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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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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5.9.20 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린도후서 1장 2∼5절
치료 할 수 없는 상처만 가득한 세상속에서
주님 주신 믿음·소망·사랑으로 위로 받고
고통을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 되어야 해
어린아이가 몹시 서럽게 울고 버둥댈 때 엄마가 얼른 가서 아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 젖을 물리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엉덩이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아이고 내 새끼야∼ 왜 우냐”하며 몇 마디 위로 해주면 어린 아기는 구름이 걷힌 청명한 하늘같이 맑아지고 울음은 뚝 그치고 맙니다. 사춘기의 아들, 딸들 역시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과 괴로움을 당하면 반사적으로 사나워지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학교에서 당한 고통을 풀어버려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점점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포악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의 영혼은 상처를 입으면 신속히 치료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슬퍼지고, 우울해지며, 문제의 사람이 되고, 반사회, 반국가적인 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몇 달 전 서울시청 안에 힘들고 고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마음약방’이라는 마음치유자판기가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증상별로 분류하여 처방전을 제공하는데, 500원을 넣고 자기에게 해당하는 증상을 누르면 거기에 맞는 처방전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증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미래 막막증’이 제일 많고, ‘미래 막막증’ 다음으로는 ‘꿈 소멸증’인데 이 두 가지를 제일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꿈이 없고 미래가 막막하여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 자판기를 이용해서 위로의 말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1. 믿음, 소망, 사랑이 없는 곳에는 위로도 없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이 없는 곳에는 어디에도 위로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맡길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이든지 마음을 털어 놓고 말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려울 때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위로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든든히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온갖 호소를 다하고 마음을 비워놓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두 맡길 때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
또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망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소망이 이루어진 그 모습을 그리는 것을 꿈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소망이 마음에 가득하면 그 소망이 지금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어도 멀리 바라보면서 이루어질 것을 꿈꾸면 그 꿈이 찬란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5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소망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49∼50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이 나의 고난 중에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름에 소낙비가 쏟아진 이후에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찬란하게 뜨는 것 처럼 우리 소망은 비 내린 후의 하늘 무지개처럼 꿈을 낳습니다. 작은 소망은 작은 꿈을, 큰 소망은 큰 꿈을 마음속에 그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고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지라도 사랑의 손길이 와서 끌어내주면 위로를 받고,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7절을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냥 살리신 것이 아니라 이미 꿈속에 보는 보좌에 함께 앉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죄를 짓고 불의한 자를 용서하고 죄에서 끌어내실 뿐 아니라 예수님 승천하실 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우리도 함께 앉게 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안에 있는 최고의 믿음, 최고의 소망, 최고의 사랑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되신 것은 너무나 크고 영원한 위로가 됩니다. 그곳에는 예수님 안에 있는 최고의 믿음, 최고의 소망, 최고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슬플 때, 다른 데 찾아가지 말고 우리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럽고 슬퍼하신 주님의 갈보리 십자가 밑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괴로워하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마음을 풀어놓으면 예수님이 한없이 괴로워했던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는 위로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괴로움이 많지 않습니까? 괴로움이 많으니 그 괴로움을 우리보다 앞서 많이 당하신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플 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선물로써 마음의 평안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은 우리와 늘 함께 있습니다. 구약 4000년 동안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일선에 서서 우리를 돌봐주셨고, 그 다음 신약 2000년 시작의 33년은 아들 예수님이 선두에 서서 일을 하셨으며, 아들이 죽었다 부활해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와 끊임없이 같이 계십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성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 자리에 와 계시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로해주시길 원하십니다.
성령은 언제든지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기를 원하고, 또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18장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심령이 상하면 좌절과 절망으로 말미암아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해 주심으로 쓰러지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지 못한 것을 직접 하나님 앞에 아뢰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게 하십니다.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면 삶이 평안해질 뿐 아니라 인생 장수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런던 대학교 앤드류 스텝토(Andrew Steptoe)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8년 동안 약 7000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실제 자기 나이보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자기 나이보다 3살이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도 1.5배나 빨리 죽었다는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장난이라도 자기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의 부정적인 생각은 뼈를 마르게 하여 일찍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면 우리 마음도 몸도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결국 생각을 긍정적으로 갖지 않으면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대단히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로 삶을 다스리게 해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했고, 골로새서 2장 7절에는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소망과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과 믿음, 성령님의 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다 에베소서 3장 16∼17절의 말씀처럼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씩씩하게 살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 속에 활동할 수 있느냐? 우리는 크게 소리를 내어서 “믿습니다! 바랍니다! 기쁩니다!”라고 늘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으로 숨어서 말하는 것도 효과는 있겠지만 소리를 내어야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나는 기쁩니다. 나는 구름 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평안합니다”라고 소망을 입술로 표현해서 남이 듣고, 또 자기가 듣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과 관련해서 우리가 잘 아는 실험을 일본에 유명한 학자가 했습니다. 밥을 떠서 상 위에 얹어 놓고, 한 달 동안 밥을 보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했더니, 한 달이 지나고 나니깐 밥 전체가 곰팡이가 피고,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게 밥풀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마음속에 곰팡이가 피고, 썩어서 인격이 비뚤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구를 향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향해서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렇게 힘이 있는 것입니다. 입술을 통해 들리도록 말을 할 때 그 말이 부정적인 말로 나가면 나가서 곰팡이가 피고 썩게 만들어지나 긍정적인 말은 나가서 아름답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쁜 말은 남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치게 됩니다. 왜냐면 말을 하면 자기 귀에 제일 먼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자기 입에서 나와 자기 귀로 들어오고, 듣는 그 속을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을 해주면 내 자신도 그 말을 듣고 함께 힘을 얻고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면 그 사람도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 말에 자기도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됩니다. 위로는 힘들고 지쳐 곰팡이가 핀 마음을 치료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환경의 곰팡이가 없어지고 건강하게 되어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위로를 우리가 소리를 내어서 말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늘 우울하고 가정의 분위기가 곰팡이가 피어 있으면 소리 내어서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집에 하나님이 계신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있다. 성령께서 계시니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집안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내 마음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친구들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삶에 기적과 같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말을 들리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체험하면 어떤 환난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와 질책하시는 분이 아니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9장 13절에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고난당하는 자에게 긍휼히 여기심을 주시는 좋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미국의 예일대학교 교수였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아버지의 통곡’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같은 소중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등산하기를 좋아해서 알프스를 등반하다가 그만 산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외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이 교수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고, 고통스러웠던지 잠을 못 자고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면 왜 내 외아들을 죽게 만드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하십니까?”라고 하며 울부짖으며 밤낮을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또 다시 아들이 보고 싶어서 땅을 치고 울면서 “하나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왜 내 외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까?”라고 통곡하는데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환상이 보이더랍니다. 또 한 사람의 자기와 같은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두고서 땅을 치고 울고 있었습니다. 환상 가운데서 “당신도 나와 같군요”하고 쳐다보니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울면서 자기를 보시고 “너도 아들이 죽어서 슬프지? 나도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얼마나 고통을 당한지 아느냐?”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후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앉아서 좋은 일만 보고 계시는 줄 알았더니 우리가 당하는 이 슬픈 일에도 같이 고통을 당하시는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원망했던 하나님께 회개하며 자기의 슬픔을 치료받을 수가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아파하십니다. 그 환상을 본 후,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하늘에서 고고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하게 고통을 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았고, 마음의 치료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다 아시고 위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체험하면 우리는 어떠한 환난도, 고통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당할 때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면 넘치는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화해와 위로의 종교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고, 요한일서 4장 10∼11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원래 교회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히틀러 치하에 들어가서 고통당할 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역사의 암흑기에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로하는 놀라운 공동체를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종종 교회를 조롱했다. 그리고 교회를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내 조국이 짙은 어둠속에 있을 때, 내가 기대했던 대학도 침묵했고, 언론조차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는 유일한 공동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였다. 나는 빛을 발하는 교회를 향해서 새로운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도 일제 36년 동안 우리 민족이 큰 시련을 겪을 때에 다 입을 다물고 고요했으나 교회만이 바른말을 해서 큰 고통을 당했지만 그것이 민족을 위로하는 진정한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민족적인 수난과 모진 고통의 역사가 끊이지를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날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고난 가운데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주고 위로를 나누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사랑과 위로를 받았은즉, 우리는 이웃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위로를 해야 합니다. 사랑과 위로를 하면 이웃도 살고 우리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다른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위로를 주시는 아들 예수님과 함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우리의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온갖 고통과 좌절의 일들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주님의 위로를 가지고, 믿음, 소망, 사랑의 메시지를 세상 가운데 전하며 주님을 찬양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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