메시아닉 교회를 다니고 있단다. 그래서 당신도 가느냐 했더니 자기는 유대인이기에 가지 않고 다만 아들이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단다. 이것이 지금 유대인들의 사고 속에 있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예슈아를 믿는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유대인이셨다.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다. 초대 교회 역시 유대인들의 교회였다. 예슈아께서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유대인들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첫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성전에 가서 기도했고, 회당에 갔으며, 유대인으로서의 절기와 정결법과 할례를 지켰다. 후에 유대교와의 갈등과 핍박, 그리고 기독교 공인 등으로 인해 결국 기독교로 갈라지게 된 것이지 최초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다. 다만 예슈아를 메시아로 구원자로 믿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유대인으로서 예슈아를 믿는 것은 진짜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메시아닉 교회들을 봐도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유대인의 절기와 전통을 지키고 있고 동시에 복음의 능력과 자유를 경험하고 있다.
요 근래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문에서 특집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 가운데 교수, 의사, 변호사, 기업가 등이 나오고 있는데 정계에도 진출하고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수가 정통파 유대인들보다 많아져서 중요한 위치들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이들을 인정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더불어 더 많은 곳에 교회가 세워져 모든 마을마다 메시아닉 교회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아직 담임목사로 청빙 받기 전에 예루살렘 감람산 중턱에 있는 주님 눈물교회에서 기도한 적이 있었다.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었다.
예배당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예루살렘 성이 보이는 데 갑자기 그 안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과 이방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른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보여준 환상이 바로 이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교회를 맡을 때에도, 담임목사 청빙을 받고 한 달여간 기도했을 때에도 주님께서 동일한 마음을 주셨다. 한인들이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되겠지만 이스라엘 선교에 대한 마인드와 열정만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선교를 첫째 되는 비전과 사명으로 삼아 순수하고 열정적인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단체들을 발굴하여 매달 지원하고 있고, 2년 전부터는 유대인 선교 협력 사역에 대한 마음과 꿈을 주셔서 얼마 전부터 유대인 협력 사역을 하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단체들을 지원하고 중보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그들의 사역에 함께 동역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유대인 선교 협력 사역이 더 열매 맺고 확대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지 이스라엘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교회들을 세우는데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고 목표이다. 이 비전을 위해 더욱 헌신하자.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섬김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열정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자.
이스라엘 선교와 청년 선교는 우리 교회의 핵심 사역이고 비전이다. 이 일을 위해 교회 예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교회는 재정적으로 미자립 교회여서 한국에서 후원을 받고 있지만,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기에 재정의 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먹고 즐기는 것은 우리 돈으로 쓰고 헌금은 비전과 사명을 위해 쓰고자 애쓰고 있다. 헌금 많이 하라.
우리가 이스라엘에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우리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 성지에 주님을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주님의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비전이고 기도의 제목이고 헌신의 내용이 되기를 소망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와 순종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다. 우리 각자의 주인이실 뿐더러 교회의 주인이시다. 사람이 주인노릇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전에 한국에서 온 어느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목회의 고충을 묻기에 하나 이야기 했다. 이스라엘은 이민 사회가 아니라 교인들의 이동이 많은 것이 목회의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그러시더라. "주인 노릇할 사람 없어 좋네."
그 말을 들으니 그랬다. 이것이 고충만이 아니고 복도 되는구나. 물론 짧은 기간이어도 주인 노릇하려고 하면 못할 것 없다. 그러나 사람이 주인 노릇하려고 할 때 교회는 어려움에 빠진다. 정체되고 이윽고 썩게 된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이 세운 공동체이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참다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핏값을 주고 사신 것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하다.
그러기에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 되시어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와 온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야 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늘 겸손히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합심하여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 안에 주님의 뜻이 있다. 주님의 뜻은 갑자기 뚝하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와 온 교우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기도와 말씀에 힘씀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운영위원들과 선교회 임원들과 직분을 맡은 자들은 더욱 더 이러한 마음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기를 바란다. 기도하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말씀 앞에 서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말자. 그러자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온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있는 동안 최고의 영광이요 최고의 은혜이며 최고의 축복은 성지에 주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우리가 죽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가장 칭찬 받을 일은 성지 이스라엘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데 나를 드렸다는 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과 목표를 행해 함께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당장 내일 떠나더라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거나 말씀을 전해주신 분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교회에 예배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배가 좋다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은혜로운 예배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야만 되지만 우리 자신이 예배자가 되어야 가능하다. 먼저 예배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라.
내가 강조하는 말이 일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예배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예배의 은혜 없이 일만 하다가는 지치고 만다. 상처 받기 쉽고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기 쉽다.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것은 매우 귀하다. 주님께서 크게 상급을 주실만한 일이다. 그러나 예배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 예배에 집중하라. 예배자의 마음으로 일하라. 그 마음과 태도로 봉사하고 섬기고 사랑하라. 그리고 예배자의 마음으로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배 없이 일주일을 산다고 했을 때는 뻔한 것이다. 영적으로 둔해지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만다. 죄를 안 지으면 다행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네 번째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끌다, 우리 성경에는 성령의 위로라고 했는데, 원 뜻은 management, encouragement, comfort이다. 성령께서 친히 교회를 이끄시고 다스리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 주님께서 세우시긴 했으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고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약점과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하고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성령께서 모두를 만져주셔야 한다. 모두를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셔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에 성령의 위로하심을 본다. 성령께서 우리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는 것을 본다. 만져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바른 길로 이끄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더욱 더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더욱 더 성령 충만을 사모하자.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내 심령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뜻을 깨닫고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그리고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힘쓰라.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쓰라.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거룩과 순결한 삶을 살라. 특히 성적인 부분에 조심하라. 성은 육체적인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영혼을 더럽히는 죄를 가져온다.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라.
무엇보다 사랑하라. 남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라. 사랑이 성령 충만의 핵심이고 열매이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사랑으로 충만하다.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다. 거룩과 순결함이 있다. 복음의 열정이 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것이라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열정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 주 전에 이사야서 9:6-7을 가지고 하나님의 passion,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다. 다시 한번 말씀을 보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메시아의 탄생과 메시아를 통해 시작되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인데, 이 예언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열정을 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열정을 품는 자는 예배자가 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예배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시고 예배를 통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은혜주시고 복 주시길 원하신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은 예배의 열정이 있다. 그래서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하나님의 열정은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모든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예언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다. 한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품은 자들은 사랑의 열정이 있다. 한 영혼을 위한 뜨거운 눈물이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손길이 있다.
하나님의 열정은 선교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다. 메시아를 보내시고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은 열방의 구원을 향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해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이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한 동족과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열정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분야,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길 원하는 열정이다. 인본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죄악과 거짓으로 물든 세상을 하나님의 정의와 법이 세워지는 곳으로 바꾸길 원하는 열정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저 나 하나 구원받아 잘 먹고 잘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내가 살아가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고 꿈이고 열정이다.
이 열정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열정을 품은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나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 나의 삶을 드리는 열정의 비전 메이커가 되라. 우리 교회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교회,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교회가 세워진지도 4년이 지났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다. 밤을 새도 다 말하지 못할 정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고, 성령의 위로하심과 힘주시고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함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가 Acts 29를 써나가자. Acts 29는 사도행전 29장을 말한다. 성경을 보면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미완성이다. 진행형이다. 이 말은 그 뒷장을 우리가 계속 써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29장은 우리가 써 나가야 할 chapter이다. 성지 이스라엘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평안하여 든든히 서 나가는 교회가 되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1년 1월 1일(토) 신년수련회 셋째 날 샤밧예배
본문: 사도행전 9:31
2011년 첫 샤밧 예배다. 1월 1일 첫날에 샤밧 예배를 드리는 감격이 크다. 첫날을 드렸으니 시작이 반이다. 이제 반만 예배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매년 새해가 되면 교회마다 새로운 표어를 내 건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올해 교회 표어가 무엇인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이다. 뒤에 느낌표를 주목하라.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표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똑같은 표어를 쓰기 무엇하니까 새로운 것으로 내 거는 것이 아니다. 표어는 그 교회의 비전이고 소망이며 기도 제목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목표이다. 담임목사가 일 년 동안의 목회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정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 주님께서는 사도행전 9:31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과 소망과 방향과 목표를 주셨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할 목표이다. 이 말씀은 특별히 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 교회가 어떠한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말씀이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씩 보도록 하자.
먼저 본문 말씀을 헬라어 원어에서 직역하여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성경도 잘 번역되어 있지만 좀 더 분명하게 뜻을 알기 위해서는 직역이 필요하다.
"주님의 공동체, 즉 교회들이 평안하였고,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땅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졌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교회들이 나아가고 성장하였고, 성령께서 교회들을 이끌어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해주심으로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더욱 든든히 서 나가게 되었다."
보다 뜻이 분명해진다. 이제 직역한 본문을 가지고 하나씩 보도록 하자.
그 첫째는 평안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평안이라 함은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이고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기록은 헬라어지만 그 의미는 히브리어 샬롬의 뜻으로 봐야 한다.
샬롬이 무엇인가? 몇 번 말씀을 드렸다. 샬롬은 샬렘, 완전함을 뜻한다. 아무런 흠집도, 결함도, 손상도 없는 상태가 바로 완전함이다. 이러한 완전함은 하나님 밖에는 없다. 그러기에 진정한 샬롬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은 참된 샬롬을 누릴 수 있다.
교회의 샬롬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온전해야 교회는 샬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온전하게 올바르게 서 있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교회의 샬롬은 임하게 된다.
세부적으로는 예배에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이 받으실만한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샬롬이 임한다. 교회의 운영에 있어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사람의 뜻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운영되어야 주님의 샬롬이 임한다. 섬김과 봉사에서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의 모범에 따라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고 사랑하고 봉사해야 주님의 샬롬이 임한다. 복음 전도에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한다. 주님은 뱃놀이하라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배가 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에는 샬롬이 없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교회에는 샬롬이 있다. 우리 텔아비브 욥바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배와 교회 운영과 섬김과 봉사와 사랑과 선교에 주님의 샬롬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는 교회가 온 땅에 두루 세워지기를 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 곳곳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초대교회 때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땅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하면 예루살렘 교회만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물론 가정 교회의 형태가 많았지만 복음의 역사가 있었다.
실제로 갈릴리만 봐도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 생가에 교회가 세워졌다. 베드로의 집에서 예배가 드려졌다. 사마리아에도 초대교회 당시의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있는 욥바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그 교회가 바로 다비다와 피장 시몬이 있었던 욥바교회이다. 매우 아름답고 능력 있고 건강한 교회였다. 그 교회의 전통을 우리가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만 오천 명 정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있고 백여 개의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다. 또한 아랍 크리스천 수가 십만 명 정도 된다. 전체 인구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이들의 수가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하고 교회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 곳곳에 세워지기를 기도해야한다.
요즘 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 유대교 정통파 종교인들 수가 약 10만 명 정도 되는데 속히 메시아닉 유대인들 수가 이들을 뛰어넘어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존중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슈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유대교인들과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이제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비난을 받고 차별을 받는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지난 성탄 거리찬양 때 유대인 여자분 한명이 우리가 찬양하는 옆에서 찬양을 듣고 있었다.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다. 조금 있더니 그런다. 자기 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메시아닉 교회를 다니고 있단다. 그래서 당신도 가느냐 했더니 자기는 유대인이기에 가지 않고 다만 아들이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단다. 이것이 지금 유대인들의 사고 속에 있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예슈아를 믿는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유대인이셨다.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다. 초대 교회 역시 유대인들의 교회였다. 예슈아께서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유대인들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첫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성전에 가서 기도했고, 회당에 갔으며, 유대인으로서의 절기와 정결법과 할례를 지켰다. 후에 유대교와의 갈등과 핍박, 그리고 기독교 공인 등으로 인해 결국 기독교로 갈라지게 된 것이지 최초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다. 다만 예슈아를 메시아로 구원자로 믿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유대인으로서 예슈아를 믿는 것은 진짜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메시아닉 교회들을 봐도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유대인의 절기와 전통을 지키고 있고 동시에 복음의 능력과 자유를 경험하고 있다.
요 근래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문에서 특집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 가운데 교수, 의사, 변호사, 기업가 등이 나오고 있는데 정계에도 진출하고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수가 정통파 유대인들보다 많아져서 중요한 위치들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이들을 인정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더불어 더 많은 곳에 교회가 세워져 모든 마을마다 메시아닉 교회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아직 담임목사로 청빙 받기 전에 예루살렘 감람산 중턱에 있는 주님 눈물교회에서 기도한 적이 있었다.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었다.
예배당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예루살렘 성이 보이는 데 갑자기 그 안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과 이방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른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보여준 환상이 바로 이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교회를 맡을 때에도, 담임목사 청빙을 받고 한 달여간 기도했을 때에도 주님께서 동일한 마음을 주셨다. 한인들이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되겠지만 이스라엘 선교에 대한 마인드와 열정만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선교를 첫째 되는 비전과 사명으로 삼아 순수하고 열정적인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단체들을 발굴하여 매달 지원하고 있고, 2년 전부터는 유대인 선교 협력 사역에 대한 마음과 꿈을 주셔서 얼마 전부터 유대인 협력 사역을 하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단체들을 지원하고 중보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그들의 사역에 함께 동역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유대인 선교 협력 사역이 더 열매 맺고 확대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지 이스라엘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교회들을 세우는데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고 목표이다. 이 비전을 위해 더욱 헌신하자.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섬김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열정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자.
이스라엘 선교와 청년 선교는 우리 교회의 핵심 사역이고 비전이다. 이 일을 위해 교회 예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교회는 재정적으로 미자립 교회여서 한국에서 후원을 받고 있지만,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기에 재정의 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먹고 즐기는 것은 우리 돈으로 쓰고 헌금은 비전과 사명을 위해 쓰고자 애쓰고 있다. 헌금 많이 하라.
우리가 이스라엘에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우리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 성지에 주님을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주님의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비전이고 기도의 제목이고 헌신의 내용이 되기를 소망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와 순종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다. 우리 각자의 주인이실 뿐더러 교회의 주인이시다. 사람이 주인노릇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전에 한국에서 온 어느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목회의 고충을 묻기에 하나 이야기 했다. 이스라엘은 이민 사회가 아니라 교인들의 이동이 많은 것이 목회의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그러시더라. "주인 노릇할 사람 없어 좋네."
그 말을 들으니 그랬다. 이것이 고충만이 아니고 복도 되는구나. 물론 짧은 기간이어도 주인 노릇하려고 하면 못할 것 없다. 그러나 사람이 주인 노릇하려고 할 때 교회는 어려움에 빠진다. 정체되고 이윽고 썩게 된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이 세운 공동체이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참다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핏값을 주고 사신 것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하다.
그러기에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 되시어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와 온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야 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늘 겸손히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합심하여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 안에 주님의 뜻이 있다. 주님의 뜻은 갑자기 뚝하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와 온 교우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기도와 말씀에 힘씀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운영위원들과 선교회 임원들과 직분을 맡은 자들은 더욱 더 이러한 마음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기를 바란다. 기도하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말씀 앞에 서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말자. 그러자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온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있는 동안 최고의 영광이요 최고의 은혜이며 최고의 축복은 성지에 주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우리가 죽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가장 칭찬 받을 일은 성지 이스라엘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데 나를 드렸다는 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과 목표를 행해 함께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당장 내일 떠나더라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거나 말씀을 전해주신 분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교회에 예배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배가 좋다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은혜로운 예배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야만 되지만 우리 자신이 예배자가 되어야 가능하다. 먼저 예배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라.
내가 강조하는 말이 일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예배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예배의 은혜 없이 일만 하다가는 지치고 만다. 상처 받기 쉽고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기 쉽다.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것은 매우 귀하다. 주님께서 크게 상급을 주실만한 일이다. 그러나 예배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 예배에 집중하라. 예배자의 마음으로 일하라. 그 마음과 태도로 봉사하고 섬기고 사랑하라. 그리고 예배자의 마음으로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배 없이 일주일을 산다고 했을 때는 뻔한 것이다. 영적으로 둔해지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만다. 죄를 안 지으면 다행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네 번째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끌다, 우리 성경에는 성령의 위로라고 했는데, 원 뜻은 management, encouragement, comfort이다. 성령께서 친히 교회를 이끄시고 다스리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 주님께서 세우시긴 했으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고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약점과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하고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성령께서 모두를 만져주셔야 한다. 모두를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셔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에 성령의 위로하심을 본다. 성령께서 우리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는 것을 본다. 만져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바른 길로 이끄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더욱 더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더욱 더 성령 충만을 사모하자.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내 심령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뜻을 깨닫고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그리고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힘쓰라.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쓰라.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거룩과 순결한 삶을 살라. 특히 성적인 부분에 조심하라. 성은 육체적인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영혼을 더럽히는 죄를 가져온다.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라.
무엇보다 사랑하라. 남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라. 사랑이 성령 충만의 핵심이고 열매이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사랑으로 충만하다.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다. 거룩과 순결함이 있다. 복음의 열정이 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것이라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열정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 주 전에 이사야서 9:6-7을 가지고 하나님의 passion,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다. 다시 한번 말씀을 보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메시아의 탄생과 메시아를 통해 시작되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인데, 이 예언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열정을 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열정을 품는 자는 예배자가 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예배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시고 예배를 통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은혜주시고 복 주시길 원하신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은 예배의 열정이 있다. 그래서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하나님의 열정은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모든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예언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다. 한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품은 자들은 사랑의 열정이 있다. 한 영혼을 위한 뜨거운 눈물이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손길이 있다.
하나님의 열정은 선교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다. 메시아를 보내시고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은 열방의 구원을 향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해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이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한 동족과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열정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분야,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길 원하는 열정이다. 인본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죄악과 거짓으로 물든 세상을 하나님의 정의와 법이 세워지는 곳으로 바꾸길 원하는 열정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저 나 하나 구원받아 잘 먹고 잘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내가 살아가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고 꿈이고 열정이다.
이 열정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열정을 품은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나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 나의 삶을 드리는 열정의 비전 메이커가 되라. 우리 교회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교회,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교회가 세워진지도 4년이 지났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다. 밤을 새도 다 말하지 못할 정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고, 성령의 위로하심과 힘주시고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함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가 Acts 29를 써나가자. Acts 29는 사도행전 29장을 말한다. 성경을 보면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미완성이다. 진행형이다. 이 말은 그 뒷장을 우리가 계속 써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29장은 우리가 써 나가야 할 chapter이다. 성지 이스라엘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평안하여 든든히 서 나가는 교회가 되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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