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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95 추천 수 0 2015.11.09 08: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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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4-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장 4절-13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인간을 지으신 이 분을 누가 지었느냐? 이 분은 스스로 있는 자다. 그러면 도성인신으로 인간 되어 오신 예수님은 누가 지었느냐?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계셨던 선재적 그리스도가 인간 되어 오신 분이 예수요, 예수는 구원이다. 그러면 이 분이 무슨 일을 하느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나를 성령의 사람으로 만든다. 이게 구원이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다. 예수는 구원. 구원이신 그 분이 인간을 어떻게 구원을 시키느냐? 당신의 사람, 성령의 사람, 하나님 자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참 사람으로 만든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런데 우주만물 천지 창조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의 혈통과 문벌을 중요시 하며 예수님을 배척을 하니 그런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신다. 몰라서 이상하다가 아니라 분명히 가치판단 평가성을 알게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 땅의 것을 가지고 기준을 세워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몰라서 ‘그거 참 이상한데’ 그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을 이상히 여길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그 기준을 모르고 선악과 먹은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면, 모두 그렇게 돌아가면 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가버나움 동리 사람들이 이상한가, 선악과 따먹은 사람들이 이상한가, 세상 소원 목적으로 가르치는 목사가 이상한가? 누가 가장 이상한가? 목사가 가장 이상하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고 각종 병자를 고쳐주심은 그런 각종 이상한 사람을 창조의 목적에 맞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 하심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람들과 예수 믿는 사람들도, 당시의 예수님의 고향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창조의 목적대로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그 기준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하늘로서 사람 되어 왔다는 것은 모든 인간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바로 하늘로부터 온 사람이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창조의 목적에 걸맞은 사람으로 바로 되려면 예수님처럼 만들어지면 그 사람은 기준적인 성질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거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너는 복의 근원이라’ 하신 것은 복의 기준성을 말한다. 그 존재가 기준이 아니라 존재 속에 들어있는 그 신앙성질이 기준성이다. 그러니까 그 신앙의 그 계대로부터 홀이 나오는 거다. 왕, 지도자, 세상 구원자가 나온다. 이단자들은 본문에 걸맞지도 않는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종교적으로 또는 자기 개인이 일을 도와주는 하나의 대상으로만 예수를 믿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이냐? 자기가 주인이고 예수님은 종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 왕은 자신이 왕이지만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는 종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 예수 믿으면서도 제 마음대로 하고 다니는 건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예수를 왜 믿느냐 하면 그 이유가 내 기도를 들어주는 예수님으로 알기 때문에 믿는 거다. 이건 주객이 바꼈다.


우리는 지혜지식 면에서나 모든 도덕성 면에서나 하나님 다음에 인간 자기가 들어가는 거다. 그럼에도 자기가 물질 밑으로 들어가면 타락이요 속화다. 존귀적 위치적으로 그 순서가 반드시 하나님 다음에 인간 자기가 있어야 한다. 물질 밑에 있으면 안 된다. 그 인간은 못 쓴다. 희망이 없다. 사람은 생명과를 먹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온 몸이 머리로부터 받아야 바로 들어간다. 온전한 인간이 된다.


자기의 허리뼈가 무너지면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진리이치에 명백하게 기둥을 세워놓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성격과 성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 하나 못 고치면 그 다음에 연관관계성은 안 이루어진다. 다 끊어진다.


6절-7절: 예수님께서 모든 촌에 두루 다시며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도시이건 농촌이건 간에 하나님의 본질적 천국소식을 가르쳤는데 지금 온 교회가 세상 물질축복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이질적 신앙사상의 현상으로 돼 있다. 이게 말세다.


예수님께서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져서 고난을 받고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했다. ‘손’ 하면 일하는 손이다. 일을 많이 해서 역사를 이뤄놓으면 그 세력은 크다. 그러니까 ‘사람의 손’ 하게 되면 사람의 권세, 세상의 세권, 교회 같으면 교권을 말한다. 이게 다 사람의 손이다. 예수님 당시 때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난을 주고 죽였다.


세권과 교권이 있는데, 교권 속에는 세권이 들어있다. 이 교권 속에는 세권이 중심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세권 속에는 교권은 잘 안 들어간다. 이 두 권이 합세가 되면 예수를 죽이게 된다. 옳은 성도들을 죽인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손 즉, 세권과 교권이 합세가 되면 그 권이 상당히 강하다. 그러니까 그 권으로 예수님의 진리는 안 가져가고 예수님의 목숨 육신만 가지고 가서 죽인다.


예수님의 육신만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병자 고치고 귀신 쫓아내주고 했으니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내버리고 병고치고 도와주고 귀신 쫓고 한 그 활동만 쏙 빼서 그런 일만을 하려고 한다. 이게 교권 속에 들어있는 세권이다. 그러니까 이건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가는 거다. 이게 예수님께서 사람의 손에 넘기어진 것이다. 성령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오늘날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다 붙여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 진리는 쭈그러진 것 같다. 진리는 안 알아준다. 교권과 세권이 합세된 그들의 조직체가 진리권을 이단자라고 무시한다.


왜 거짓과 이단자들이 나오느냐? 도둑과 사기꾼은 서로 속성이 통하듯이 거짓과 이단은 속성이 서로 통한다. 성경 문자 속에 들어있는 은밀계시, 은밀한 뜻, 하나님의 의사성 이걸 찾아내지 못하면 결론은 거짓 종이 되고, 성질이 이단성질을 띠게 된다.


그러니까 율법 속을 들여다보면 예수 구원이 나오는 건데, 거짓과 이단의 성질을 가진 바리새교인들은 율법을 가지고도 그걸 못 본다. 못 보니 예수님의 구원의 말씀을, 자기들을 구원해줄 말씀을 죽이고 들어가게 되고, 이렇게 되니 결국에는 예수님의 몸도 죽이는 거다.


사람들이 그냥 길가다가 못생겼다고 죽이느냐? 아니다. 옆에 있는 이웃이고 한 집 식구인데 속을 생각하니 죽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살인이 나는 거다.


요즘 가만 보니까 경찰서고 병원이고 복지관이고 전체적으로 사람의 목숨이 경시가 돼 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고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심증이 가고 빼도 박지도 못할 범인인데도 ‘골치 아프다. 귀찮다’ 하며 지문채취를 하든가 주소를 찾아주고 하는 게 사랑으로 되는 게 없다. 이런 현상이 온 것은 인간창조의 목적을 모르니, 사람을 모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보면 이방 불신세상의 사람 경시성이 성질적으로 나오고 사상적으로 다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보면 ‘법이 피해자를 위해 있는 것인가, 가해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게 세상이다.


세상은 돈이고, 자기 좋도록 해달라는 게 세상이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이름을 불러가면서 자기 좋도록 해달라는 거다. 자기 좋도록 안 해 주면 그 다음에는 안 믿는다. 그러니까 끝내 유야무야 돼버리고 만다. 이건 사람을 모르는 거다.


교회도 보면 창조의 목적을 놓고 사람을 볼 줄을 모른다. 그러니 일반세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창조의 목적대로 구원이 들어가야 되는데 이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적 인격적으로 성장되는 그 구원이 없다. 아무리 봐도 없다.


7절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서 둘씩 둘씩 전도를 내보내실 때에 무엇을 주어서 내보냈느냐?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성령을 주신 거다. 그리고 절대 정확한 교훈이 들어있고.


귀신까지 내쫓는 교훈이라면 그 교훈의 질이 면도날과 같은 거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구별 분별이 아주 세밀하게 들어간다. 칼이 뭉툭하면 구별 분별이 세밀하게 안 된다. 말씀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행동 활동이 좋다. 나쁘다’ 하는 건 누구나 다 보는 거다. 조금 더 영리한 사람은 행동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도 본다. 마음을 보고 그 사람을 말을 한다. 일반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성경은 뭔가 하니 ‘그 사람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이걸 보는 거다. 진리가 기준이 되어서 이성을 통한 육신이 움직여질 때 그 몸은 의의 병기로 바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 세상과 세상 것을 잡고 세상이 기준이 되면 자기의 몸은 구원이 이뤄지지 않는 악의 병기가 돼버린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이런 게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까 기독교 안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그 말씀을 토해내는 그 사상이 세상 물질적 육적 환경적 외모 외형적 가견적인 것으로 들어가 있다면 이건 육성이다. 육성을 붙잡으면 구원은 절단 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역사와는 거리 멀고, 그 교회는 귀신집이 되는 거다.


귀신이 돌아다니며 무엇이 없는 데로 들어가느냐? 물이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영생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없는 사람 속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늘 육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귀신이 그 사람 속에서 장난하기가 좋은 거다. 이런 자는 자기 기분에, 자기 분위기에 안 맞으면 얼마든지 할례 받지 못한, 거듭나지 못한 성격 성질로 막 나가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행동이 나타나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규명으로 들어간다. 원인규명으로 들어가서 ‘이건 참고해야 되겠구나’ 하는 게 있고, ‘이거는 두 번 세 번 말할 필요도 없이 잘라버려야 되겠구나’ 하는 게 있는 거다.


더러운 귀신이 들면 더러운 생각이 이미 들어있는 거다.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더러운 귀신이 들어간다. 자꾸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성이 나온다. 살인성이 일어나면 사람인지라 ‘이걸 어떻게 죽일까’ 하고 궁리를 하게 된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교인들을 지켜주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나가나? 그러니까 사람들과 원수를 삼아놓지 말고, 아가씨들은 이 청년 저 청년 거미줄처럼 만들지 말고, 그 다음에 시험 탈 짓을 하지 말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 그리고 성경에도 말하고 있지만 미동이 되려고 하지 말라. 특히 여자들은.


가수, 배우 그런 거는 우리에게는 여유다. 일반적으로는 돈 때문에 그런 걸 하는 거지만 우리에게는 여유생활이다. 직업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취미생활이다. 직업적으로 나가더라도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기 위해 하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자녀가 뭘 잘하니 그만 그 쪽으로 빠진다면 이게 어찌 될까? 이건 신앙과는 먼 거다. 오로지 신앙으로만 나가도록 돼지몰이처럼 몰고 가려고 해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네. 피아노 잘 치네’ 하며 아예 그 쪽으로 나가면 신앙은 어떻게 될까?


신앙은 우리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보는 거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 이게 성경이다. 그런데 이건 버리고 세상의 목적과 취미로 산다면 그건 벌써 시험에 빠진 거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다 몰아서 그 자와 대적되게 하실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인간 자기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산다면 온 우주만물이 그를 보호하고, 그를 위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이게 기독교 신앙이다. 창조의 근본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자기를 바로 세워라. 정확하게 세워라.


더러운 마음이 들면 더러운 행동이 나오게 돼 있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활동을 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에 감화 감동을 받게 되면 거룩한 천국의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결심이 된다. 다시 말하면 마귀 짓을 안 하는 사람이 된다.


8절-11절: 권세를 주시고 명하시되 무엇을 가지지 말라 하고, 무엇을 가지라 하고, 또 무슨 말씀을 주셨느냐?


여행을 위하여 뭘 가지라? 지팡이를 가져라. 그러면 이 지팡이를 왜 가지라고 하느냐? 지팡이의 용도는 지시하고 가르치는데 쓰고, 자기의 몸을 의지하는데 쓰고, 짐승을 쫓을 때 쓰고, 짐승이나 사람이 오면 방비용으로 쓰고, 무기로도 쓰고, 등등 쓰임새가 많다.


이 지팡이를 영적 면으로 깨달아 볼 때 인생 자기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지팡이는 있어야 한다. 천국 가는 길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온전을 닮도록 가르치고, 죄악으로 가지 않게 가로막고, 싸우는 법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일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영적 지팡이이다.


그러면 가지지 말 것은 뭐냐? 양식을 가지지 말라. 어디를 가든지 양식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양식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경은 일반지식의 개념으로는 못 깨닫는 거다. 결국은 우리의 영인성장 면을 위해서, 영적 실력을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는 것이다.


가지지 말 것은 육신이 먹는 양식 즉, 육신이 먹는 목적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또 육신이 먹는 것을 목적으로 주지 말아라.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세상 부자 되고’ 하는 이건 전부 육에 관한 것이다. 부자면 잘 먹고 잘 먹지 않느냐? 육신의 것을 받아먹을 목적으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 속에 목회하는 것이 밥 먹고 살려고, 아이들 공부 가르치려고 목회하는 목사도 있다. 노골적으로 본다. 다 신학 나오고 다 노회에 소속돼 있는데도 그렇다. 이건 성경대로의 목사가 아니다. 그런데 일반교인들은 그런 걸 모른다.


자기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목회하는 것은 일반 직업적 개념이다. 참된 목회사상은 그거와는 거리가 멀다. 네 죽을 십자가를 메고 예수님을 따르는 거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거다. 그리로 가면 길도 집도 없고 고생만 합니다? 아니다. 예수님은 어디든지다.


어디든지 따라가는 거기에 훈련 연단이 들어있다. 영능의 실력도 들어있다. 그거 안 할 바에야 목회 그만 둬라. 목회 안 해도 되는 거다. 안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답답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적절하게 다 동원시키리라고 하셨다.


그 다음에 뭘 가지지 말라는 거냐? 여행자루를 가지지 말라. 여행자루 속에는 옷도 넣고 양식도 넣고 여행에 필요한 것을 넣는데 이 여행자루를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미리 다 준비해 놨다는 것이다. 가지지 말라는 것은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준비를 해놨다는 것이다.


가지지 말라고 할 때는 예수님께서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복음의 군대로 예수님께서 보냈으니 예수님께서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가지지 말고 가라’ 해놓고 길거리 가다 굶어죽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백성들이 젊은이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옷도 안 주고 신발도 안 주고 밥도 안 준다면 어떻게 싸우느냐? 백성들이 다 해줘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일반세상에서 군인은 항상 준비가 돼야 한다.


그 다음이 뭘 가지지 말라고 하느냐? 돈주머니를 가지지 말라. 전대. 전대는 여러 겹으로 해서 허리에 띠처럼 매는데 즉, 돈의 힘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준비하신다 그 말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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