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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향하십시오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54 추천 수 0 2016.02.13 23: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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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3:1-6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요한계시록 3장 1-6절)


< 종교개혁 정신이 필요합니다 >

 로마 외곽에는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이 있습니다. 그곳의 예배장소는 너무 초라했지만 거기서 순결하고 진실한 예배가 이뤄졌습니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베드로 성당은 기독교 역사상 최대 분열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 성당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에 반대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신교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왜 가톨릭교회가 타락했습니까? 교회가 엄청난 세상 권력까지 가졌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을 낳습니다.

 기독교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년도는 주후 313년, 590년, 800년, 1517년입니다. 주후 313년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였습니다. 그때부터 카타콤 신앙은 사라지고 교회가 권력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후 590년은 그레고리우스 교황 때 교회의 절대권이 인정된 해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후 800년은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에게 로마 황제의 칭호를 부여한 해입니다. 그때부터 교황이 황제와 왕을 추인하는 절대 권력을 가지면서 교회는 중세 암흑시대를 맞이합니다.

 물론 그 기간 중에도 간간히 교회 갱신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갱신 운동 참여자들이 화형을 당했습니다. 주후 1035년부터 간헐적으로 등장한 면죄부는 1506년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 건축비 충당을 위해 대량의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종교개혁의 서막을 올렸습니다. 당시 교황은 헌납자의 형편에 따라 헌납하라고 했지만 일부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이용해 부를 축적했고 면죄부 전문 판매원까지 생겼습니다.

 그 판매원 중의 한 명인 도미니크회의 수도사 테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본인은 물론 그의 부모와 형제의 죽은 영혼조차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져 내는 딸랑 소리와 동시에 연옥에서 튀어나온다.” 그처럼 당시 면죄부 판매원들이 “면죄부를 사면 고해성사나 회개가 필요 없고 죽은 영혼을 위해서도 면죄부를 살 수 있다.”고 해서 종교개혁 직전에 면죄부가 엄청나게 팔렸고 심지어 면죄부는 당시 교인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 면죄부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주후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면죄부가 가장 팔린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 조항의 잘못된 교회상에 대한 반박문을 붙여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교황인 레오 10세가 그를 파문해 설교권을 정지하자 루터는 물러서지 않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탄핵했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 계층구조도 비판했습니다. 또한 그를 파문했던 교황의 교서는 물론 모든 교회법 사본을 불태웠습니다. 그로 인해서 서방 기독교계는 구교와 신교로 분열했지만 결국 루터는 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부패한 교회에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교인들이 루터처럼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곳곳에서 종교개혁을 시도했지만 그 중에서 루터의 종교개혁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인 이유도 있었지만 성서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할 정도의 대단한 실력과 내적인 깨달음을 통한 영적인 능력과 영향력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개혁가들이 무참하게 화형과 참수를 당할 때 루터는 독일 영주와 제후들의 적극적인 보호로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원하면 인물이 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요새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할 정도입니다. 대형교회들은 좋은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은 잘못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대형교회가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해서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한국 전체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대단히 큽니다. 지금은 위기를 맞은 한국 교회에 종교개혁 정신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것입니다.

< 성령 충만의 바른 의미 >

 본문에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다섯 번째로 사데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사데 교회에 말씀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성령을 말하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이 ‘교회를 충만하게 하는 성령’으로 묘사된 것입니다. 그 묘사는 사데 교회가 “성령 충만한 역사가 많이 필요한 교회구나!” 하는 암시를 줍니다.

 성령님이 없다면 그 교회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에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는 칭찬이 없이 책망만 했습니다. 본문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죽은 형식만 남은 교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주후 800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까지 교황권이 황제 이상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강력한 교황시대의 교회’가 사데 교회의 성격과 유사합니다. 그때 교회는 성령님이 떠나고 형식만 있는 빈껍데기 교회였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다만 성령 충만을 내세울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의 오용입니다. 특히 영성을 과시하고 활동적인 것을 성령 충만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단 교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영, 영성, 성령 충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성령 충만이 더욱 큰 문제를 낳는다는 증거입니다.

 성령 충만의 반대말은 ‘연기 충만’입니다. ‘연기한다’고 할 때의 ‘연기(演技) 충만’도 문제이고 ‘연기가 난다’고 할 때의 ‘연기(煙氣) 충만’도 문제입니다. 교회에 연기가 충만해지면 허위의식에 의해 영혼이 질식되고 기쁨이 없어집니다. 또한 비판과 정죄와 교만으로 점차 영혼의 불이 점차 꺼집니다. 반대로 바른 성령 충만이 있으면 심령에 사랑과 이해와 배려가 넘치게 되고 교회에 평안과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성도는 성령 충만하게 되어서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만나면 오래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6장 28절에 보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불신자들조차 “당신은 정말 믿는 사람답습니다.”란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 진짜 성령 충만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을 보여줄 때 그를 통해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

 사데 교회의 모습을 통해 얻는 중요한 교훈은 외적으로 잘 되고 축복 받았다고 느낄 때가 더욱 근신할 때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체험했다고 간증 집회를 다니면서 이름을 높이다가 심지어는 간증을 생업으로 삼는 전문 간증 꾼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내면의 진실함은 점점 사라지며 껍데기만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힘들 때 오히려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대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문제와 기도제목이 생기는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데 교회는 겉으로는 잘 나가는 교회로서 힘도 있고 인정도 받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를 다 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행위를 다 아신다는 말이 진실한 믿음이 없을 때는 가장 두려운 말이고 진실한 믿음이 있을 때는 가장 소망적인 말입니다. 그 말이 소망적인 말이 되도록 늘 사람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그래서 외형을 성공기준으로 삼아 사람과 교회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도로에서 벤틀리를 몰고 다니면 가끔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부러워서 쳐다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호기심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런 시선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을 추구하며 살면 내면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의외로 크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앞날 및 죽음 이후의 삶에서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펼쳐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면에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벤틀리를 몰고 다닐 능력이 있지만 억지로 티코를 몰고 다니면서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검소한 삶을 나타내면서 시선을 끌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역발상 과시욕으로서 보기가 불편합니다. 신앙생황에서 절제하는 삶의 훈련을 위해 가끔 금식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명함에까지 “40일 금식기도 세 번!”이라고 쓰면서 절제를 과시하는 것은 보아주기가 아주 불편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벤틀리는 충분히 몰 능력과 재력과 위치와 신분이 있으면서도 평범한 중형차 정도를 몰고 다니면서 은밀하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힘써 나누고 선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 같은데 진짜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외형으로 과시하는 사람들을 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엄청난 내용과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해야 할 때는 누구보다 멋지게 헌신합니다. 대단한 내공과 중심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것과 영성이 충만하다는 것은 거룩한 중심이 있고 거룩한 목적을 가진 것을 뜻합니다. 모든 물건은 그것을 만든 목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 목적이 없겠습니까? 그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이 중심이 있는 것이고 그때 가장 복된 삶이 펼쳐집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그런 중심이 있기에 외형에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는 죽음도 겁나지 않습니다. 죽는 순간 즉시 주님과 함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미래는 외형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열매에도 달려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미래는 중심에 달려있습니다. 삶과 생각과 패턴은 중심에 의해 크게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도 중심이 좌우합니다. 무엇이 자신을 화나게 하고 무엇에 예민한지를 보면 그 사람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중심(core)는 관심(care)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I don't care(관심 없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관심이 없으면 변화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너무 관심이 많아도 안 되지만 너무 관심이 없어도 안 됩니다. 약속시간을 잘 어기는 사람은 약속시간을 어기는 달란트를 가져서가 아니라 그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삶이 어려운 삶은 아닙니다. 저도 사소한 약속시간에 자주 늦어서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 천성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사소한 약속시간도 잘 지켜서 항상 먼저 가 있자!”고 다짐하니까 그때부터 거의 약속시간에 먼저 가 있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천성이 아니라 관심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배움이나 물질로 변화되기보다는 중심(core)과 관심(care)으로 변화됩니다. 정말 변화되길 원하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과거의 상처가 자신의 현재를 좌우하지 못하게 하려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미래가 있는 복된 삶을 살고 자신의 목적대로 살려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심지어는 지혜와 명철과 창조성도 내면의 중심으로 향할 때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가장 효율적인 인생을 살고 가장 자기답게 살아서 최선의 자기를 만들려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해야 합니다.

 차를 몰 때 목적도 없이 차를 몬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처럼 물질이 있고 달란트가 있어도 거룩한 중심과 목적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이제 목적 없이 인생의 차를 몰아가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이란 ‘이상한 은사를 만들어 시현하는 것’이나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것’이나 ‘기적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나 ‘미래를 예지하고 종말 시한을 맞춘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중심을 회복하고 거룩한 씨앗을 찾아 발아시키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문이 생길 때마다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사업과 일터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으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회복과 부흥을 원하고 성공과 성장을 원하면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먼저 자신 안에 있는 거룩한 씨가 작동하게 해야 합니다. 참된 능력은 중심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결혼생활과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의 성패도 중심에 의해 좌우됩니다. 자기가 꼭 성취하고 싶은 일의 성취도 중심에 의해 이뤄집니다.

 결국 이 세상에 인물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거대한 겨자나무가 됩니다. 누구에게든지 성공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를 발아시키면 됩니다. 자신 안의 가능성을 묶은 내면의 사슬을 푸십시오. 내면의 중심을 회복함으로 먼저 내면의 사슬을 풀어서 이미 벌어진 일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좌우하게 하지 마십시오. 남이 자신을 좌우하게 하지 마십시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중심에 두신 거룩한 자신의 씨에 의해서만 좌우되십시오.

 중심이 있는 사람은 고난과 시련과 문제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삶을 살았습니까?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내면의 중심으로 향하십시오. 더 이상 외형이 내면을 좌우하게 하지 마십시오. 행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깊은 평안에서 옵니다. 깊은 평안은 어디에서 옵니까?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때 옵니다.

 물론 사람은 연약해서 본능을 따라 외형주의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래도 교회만은 외형주의를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가 외형주의를 따라가면 정의를 갈아내는 세상의 숫돌 역할을 못하게 됩니다. 요새 힘이 정의라고 하지만 교회에서도 힘이 정의가 되게 하면 안 됩니다. 힘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자정 능력을 잃기에 사회의 양심의 지표가 되어야 할 교회는 힘이 생기면 하루 빨리 힘의 분산과 나눔에 힘써야 합니다.

< 진실한 소수가 되십시오 >

 사데 교회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사데 교회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이 구절에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이란 말은 아직 남은 최소한의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지금 막 없어지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그 최소한으로 남은 좋은 것마저 사라지지 않도록 그 좋은 것을 굳게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란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멀어지고 형식만 남은 상태에서 하루 빨리 회개하고 벗어나 심판 때를 준비하라고 말씀했습니다(3절).

 그런 형식만 남은 상황에서도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4절). 그들은 진실함을 추구한 종교개혁자들입니다. 그들에 대해 예수님은 2가지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는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4절).”란 약속과 또 하나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5절).”는 약속입니다. 결국 사데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외형주의가 아닌 내면의 진실을 추구하는 소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외형의 힘’보다 ‘내면의 힘’이 강하고 지속력이 있습니다. 외형을 추구하면 교인이나 교회나 갈등과 싸움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위해 싸운다고 하지만 교회를 위한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싸울만한 가치 있는 교회를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비판과 정죄와 싸움은 아무리 변명해도 진실한 신앙을 잃어버린 표식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고 행동보다 내면의 진실을 앞세우는 삶이 중요합니다.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디서든지 내면의 진실을 통해 복 덩어리가 되는 삶입니다. 또 하나는 어디서든지 외적인 과시를 통해 골치 덩어리가 되는 삶입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골치 덩어리가 아닌 복 덩어리의 삶을 살면 자신의 앞날이나 자녀의 앞날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한 신앙은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루게 하는 최상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18세기에 미국 동북부에서 일어난 신앙갱신 운동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대단한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늘 경건하고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대가 지나서 그의 후손을 살펴보니까 그 가문에서 1명의 부통령, 13명의 대학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 48명의 판검사, 116명의 선교사와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내면의 진실한 신앙은 그 힘과 파급력이 대단히 큽니다. 그런 진실한 신앙으로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되고 교회의 산 증인이 되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래서 불의하게 비난하는 사람을 제외한 누구에게든지 믿는 사람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십시오.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항상 진실한 내면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땅에서 멋지게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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