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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전1: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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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02) 2015.9.25 |
넘치는 소망을 가지라
(베드로전서 1장 13-17절)
<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라 >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과 결단도 따라오게 해야 한다. 진실한 믿음은 진실한 행동을 낳는다. 특히 고난은 자신의 믿음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은혜란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삶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가 구원의 믿음을 앞설 수는 없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성도다운 행동과 결단을 보여줌으로 값없이 받은
은혜를 값비싼 사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베드로는 “은혜를 바라라!”고 하기 전에 “근신하라!”고 했다(13절). 믿음과 은혜를
환각 상태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요새 예언을 빙자한 점들이 많다. 점을 좋아하는 교인들은 이사를 할 때도 점을 치고 사업을 할 때도 점을
치고 결혼을 할 때도 점을 친다. 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불안과 불평과 회의가 많고 감정적 기복과 삶의 기복도 많다. 구약 시대에 점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중죄였다. 하나님은 점치는 행위를 지극히 싫어하신다.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자기 신앙과
영성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근신이다. 가끔 이런 간증을 듣는다.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백화점 입구의 가장 좋은 곳에 주차 공간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면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 간증은 자신이 변화된 간증(干證)이 아니라 육적인 성취에만 몰입하게 하는 위험하고 간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 간증은 하는 것도 조심하고 듣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한 사이비 기도원장이 병자에게 말했다. “인간
의사에게 왜 매달립니까? 예수님이 위대한 의사입니다. 믿으면 예수님이 치유해주십니다. 저희 기도원에 와서 금식기도 하면 다 낫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병든 사람들이 마음이 약해져서 그곳에 가면 그때부터 영혼은 사단에게 매이고 돈은 돈대로 빼앗기고 나중에는 정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상처
입는 영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예수님은 치유를 주신다. 그러나 병들면 예수님을 찾아 기도하면서 동시에 의사도 찾아야 한다.
경솔하고 천박한 건강 및 번성 교리는 건전한 성경적 사고를 막고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자신의
안락과 축복을 구하라!”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육체적인 안락과 세상적인 번성을 최종목표로 삼지 않는다. 복은 사명으로 발전하고 헌신으로
나타나야 진짜 복이다. 십자가가 없는 복은 가짜이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십자가를 벗으려고 방황하지 말라.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것이 십자가를 벗는 길이다.
< 넘치는 소망을 가지라 >
또한 베드로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예수님을 만날 때 받을 은혜를 생각하면서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도전했다(13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랍고 특별한 계획이 있다. 그러므로 결코 희망을 잃지 말라.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능력이 있다. 더 나아가 성도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큰 능력의 원천이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을 초월해서 주어질 때가 많다.
필자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발간할 때
그 전에 출간된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판매 면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읽고 난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그 책을 읽고 자살과 이혼을 생각했던 사람이 자살과 이혼을 포기하고 미움을 통제하지 못하던 사람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성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다량으로 구입한 목회자들도 많았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생각과 상식을 초월한다는
진리를 새삼 깊이 깨달았다. 그처럼 자기 생각을 초월한 은혜가 여전히 넘치고 있기에 어떤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에게 잠깐의
실패는 있어도 영원한 실패는 없다. 삶의 모든 순간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진통 과정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늘 긍정적인 말을 하라.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으로 보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으로 보인다.
일전에 건강을 위해 수영을 할 때 자주 만나는 청년이
있었다. 잘생기고 멋진 청년이었다. 예의도 바르고 수영도 잘했다. 인상도 좋고 호감이 가서 “저런 청년이라면 사위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번은 탈의실 앞에서 그가 혼자 노래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우~우우우.” 20대 청년이 그런 노래를 하는
것을 보니까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성도는 노래도 희망적인 노래를 해야 한다.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했다. 성도는
언제나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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