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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09 추천 수 0 2016.02.07 15: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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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3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장 38절: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세상은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다. 이방 불신세상은 그 정신 사상이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누림으로 들어가 있다. 안 들어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를 먹어야 하는 건데 선악과를 먹은 세상이므로 전부는 죄 아래요 사망이요, 이로 인해 정신적인 면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인데 그러지 않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다. 그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예수를 믿는 자도 있다.


예수=구원, 그러니까 예수사랑은 구원사랑, 이 구원사랑은 교훈적으로 들어가면 예수사랑과 같은 건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말씀의 이치로 살면 그 사람은 예수사랑이요, 예수사랑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런 면에서 신부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처럼 성도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그렇게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속화된 교회는 아무리 무슨 기도를 하고 안수를 하고 해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세상 부요성, 부자 되는 거, 눈에 보이는 것을 이뤄달라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금식기도도 하고 집회도 하고 안수하고 예언 방언을 한다. 이게 다 음란한 짓이다.


우리 입장에서 말하자면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버리고, 신앙정조를 버리고, 신앙정절을 버리고, 옳은 정신 사상을 버리고 세상을 닮고 있으면 그거는 음란한 사람이다. 안 믿는 사람은 통째로 그 정신이 들어있으니까 말할 필요는 없고.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할 때 믿는 사람보고 하는 말이다. 예수님 당시 때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음란한 정신을 가졌다. 제사장이 세계 강국 로마나라의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를 ‘우리의 왕입니다 하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이방나라 지도자를 ’우리의 왕입니다‘ 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느냐? 그러니 그 밑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지도자를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적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교회에게 세상 쪽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다 음란하고 죄짓는 일들이다. 신앙정조를 다 팔아먹는 것이다.


이치적으로 들어가면 믿는 사람이 남 두들겨 패고 하는 건 없으나 하나님의 진리본질에서 떠난 것은 전부는 악하고 음란하고 마귀 짓에 동원되는 것이다. 이룰구원 면에서 어떤 면이 망해간다는 것을 세부적으로 말하려니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나와 네 말’이 뭐냐? ‘나’는 예수님, ‘당신의 말’은 당신처럼 닮아 나올 수 있는 말씀.


말씀은 생명보다 더 귀하다. 그걸 따지려면 인간생명이 먼저 있었느냐, 즉 인간이 먼저 있었느냐, 말씀이 먼저 있었느냐? 말씀이다. 요한복음에 있다. 그러면 창세기에서 물질세상을 먼저 만들었느냐, 인간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중에 물질을 만들었느냐? 물질이다. 그건 왜 그러냐? 인간을 위해서 미리 준비를 다 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편에서는 말씀대로 순종해 들어가면 먹고 마실 걱정은 없다 그 말이다. 그런데 말씀순종에서 어그러지니 다 빼앗기고, 먹을 것을 찾아가야 하고, 먹을 것을 만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게 됐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인간이 먹을 것을 자꾸 찾아가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아프리카의 짐승들을 보면 코끼리나 새들이 가물고 비가 안 오면 특히 코끼리 떼들이 몇 백리 몇 천리를 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건 왜 그러냐? 그 짐승이 죄를 지어서냐? 알고 보면 사람 때문이다. 사람이 바로 돼야 짐승들도 덕을 보는 건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앞에 범죄가 돼 놓으니 비를 주시지 않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비를 안 주는 것은 그게 비유적으로 들어있고 상징적으로 들어있는 건데 하나님의 은혜를 주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일반은총도 막혀버린다. 그 바람에 동물들이 막 죽는다. 그러니 누구에게 손해가 오는 거냐? 결국 인간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


이방 불신세상은 그런 이치를 못 따진다. 자기만 배부르면 되고 돈만 가지면 자기 쪽으로 늘 유익이 들어있다. 그러니 그 사고방식이 참 힘들다. 가난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그 사고방식이 생각이 자기를 힘들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만 바로 서고 바로 되면 이게 참 편하고 좋은 건데 그렇게 안 사니까 자기 행복을 자기가 찾으려 하고, 자기의 존귀영광을 자기가 찾으려고 하게 된다. 서로가 그런 경쟁이니 그 사고방식이 참 힘들다.


대학교를 나오면 공부는 하나도 못해도 대학의 이름만 갖고도 가정교사도 하고 그러느냐? 그러면 자기 자식이 그런 교사를 만나면 공부가 되겠느냐? 힘만 들고 돈만 들고 서로가 힘들다.


대학교 나온 사람은 초봉이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대학에 들어간다. 그러니 인격 면에서는 뭐가 있느냐? 그러니 어지럽고 힘든 거다. 대학을 나왔으니 아무 데나 못 들어가겠고. 그 참으로 힘들게 산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그렇게 되니 ‘인자도 즉, 예수님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왜 여기서 ‘인자’라고 한 것일까? 글자대로는 ‘사람의 아들’인데 왜 그 표현을 했을까? 이는 사람으로서의 최고 영광자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도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다. 그런데 ‘너’라는 사람 앞에 예수 ‘나’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비교해 봐라” 그 말이다. ‘사람으로서 난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은밀한 뜻이 담겨있다. 예수님 당신을 보고 느끼라 그 말이다.


38절의 이 말씀이 이방인들을 향한 말이냐, 예수 믿는 나보고 하는 말씀이냐? 나보고 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자는 시대의 분별을 잘 해야 하고, 자기의 신앙 믿음을 진리본질로 정로로 바로 세우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하시는 것은 한 마디로 마지막 교회들이 세상 속화되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교회들이 세상 속화된 상태다.


일간신문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라고 하는 데서 광고 낸 걸 몇 자 읽어보니까 이거는 바닥이 없다. 이단자들이 흔히 그렇게 하는데 잘못된 그런 걸 끌어다가 자기들의 말을 해놓고, 자기들의 그 말에 성경을 끌어다 붙인다. 그러니까 성경이 기준이 돼서 뜻을 밝히는 건 없고 자기들의 말에 성경을 끌어다 붙인다.


신 천지나 다른 이단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기존교회들도 가만 보면 바닥이 없다. 반석이 없다. 사람이 딛고 바로 서는 반석이 없다. 그냥 붕 떠있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게 보여도 붕 떠있다.


불교인들이 뭐라고 하나? ‘운수대통하고, 안 아프고, 가난하지 않고, 복 받아 잘 살고’ 이런 걸 신문에 광고로 내놓는데, 그러면 기독교 신문은 어떠냐? 사회적으로 떴다고 하는 목사님들이 ‘국가를 위해서, 자녀의 입학을 위해서 어쩌고’ 하는 이건 전부가 이방인들이나 이방종교가 구하는 것과 똑같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을 성경에서 봐라.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의 길을 걸어가면서 봐라. 의인이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성을 멸하지 않겠다’ 한 이게 뭘 말하는 거냐?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을 찾는 거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하나님은 일 잘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외국에서 돈 많이 벌어오고 그런 사람을 찾지 않는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자의 목소리를 들어봐라. 사람을 찾는다.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다 자기가 들어있다. 나보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그러니 자기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예수를 믿어도 사람이 사고방식이 비뚤어지면 그 후유증이 일생을 갈 수도 있고 손해가 막심하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는구나. 집이 날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거야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바르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사람이 잘못되니까 전부 다 날아가고 사람까지 죽는다. 왜 그렇게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까? 참 힘들게 믿고 있구나.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나님은 당신 앞에 바로 선 사람을 찾는다. 그러니 자기만 바로 서라. 그런 사람에게는 ‘멸망시키지 않겠다’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소돔 고모라 성을 봐라. 아브라함의 기도를 보면 소돔 성 전부를 구해달라고 했느냐, 조카 롯을 생각하면서 그 롯을 구해달라고 기도를 하느냐? 그게 상징성이 들어가 있는 거다. 주님이 롯과 같은 천하 못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못난 나를 위한 주님의 기도로 아직까지 내 목숨이 붙어있구나. 이걸 생각하면 ‘주님 앞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답은 나온다.


말씀을 들을 때 ‘그래도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말씀대로만 살 수 있느냐’ 하며 믿음 없는 소리를 하려면 여기에 오지 말아라.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노아 홍수 직전의 때와 소돔 고모라 때의 불바다 직전의 때가 복합적으로 합쳐진 상태가 마지막 때이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했다. ‘마지막 때는 노아홍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으리라.’ 마지막 때는 이게 복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의 상태도 복합으로 봐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복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세상 속화된 교회란 세상주격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교인들이 성경을 가지고, 예수이름을 가지고 거룩한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속화요 인본주의다. 이런 곳에서는 하나님의 본질은 있을 수가 없고 일반적으로 사람도 안 된다. 성격도 못 고치고 성질도 못 고치고 모든 가치판단 평가성의 지혜가 일반성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뭐가 어떻게 됐다’ 하는 소리는 늘 세상성이다. 예수 믿는 것이 뭐냐?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게 뭐냐?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인가? 거기서는 ‘구약은 이미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는 사라진 거고, 그 다음에 또 새로운 예수님이 와야 한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끝나면 또 새로운 뭐가 와야 한다’ 라고 한다. 새로 오는 그게 바로 자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에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보는 계시는 하나도 없는 거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없애버렸다고 하는 것은 성부시대는 가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은 누구 시대냐? 자기들 시대라.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느냐?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까 계시적으로 영적 성령으로 자기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이 생기는 거다. 그러면 그들만 그러냐? 오늘날 교회가 거의가 그렇게 들어가 있다. 아무리 ‘영성 영성’ 해도 진리성이 아닌 육성이다. 자꾸 인간에게 어떤 신비스런 체험이나 얘기하는 그건 진리영성이 아니다. 그런 걸 영성이라고 말한다면 무당들도 다 영성이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하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뜻으로도 알 필요가 있다. 음란을 일반적인 뜻으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난잡한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간음하고 간통을 해서 나온 음녀의 씨들, 음부의 씨들.


요즘 신문에 광고하는 게 너무 저질스럽다.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이방인들이 좋아하는 그런 옷맵시로 입지 말아라. 자기의 옷을 단정히 입는 것이 바로 네 정신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의복이 단정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긴 옷을 입혀놓으면 주체를 못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일반적으로도 몸을 가릴수록 사람이 고상하게 보인다.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옷, 의의 옷을 입을수록 사람이 참 고상하게 보인다. 자기를 단속해야 한다. 교회 오면서 뒤도 파이고 앞도 파이고 한 옷을 입으면 안 된다. 그렇게 옷을 입고 오면 ‘아, 네가 지금 세상바람이 들었구나’ 난 그렇게 본다.


하늘나라에 가면 전부 긴 옷을 입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 거룩’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자기의 죄를 가리는 그게 들어있다.


간음하고 간통하고 거기서 나온 음녀의 씨들, 이방 우상을 섬기는 무녀의 자식들, 그리고 동성연애자들 등도 음란하고 난잡한 것이다. 뉴스에 보니까 여자목사가 동성연애를 찬성한다고? 이거는 미쳤다. 성경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인지? 구약시대 같으면 돌에 맞아 죽는다. 이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성(性)을 다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게 들어있다.


지금 “세대차이니,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하면서 선악과 따먹은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힘을 쓰고 있다. 이걸 영적으로 말하자면 세상과 벗된 자들이고,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고, 이적기사를 구하는 자들이고, 그리고 세상을 소원 목적한 믿음이다.


교회가 세상 시대적 이방종교적 사상에서 발생된 여러 가지 행사위주로 나가고 시대를 따라가는 종교행사로 나가면 그 안에는 기독교의 함정이 있다. 구복주의 사회주의 신비주의 극기극복주의 자학주의 외식운동 등 전부가 함정이다. 적중성으로 가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옆에 함정으로 있어서 교인들이 그리로 빠진다.


‘죄 많은 세대’란 진리생명의 말씀의 이치의 깨달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믿는 자들을 말한다. ‘세대’란 ‘그런 부류의 정신을 가진 족속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 속화된 교회까지 다 포함이 되는 것이다. 세상 속회된 교회가 일반 정신 사상을 가졌다. 그러니까 그게 족속들이다. 그 세대의 부류들이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이 주장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믿는다면 ‘너도 그들에게 속했구나’ 이게 나오는 거다.


요즘은 전자저울인데 그 전에는 스프링 저울을 썼다. 그래서 스프링이 약해지면 바늘이 제 멋대로 움직인다. 주인이 그걸 모르면 완전히 손해가 날 때도 있다. 또 물건을 사가는 손님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진리본질에 적중성을 가진 신앙이 아니면 이게 구별이 안 된다. 정확할수록 딴 것이 구별이 돼 나온다.


지금 그런 부류의 정신을 가진 족속들이 한두 사람이 아닌 교회 전체들의 사상이 그런 정신으로 홍수처럼 내려가고 있다. ‘세대’라고 하는 것은 그런 부류의 정신이 홍수처럼 내려간다는 것이다.


김석준목사님은 이미 현 시대가 그러한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가운데 서서 그걸 막으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다가는 너까지 떠내려간다’ 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홍수처럼 내려가는 여기에는 절대로 회개가 안 된다. 그냥 막 휘잡고 내려간다. 뒤에서 밀어붙이고 앞에서 당기니 회개가 안 된다. 지금 시대가 그런 것으로 보이면 너나 바로 서라. 이제 끝이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께서 천국보좌를 버리시고 성육신으로 인간되어 오셔서 인간 나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느냐? 이걸 일대 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나 찾으러 나 만나려고 인간되어 오셔서 나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느냐? 당신이 나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고 죽었으면 죽었지 당신이 손해 안 보려고 나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느냐?


이룰구원 면에서 나를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33년간을 하나님 앞에서 선과 의를 행하셨다. 이 선과 의행은 하나님의 본질로 다 들어가 있다. 이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선과 의행으로, 일반적인 선과 의행과는 질이 다르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전부는 하늘의 것이다. 세상 것은 전부가 땅의 것이고 임시성이다.


선과 의행으로 33년을 사시면서 하늘의 것, 신령한 것, 죽지 않을 것으로 삶을 사셔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시고,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나를 죄에서 풀어내셨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라고 깨닫는 말씀도 주셨고, 성령도 주시고, 영능의 실력자 영원히 영능의 존귀 영광자가 되라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주셨고, 신령천국을 유업으로 주셔서 영원히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하게 살게 하셨는데, 한 가지라도 나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느냐?


예수님 당신처럼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성품화로 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이치적으로 다 말씀해 주셨고 다 장만해 주셨으니 영원히 존귀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받으실 그 분이 아니더냐 그 말이다. 내가 이 예수님께 영원히 존귀영광과 감사 찬송을 하려면 자기가 저속하게 있으면 그 찬송은 안 나온다. 그걸 내가 받아야 그 찬송이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할 때 저질적인 신앙은 물질적 개념이 들어서 그런 말을 하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서 그걸 찬양하는 사람은 ‘나를 하나님 당신처럼 만들어 놓으셨으니 이 모양 이 모습 이 영광성 모두를 당신에 해 놓은 것입니다. 당신의 역사입니다’ 하고 찬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못 깨닫고 저질적으로 돼 있으면 이 찬송을 못한다. 인격적으로 못하는 사람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천국복음을 다 전하시고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우리에게 다 나타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 전부는 생명이고 영광이고 영생이다. 이걸 우리에게 다 나타냈다. 우리를 또 그렇게 만들어 주신다. 이게 존귀영광이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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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3 시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 시96:1-13  이한규 목사  2016-02-06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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