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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

사무엘상 이한규 목사............... 조회 수 986 추천 수 0 2016.02.13 23: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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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3:1-1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24)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 (삼상 3장 1-10절)


< 순수하게 헌신하십시오 >

 어느 날, 한 형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괴 두 개를 발견했습니다. 둘은 하나씩 나눠 가졌습니다. 그리고 계속 길을 가다가 갑자기 강물에 형이 금괴를 내던졌습니다. 동생이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형님! 왜 금괴를 버리세요?” 형이 말했습니다. “동생! 금괴를 보니까 ‘동생만 없었으면 내가 금괴를 다 차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악한 마음이 들었어. 금괴 때문에 우리 우애가 깨질까봐 그랬어.”

 그 말을 듣고 동생도 말했습니다. “형님! 저도 그런 욕심이 들었어요. 이 금괴는 나쁜 물건 같아요.” 결국 동생도 금괴를 버렸습니다. 둘은 편안한 마음으로 각자 귀가했습니다. 그날 밤, 형은 은밀하게 금괴를 버린 곳에 가서 금괴 두 개를 찾아내어 큰 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잘 살았고 동생은 노동일을 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단 교주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나쁜 형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좋은 말로 극단적인 헌신을 유도해서 순수한 신도들이 집과 재산을 바치면 교주는 대형 건축물을 지어 자기 왕국을 건설해 떵떵거리며 살고 반면에 교인들은 헐벗게 삽니다. 그 교주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확장한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잘 바치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교인 중에는 교회건축을 위해 눈을 팔 준비가 된 교인이 꽤 많다고 자랑합니다.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이단성을 의심받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주님의 몸이지만 사람의 몸도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나는 순교할 운명으로서 순교해야 된다!”고 순교 콤플렉스와 헌신 콤플렉스에 빠져서 불의하게 헌신하다가 교주의 이용도구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잘못된 순교는 다른 종교에도 있습니다. 모슬렘에서 자살폭탄을 자처하는 신도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그들 뒤에는 그들을 사주하는 불의한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냉전 시대 때는 이념을 위해서 자기 몸을 내놓고 자기 부모를 고발해서 총살시키는 자녀가 사상을 위해 헌신하는 표상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 모습은 참된 헌신이 아니라 몰록 신에게 자녀를 불태워 바치는 이방 의식과 같은 불의한 헌신입니다.

 두 종류의 이단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과 복음의 원리 자체에서 이탈한 ‘개념적 이단교회’와 또 하나는 성경과 복음의 원리 안에 있는 것 같은데 행태에서 이단교회를 닮은 ‘행태적 이단교회’입니다. 교회건축을 위해 특별 건축 집회를 열고 분위기를 띄워 극단의 헌신을 강요하고 천국 보상을 내세워 한 채밖에 없는 집을 팔고 월세로 가게 하는 모습은 ‘행태적 이단교회’의 의심을 사게 만듭니다. 자발적으로 우러난 대 헌신은 아름답고 후유증도 없지만 의도적으로 우려진 대 헌신은 비참하고 후유증도 큽니다.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까? 약 120년에 걸쳐 지었던 베드로 성당의 엄청난 건축비 마련을 위해 돈 받고 면죄부를 판 것 때문이었습니다. 자발적인 헌신은 아름답지만 건축헌금을 강요하는 것이나 장로가 되려면 1억 원 이상을 헌금하고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려면 2천만 원 이상을 헌금하라고 하는 것은 현대판 면죄부를 파는 행위와 같습니다.

 옛날에 한 부흥사가 부흥회에서 교회건축을 위해 눈을 파는 예화를 들려줬을 때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그 예화의 주인공이 교회건축을 위해 눈이라도 팔겠다고 전주 예수병원을 찾은 것은 자발적이고 순수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부흥회에서 늘 그 예화를 내세워 건축을 위해 눈과 신장과 아파트 등을 팔아 헌금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 점차 성도들이 부흥회를 외면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교회건축의 감동이 넘쳐서 못 견디겠으면 성도들의 눈은 보호해주고 차라리 강사 눈부터 먼저 빼야 합니다.

 이단 교회의 3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교주가 신도들의 재산을 뜯어냅니다. 그래서 큰 이단 교회들은 대개 부동산 재벌입니다. 곧 종말이 온다고 해서 돈을 뜯어내고 영혼의 때를 위해서 바치라고 해서 돈을 뜯어냅니다. 몸의 부활을 핵심교리로 삼는 기독교에서 ‘영혼의 때’란 말은 표현 자체부터 상당히 이단성을 내포한 표현인데 더 불의한 모습은 성도들에게는 ‘영혼의 때’를 위해 바치라고 하면서 교주 자신은 이 땅에서 아방궁과 같은 교회를 건축하는 모습니다. 얼마나 불의한 속임수입니까? 하나님이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둘째, 교주의 보디가드가 반드시 있습니다. 왜 보디가드가 필요합니까? 헌신을 내세워 재산을 빼앗고 아내와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교육해서 가정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오히려 가정으로부터 빼앗아서 많은 가정을 깼기 때문에 사방에 원수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느 순간에 칼을 맞을지 모르니까 보디가드가 필요한 것입니다. 보디가드가 있으면 남이 볼 때는 멋지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셋째, 교주를 맹신하고 지나치게 추앙합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남의 교인 빼앗기로 유명합니다. 교회도 크게 건축했고 그 교인들도 담임목사를 크게 떠받듭니다. 언뜻 보면 목회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료 목회자들이 다 손가락질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이 너무 높아지면 정상적인 교회도 이단교회처럼 변하기 쉽습니다. 목회자는 ‘존경받는 목자’가 되어야지 ‘추앙받는 교주’가 되면 안 됩니다. 추앙받는 교주는 이 땅에서는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내세에는 오히려 그 반대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분별없는 헌신 콤플렉스에 빠져서 잘못 헌신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반대로 헌신이 거의 없는 것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성도들은 양떼를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서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고 개인의 신앙과 축복에 도움이 되어도 헌신을 차마 잘 언급하지 못하는 많은 보통 목회자들의 마음을 읽고 느껴서 자발적으로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발적인 은밀한 헌신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성도는 기본적으로 은혜를 갚고 대가를 치를 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 >

 본문은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통해 헌신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까요?

1. 매사에 공명정대한 사람

 사무엘 당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1절).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최고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의 잘못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는 자식 관리를 못해서 그의 아들들은 제사를 멸시했고 제단에서 섬기는 여자들과 동침까지 했습니다. 자식들이 그러면 남보다 더 혼내야 했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도 엘리는 강하게 야단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왜 그랬니? 소문이 안 좋구나. 남들이 지켜보니까 죄를 짓지 않게 조심해라(삼상 2:22-25).”

 리더는 매사에 공정하고 친인척 관리에는 더 엄격해야 합니다. 공명정대함은 리더의 필수요건입니다. 원래 사탄은 하나님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찬양하던 존재였지만 사탄이 반역하자 하나님은 사탄의 잘못을 더욱 엄격히 처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장 사랑했지만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니까 어떤 민족보다 더욱 강력한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얼마나 공명정대한 모습입니까?

 엘리에게는 그런 공명정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 태도가 지도력의 공백을 초래했고 결국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도 막힌 것입니다. 리더가 바로 서야 그 공동체에 은혜가 내려집니다. 또한 개인적인 삶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공명정대하게 살고 자식 사랑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남의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냥 지나쳐도 내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누가 자기 자녀를 정당하게 야단치면 생각이 있는 부모는 그것을 고맙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떠들고 야단맞을 행동을 하면 부모가 야단쳐야 하는데 그 일을 대신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때 “왜 내 아이 기죽여요!”라고 하기보다는 야단치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십시오. 공명정대함이란 내 것에 대한 집착과 이기심을 버리고 인간적인 사랑과 자랑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처럼 매사에 공명정대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2. 리더에게 헌신하는 사람

 당시 말씀이 희귀한 때에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본문 2-3절 말씀을 보면 자기 처소에 누운 엘리의 안일한 모습과 하나님의 전 안에 누운 사무엘의 헌신된 모습이 잘 대비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사무엘이 얼마나 기도하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 때문에 엘리 제사장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절대 충성했습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보면 그의 충성스런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간밤에 누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야밤에 왜 나를 부르시나? 노망 드셨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즉각 엘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십니까? 왜 그러십니까?”라고 묻지도 않고 절대순종의 언행을 보이며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만 들어도 사무엘의 충성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절과 8절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그처럼 세 번이나 똑같이 일이 생기니까 엘리 제사장이 지침을 내렸습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그러자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얼마나 충성스런 모습입니까? 성품은 성공의 전조입니다. 특히 충성스런 성품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리더에게 헌신했던 그의 충성스런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가끔 내적인 어떤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 음성을 들었을 때 자랑과 교만에 빠지고 리더를 우습게 알면 사탄의 음성을 들은 것이지만 겸손해지고 여전히 리더를 높여드리고 충성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처럼 리더가 분명히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생각이나 비전이나 행동이나 헌신의 차이로 인해 리더를 판단하지 말고 늘 겸손하게 리더를 높여드리십시오. 그런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3.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

 사무엘은 윗사람인 엘리에게도 헌신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헌신적이었습니다. 리더에 대한 헌신은 절대 요소가 아니지만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절대 요소입니다. 결국 은혜는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받습니다. 사무엘이 은혜를 받은 이면에는 신앙 좋은 어머니 한나의 역할도 컸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타이틀이나 과거의 체험이나 전통이 아니라 현재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네 번째 들렸을 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준 대로 말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10절).”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씀을 잘 듣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반면에 신앙생활에서 모든 잘못된 태도는 말씀을 잘못 듣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변화가 없는 이유는 말씀을 잘못 듣기 때문이고, 이단에 빠지는 이유도 말씀을 잘못 듣기 때문이고, 삶에서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가 떠나지 않는 이유도 말씀을 잘못 듣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찬송가가 많이 없을 때 시골 할머니들은 찬송가 가사를 잘못 부를 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찬송가 445장을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그때 시골 할머니들은 ‘험곡’이란 말을 잘 모르니까 이렇게 불렀습니다. “태산을 넘어 홍콩에 가도/ 비가 온 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게 지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먼 홍콩에 가고 비가 와도 주님이 항상 지게를 져주신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은혜가 됩니까? 그러나 전혀 다른 가사로 은혜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잘못 듣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말씀을 잘못 듣고 잘못 받아들이면 그때는 그 말이 영혼을 망치는 독약이 됩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호 4:6). 그래서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고 특히 순종하는 마음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는 지키기 힘든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키기 힘든 말씀일수록 힘써 지키면 더욱 큰 축복이 예비될 것입니다. 결국 성도가 무엇보다 잘해야 할 고백은 본문 10절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 드릴수록 더 받습니다 >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할 때 그 헌신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어렵게 기도하며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한명 바치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상 2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한나는 한 생명을 바치고 다섯 배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헌신한 것에 대해 넘치는 보상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분별없는 극단적인 헌신도 문제지만 오늘날 더욱 큰 문제는 아예 헌신이 없는 것입니다. 헌신이 없으면 진정한 복은 없습니다. 드림이 없으면 받음도 없습니다. 버리는 강도가 클수록 은혜의 크기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복된 삶을 살려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십시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드릴까? 더 많이 나눌까?”를 생각하며 살면 하나님이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가끔 선교사님으로부터 긴급한 필요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마치 빚진 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상 모든 성도는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를 갚으려고 모든 성도들이 선교를 나가야 하지만 선교사들이 대표로 힘든 전방에 나가 선교하는 것이기에 후방에 있는 성도들은 늘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선교사님들의 필요를 힘써 채워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절실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으면 섬기는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누군가 인물이 나든지, 혹은 인물을 붙여주시든지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식당에서 좋은 것을 더 많이 주면 손님들이 더 몰립니다. 그처럼 더 주려고 할 때 더 주어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헌신에 대해 뭔가를 꼭 갚아주어야 하는 채무자는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도의 사심 없는 헌신에 대해 어떤 방편과 방식으로든 넘치게 보상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사무엘처럼 겸손하게 헌신하고 충성함으로 큰 은혜를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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