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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월간<기독교사상>2015.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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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수도원 운동의 변천
본문
종교개혁은 수도원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영성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수도원 운동도 당대의 요청, 혹은 시대적 관심과 욕구에 부응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대적 요청이나 수도자들이 처한 지역의 관심이 바뀌는 데 따라 수도원의 적응, 탄생, 쇠퇴도 일어났다.1)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수도원 운동은 내부 쇄신(혹은 개혁), 신설, 쇠퇴 모두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예상하는 것처럼 종교개혁이 수도원 운동의 현저한 쇠퇴 내지 몰락을 초래하진 않았다. 오히려 수도생활에 활기가 더 커졌고, 양적으로도 성장을 구가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 운동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내부 쇄신이다. 이는 대부분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수도회들에서 일어난 일들로 더 엄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바깥 세계의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고 엄격하게 수도생활을 해왔던 곳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둘째, 중세 시대까지 견고했던 수도원 울타리가 붕괴되었다. 봉쇄 중심의 수도원이 바깥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활동회(혹은 단순서원 수도생활) 중심으로 변모한 것이다. 교회 내부 개혁까지 뒷받침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들이 다수 출현하였다. 셋째,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적 열세였던 여성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점이다. 이 현상은 첫 번째 경향과 연결돼 있다. 봉쇄 해제가 여성들의 참여를 급격히 증가켰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수도원에 관한 평가는 줄이고, 실제로 일어났던 현상들을 중심으로 수도원 운동의 전개과정을 서술해보겠다.
내부 쇄신
종교개혁은 수도원도 안팎으로 흔들어 놓았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곳들은 심하게 흔들렸고, 변화를 견뎌내지 못한 곳은 붕괴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루터의 “수도서원의 심판에 대하여”(De votis monasticis iudiciumi)는 많은 남녀 수도자들을 수도생활을 포기하고 혼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2)
반면 이 동요를 쇄신의 계기로 삼았던 곳들은 다시 번영의 기회를 맞았다. 중세 말기에서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어난 격변에도 불구하고 본래 정신을 지키며 엄격한 수도생활을 해왔던 수도회들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격변기에 철저한 개혁에 나서 변화를 견뎌낸 수도회들은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 등과 같은 전통 수도회들이었다. 이들은 수도회 내부에서 ‘규칙 준수’를 통해 자체 개혁을 시도하였다.
카르투지오회는 본래부터 엄격한 생활을 유지한 덕분에 중세 말기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거의 약화되지 않았다. 평신도들과 재속사제들로 구성된 ‘하느님 사랑의 단체들’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한 애덕 실천 활동과 함께 개인적 열의와 경건을 추구하였다.3)
새로운 움직임
1) 성직수도회의 창설
16세기 교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으로 성직수도회들이 출범하기 시작했다. 성직자 생활을 한 후 다시 수도생활을 하는 수행 성직자 수도회는 종교개혁으로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재건할 목적으로 생겨났다. 이들은 장엄서원을 하고 공동생활을 하며 사도적 활동에 투신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수도생활의 틀을 벗어나진 않았지만 수도복, 봉쇄구역, 엄격한 보속, 합창 기도를 위해 심야에 일어나는 일 등을 버림으로써 이전 수도회들과 비교해 진일보한 면모를 보였다. 이들의 새로운 점과 기여한 측면은 금욕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모든 힘, 정신과 육체의 헌신을 사도직 사명 실현에 집중하려 한 점이다.4) 이 경향을 대표하는 수도회가 테아티노희(Theatini)와 예수회다.5) 이러한 활동과 투신이 활발했던 지역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였다.6) 이 가운데 로욜라의 이냐시오(1492-1556)가 설립한 예수회만 간단하게 살펴본다. 이냐시오는 수도원을 수도자들이 모여 함께 사는 공동체 개념에서 탈피하여 복음 선포를 위한 전초 기지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수도 신분의 필수 표지로 여겨지던 수도복과 가대(歌隊), 수도원 전례 및 형제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에서 벗어나 고도의 기동성을 띠며 하느님 영광을 위해 헌신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직접 고안한 “영성 수련”을 통해 공동체를 떠나서도 영적 활력을 충전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예수회는 탁발 수도회보다 더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를 유지하였고, 회원들의 철저한 순명과 학문 연구 노력으로 다른 수도회들과 구별되었다.7)
그는 개신교와 싸우는 일보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내적 쇄신과 심화를 위해 활동을 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가진 사고와 의도는 루터, 종교개혁자들과 완전히 달라 반 개신교적 성격을 띠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8)
2) 단순서원9) 수도회 설립
16세기 이후 장엄 서원 수도회의 재속 3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다 기한부 서원을 하고 만기가 되면 다시 기한부 서원을 하는 신심 단체로 발전하였다. 이 신심 단체들은 단순 서원을 하는 수사회와 수녀회로 발전하였는데, 병자 간호를 주 임무로 하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신심 고취를 위해 노력했던 예수 고난회, 청소년 교육을 주 임무로 하였던 살레시오회 등이 대표적인 수도회들이다. 이 수도회들 가운데 일부는 성직자 없이 수사로만 구성되었다.10)
이탈리아의 가롤로 보로메오는 1578년에 헌신회(Oblati)라는 재속 사제회를 설립하였다. 랠리스의 가밀로(Camillius de Lellis)는 1584년 중환자와 임종자를 돌보는 가밀로회를 설립하였다.11)
프랑스에서는 베륄(Pierre de Berulle)이 1611년에 성직자 교육에 헌신하는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하였다. 베륄은 안으로는 프랑스 성직자 쇄신의 기초를 놓았고, 프랑스의 가톨릭 개혁 전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공로로 프랑스에서 신학생 양성은 이 회에 맡겨졌다. 이 회에서 1643년에 나와 독립된 재속 사제회를 창설하고 신학교를 세운 성 요한 에우데스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1660)는 루이즈 드 마리악과 함께 나중에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로 불리게 될 애덕회를 1633년에 설립하였다. 이 회는 빈민 구호,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다. 빈첸시오는 라자로회 또는 빈첸시오회로도 불리는 민중선교를 위한 성직자회도 설립하였는데, 이 회는 단순히 민중의 영적인 일만을 돌봐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12)
3) 여성들의 수도 생활
중세 시대에 남녀 수도자들의 비율은 현재와 반대로 5:1 정도로 남자가 더 많았다. 여자들의 수도생활이 봉쇄생활 안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자 단순서원 수도회는 이탈리아에서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가 제일 먼저 시작하였다. 그녀는 가정에서 동정 생활을 하면서 버려진 어린이들과 여성들을 돌보며 복음을 살아가는 모임을 시작하였다.
당시 수녀는 봉쇄 수녀원 수녀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세상 안에서 수도 생활을 하려는 그녀의 이상은 많은 반대와 도전에 부딪혔다. 하지만 지혜로운 처신과 조직으로 그녀의 이상과 완전히 부합하진 않으나 세상 안에서 사도적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우르술라(Ursula)회를 창설하였다.
영국 여성 메리워드는 1609년 젊은이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공동체를 설립했다.13) 요안나 드 레스토나크는 1605년 프랑스에서 여성 교육을 전담하는 마리아회를 설립했다.14)
베네딕도 14세 교황(1740-1758)이 단순서원 수녀회를 승인하게 되자 많은 수녀회들이 설립되었고,남자 수도회와 같은 정신을 따라 생활하는 수녀회들도 다수 창립되었다. 샹탈의 성 요안나 프란치스카 프레미오(Johanna Francisca Fremiot de Chantal)는 1610년에 ‘성모 방문회’를 창립하였는데, 그때 프랑소와 드 살(라틴어식 Franciscus Salesius)이 그를 도왔다. 그의 이름을 따라 이 회는 살레시오 여자 수도회라 불리었다. 이들은 병자 간호와 여성교육을 사명으로 하였다.
4) 사도 생활단의 탄생
수도회와 비슷하지만 공식적으로 수도 선서를 하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는 단체 즉 사도 생활단이 생겨났다. 1625년에 프랑스에서 설립된 선교 수도회를 비롯하여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1633), 파리 외방전교회(1658),메리놀 외방전교회(1911),골롬반 외방선교회(1917) 등이 여기에 속한다.15)
5) 재속회의 등장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회에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요청되었을 때 재속회가 탄생하였다. 재속회는 기존 수도회처럼 복음을 살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복음적 삶을 사는 방식이다. 프랑스 예수회 회원인 드 클로리비에르(De Cloriviere, 1735-1820) 신부가 1791년 교구 활동을 위해 성직자 중심의 재속회를 조직한 것을 시작으로 20세기에 들어서자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여러 재속회들이 탄생하였다. 이 가운데 프란치스코회 회원인 제멜리(Agostino Gemelli) 신부가 창설한 ‘그리스도 왕직 사도회’(Le Missionaric della Regalita di Nostro Signore Gesu Cristo)가 현대 세계에서 재속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16)
6) 20세기의 움직임
현대에 들어와 지역 사회 특성이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수도회, 소외된 선교지에 봉사하는 수도회,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돕는 일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함께 나누며 사는 수도회들이 설립되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수도회가 캘커타의 데레사 수녀(1910-1997)가 인도에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Missionaries of Charity)이다. 이러한 유형의 수도회들은 시대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여러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복음적 영향력을 교회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바깥 세계에서도 증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또한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흐름으로 프랑스에서 이뤄진 새로운 시도들이 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리지외의 데레사와 샤를르 드 푸코이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이후 갈멜회 영성의 세 번째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녀는 19세기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영향은 20세기에 더 강력하였다. 그녀는 신비체험, 영성관련 저술로 유명하였는데, 정작 그녀가 명성을 얻은 것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신학원리를 증거’한 데서 비롯된다.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일상생활에서 주어지는 평범한 일들에 충실하여 사랑의 사도로 평가받았다.17)
샤를르 두 푸코(1858년 생)는 처음 프랑스 트라피스트회에 들어가 1892년 허원까지 하였으나 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사제수사와 평수사의 구별이 없고, 수도자 자신이 육체노동으로 자활하는 자신의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위해 1910년 사제 서품을 받을 때까지 여러 지역을 다니며 철저한 투신을 경험한다. 이후 사하라 지역으로 가 활동하다 1916년 아랍인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아랍인 복장을 하고 오두막에 살면서 고난과 자아포기를 실천하였다. 그의 꿈은 그가 죽고 나서 거의 이십년 만인 1933년 예수의 작은 형제회와 예수 성심의 작은 자매회가 설립됨으로써 이루어졌다.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가톨릭 수도생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제1세계 수도회들은 양적 쇠퇴를, 제3세계 수도회들은 반대로 양적 성장을 구가하는 점이다. 가톨릭 수도생활을 개척하였고, 또 계승해왔던 서구교회에서는 성소가 급감하고 새로운 선교지역에서는 성소자들이 활발하게 증가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성수도자 수를 자랑하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경우 1968년을 정점으로19) 계속 하락하여 2012년 여성 수도자 숫자가 1965년 대비 73%P(131,500명)나 감소하였다. 남아 있는 여성수도자들의 평균연령도 칠십대이다. 남자 수도회는 이보다 감소세가 더디지만 역시 큰 폭으로 숫자가 감소하였다. 남은 수도자들의 평균연령은 여자 수도회보다 더 높다.
[그림 1] 세계 여성수도자 숫자 변화 추이(2002~2012)
여성 수도자들의 최근 현황을 대륙별로 살펴보면 2012년 기준으로 십년 전인 2002년과 대비하여 보면 아시아(필리핀, 베트남, 인도), 아프리카(탄자니아)는 증가하였고, 유럽(동구, 서구, 남구, 북구)과 북중미, 남미 지역 모두에서는 감소를 기록하였다. 유럽 지역에서도 북구와 서구의 감소폭이 동구, 남구보다 컸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미, 남미 지역이 북미보다 감소폭이 작았다.
물론 현재 나타나는 양적 쇠퇴 양상은 정결(독신을 전제로 함), 청빈, 순명, 공동체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수도생활 양식의 쇠퇴일 뿐, 신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까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20) 그리고 경제적으로 잘 사는 지역에서만 쇠퇴가 일어나고 있을 뿐 신생 교회나 남반구 지역에서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전 세계적으로는 수도생활이 계속되는 셈이다. 신생 지역의 수도생활은 대부분 근대 이후 태동한 활동 수도회들이 주도하고 있고, 관상 수도회는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이다.21)
한국 천주교회의 수도생활
한국의 가톨릭 수도생활은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조선에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한국 진출은 사도생활단인 파리외방전교회 블랑 주교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총장에게 수녀 파견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후 일제시대에 남녀 수도회들이 한국에 진출하거나 창설을 시작하면서 수도회 수와 수도자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본격적인 수도생활의 성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일어났다. 서구교회 수도회는 이 시기부터 감소하였던 데 반해 한국에서는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남자수도회는 47개에 1,574명의 회원, 여자수도회는 121개에 10,160명의 회원이 있다. 남자 수도회는 전부가 활동 수도회나 사도생활단이고, 여자 수도회는 관상수도회가 전체 수도회 숫자의 7%, 수도자 수는 3% 미만이다. 남한의 전후 복구를 돕기 위해 진출하거나 창설된 수도회인 경우가 많아 활동회가 중심이다.
〈표1〉 한국천주교 여성수도자 수 변화 추이
해 1960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10 2013 2014
숫자 832 2,058 2,262 2,917 3,367 3,927 5,399 7,209 8,752 9,676 9,838 10,173 10,160
성장률 - 247% 10% 29% 15.4% 16.6% 37.5% 33.5% 21.4% 10.2% 1.7% 3.4% -0.2%
· 참고자료 : 각 년도 한국천주교회 통계
〈표1〉에서 한국천주교 여성수도자 수 변동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에서 1965년 사이 첫 번째로 폭발에 가까운 증가가 일어났고(247%P), 1986년에서 1995년 사이 평균 35.5%P의 증가율로 두 번째 폭발적 증가가 일어났다. 그러나 2006년 이후는 한자리 수 증가율로 떨어져 정체 내지 감소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현재는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치면서
삼대 서원에 기반한 수도생활은 점차 약화될 것이라는 게 이 분야 연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대신 그동안 교회 주변부에 있던 평신도들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반세기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속회와는 다른 평신도들만의 공동체, 또는 모든 교회구성원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동체가 그 사례들이다. 그리고 아마 이 시기가 지나면 수도생활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샘솟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박문수 | 교수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가톨릭신학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정보사회의 그리스도교 : 가톨릭교회의 미래전망” 외 68편이 있으며, 저서로 『정보사회와 가톨릭교회』외 공저 포함 18권, 역서로 John Paul II,『희망의 문턱을 넘어』외 공역 포함 9권이 있다. 이외에 가톨릭교회와 수도회 관련 조사연구 보고서들이 다수 있다. 현재 한국 가톨릭 문화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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