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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081 추천 수 0 2016.01.03 15: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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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7:24-2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7장 24절-27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여자는 이방지역에 산 이방여인인데, 성경으로 보면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이 있는 거지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 이방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또한 이방 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가 우상을 섬기고, 미신 요행 자학 고행 등을 한다.


그런데 본문은 이방여자인데도 예수님 앞에 나와서 딸이 나음을 받고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게 나온다. 이런 경우 먼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자로 깔아놓고 봐라. 그래 놓고 보면 이 구원을 얻은 자가 이방민족 중에서 어떻게 살던, 어느 지역에 살았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구원의 소식은 간다는 것. 그리고 구원 얻기로 예정된 자는 전부 다 구원을 시킨다는 그게 예정적으로 들어있고.


예정이라고 할 때 우리교회에서는 ‘너는 안 믿기로 예정이 돼 있다. 너는 믿기로 예정이 돼 있다. 너는 천국 가기로 예정이 돼 있다. 너는 지옥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다’ 하는 게 아니다. 그걸 주장하게 되면 이치가 다 틀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몇 마디 안 가서 말이 막히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정된 자는 구원을 얻는다’ 할 때 이걸 이룰구원 차원에서 보는 거다.


이룰구원 차원에서 보게 되면 이 여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찾아 나온 것이니 ‘예수님을 찾아 나오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면으로 들어가는 거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았느냐’ 하는 면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그 여자의 고통스런 그 장면을 예수님께서 알고 그를 구원하려고 찾아가는 거다.


또 이걸 현재로 가지고 와서 보면 신실한 종들을 통해서, 신실한 성도로 통해서, 친구로 통해서 주님의 역사가 오는 거다. 그러니까 역사는 역사로 보면서 그 다음에 구원의 판을 크게 깔았을 때에 그 역사나 사건에서 하나님의 뜻을 창출해 내는 거다. 성경은 과거의 역사인데 그러나 그 속을 창출해 내자니까 사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정신을 검토하는 거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 같다면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환경에 따라서 약간 다를 뿐이지 사람은 같다. 예를 들면 안 믿는 사람의 정신이나, 예수를 믿어도 세상 속화된 채로 예수 믿는 사람이나 똑같다. 자리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약간 달리 보일 뿐이지 그 정신은 공통적으로 세상이다.


이걸 깔고 보면서, 그 다음에 존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 정신의 움직임으로 자꾸 들어가는 거다. 왜냐하면 인간을 하나님의 온전에 놓고 이것에 비교하여 인간을 보려니 그렇다. 안 그러면 하나님의 온전을 어떻게 보겠느냐? 사람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온전을 말할 수 있느냐? 그건 안 된다. 세상은 이런 건 전혀 모른다. 또한 세상 속화된 교인들도 전혀 모른다.


위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아니면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다. 그래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 구원이 된다. 그러니까 이건 이룰구원을 말한다. 왜 이게 이룰구원의 말이냐? 영이 죽었으면 예수를 못 찾는 건데 예수를 찾으니까 이건 영이 산 사람이다. 영이 죽었으면 못 찾는 거다.


영이 산 사람이라야 자기의 어려운 상황이나 모든 것을 감안을 할 때 ‘아, 예수님밖에 없구나. 예수님을 찾자’, 교훈적으로 들어오면 ‘깨달음을 받자’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속화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식구가 아프거나 사업이 안 될 때 ‘예수님을 찾자. 그러면 이것을 원상복구 시켜주시든지 나에게 손해가 되지 않게 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며 ‘하나님, 이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한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고 사람이 아프던 사업이 어떻건 사람이 어떻건 간에 먼저는 인간창조의 목적이 구원이요 복음이니 그 기준에 놓고 기도가 들어가는 게 옳은 거다.


지금 사람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는데 이것을 고쳐주시는 주님의 마음은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에 딱 두고 고쳐주는 것이다. 자기가 사업을 하는 것도, 모든 공부를 하는 것도 창조의 목적에 두고 해야 한다. 인간 자기를 창조한 목적이 구원이니까 자기 육신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고, 이 구원에 놓고 기도를 해야 그 사람의 정신이 사는 거다.


그런데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걸 안 하고 뭐든지 하나님께서 다 해달라고만 한다. 침상의 네 귀퉁이에 끈을 매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달아 내리는 비상수단을 쓰는 건 인간이 해야 하는데 이걸 안 한다. 신앙 면에서 비상수단을 쓰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119도 만들어 놨지 않느냐? 우리의 신앙 믿음은 적극성을 띠고 있다. 싸움에 나가면 돌격전이고.


젊은 어머니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어린 딸에게 붙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어 주기를 예수님께 간구했다. 그런데 어린 딸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이 어린 딸이 왜 더러운 귀신이 들렸을까? 더러운 귀신은 귀신이 들린 그 사람의 더러운 성질과 같이 들어 있다.


처녀들에게 그런 게 있는데 성격이 좋나, 성질이 좋나, 밤에 노상 꾸미고 나가고. 그거 참 더러운 귀신들린 거다. 말 한 마디를 해도 똑똑 쏘고, 부모에게 말하는 것도 속을 팍팍 긁고 송곳으로 팍팍 찌르고. 그게 성령 받은 마음이냐?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안 믿는 사람을 보면 그냥 자기처럼 평범하게 보이는데 어떤 상황이나 어떤 일이 벌어지면, 아닌 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일이 벌어지면,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한 번 떴다 하면 사족을 못 쓴다. 웃옷이고 뭐고 막 벗어 던진다. 이게 정상이냐? 이건 귀신들린 거다. 정상이 아니다.


또한 아주머니나 할머니도 배우들이 지나가면 ‘젊은 오빠니, 뭐니’ 하며 ‘헤헤’ 웃고 하는 그게 정상이냐? 아니다. 정상은 아니다.


중고등 학생들 중에는 일본이나 외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공연을 한다고 하면 부모도 모르게 학교도 빠지고 그런 데 간다. 그게 제 정신이냐?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런 행동이 나올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정신을 고친다. 그런 분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하는 데로 보내지 말라. 미술도 그렇다. 미술공부 하려면 좀 돈이 많이 드느냐? 미술을 하려면 의례히 주일날이고 뭐고 없이 뭉쳐서 가는 거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부작용들이 많다. 그러면 또 신앙이 제대로 될 것 같으냐? 안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생활미술을 하면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자기가 생활할 수 있고 예수 바로 믿어 나갈 수 있다면 별 탈은 없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돈 벌려고 외국으로 쏘다니고 하게 되면 그게 주 업이 되는 거다.


그러면 남는 게 뭘까?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남는 게 있다면 네 몸 망가지고 고통이고 슬픔이고, 그게 다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결국은 눈물 흘리고 고통 중에 죽는 네 인생이다.


그런 거는 안 믿는 사람이 다 하도록 내버려 둬라. ‘세상에서 일등, 와, 세상에서 떴다네’ 하는 건 안 믿는 사람이 다 하도록 내버려 둬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에서 영원히 일등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사람 중의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런 지도자 인도자가 세상에는 없다.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는데 그런 데는 신경이 안 가고 뭘 하고 있느냐?


이런 말씀의 이치를 들으면서도 어떤 조그만 일만 생겨도 자기가 가졌던 그 성격 성질이 그대로 튀어나오고 그만 마음에서 요동이 치면 이게 어떻게 되겠느냐?


어쨌든 세상에서 자기의 소원 목적이나 행복하고 잘 살고 잘 먹고 하며 세상을 우상시 말아라. 우상으로 섬기지 말아라. 부처를 섬기는 것도 우상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부모입장에서 우상을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자녀다. 자녀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 눈에 합격되도록 바로 키워라. 자식을 우상을 만들면 그 우상이 부모의 가슴을 다 태울 것이다. 그러면 그런 자식이 사회에서 반듯한 인물이나 되나? 안 된다. 별 수 없다. 끽 올라가 봐야 하루 세 끼 먹는 거다.


우리가 보면 세상에서 어떤 큰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우울증에 걸려서 아내도 도망가고 자식도 뿔뿔이 헤어지고 해서 산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사느냐’ 하고 걱정 근심을 할 것 같은데 그 사람은 그게 없다. 그런 생활이 그렇게 편하고 좋단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구나.


늘 사람에게 속고 피해를 당하고 그런 위주로 살게 되니 자살도 몇 번씩 하려고 하다가 아닌 말로 ‘이렇게 사느니 이걸 어떻게 풀어보자’ 하고서 길을 가면서 남이야 보던 말든 춤을 추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자기를 치료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믿는 쪽으로, 깨닫는 쪽으로 적극성을 갖고 일도 점령을 하고, 친구도 점령을 하고 예수 믿는 쪽을 밀착을 시켜라.


안 믿는 사람들을 자기처럼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성경은 정상이라고 보지를 않는다. 왜? 선악과 따먹었고, 영은 죽어 있고, 사망 아래 놓여있고, 죄 아래 놓여있고, 하는 것마다 하나님의 불심판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7절: 예수님의 말씀이 먼저 자녀로 배불리 먹게 한 후 개들에게는 찌꺼기를 준다고 했다. 자녀들을 굶겨놓고 먹을 것을 개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말을 가만 보면 여자가 개 취급을 당하는 꼴이다.


일반사람들의 눈으로 이 여자를 볼 때는 ‘아이고, 어렵게 사는구나. 저 집 딸이 악한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측은하다’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는 ‘이거 개같이 살았구나’ 하는 것이다. 이 여자가 딸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켰느냐? 개 같은 교육을 시켰구나. 예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눈을 가지고 보니까 그게 나오는 거다.


일반적으로도 이웃사람을 보면 개같이 사는 자가 참 많다. 다 대학교 나왔고 했는데도 일반적 도덕성이 없다. 아파트 아래층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도 위층에서 담뱃재를 버리고 침을 밷고 한다.


개라고 하면 정조 없는 사람을 말한다. 정조 없는 정신 신앙을 개라고 한다. 개는 쓰레기통을 막 뒤진다. 남의 신발을 물어뜯고 남을 잘 물어뜯고. 이게 개의 성질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면 맞는 말이다. 사람이 개 같이 살면 개 취급을 당한다. 신앙 영적으로 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신앙정신의 정조를 세상에다 내버리고 세상의 유행을 따라 세상의 바람을 따라 살게 되면 개 취급을 당한다.


개는 풀어놓으면 잘 돌아다닌다. 목사님들의 세계도 개 같은 목사가 참 많다. 성경연구는 안 하고 소위 말하면 마당발이다. 왜 그렇게 돌아다니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 뒤만 따르자고 해도 인생이 모자랄 판인데 그 정신은 버리고 어디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자식들도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커서도 그 버릇을 잡기 힘들다. 특히 아가씨들의 경우 사람이 규모가 있고 정숙성이 있고 마음이 단장이 잘 돼야 되겠는데 그건 없이 돌아다닌다면 앞으로 문제가 크겠다.


신앙정신적 정조를 세상에다 버리고 세상의 유행 따라 바람 따라 살게 되면 개 취급을 당했으면 당했지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힘들다. 이게 우연한 일이 아닌데, 개가 돌아다니면 개탕에 들어가기 일쑤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자에게 대한 예수님의 본 의도성은 여자의 마음에 자극을 줘서 낫게 해 주시려는 뜻이 들어있다. 예수님의 속마음은 그렇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다 팔고 날 따르라’ 하시는 것은 현재 부자보다도 더 망하게 하려는 거냐, 영원히 부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냐? 영원히 부자. 그러면 영원한 부자는 이 땅에서 거지가 되는 거냐? ‘보화가 있고 또한 금생에서 100배나 받고’ 이게 들어있다. 그 자기 존재의 귀중성을 알아라. 그런데 재물이 있는 자들이 자기 존재의 귀중성을 어디다 두느냐?


만일 여기서 딸아이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말을 듣고 ‘내가 왜 이 더러운 소리를 듣고 있지? 고쳐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욕을 하느냐’ 하고 성질을 내면서 훽 돌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교회 안의 남녀목사들을 보면 속이 좁아터진 목사들이 참 많다. 이거는 일반인들의 속보다도 더 못한 사람을 많이 경험했다. 여자목사님들 중에는 자기 교회 교인을 자기 며느리 부려먹듯이 부려먹는다. 그리고 내가 강의하는데 자기 귀에 듣기 싫으면 그만 틀어져서 가버린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보고 ‘사단아, 내 뒤로 몰러가라’ 할 때 우리 마음 같으면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가버릴 만도 하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께 죽지 말라고 한 것인데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다.


그러니까 이건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인간의 생각으로 말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속성이 끼어들면 사단의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있을 수 있다. 주일날 인간의 말을 듣고 교회에 가지 않고 그 사람을 따라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사단의 말을 듣고 간 것이다.


목사도 여러 성격을 가진 목사들이 있다. 아무리 목사가 많이 있어도 계:로 보면 예수님께서 보내신 참 교회의 사자가 있고, 아닌 사자가 있는 것이다. 참 사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가 나온다. 구원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이 참 사자의 말임에도 말씀을 받는 사람의 자세가 하나의 인간의 말로 듣게 되면 묻는 말에 바른 대답은 하지 않고 비비 꼬는 장난질이 나온다. 이건 아찔한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리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의 소리인데 비비 꼬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꼬리를 잡고 하는 것은 사단의 짓이다. 이는 받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사단의 마음과 같다. 이건 진리이치의 깨달음을 받는 성령의 감화의 마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깨닫지 못하게 흐리게 만드는 방해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구브로 섬 바보에 도착하여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엘루마라는 박수가 옆에서 믿지 못하게 자꾸 방해를 한다. 그 때 사도바울의 저주로 그가 소경이 되어서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게 된 일이 있다. 자기 분수를 아는 자는 말씀을 받는 자세부터가 달라진다. 축복과 저주는 말씀을 받는 자기 마음자세에서 판가름이 난다.


딸이 더러운 귀신들린 것은 어머니의 교육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들어있다. 그래서 어머니보고 개 같이 더러운 여자로 말을 했다. 싸울 때 일반적으로 ‘부모가 저러니 자식이 저렇지’ 하는 건 교육의 연관성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식이 어릴 적부터 어떤 성질 성격이 커져서 악령이 들어가도록 어머니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별 분별이 없는 교육이 된 것이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들을 ‘세상에서 일등 일등’ 하는데 자식이 이등을 하면 금방 죽는 거냐? 학교공부를 꼴찌 하면 못 살라는 법이 있느냐? 혹시 이 중에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안 올라가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기술자로 나가라. 그러면 훨씬 돈을 잘 벌 것이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사랑한다면 공동생활과 공중도덕의 판단이 잘 나오도록 규모가 있게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다듬어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릴 때부터 고집을 부리도록 키우면 그건 선악과 먹은 고집이니 그 고집이 점점 커지면서 선악의 판단이 흐려져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못 다스리는 자식이 된다.


사람이 왜 미치느냐? 남이 자기를 미치도록 한 거냐? 자기가 자기를 못 다스려서 그렇다. 자기가 사건 환경에 넘어져서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니 이것을 남들이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으로 자기가 잘 고쳐나가야 옳다. 이게 예수 믿는 거다. 어떤 사건 환경 와도 미치지 않을 자기로 되는 것.


모든 사건과 환경과 존재는 아무리 좋아도 다 지나가는 거다. 지나가는 거 붙잡고 지나가지 말라고 할 필요가 없다. 지나가게 내버려 둬라. 내 앞에 왔을 때, 내 눈에 보여졌을 때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된다. 지나가는 거 붙잡고 우상시 하면 자기가 미쳐버린다. ‘네가 너를 못 다스렸구나’ 그렇게 된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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