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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어라, 믿으신 분

누가복음 최혜영 수녀............... 조회 수 459 추천 수 0 2015.11.27 23: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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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6-45 
설교자 : 최혜영 수녀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363560 

복되어라, 믿으신 분

(누가복음 1:26-45)

 

2014년 3월 23일 주일예배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마리아와의 만남

 

저는 가톨릭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기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며 자랐습니다. 주모경이라고 하여, 주기도문 외에 성모송을 외우고, 묵주기도도 일찍이 잘 따라했습니다. 어렸을 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픈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묵주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고 병이 나았을 때 성모님이 살려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신다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를 개신교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스도교가 신, 구교로 갈라진 역사를 배웠고, 교회 일치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의도적으로 성모님을 멀리하면서 그리스도 중심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나자렛의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성모’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은 여성신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여성신학자들은 신, 구교 울타리를 넘어 자매애를 나누며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는데, 마리아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 교리가 ‘동정녀이며 어머니’인 마리아 한 분만을 칭송하는 반면, 일반 여성에게는 ‘겸손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조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데 이용되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한편,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의 여성성은 도외시되고 남성적인 모습이 부각되어 오히려 교회의 가부장적 성격을 강화되었음을 비판하였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으며, 한국의 가톨릭 교회가 바뀌려면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신부이며 어머니인 교회’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간직해 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낳고 기르는 교회, 사랑의 윤리로 보살피고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 세례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자녀들을 낳아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교회로 성장해 가려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아내인 배우자적 사랑으로 ‘하느님 가족’을 구성한다는 관념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모성과 동정성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소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 소명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실천하여야 할 믿음의 소명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신랑과 신부, 부모와 자녀로 일치된다면,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며 가부장적인 교회의 모습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회, 생명을 낳아 기르는 살림의 교회, 하느님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우러진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마리아로 표상된 교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교리로 선포된 마리아가 아니라, 성경 속에 나타난 나자렛의 마리아를 먼저 만나자는 마음에서 “성서 속의 리더십- 나자렛의 마리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인간연구> 2003.12). 그 후, AMOR(=아시아/오세아니아 수녀회의)에서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수녀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성모님으로 공경 받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살아 숨 쉬는 마리아를 만날 때 그분은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신앙인의 전형이 됩니다.

 

생동하는 신앙과 소명에 대한 충실

 

저는 마리아에 대한 수많은 존칭(title) 가운데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복되어라, 믿으신 분”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를 “복된 존재”, 선하신 하느님 가족의 일원으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구세주를 잉태하고 양육하고 동반하는 자신의 소명에 전 일생에 거쳐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에 “복되어라, 믿으신 분!”(눅 1:45)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선사 받은 자 곧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자로서(눅 1:28), 자신에게 선사된 하느님의 호의에 대해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Fiat).”(1:38)라고 동의함으로써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37절)라는 말씀을 이 세상에 육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주님의 여종’으로 확실하게 규정합니다. ‘주님의 여종’이라는 표현은 신약성서에서 여기에만 나오는데,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로서,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정체성과 사명은 ‘하느님의 은총을 선사받은 자’, ‘하느님의 종(사람)’에서 비롯됩니다. 천사의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28절)는 선언은 당신의 종에게 중요한 사명을 주시는 신탁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또한 마리아의 소명은 예수님의 탄생에로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마리아의 모성은 도구적인 것이라기보다 자발적인 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찬가에서 마리아는 자신이 복된 존재임을 천명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1,48-49a: 눅 11,27 참고).


신앙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자신이 복된 존재이며 하느님의 사명을 가진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것을 선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동하는 신앙이야말로 사물이나 사건을 하느님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며, 자신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과 충실은 자기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청의 자세와 관상적인 안목

 

마리아의 일생은 마리아의 경청하는 자세와 관상적인 안목을 잘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마음에 새겨 “곰곰이 생각합니다(마리아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눅1:29), 베들레헴 목자들의 말이나(눅 2:19),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적인 말을 들었을 때(2:35), 또 소년 예수를 성전에서 되찾았을 때(2:51)도 이 모든 일을 그 마음 속에 간직했다고 누가복음 사가는 전한다)." 마리아의 이 반응은 마리아의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하느님 뜻을 찾는 이의 식별하는 자세가 미래에 대한 개방성, 상황에 대한 순발력과 유연한 대처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신중하게 따르고자 하는 겸손과 경청의 자세가 있었기에, 자신의 소명에 대해 주체성 있게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결단력 있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은 자유의사가 존중되지 않은 무기력한 순종이나 수동성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나 법에 종속당하지 않고 창의력 있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실천력과 결단력,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하느님께 맡길 수 있는 자기 확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직관력,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움,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해방된 인간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얼굴을 관상하도록 초대합니다. 특히 불의와 착취, 무신론과 물질주의, 폭력, 갈등과 질병이 가득찬 이 세상의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성령의 활동하심에 영적으로 열려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존재가 되도록 초대합니다.


 연대와 협력: 비전의 공유와 친교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에서 볼 수 있는 친교의 모습은 세대를 넘어선 연대와 협력을 잘 보여줍니다(눅 1:39-56).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주는 격려와 지지, 깊은 자매애, 그리고 젊은이가 노인에게 보이는 친절과 섬세한 배려의 마음은 진정한 친교와 연민의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서”(41절) 이루어진 두 여인의 친교는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 친절의 차원을 넘어서 보다 높은 차원의 비전을 공유하는 데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좀 더 큰 명분의 일을 위해, 자신들이 그 중요한 일의 공동 협력자임을 알아보고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마음껏 기쁨을 나눕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연대와 협력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친교는 아름다운 모델이 되어 줍니다.

 

 예수님의 동반자이며 후원자: 하느님의 집안을 일군 진정한 모성애

 

공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구체적인 역할이 예수의 공생활 안에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요한복음은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의 사명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반자임을 두드러지게 보여줍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예수께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알립니다(요 2:3).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민감하게 살피고 청함으로써 하느님 구원의 때, 예수 사명의 때를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하느님에 대한 개방성과 창조적 순응성이 이웃에게 확대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그의 어머니와 애제자가 함께 있었고 서로에게 맡기십니다(요한 19,25-27). 혈연적인 관계로만 본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아들이 믿을 만한 제자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는 것으로 보겠지만, 신앙인의 공동체에서 마리아는 영적 어머니로서 중심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에서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의 든든한 동반자(파트너)였고 지지자(팔로워)였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인격 안에 마리아의 모습이 반영되었을 것이고, 예수의 사고와 삶의 방식, 공생활 등에 참여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는 십자가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깊이 체험한 인물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 탄생에서 그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사신 분으로 세상 한 가운데 머물면서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인내하고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마리아는 혼전의 출산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미혼모의 처지였고, 이집트로 피신하여야 했던 정치적 망명자이자 이주민 노동자의 삶을 살았고,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사형수의 어머니로서, 자기 자신이 그 누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었기에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인고와 수난의 삶을 인내로이 동행하였기에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 19:30)는 예수님의 부활의 삶에 함께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보면 여느 어머니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마리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아이로 길러내는 혈연적인 어머니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아이로 길러낸 신적 모성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역할은 아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잘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함께 숙고하고 하느님의 아이로 자라도록 돌보는 점입니다. 마리아의 특별한 위치는 예수를 출산했다는 데에 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예수의 제자들과 정체성을 함께했으며, 예수의 제자공동체를 형성해 갔다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도 자신의 언행 안에서 구체화되는 하느님의 뜻을 줄곧 실행해야만 했었다고 자기 공동체에 가르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또한 마리아의 인품 안에서 조화를 이룬 두 모습, 즉 예수의 어머니요, 참된 제자로서의 모습도 시사해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다른 여인들과 함께 십자가의 발아래 서 있었으며(요 19:25), 초대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타나는 것은(행 1:14)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가족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예수의 혈연적인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협력자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분명 이 사도적 공동체 안에서 그 구성원들이 각자의 소명을 잘 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공동체의 목표를 잘 이뤄갈 수 있도록 드러나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구성원으로서 제자들을 격려하는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을 것입니다.

 

마리아 찬가


마리아 찬가는 마리아의 삶에 합당하다고 고백한 초대교회의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가진 목소리 없는 이들의 외침이며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예언적이고 종말론적인 노래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 마리아는 자유롭고 해방되고 강인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통에서는 사회적 변혁을 가져오는 마리아의 용기, 에너지, 창의력을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능하신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도다.”(눅 1:49)라고 말하는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아나빔 전통에서 보듯, 자신에게 이루어진 구원을 압니다. 자기 자신은 부족한 피조물이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세상의 부와 권세와 명예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가치를 받아들입니다.


마리아의 동정성, 신적 모성(431년), 무죄한 잉태(1854), 승천(1950) 등 마리아에 대한 교의는 오랜 신심 전통 안에서 자리한 것입니다. 19, 20세기에 성모님의 발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데 하느님의 여성성에 대한 갈망이 일반 신자들의 신심에 가까이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경축하며,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다양성 안에 일치를 이루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종파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참답게 따르는 신앙인의 증거가 필요하며, 마리아에게서 참다운 신앙인의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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