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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하나님의 신비들을 보자

고린도후 김부겸 목사............... 조회 수 252 추천 수 0 2016.02.24 23:51:57
.........
성경본문 : 고후12:1-2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2011년 2월 20일 주일설교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22615899 

성경말씀 : 고린도후서 12장 1절~2절

설교제목 : “다채로운 하느님의 신비들을 보자”

 

【자랑함이 내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나는 주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가 몸으로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고후 12:1~2)】

 

  <서양 그리고 동양>

  이번 겨울 참으로 추웠습니다. 눈도 많이 왔죠. 1백년 만의 추위라는 이야기가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잘 아시는 것처럼, 이번 추위는 기상이변이었습니다. 지구환경의 파괴로 말미암은 극한의 추위가 기상이변의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지구의 위기는 서구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재앙이었습니다. 오랜 인류의 역사, 수천년 수만년의 힘찬 역사를 자랑하던 지구 생태계를 불과 1백 50년에 거의 완전히 망가트린 주범은 서구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즉 서구적 시각, 서구적 삶, 서구적 윤리, 서구적 철학, 서구적 영성이 21세기 인류를 위기적 재앙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양적인 것들’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동양적인 것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 차원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시각으로 지구생태계를 망가뜨릴 때, 그 대열에 앞장 선 이가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류의 범죄를 거듭 성찰하면서 오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김경재 교수 강연>

  얼마 전 김경재 교수님께서 ‘하나님을 다시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하셨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한신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20세기 세계신학계 거성들의 신학적 사상을 조금씩이나마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말해서 서구 기독교 신학사는 너무나 형이상학화 되었고,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콘스탄틴적 로마제국을 닮았고, 너무나 역사지평에 경도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신학순례 40년의 소감이었습니다.】그래요. 정말 중요한 언급입니다. 오늘 김 교수님의 말씀을 제 나름대로 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 교수님의 언급은 크게 4가지 차원입니다.


  첫째 서양 신학이 너무 형이상학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형이상학화’(形而上學化), 이 말의 핵심은 곧 서양신학이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관념놀이, 지적 유희, 즉 말장난에 빠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 교리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동일한 위격으로서 결국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삼위일체 교리는 어떠한 이야기로 포장하고 꾸민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관념놀이’요 ‘지적 유희’요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동떨어진 형이상학적인 것입니다.


  둘째 서양신학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즉 예수의 복음이 그리스 로마 철학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기독교의 복음이 ‘성과 속’ ‘선과 악’ ‘나와 너’ 등의 이분법적 구도로 급속도로 분열된 것은 다분히 그리스 로마 철학적 영향에서 온 것입니다. ‘나와 너’, ‘성과 속’, 더 나아가서는 ‘선과 악’조차도 한 몸으로 융화되어서 ‘모두’ 구원받는 하느님의 정신이 서양 그리스 철학적 풍토 속에서 잘못 굴절되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서양신학은 콘스탄틴적 로마제국을 닮았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제정한 이가 콘스탄틴 황제였지요? 그러나 이는 비극의 첫 단추였습니다. 기독교가 그 하늘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권력자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배경에는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로마국교화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는 강력한 권력에 교활하게 종노릇하며 풍요로운 삶을 보장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가 그 스스로 ‘작은 콘스탄틴 제국’이 되어서 인류 위에 군림하는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콘스탄틴 황제화된 로마교황(교단 총회장, 감독회장, 감독, 노회장, 당회장, 여전도회장, 남전도회장, 청년회장), 콘스탄틴 황제화된 교회 조직(중앙집권적 조직, 조직 밖에 있는 존재들을 핍박하는 네트워크적 조직), 콘스탄틴 황제화된 교회 철학 …… 즉, 콘스탄틴의 더러운 피가 기독교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입니다.


  넷째 서양신학이 너무 역사적 지평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류의 삶에 역사적 지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歷史) 이전 즉 선사(先史)도 있고, 역사 이후 즉 종말적 세계도 있는 것입니다. 또 환상적 세계도 있고, 상징적 세계도 있고, 깨달음이 극대화된 선(禪)의 세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신학은 오로지 ‘역사시대’만을 언급할 뿐입니다. 편협한 것이지요. 큰 것은 보지 못하고 잔챙이들만 보고 싸웁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랑함이 내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나는 주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가 몸으로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고후 12:1~2)】

  14년 전 바울은 셋째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체험을 합니다. 저는 이것은 신앙의 근원체험이라고 봅니다. 이런 신비체험은 대단한 것일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신비체험에 대한 해석입니다. 바울 선생을 비롯해서 서양의 신학자들은 이런 신앙의 근원체험을 ‘형이상학적’ ‘그리스 로마 철학적’ ‘콘스탄틴 황제적’ ‘역사 지평적’ 차원에서만 해석해 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차원’이란 평범한 인간은 그 신비적 하늘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이야기의 맥락이며, ‘그리스 로마철학적 차원’이란 ‘나와 너’ ‘하늘과 나’를 분리시킨다는 차원이며, ‘콘스탄틴 황제적’이라는 차원은 그런 신비체험을 한 이는 여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했다는 차원이며, ‘역사지평적 차원’이란 그런 장대한 신비적 세계가 ‘자랑하지 않은’ 역사적 세계로 축소되는 바울 선생의 역사적 신앙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인간의 삶은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삶이란 원형질의 삶입니다. 근원적 신비의 삶입니다. 여러 가지 다채로운 하늘의 뜻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예술적 삶입니다. 그런데 서양의 영성은 그런 혼돈되어 있는 신비의 삶에 함부로 ‘질서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의 칼이 인류의 삶에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그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다채로운 하느님의 신비들을 보자”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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