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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하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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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석기현 목사 |
참고 : | 2012년 9월 9일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대하2장 1-18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언젠가 원로목사님께서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Wheaton Christian College를 방문하셨을 때, 그 학교의 교훈(校訓) 'For Christ and His Kingdom!'(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라는 말에 아주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내용도 좋았지만 영어로 할 때 간결하면서도 악센트와 리듬감이 강렬한 맛이 있는 그 교훈을 원로목사님께서는 무척이나 좋아하시면서 설교 시간에 여러 번 인용하기도 하셨습니다.
하도 그러시기에 제가 "아버지, 제가 다니는 Grace신학교는 'To Know Him Better, To Make Him Known'(주님을 더 잘 알기 위하여, 주님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라는 교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라는 교훈보다는 제가 다니는 신학교의 교훈이 좀 더 뜻이 진하고 좀 더 차원 높아 보이는 교훈이 아니냐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원로목사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자마자 "좀 약하잖아?" 하시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제가 다닌 모교 편을 들어 그렇게 말씀은 드렸지만, 역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라는 교훈이 솔직히 말해서 훨씬 더 산뜻하고 멋있게 여겨졌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성전건축의 사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려는 솔로몬이 바로 그와 똑같은 마음과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1절과 2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1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2솔로몬이 이에 담군 칠만과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육백을 뽑고"라고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이 드디어 성전건축을 결심하고 착수하게 만든 영적 동기가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은 이하에 이어지는 본문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4절에도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라고 했으며, 나중에 12절에 후람 왕의 답장 중에서도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라는 표현이 나타났습니다.
'이 일은 내 아버지 다윗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함도 아니며, 백성들 앞에서 체면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해야만 한다.'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멋진 표어가 바로 이 시점에 솔로몬의 심령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신앙인의 목적, 즉 우리 개혁주의 기독교에서 높이 내걸고 있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과 직결되는 원리입니다.
바로 그처럼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는 신자의 삶에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 현상을 이 시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살 작정이 된 신자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불신자 앞에서도 담대하게 전도하게 됩니다.
본문 1절로 6절 말씀에 "3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4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6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솔로몬은 이웃나라 두로 왕 후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후람은 이미 다윗 시절 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이었는데, 이제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가 잘 사귀어 온 그 연분을 최대로 이용하여 성전건축에 도움을 받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후람 왕에게 실제적으로 부탁하고자 하는 내용은 나중에 7절 이하에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부탁을 하기 전에, 솔로몬은 우선 자기가 이 성전건축을 하게 된 사정에 대하여, 즉 자기가 누구를 위하여 이런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이방 왕 후람에게 아주 당당하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언급했던 대로 솔로몬은 4절에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한다"고 후람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은 절기와 성일에 하나님께 분향과 제사로 예배드리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자기가 지금 위하여 전을 짓는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이라고, 실로 참되신 유일신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하나님은 땅 위의 그 어떤 성전 건물로도 사실상 모실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신 신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고 있으면서도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라고, 사람은 감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높으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 같은 사람이 지금 성전을 건축하려 한다는 것도 결코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하나님을 경배할 예배 처소를 마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성건건축을 위한 자재와 인력을 요청하면서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자기가 유일신으로 모시고 크고 위대하신 여호와로 섬기고 있는 그 하나님 신앙을 이처럼 뚜렷하게 이방 왕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이웃 나라에 무슨 협조를 요청하는 외교문서 따위에 이런 말을 서두에 집어넣을 대통령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족으로 여겨질 것이고 상대방으로부터 십중팔구 좋은 반응 얻기는 힘든 내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후람 왕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외교적 문서에서 그 전반부 전체를 무슨 설교의 서문처럼 자신의 솔직하고도 깊은 신앙고백으로 다 채웠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생의 목표가 확실히 설정되지 못한 사람의 신앙이란 것은 비록 그 마음으로 예수 십자가의 공로는 믿고 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언제 파선할지 모르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설혹 구원에까지 이르게 된다 해도 정말 부끄러운 구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약한 신앙을 가지고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간증이나 전도가 아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지탱하기에도 급급한 형편이니, 친구나 직장동료나 불신가족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런 사람은 평생 가도 '젖을 먹는 수준의 신앙'에 머무르는 약한 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살고자 하는 신자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대하게 될 때든지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나의 존재 의의와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에 있다.'는 뚜렷한 확신 속에 자기 생을 사는 신자는 언제 어디서도 표가 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고, 그것이 자기 남은 생의 최고 목표이고, 그것 빼면 자기 생명 그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니, 그처럼 강력하고 충만한 것이 그 주변의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예수님을 믿고 자기 혼자만 간신히 구원을 얻을 정도의 수준에 평생토록 머물러 있는 교인과, 그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남은 생애 전부를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호를 전파하기 위해 바칠 것을 아예 작정하고 사는 사람은 같은 기독신자라 할지라도 그 신앙생활에서 이처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미국에 살 때, 독실한 미국 기독신자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그처럼 하나님 이름을 당당하게 증거하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미국 프로 풋볼 결승전인 수퍼볼 경기가 끝나고 우승팀의 쿼터백이 MVP로 뽑혔는데, 그때 인터뷰 기자가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까 그 선수의 첫 마디가 "무엇보다도 우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진짜 기독신자는 그럴 경우에 "I thank God."이라고 하지 않고 꼭 "I thank Jesus."라고 합니다.
또 언젠가는 무슨 칸트리 뮤직 연례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여자 가수 역시 그 소감 첫 마디가 "First, I thank Jesus."였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우리나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 중에서도 그와 똑같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첫 소감을 말하는 경우들을 가끔 보게 되었는데, 저로서는 얼마나 반갑고 흐뭇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 말 한마디는 그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수백만, 수천만, 아니 어쩌면 수억에 이를지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멋진 전도가 되겠습니까?
오직 '그 이름을 위하여' 살고자 작정을 한 신자의 입에서만이 그런 당당한 신앙고백의 선포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 앞에서나 절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믿고 구원 얻었다.'라는 이 신앙을 종착점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인생 좌우명을 붙드는 가운데, '가는 전도자'가 되든지 '보내는 전도자'가 되어서 그 주님의 이름을 불신자 앞에서 당당하게 증거하고 세상 앞에서 소리 높여 외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신자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충성하는 데에 필요한 축복이 따라옵니다.
7절부터 1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이제 다윗은 자기가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후람 왕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귀금속과 직조물들을 잘 다룰 수 있는 기술자, 그리고 레바논에서 생산되는 고급 목재와 그 목재를 벌목할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솔로몬이 후람의 도움을 얻지 않고는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 조달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후람 왕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1절 이하 18절 말씀에 "11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 12또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지로다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13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14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15내 주의 말씀하신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는 주의 종들에게 보내소서 16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의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수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 17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 인이라 18그 중에 칠만 인은 담군이 되게 하였고 팔만 인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육백 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후람 왕은 먼저 솔로몬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솔로몬 왕을 축복하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후람 왕 자신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정치적인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 가망성이 많지만, 하여튼 적어도 솔로몬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자 하는 호의적인 자세로 반응해 준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셨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 이런 요청을 했더라면 그 반응이 이처럼 적극적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 왕 시대 때부터 후람을 이처럼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왕으로 미리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미처 생각지도 못할 일을 일찍부터 선하게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후람 왕은 이어서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모든 자재를 다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중에 특히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 즉 최고 기술자 하나를 솔로몬에게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자는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단 지파 출신의 여인과 두로의 남자가 서로 '국제결혼'을 해서 낳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아버지가 두로 사람이니 후람 왕이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어머니가 단 지파 사람이었으니 이스라엘과도 잘 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외국에서 얻을 수 있는 기술자로서 이보다도 더 적절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솔로몬의 사역을 위하여 이처럼 그 기술 감독자 한 사람까지도 미리, 한 국제결혼을 통해서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전준비는 그뿐 아니었습니다.
17절과 18절은 아까 본문 2절에 나왔던 내용을 더 자세히 부가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역시 인부와 벌목꾼 또 감독자 등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것조차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해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에 거주하던 이방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이미 다윗 왕 때부터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었고, 다윗 왕이 그 숫자까지 확인해 두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원주민으로서 이스라엘에 영입된 사람이었는데, 이들이 성전공사에 중대한 인력자원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상하고도 완벽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꼭 필요한 물자수입을 위하여, 외국의 기술도입을 위하여, 그리고 막대한 인력조달까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성전공사를 위하여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만 준비해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로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여호와이레' 가운데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경향의 39년을 통하여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준비를 시작해 주신 일들을 얼마나 많이 체험해 왔습니까?
고려신학교 아카데미 캠퍼스를 위하여 파주의 산 하나를 하나님께서 훨씬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 두셨습니다.
그 땅을 팔게 된 성도가 그 산을 소유할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준비는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상도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이 강서성전을 짓게 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경복학원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경복학원이 창설되고 이 터에 양 학교가 세워질 때는 우리 경향교회가 아직 성전건축의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준비는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경향교회회관과 교육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선교원 건물의 원래 주인이야 순전히 자신의 장삿속으로 그것을 샀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경향어린이 선교원과 S.F.C. 교육을 위한 공간을 미리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며, 과거의 자동차 회관 주인 역시 그저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그 건물을 지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세계 선교의 센터로 사용하시려고 그것을 일찌감치 확보해 두셨던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개혁주의 신앙인의 생활자세만을 지키고 충성하려고 했더니, 그 길들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예비해 두셨고 보여 주시고 열어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성도나 교회를 도와주지 않으실 수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영광에 손해가 가게 하실 분이시겠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계획에 착오나 실수가 있으실 분이시겠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욕심대로만 살려고 하면 사단이 그 길을 준비해 줍니다.
우리의 걸음이 반드시 미끄러지도록, 우리의 계획이 시험에 들도록, 우리의 의도한 바가 결국 악에 빠지고 오만한 자리에 주저앉도록 사단이 미리 곳곳에서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고 각오하면 그 길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십니다.
생애 최고의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물질을 더해 주시며, 생애 전부까지 바칠 수 있도록 더 좋은 직장과 기업을 허락해 주시며, 우리가 서원하며 기도드린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다 예비해 놓으셨다가 때가 될 때에 반드시 풍성히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이 한 가지 푯대만을 향하여 똑바로 달려감으로써, 그렇게 살고자 하는 성도의 생이 정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잘 쓰일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것들을 미리 예비해 주시는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더욱 크게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자기 생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자기 생의 수준과 질을 높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좌우명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단체들은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그 사명을 확고히 고취시키기 위하여 또 여러 가지 표어들을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신자들이 자기 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을만한 말, 참된 교회가 내걸 수 있는 표어로서는 역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에 비길만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산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하여 산다.'라는 슬로건은 진실로 살 교인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 다른 교회의 어느 목사님에 대한 험담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계시던 한 장로님께서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목사님들은 다 '자기 이름 석 자'의 명예를 먹고 사는 분들인데."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장로님은 자기 딴에는 목사의 명예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좋은 뜻에서 한 말인 줄은 압니다만, 그런 말은 세상의 불신 유명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입니다.
문학인이나 예술가나 연예인이나 정치가, 이런 사람들은 정말 자기 이름 석 자에 달린 명예를 위하여 살고 그것을 지킴으로써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목사에게 해당될 수 있는 말이겠습니까?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조차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개념이 그 마음과 생활 속에서는 고사하고 머릿속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는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자기 이름 석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호'만을 높이기 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전파하기 위하여서만 살아야 할 사람일 뿐입니다.
장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인들 가운데 특별히 장로로 선출되는 것은 평소에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좋은 인품'의 소유자라고 해서 주어지는 명예직이 절대로 아니며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열심히 충성해 온 '공로'에 대한 보상도 결코 아닙니다.
그 직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남보다 더 충성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헌신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워 주시는 '사명의 직분'일 뿐인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위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 이것은 교회와 성도가 결코 잊거나 놓칠 수 없는, 너무나도 뜨거운 좌우명이요 멋있는 표어입니다.
이런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는 그 신앙의 색깔이 깨끗하고도 확실하게 세상사람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표어 아래 함께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충성하고자 하는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오묘하게 섭리하시고 이끌어 주시기 마련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이 개혁주의 신앙인의 지표를 붙들고 따라감으로써, 어느 누구 앞에서나 이 신앙을 뚜렷하고도 당당히 증거하며 늘 인도해 주시는 형통의 축복을 받아 더욱 힘 있게 충성하는 경향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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