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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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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
제목 : (7강) 목자와 영광
본문 : 눅2:8-20
2012-04-22
<본문>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설교>
◉ 목자를 찾아온 천사 ◉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인간과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기적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구주이신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수많은 천군이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비하고 영광된 장면을 목격하게 합니다.
이처럼 목자들은 구주가 나신 소식을 천사로부터 직접 듣게 되고 베들레헴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보고 천사의 소식을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게 되지만, 이 모든 일에 목자들이 개입된 것은 없습니다. 즉 목자들이 구주의 나심을 기다렸다거나 천사가 소식을 전해주기를 소망하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마 이리나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양을 잘 키워서 더 많은 양을 가지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았을까요?
목자는 당시 사회에서 천하게 여기던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고, 신앙적인 면에서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제사장과 같은 사람들에 비해서 무시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천사가 나타나 구주의 소식을 전하려면 목자보다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알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학수고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천사가 그들에게 구주가 나신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천사가 유대 사회에서 우월한 계층에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에게 구주가 나신 소식을 전해줬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마태복음에 보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것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도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저 분이 구주이신 그리스도다’라고 받아들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기대하는 구주의 모습은 강력한 힘을 가진 위대한 영웅이었기 때문에 있을 곳이 없어서 고작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고 짐승의 구유에 누워있는 초라한 아기를 보고 실망했을지언정 그가 그리스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목자들은 자신들이 별 볼일 없는 초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인 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된 것은 인간의 환경이나 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낮은 계층의 사람이기 때문에 낮아진 자리에 오신 예수님을 구주를 믿을 수가 있다면 결국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초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 왜 목자인가 ◉
세상은 구주가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위해 오시는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알아보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자도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목자가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인 아이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목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신 사건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라면 목자가 아니라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에게도 개입하셔서 목자와 같은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인간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라면 대제사장과 서기관 같은 사람에게도 개입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10절의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일까요? 마리아의 찬양에 보면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7-48)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1-53)고 노래함으로써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가 장차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마리아의 찬양과 천사의 소식을 연결하여 이해하면 천사가 말한 좋은 소식은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비천한 자를 높이심으로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그 일이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사가 말한 온 백성은 세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천하고 주린 자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비천한 자라고 할 수 있는 목자에게 나타나서 좋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천하고 주리는 자는 환경과 경제적으로 비천하고 주리는 자가 아니라 인간을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는 자아가 무너진 자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만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그 본질은 저주의 몸으로 태어난 멸망의 자식일 뿐입니다. 다만 이러한 본질을 자아로 무장하고 가린 채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행세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죄에 파 묻혀 살아가는 가장 비천한 존재면서도 비천함을 자신의 자아로 가린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가장 낮고 연약한 자리에 오신 예수님이 하실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참된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사건을 바라볼 뿐입니다.
15절에 보면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진 일을 보는 것이 목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목자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무슨 위대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물을 바치며 경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천사가 전하는 말을 들었을 뿐이고, 그 말대로 가서 보았을 뿐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이었고 말씀이 이루어진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가서 본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 듣고 보라 ◉
20절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말합니다. 목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하게 한 것은 그들이 듣고 본 것들로 인해서지 그들이 뭔가 위대한 일을 행한 것이 있어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듣고 보라고 외칩니다.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구원 사건을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보게 됨으로써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아가 무너지며 우리의 본질인 비천함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천한 나를 높이시고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시며, 하늘의 은총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주의 영광이 그들을 비추었을 때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영광이 비추는데 왜 무서워했을까요? 주의 영광이 목자들을 비추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주의 영광이 비추는 것을 무서워 한 것은 주의 영광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불의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자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추인 것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서 주의 영광에 참여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주의 일이며 우리의 구원입니다. 큰 능력으로 고통과 핍박에서 건져주는 구원이 아니란 것입니다.
천사들이 목자를 먼저 찾아와 하늘의 영광을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뜻으로 택하신 자를 찾아와서 크신 사랑으로 죄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된 뜻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췄다면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자신들이야 말로 주의 영광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구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나 자신에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 행위와 업적들로 인해 눈이 가려짐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목자들에게는 그들이 바라보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자랑 삼아 얘기할 만한 업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사가 전한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대로 가서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그들이 듣고 본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 자체나 인간이 한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해도 인간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큰일을 하든 하지 못하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과 베풀어지는 은혜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일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일에 참여된 것이기에 그것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과시하여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에 온 마음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런 저런 일에 떠밀려 가면서 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듣지 못하고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목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신자가 머물러 있어야 할 위치를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천함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때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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