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대상28:1-21 |
---|---|
설교자 : | 석기현 목사 |
참고 : | 2012년 7월 22일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대상28장 1-21
여호와께서 나를 택하여
제가 옛날에 미국에서 갓 신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에 어느 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그 교회의 청년회에도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 오후에 청년들끼리만 모이는 성경공부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칼빈의 '예정론'이 나왔는데, 그때 한 청년이 "이 예정과 선택이라는 개념 속에 칼빈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모순이 들어 있다."라고 아주 당당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평소에 신학에 꽤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신학공부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 '하나님께서 미리 다 선택해 놓으셨다면 사람 편의 의지나 행위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니냐?'라는 알미니안주의 식의 비판을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 '선택'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택자를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는 개념은 한 치라도 양보하거나 빼버릴 수 없는 너무나도 귀중한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존재 세계에 대하여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함을 고백하는, 지극히 논리적인 신학입니다.
또한 이것은 구원받게 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편에서 어떤 공로란 것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실로 은혜충만한 교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란 교리는 결코 칼빈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는 진리를 칼빈이 조직신학적으로 체계화해 둔 것일 따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그런 내용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본문은 다윗이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완수하라고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 다윗의 유언 중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사, 택하시고, 택하여"라는 말로서, 본문 1절부터 10절 사이에만 해도 여섯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면서 총정리하고 이제 자기 아들 솔로몬과 백성들에게 그 중차대한 성전건축의 사명을 위임하는 자리에서, 바로 이 생각, 즉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기 아들 솔로몬과 자기 백성을 선택하여 주셨다'는 이 감격에 충만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선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성도'만이 누리게 되는 세 가지 특권적인 은혜가 무엇인지를 주신 말씀을 통해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됩니다.
본문 1절로 4절에 기록하기를 "1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방백 곧 각 지파의 어른과 체번하여 왕을 섬기는 반장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및 왕과 왕자의 산업과 생축의 감독과 환관과 장사와 용사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하고 2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가로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3오직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4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전에 나를 내 부친의 온 집에서 택하여 영원히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나니 곧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족속에서 내 부친의 집을 택하시고 내 부친의 아들들 중에서 나를 기뻐하사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후반 반평생을 오직 성전건축 준비를 위해 바쳐 왔던 다윗은 이제 백성들의 대표자들을 불러 놓고 그 사명을 완수해 줄 것을 유언처럼 당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다윗이 생전에 자기가 직접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허락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신에 "(성전)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처럼 자신을 성전건축을 위한 적임자로 선택해 주지 않으셨다고 해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이미 선택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아 주신 사실이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것을 두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전에 나를 내 부친의 온 집에서 택하여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나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의 선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왕으로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선택은 우선 "유다 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신" 선택이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십이 대 일'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서 "유다 족속에서 내 부친의 집을 택하시고"라고 했으니, 그것만 해도 또 '몇 십 대 일, 몇 백 대 일'은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다시 한 번 "내 부친의 아들들 중에서 나를 기뻐하사" 택해 주셨으니, 그것은 또 '팔 대 일'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학에서 말하는 무슨 '경우의 수'나 '확률' 따위로 따진다면, 몇 십만 내지는 몇 백만 명 중에 다윗 한 명이 뽑힌 것이었습니다.
비록 자기 인생 모두가 자기 뜻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다윗은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이었던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힘을 받게 된 것이 그 얼마나 귀중하고도 고마운 '하나님의 선택'이었는지를 이처럼 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뽑혀서 특별한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보통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발표장에 갔을 때 도저히 혼자 갈 용기가 없어서 제 고종사촌형님과 함께 갔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게시판에서 제 이름을 보게 된 순간, 저는 제 사촌형님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붙잡고 부르르 떨면서 단 두 마디 "붙었어, 붙었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형님께서 제가 그랬다고 하시기에 기억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본고사 경쟁률 '2.5대 1'을 뚫고 저는 선택받은 소수, 그처럼 꿈에 그리던 '상아탑의 무리'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의 감격이란 문자 그대로 날아갈 듯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뽑힘을 받은 것은 그 얼마나 귀중한 일이겠습니까?
그저 죽어 마땅했던 죄인 중 하나에 불과했던 저와 여러분이 그야말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하나님의 선택해 주심을 받음으로써 이 존귀한 성도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선택의 은혜를 깨닫는다면 자신의 인생이 자기 뜻대로 다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불평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사를 모두 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신다고 해서 이미 이런 최고의 특권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감히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구원의 확신 안에서 평생토록 만족하며 늘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도는 선택을 통하여 '축복의 기업을 이어받는 상속자'가 됩니다.
5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에 "5여호와께서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실새 6내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 아비가 될 것임이라 7저가 만일 나의 계명과 규례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날과 같이 하면 내가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셨느니라 8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 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이어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솔로몬에 대하여 언급을 했습니다.
그 첫마디가 바로 "여호와께서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셨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자기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의 되는 것 역시 다윗 자신이 그를 특별히 총애한 까닭에 후계자로 점찍어서 된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 역시 궁극적으로는 온전히 "여호와께서 (친히) 택하사" 이루어진 일일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솔로몬이 왕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에는 계속 따라오게 될 축복 또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나라가 영영히 견고케 되는" 축복이었습니다.
그 축복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날과 같이" 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받을 수 있도록 보장된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을 새 왕으로 모시게 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역시 같은 축복의 약속과 조건이 내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면, 이 다윗 왕조를 통하여 견고케 하실 그 나라의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대대후손에 이르도록 영원한 기업이 되는" 축복이 그들에게도 따라올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택하여 다윗의 후사가 되게 하신 것은, 바로 그를 통하여 다윗 왕조의 이스라엘이 더 견고하게 되며 그 백성들이 그 땅의 기업을 누리는 축복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였습니다.
같이 입소했던 장정들 중에서 신체조건이 특별히 좋은 사람들은 '공수특전대 요원'으로 차출되어서 따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특전대 요원들은 일반 훈련병들에게 지급되는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높은 양의 칼로리가 함유된 특별식사가 매끼마다 배식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 각각 콜라 한 병과 팥빵 한 개 따위의 간식까지 지급되었는데, 그것은 우리 일반 훈련병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이 부럽기 한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특별히 뽑힌 사람'에게는 항상 '특별히 주어지는 것'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하나님 역시 당신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자에게는 특별한 축복도 꼭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함으로써 '바른길'을 걸어가며 그 말씀에 약속된 '아름다운 땅의 기업'을 누리는 특권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그런 자들은 이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인간사회 속에서, 사람이라는 존재 아니 그 중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최고라고 교만해 하는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에 빠진 상태로 평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일생을 다 보내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은 음행과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가치'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고 청소년기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제일 잘된다고 해 봤자 그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그 번 돈으로 자기 인생을 제멋대로 즐기기에만 바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좋게 말해서 '여피족'이지 사실상 짐승의 생애와 별반 다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반면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느 현자나 군자도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가 주어졌습니다.
또한 그 언약의 말씀에 약속된 '금세의 형통과 내세의 영생'까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돈을 물려주고 집을 물려받는 불신자들의 상속과는 달리 바로 이 '여호와의 기업'을 부모와 자녀가 그리고 그 손자들이 대대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선택받은 자'만 받을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요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천하만민 중에서 당신의 택함을 입은 자녀로 뽑아 주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 택자에게 이처럼 금세부터 내세에까지 이르는 특별한 축복까지 내려 주시는 은총을 자신의 가정을 통하여 '수천 대까지'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도는 선택을 통하여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됩니다.
9절 이하 21절에서 다윗은 이어 말하기를 "9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10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11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12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 13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전에 섬기는 모든 일과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의 식양을 설명하고 14또 모든 섬기는 데 쓰는 금기명을 만들 금의 중량과 모든 섬기는 데 쓰는 은기명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15또 금등대들과 그 등잔 곧 각 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은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각기 적당하게 하고 16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17고기 갈고리와 대접과 종자를 만들 정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18또 향단에 쓸 정금과 또 타시는 처소 된 그룹들의 식양대로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여 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19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20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21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이 있으니 여호와의 전의 모든 역사를 도울 것이요 또 모든 공역에 공교한 공장이 기쁜 마음으로 너와 함께 할 것이요 또 모든 장관과 백성이 온전히 네 명령 아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처럼 자기와 자기 아들과 또한 자기 백성을 선택해 주신 최종 목적이 바로 성전건축이라는 역사적이고도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까 백성들 앞에서 솔로몬에 대하여 말할 때에도 6절에 보면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간증했었습니다.
즉 '너희들이 새로 모시게 될 왕 솔로몬은 무엇보다도 성전건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뽑으신 왕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리 일러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윗이 솔로몬에게도 바로 그 사명을 완수할 것을 명하는 장면입니다.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라고 한 것은 다윗 자신이 평생토록 늘 하나님을 정성과 기쁨으로 섬겼던 자세를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그대로 승계해 주는 당부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다"고 일깨워 주었는데, 이것은 '내가 너를 편애해서 나의 후계자로 뽑은 것도 아니고, 네가 재수가 좋아서 많은 왕자들 가운데 왕위를 이어받게 된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네게 꼭 시킬 일이 있으셔서 너를 왕으로 뽑아 세우시는 줄을 반드시 깨닫고 명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식양" 즉 설계도까지 자세하게 가르쳐 준 후에 최종적으로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즉 솔로몬이 그렇게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기억하고 그 사명 수행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셨으면 그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에는 그 사명 수행자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실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구소련 시절에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하루 일과를 그린 소설입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슈호프라는 사람인데 바깥 사회에 살 때에는 목수였지만 수용소에 들어온 후에는 블록공이 되었습니다.
원래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벽돌을 쌓는 일도 금세 배웠고 그 결과 24명의 동료 죄수들이 있는 자기 반에서 그 분야에서는 최고 숙련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슈호프는 그 사실에 대하여 "블록공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수용소 안에서는 명예로운 직에 속한다."라고 늘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하게 되는 노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일은 제일 중요했으며, 그래서 정말 일손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무슨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뽑히는 것도 아주 영예로운 일이라면, 특히 교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받고 봉사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어떤 귀찮고 힘든 일을 떠맡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랑스러운 일에 명예롭게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권사로 세움 받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시기 위하여 특별히 뽑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명심하는 자에게는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런 직분을 그저 '사람들이 뽑아 준' 것으로 여긴다면 이것은 직분을 무슨 훈장이나 '높은 자리'처럼 여기는 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마지막 단계, 최종 목표는 오직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되게 하시려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고 특권적인 축복까지 베풀어 주셨으니, 이제는 바로 그런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가운데 그 맡기신 사명을 위해 오직 기쁜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힌 것은 다윗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심으로써 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솔로몬 자신에게 공을 돌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솔로몬을 선택하시고 다윗에게 명하심으로써 누리게 된 축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과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건축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받게 된 것도 결코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께 '신청서'를 내고 다른 민족과 '경쟁입찰'을 해서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천하만민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해 주심으로써 자동적으로 누리게 된 특권적인 사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실로 이 모든 과정은 시종일관 100퍼센트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만으로 진행되었을 뿐이지, 사람 쪽의 영향력이나 결정권은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과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인생을 무슨 '로보트'처럼 살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해 나갔습니까?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실수가 예방되고 인간의 교만이 자리 잡을 곳이 없어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반면에 오직 그처럼 자신을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과 확신만이 충만했던 것이었습니다.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뽑힘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 사회에서도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행복한 일입니까?
많은 훈련병들 중에서 소수의 정예부대 요원으로 뽑히는 것이나,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바이어와 계약을 체결하는 회사로 뽑히는 것이나, 온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의 대사로 뽑히는 것 – 이런 것들 모두가 다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내게 터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로 하나님의 택자로 부름을 받았고, 그래서 축복의 기업을 상속받는 양자가 되고, 그 결과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요긴한 직분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뽑힘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선택 때문에 원래는 그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 덕분에 이전에는 오로지 썩을 재물을 사랑하고 그것만 자녀에게 남겨 주려 했던 우리가 이제는 영생의 양식인 성경 말씀과 천국의 소망을 자신도 누리고 후손에게 남겨 주는 축복의 유산자들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선택이 있었던 까닭에 저와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사단의 종과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친히 쓰시는 거룩한 도구와 의의 병기가 된 것입니다.
정말이지 뽑혀도 얼마나 잘 뽑힌 일이겠습니까?
세상에 이처럼 고귀하고 이처럼 고마운 선택을 하나님 외에 누가 우리에게 베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택하여' 베풀어 주신 이 놀랍고도 엄청난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그렇게 나를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