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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17 추천 수 0 2016.01.24 15: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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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22-2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장 22절-26절: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도착을 하니까 사람들이 소경 하나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손대시기 구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그냥 손을 대 달라는 거냐? 주님의 역사가 그에게 일어나기 바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 거다.


눈을 뜨게 하시는 방법이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음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시고는 ‘무엇이 보이느냐’ 하니까 그가 우러러 보며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라고 했다.


그러면 이 말이 나무도 걸어가고 사람도 걸어간다는 그 말이냐? 사람이 걸어가기는 걸어가는데 그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이는 계시적으로 뭘 뜻하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그림자 같이 다닌다’ 라고 한 것도 있는데 그림자가 뭐냐? 사람의 몸을 실상이라고 본다면 그림자는 허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림자 같이 다닌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허상으로 산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삶으로 산다’ 그 말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삶으로 인간들이 사는구나. 허망한 표현이다. 그 표현이 참 허망하다. 그림자들끼리 어떻게 사느냐?


우리가 이 표현에서 느껴지는 게 참 많다. 에스겔 선지자를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보니 그곳에 죽은 뼈들이 많다. 사람이 죽어서 뼈들이 굴러다니는데 순 뼈들이 머리는 머리대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분리가 돼서 쌓여있다. 그걸 보고 있으니 그게 다 살아서 이스라엘의 큰 군대가 된다. 이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보는, 그리고 성령의 눈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보는 거다.


그러니까 육적으로 보면 밥을 먹으며 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영의 눈으로 보니 송장이 사는 것 같구나. 영의 눈으로 보니 이스라엘이 다 죽었구나. 하나님의 신의 생명이 없이 사는구나. 신적인 도덕성이 없이 사는구나. 예수님의 맥박으로 살지를 않는구나. 이건 썩은 송장과 같은 거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걸 결합을 시킨다. 이걸 영의 눈으로 보면 말씀의 능력으로 뼈들을 세우고, 그 다음에 살이 붙게 하고, 언행심사가 연관되어 나가고 하는 뜻이 그 안에 들어있다.


기독자가 세상을 볼 때 성령에 감화된 영의 눈으로 보는 것과, 일반개념의 사고방식으로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영적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성령님의 눈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하나님의 신의 감화 감동으로 보는 게 성령의 눈으로 보는 거다. 사람을 성령의 눈으로 봐야지, 신의 감동 감화로 봐야지 일반 선악과 따먹고 나온 표면적 유형적 덩어리 큰 거, 외형적 모습 색깔 그것가지고 보는 게 아니다.


‘우러러 보며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그 눈에 다시 안수를 하니 저가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게 됐다. 그리고 만물을 밝히 보게 되었다.


처음에 안수했을 때는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나무 같은 것이 걸어 다니는 것으로 보였고 그 다음에 다시 안수를 하니 정확하게 보였다는 이게 처음에 안수하신 것은 시원찮았고 두 번째 안수는 확실히 했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만능의 능력자이시므로 한 번만으로도 정확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멀리서 안 보이는 데서 눈을 뜨라고 하면 뜨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안수는 첫 번째고 두 번째고 모두 확실하고 완전한 것인데 두 번을 안수하신 것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은 사람이 보이는 그것으로만 만족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해가 되느냐?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닌다고 하면 나무로서는 비정상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이건 정확한 사람이 아니다. 나무가 땅을 떠서 걸어 다니면 어떻게 되는 거냐? 그거는 금방 시들어서 땔감이 된다. 나무는 땅에 박혀 있어서 바로 서야 한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닌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뿌리가 없이 자기가 살 수 있는 근원을 무시하고 환경의 지배를 받고 유행바람에 산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바람이 들어놓으면 그 사람은 안착이 안 된다. 마음이 붕 떠 있다. 특히 아직 가정을 가지지 못한 청춘남녀들의 마음이 붕 뜨기 쉽다. 안착이 안 된다.


현재적으로 가정이 한 부모 가정이라면 주님을 강하게 붙잡아라. 안 그러면 마음이 붕 뜬다. 안착이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붕 떠버린다. 그렇게 되면 바람 부는 대로 날려 다닐 수밖에 없다. 주님을 바로 잡다보면 어느 사이에 세월은 흘러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사람들이 다 붕 떠있다. 근원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러면 근원 없이 사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인생설계대로 살아지느냐? 아니다. 자기는 창조자가 아니고 지음을 받은 자요 시간 속에 사는 인생이다. 큰소리치면 안 된다.


두 번째 하신 안수는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사는 생태계를 보지 말고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아야 만이 모든 만물의 존재목적과,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과 존재목적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되 사람이 사는 것만 보지 말고 주님을 주목하여 정확히 봐라. 그러면 너는 인생의 목적대로, 창조목적대로 사는 게 틀림이 없다.


주님께서 소경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프신데 나의 구원을 위해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지 못하고 인생의 눈이 감겨 있는 인간을 보실 때 그 마음이 오죽할까?


예수님께서 소경을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는데, 소경의 손을 붙드심은 그를 불쌍히 보심과 동시에 인도하심이 들어있다. 이는 마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켜 광야로 인도해 내심과도 같다.


소경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눈에 침을 뱉어 안수하셨는데, 눈에 침 뱉을 때 어떤 느낌일까? 좋게 느껴지느냐, 나쁘게 느껴지느냐? 나쁘게 느껴진다.


그러면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 주님의 침이니까 침은 침이지? 아니다. 그 느껴지는 게 어떠냐? 광야로 데리고 나가니 소풍 온 것처럼 기분이 좋으냐?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니 그 때부터 씁쓸한 일들을 당하고 고통도 있고 귀찮기도 하고 ‘왜 꼭 그렇게 살아야만 되느냐’ 하게도 된다. 그런데 불과 구름기둥을 가만 보면 낮에는 그 구름 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그림자로 선을 그어 놨다. 구름 밑에 그늘이 지는 그게 선이다. ‘너는 이 선을 나가면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에 데어 죽고 목말라 죽고 열병 나서 죽는다’ 그게 있고, 또 ‘그 안에 들어있으면 시원하고 보호가 된다’ 그게 있다. 그냥 구름기둥으로만 보지 말고 그늘의 보호의 라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인데, 훤한 그리고 따뜻한 그 권 밖으로 나가면 너는 추워서 죽고 얼어 죽는다. 그러니까 불과 구름기둥의 인도는 하나님의 인도권 보호권을 말한다.


목사님들은 그걸 마음에 느끼면서 메시지 속에도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권을 정신과 사상과 소원 목적적으로 느끼게 해 줘야 한다. 이게 인격적으로 주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헤아리느냐? 헤아리는 너의 그 헤아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도 하고 하나님의 재앙에 걸리기도 한다.


데라고 나가셔서 눈에 침을 뱉을 때 씁쓸하지만 주님이 인도를 해서 눈을 띄워주시려는데 그걸 못 참느냐? 눈에 침을 뱉을 때 ‘아, 이제 눈을 띄워주시려는 준비를 하시는구나’ 해야 할 텐데 ‘왜 내 눈에 침을 뱉습니까?’ 하며 침을 닦으면서 ‘나 그냥 소경으로 살렵니다’ 그렇게도 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해서 소경으로 살면 누구만 손해냐?


교인들의 신앙태도가 그런 장면이 얼마든지 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눈으로 보이는 것을 다로만 여기고 사니까 영적 눈이 밝아지는 이 면에 별로 감이 안 잡히는 거다.


눈에 침을 뱉어 안수하시고 보게 하신 것을 마을 안에서 무리들이 보는 데서는 할 수는 없었던가? 예수님께서는 만능의 능력자이니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왜 데리고 나갔느냐? 주님 당신 때문이냐, 소경을 위해서냐? 소경을 위해서다. 보는 데서 했더라면 모르긴 해도 오늘날 안수하고 신유은사 하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침을 뱉어서 눈 띠운다고 할 것이다.


또 말씀만 해도 되는 건데 침을 쓰시는 것은 ‘예수님 당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방편은 인간 보기에는 씁쓸하고 더럽게 느껴지겠지만 사람을 온전하게 고치시는구나’ 하는 게 들어있다. 다시 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이 순간적으로 씁쓸하고 귀찮고 기분 나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게 너의 영의 눈이 뜨여지는 길이다.


회사에 막 들어가면 윗사람들이 별 걸 다 시킨다. 일정시대에 일본사람의 공장에서 한국사람을 쓰는데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을 노에처럼 부려먹는다. 기술을 배우러 왔는데 ‘사장 집에 가서 아기 봐라. 집 청소도 하라. 요강도 비워라’ 한다. 그건 사장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거다. 왜? 공장을 넘겨주려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공장을 넘겨주더라.


예수님의 하시는 방법이 손에 침을 뱉어 양손을 양 귀에 대고 고쳐주심도 그렇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한 것도 그렇고 꼭 그런 방편을 쓰셔야 했나? 좋은 크림을 갖고 와서 바른 후에 ‘가서 씻으라’ 하면 안 되나?


침으로 그렇게 하실 때에 느낌적으로 더럽다고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심은 예수님의 모든 방편은 어떤 방편을 쓰시더라도 전부는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심이다.


침을 뱉고 하시는 게 당신이 거짓으로 심심해서 그렇게 하는 거냐, 당신의 전 인격의 활동이냐? 전 인격의 활동이다. 전 인격 전 생애가 천국성, 하나님의 신령성, 신의 감동 감화로 돼 있으니 그런 당신께서 하시는 그 무엇인들 우리의 구원이 안 될까? 접촉되고 연결되는 것마다 전부는 생명이요 구원이요 영생이요 영능의 실력이다. 그러나 그 주님을 떠나는 것마다, 끊어지는 것마다 파괴요 멸망이요 심판이다.


이게 안 믿어지면 학교학생이 학교를 안 간다면 결석하는 것마다 실력이 느느냐? 생애의 큰 손해다. 자기 장래적으로 볼 때 얼마나 큰 손해냐? 사람이 몰라서, 사람이 실수해서 자기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는 거다.


기독교 안에서 진리이치를 모른다면, 신앙의 질이 하나님 앞에 적중성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어도 자기 생애가 통째로 사망으로 날아가 버린다. 얼마 안 가면 그 증거가 나온다.


소경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소원대로 역사가 들어가니 소경이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다. 그동안 땅만 보고 살았는데 자기의 신앙의 심성이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본다고 하는 것은 고차원적인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좋은 현상이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이 차원만 갖고는 안 된다. 사람들의 활동만 보면 분명치 않다. 움직이는 것만 보면 분명치 않다. 그리고 땅에서 뽑힌 나무는 금방 말라 죽는다. 하나님의 근원을 떠난 일생은, 그 정신은 시들고 만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또 한 번 안수하시매 저가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더니, 그 다음에 만물의 존재목적 창조목적을 밝히 보게 된다. 예수님을 주목하여 똑똑히 보게 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똑똑히 보게 되면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 무엇을 위해서 만물이 지어졌는지, 어떤 사람을 위해서 만물이 지어졌는지 밝히 알게 된다.


사람을 기준하여 보면 안 된다. 사람은 지음을 받은 자이지 절대 기준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사람을 기준하여 보다가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는다. 너도 나도 사람을 기준하여 보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자기의 불행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찍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주님을 지목하여 보고 창조의 목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지를 않는다.


보이는 것은 전부는 지나가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온전으로 깨달아야 할 비유들이다.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는데 너도 나도 모두가 시간 속에서 다 지나가기 전에 같이 있는 동안에 선을 뿌리고 의를 뿌리고 아가페를 뿌리면 그 열매의 실상은 다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거다. 이게 믿어지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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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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