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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믿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53 추천 수 0 2015.11.02 09: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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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1-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장 1절-6절: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영적 근원의 활동을 보는 그 실상의 깊이를 사람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이거는 일반사람의 입장에서 또는 세상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차원이 다른 세계이므로 일반적인 활동과는 개념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 그래서 그 깊이를 헤아리지를 못한다.


성경은 전부 영적인 면에서의 얘기다. 영능의 사람, 영적 실력, 영인성장의 기능 지능 등 사람의 제일 핵심 되고 중심 되는 실상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거기에 이해타산을 대는 게 아니다.


그러면 영적 실상의 깊이를 안다고 해서 밥 굶어 죽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다.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리라.’


기독교는 사람의 가치를 보는 거다. 그러면 그 사람의 가치가 어디서 나오는 거냐?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믿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가 나온다.


수십 년을 예수를 믿어도 영적 기능 지능 면에서 둔감하다면 이거는 우리 입장에서는 일반취급이다. 또한 일반세상의 학박사라도 이건 일반취급이다. 일반차원에서 논하는 그 수준에서의 얘기지 차원적으로 보면 다 땅의 차원이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교회 다니면서 자기의 실상을 보는 거다. 세상 나그네 생활 동안에 이걸 볼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실상을 바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걸 보시는 거고 이걸 인정해 주시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이걸 배우고 깨닫는 거고, 예수 믿으면서 이걸 알아야 한다. 인간이면서 이걸 모르고 죽는다면 그렇게 불행할 수 없는 거다.


타락된 사람들은 일반개념으로 예수 잘 믿고 세상부자로 잘 살고 그런 걸 축복이라 하지만 그건 가견적인 것이고 값나가는 게 아니다. 그건 임시성이요 도둑맞고 바람 불면 날아가고 불나면 타지는 거다. 이게 진짜가 아니다. 예수 믿으면서 그 생각을 바꿔라. 이게 안 바꿔졌으면 지식이 안 바꿔진 것이다. 지식이 안 바뀌면 사람도 안 바뀐다.


그 정신을 바꾼 다음에 믿는 자로서 농사를 짓거나 관공서에서 일을 하거나 하는 건 사람을 사귈 수 있고 옳은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매개물이다. 일거리는 전부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매개물들이다. 그게 신앙생활이요 믿음생활이다.


교회 와서 기도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도 좋지만 가정에 돌아가서도 믿음생활이 잘 돼야 한다. 그래야 사회도 건전하게 돌아가고 그 사회 그 국가가 튼튼한 거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그런 국가는 아무리 소국가라도 큰 국가가 넘겨다보지 못한다.


일반차원에서라도 그 민족성이 하나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정치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면 국민들 마음도 일반적 차원에서도 동요가 되고, 그러면 외국에서도 우습게 본다. 정치인들이 그것도 알아야 한다. 공부는 왜 하고 정치는 왜 하느냐?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기발한 생각을 해도 전부는 현상적인 생각이다. 현상적인 지식만 배웠으니까 현상적인 생각만 나오고, 자기의 이해타산도 역시 현상적인 것이고, 결과도 현상적인 거다. 자기 실상은 없는 거다. 예수님은 항상 실상이고 그 실상이 항상 일상이고 그것이 항상 실상으로 늘 보통이다. 특별한 게 아니다.


고향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 선악과를 먹고 나온 땅에 속한 생각, 현상적인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건 다 현상세계다. 실상은 천국이다. 천국을 깨닫게 해주려고 물질세상을 만들어 놨다. 예정된 그 날이 되면 다 청소하고 천국으로 들어간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기만 했지 그 말씀이 무엇을 근거하고 나오는지 그 근거를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심오한 깊이는 세상적인 철학적인 인간적인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신의 감동 감화에서 나오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령한 거고 신의 감동으로 들어가 있는 거다. 신령한 것은 항상 신의 감동이 들어가 있다. 성질이 그렇다.


동네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자를 불러서 지혜로운 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 것이다. 우리 기독자도 그래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이 과거에는 동네에서 막 놀고 길거리가 자기 집처럼 살았는데 예수 믿더니 도덕성이 올라가고 성품이 올라가고 가정이 반듯하고, 예수 믿으니 이렇게 되는구나’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예수 믿으면 본이 돼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도 본도 되지 않고, 교회 다니면서도 교회 안에서도 욕을 먹고 다니고, ‘저 사람은 교회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한다면 이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느냐? 인간 네 가치가 그것밖에 없느냐? 이건 인간의 가치를 자기가 떨어뜨리는 거다.


머리가 미련하면 다리가 회초리를 맞는다. 머리가 생각할 때 ‘아이고, 다리야. 네가 얼마나 아프냐? 네가 나 때문에 맞는구나.’


머리 때지지 말라. 머리를 맞으면 사람이 둔팅이가 된다. 둔팅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된다. 사람이라면 모든 면에서 깨닫는 쪽으로 깨우침이 있어야 하고 지혜가 있어야 한다. 항상 머리를 기쁘게, 항상 머리를 시원하게, 항상 머리를 즐겁게 하라. 머리를 아프게 하면 그 사람은 온 몸이 아픈 것이다.


우리는 배우지 못한 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것이다. 꼬리가 된 자를 머리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인도자들은 학을 배워서 자기의 높이를 자기가 만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게 아니다. 그건 학을 가지고 자기 힘으로 자기가 높아지는 거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이 그의 형제들과 같은 사람인줄 알고 천국의 교훈을 무시했다. 예수님께서 사람 되어 오심의 근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데 이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같이 취급을 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역사적으로야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알고 있지만 그 아는 차원이 본문의 동네사람들이 예수를 아는 것처럼 하나의 사람차원으로 알고 있다. 그 속에 있는 것을 봐야 하겠는데 교훈은 보고 놀라면서도 예수님의 표면을 기준으로 보고 ‘그의 형제 누이들이 우리와 같이 있지 아니하냐?’ 한 것처럼 오늘날 세상적인 목회자들도 그런 사고를 갖고 있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은 자신들의 구원을 무시하는 거다.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세상 학벌이 없어서,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박사증 명예가 없어서,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교단배경이 없어서’ 하는 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거다.


교인들 중에는 목사보다 많이 배운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 중에 그런 것 때문에 무시당한 일이 있느냐? ‘그래? 그러면 어디 싸우자. 너희들은 그런 배경을 가지고 나에게 달려들어라. 나는 성경 통째로 배경을 가지고 너희와 싸우겠다’ 하고 나가라.


혹시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간 사람이 있느냐? 성경에서 배워라. 그들보다 훨씬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뭘 봐서 아느냐?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봐라. 무식자를 불러서 유능자로, 유능자를 불러서 부끄럽게 만든다.


그들은 자기 몸 밖의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거다. 성경에 능통하면 너의 실상 자체로 그들을 판단하고 구별하고 비판해 낸다. 이게 참 실력이다.


물질의 배경을 가진 자는 물질이 없어지면 그만 넘어간다. 물질의 배경을 가지고 힘을 쓰기 때문에 그 물질의 배경이 이렇게 저렇게 옮겨지면 그것을 또 따라가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신앙정조를 그런 데 두면 안 된다.


학별, 사회적 명예, 교단배경 때문에 무시를 당했느냐? 뒤로 물러가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 그 용기 그 각오 그 결심이 없으면 목회를 못한다. 그런 각오가 없이 어떻게 이겨나가느냐? 못 이긴다. 예수님의 실력은 참 실력, 실상화 된 참 실력이다. 그들의 양심과 폐부를 찌르고 들어가는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다. 그 실력을 내가 가지면 무서울 게 없는 거다.


목회자의 세계에서 학벌 명예 교단 이런 걸 가지고 따지면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과 똑같다. 왜냐? 예수님은 그런 것 하나도 안 가졌다. 교단은 누가 만들었느냐? 사람이 만들었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 패거리 만들려고.


교단 교파를 만들면서 그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 하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근거를 들고 나온다. 그게 무슨 교단 교파의 근거로 말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그건 잘못된 거다. 기독교 안에는 진리본질 하나뿐이다. 예수님은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진리 본질화 시키는 운동을 했다. 이게 천국복음 운동이다.


기독교 안에서 신학적으로 구원의 서정을 말하라면 각 교파마다 다 다르다. 그러면 어느 게 맞는 거냐? 어느 게 진짜냐? 또 그 구원의 서정은 누가 만들었느냐?


우리가 학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그건 사람에 의해 되는 것이므로 그걸 성경을 깨닫는 면에 이용이 돼서 참 하나님의 본질을 찾아야지 본질은 찾지 못하고 그 신학으로 힘을 얻어서 자랑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신학으로 자기 교단이 몇 조각으로 찢어지고 야단법석이 났느냐?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 진짜라면 왜 쪼개지느냐?


예수님께 교단배경이 있느냐? 박사증이 있느냐? 예수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것밖에 없다. 모든 교단 교파가 예수 덕으로 잘 먹고 잘 살면서 교단 교파를 따지고 있다.


세상 지식적 종교적 학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면 일반사회와 똑같은 집단체를 만들기 마련이다. 쉽게 말하면 정치세계와 질이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은 종교라는 이름만 다르다.


불교계고 기독교계고 자기들끼리 투표하다가 장이 원하는 대로 안 나오면 피터지게 싸운다. 그게 뭐냐? 말하자면 가견적인 것을 가지려고, 없어지는 것을 가지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것이 있으면 예수님을 더 잘 믿는 데로 활용을 해야지 그런 걸 가지고 자기 힘을 나타내려 하니 이건 자신의 구원을 자기가 스스로 무시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구원 무시자는 곧 자기 멸망이다.


말씀의 뜻은 모르고 ‘우리 아들이 목사 됐다. 우리 남편이 목사 됐다.’ 손자도 목사, 며느리도 목사, 할머니도 목사, 장인 장모도 목사. 다 해 먹어라. 그런 가정도 있다.


말씀의 뜻은 모르고 목사된 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은 그게 육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

그런 사람들은 그런 걸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말씀의 뜻을 모른다면, 진정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고 목회를 하고 있다면 이거는 다 거짓 목자로 들어간다. 도매금이다. 잘난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못된 사람들이 목회자들의 세계다.


건물 짓고 교인 많은 것을 보고 목회 성공했다고 그런다면 그게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 ‘내 남편 목사를 아내인 내가 만들었다’ 하면 그게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


목사는 누가 만드는 것이냐? 목사는 누구의 종이냐? 주님의 종이다. 주님이 만드는 거다. 그런데 아내가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목사는 누구의 종이냐? 아내의 종이 되는 것이다. 말의 이치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속에 든 건 볼 게 없는 거다.


학벌 없고 재산 없고 병들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육신적인 조건을 가지고 축복을 따지며 그런 사람은 믿음 없다고 한다면 그게 육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다.


거지 나사로가 믿음이 좋아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가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아서 거지가 된 것이냐? 또한 부자는 불꽃 속에 떨어졌는데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냐? 맞느냐, 틀리느냐?


부자가 죽어서 불꽃 속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에서 부자로 살았다. 그리고 이 부자도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를 보고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역시 부자는 복을 받았다고 한다.(불꽃 속에 들어가기 전에.)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기 전에 부자의 대문에 엎드려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하느냐, 못 받았다고 하느냐? 못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죽어서 결과가 나오니 축복과 저주가 달라져 버렸다.


그러면 이 둘의 결과성을 볼 때 오늘날 내가 어떤 결과성을 보고 믿어야 하겠느냐? 내가 나사로의 결과성을 바라보며 산다면 그것이 영이냐, 육이냐? 영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걸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만 본다면 예수님은 세상적 무슨 좋은 조건을 갖고 있지를 않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 좋은 것을 갖겠다는 조건으로 힘을 쓰는 거냐? 이 땅에는 예수님 당신께서 힘쓸 조건은 아무 것도 없다. 천국에서 인간되어 오셨다는 것을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힘은 천국이다. 천국의 힘을 당신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안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모르니까 세상 것을 힘을 삼으려고 저 야단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절반씩 힘을 삼으면 되는 거냐? 순전히 세상 것으로 힘을 삼을 런지, 순전히 하늘의 것으로 힘을 삼을 런지?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영이고, 육이 되는 건지? 자기 속에서 이건 판단이 나는 거다.


이건 하나님과 자기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마음은 이렇다’ 하고 언젠가는 사건 환경을 통해서 나타내게 된다. 그러니 숨기지 말라. 숨기면 비굴해지고 어리석어지고 쪼잔해지고 사람이 작아진다. 진실한 사람은 크다. 거짓된 사람은 자꾸 작아진다.


4절: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일꾼이,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고향 즉, 세상고향 세상친척 세상적인 자기 집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알아주지를 않는다.


진리이치로 믿고 나가는 성도가 육적으로 예수 믿는 그런 데 들어가면 알아줄 것 같으냐? 자기 말을 들어줄 것 같으냐? 같은 식구지만 무시해 버린다. 마음이 멀다. 그러니까 이 말은 세상 육적인 조건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천국복음은 무시를 당하게 된다는 신앙사상적인 면에서의 말이다.


선지자는 미래를 알게 해주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인데 그를 육신에 속한 마음으로 관계성을 가지게 되면 육적인 관계성을 가지려는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권위성이 무시가 된다. 따라서 자기의 미래도 무시가 된다.


네가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하느냐?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로 되어놓으면 네 장래는 하나님 앞에 무시를 당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밝은 미래는 없다 그 말이다. 세상살이는 누가 움직이느냐? 그러니까 자기 형벌이요 자기의 멸망이요 자기의 고통이 된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게 자기 속에서 아멘이 되느냐?


고향사람들은 육적인 조건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분이신데 세상이 소원하는 그 조건으로 축복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가르친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걸 알아라. 인간 너희들만 모인 거지 구원은 없다. 예수님은 안 계신다. 성령님은 거기에 안 계신다. 성령님은 진리와 동반하시는 건데 육신에 속한 조건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영적 효력은 없이 죽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일등 하라고 기도해줬는데 일등은 안 되고 떨어졌다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냐, 안 들어주신 것이냐? 안 들어준 것이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의 집집마다 일등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니까 예수님이 누구의 기도는 들어주고, 누구의 기도는 안 들어줄 수가 없어서 다 안 들어주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부가 일등이 안 되고 이방인들이 다 일등이 된 것이냐?


예수 믿는 사람이 대학시험 칠 때 뭐라고 기도하느냐? 일등 되게 해달라고 하지 않느냐? 그러면 예수 믿는 다른 집에서도 그렇게 기도할 텐데,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냐? 또한 불교인들은 불교인대로 그럴 것이고. 그러면 석가가 그 기도를 들어주겠느냐?


이렇게 된다면 석가가 불교인을 일등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예수님도 예수 믿는 자를 일등을 만들어 주려고 하니 싸움이 안 붙겠느냐? 왜 그렇게 미신적으로 믿느냐는 말이다. 기도할 바에야 제일 좋은 기도는 ‘실력대로 붙게 해 주십시오’ 하면 솔직한 기도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니 고기가 많이 잡혔다. 그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육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목적이냐,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거냐? 다른 뜻이 있는 거다. 그 고기를 팔면 돈을 많이 버니까 그 목적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뜻이 있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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