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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김학현 목사 

기록을 남긴다는 건 '생존을 건 문제'

[책 뒤안길] 기록하는 인간을 다룬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만약에 기록이 없다면? 언어 기록뿐 아니라, 그림이며 영화, 연극 등 그 어떤 예술이나 학문, 과학, 유무형의 인류 문화유산의 형태로도 기록이 없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으로만 과거를 알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얼마나 엉터리인데.

인간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듣는다. 자신의 선지식과 선경험이 없으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인간의 인지상정이다. 그런 되먹지 못한 인간의 기억만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인류가 삶을 영위한다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끔찍하다'는 말밖에.

같은 현장에 있었으면서 서로가 살인자라고 하는 '이태원 대학생 살인사건'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리라. 누가 목격하지 못 한 사건이라면 영구미제로 남는 일이 비일비재하리라. 역사는 왜곡되고, 질서와 법은 무너지리라. 저마다의 독불장군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곳은 '헬조선'이 아니라 '헬세계'일 터.


상처의 치유, 기록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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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펴냄 

 2015.11 / 208쪽 / 1만4000원) ⓒ 이야기나무


증거'라는 게 바로 기록의 한 형태다. 기록은 언어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영상, 몸짓, 물건, 삶의 이야기 등등 다양하다. '기록하는 동물(호모아키비스트)', 바로 인간이다. '아키비스트', 이 말은 원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일컫는 단어다. 전문 직업의 한 분야지만 인간은 본래부터 아키비스트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사관은 바로 '아키비스트'로서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했다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아카이브'를 말할 때 '공문서' '정부의 기록물'을 말했지만 이제는 개인의 아카이브가 필요한 시대라고 안정희 북큐레이터는 그의 책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에서 힘줘 말한다. 아직은 생소한 '아키비스트, 아카이브'에 대한 저자의 천착은 글을 쓰는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다. 인간은 기록을 하면서, 기록을 남김으로, 기록에 의지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식을 발전시키며 상처의 치유를 경험한다.

"상처받은 인간은 기록하며 자신을 치유한다. 기록은 쓰는 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인간이 기록에 몰입하는 이유다. 또한 기록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63쪽

책을 읽으며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든다. 기록이 자신을 치유하고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을 익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구의 인생에도 비는 내리는 법, 내 인생에 소낙비가 드셀 때 하루도 쓰기(기록)를 거른 적이 없다. 일종의 일기인데, 일기라기보다 혈기(血記)라고 함이 맞다. 그렇게 피눈물을 글로 옮기며 내 속에 쌓이는 분노를 배출한 기억이 있다.

그때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글을 쓸 줄 안다는 게. 글이 되는가, 글이 읽히는가, 글이 맛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닥치는 대로 썼다. 그러는 사이 분은 녹아들고 본래의 내 모습이 되어 있었다. 기록은 참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기록이 누구에겐 피나는 생존경쟁의 '식존(食存)'일 수도 있다.

"밥 먹기 위해서다. '식존(食存)'은 실존보다 우선한다. 그건 신성한 거다. 하여 글엔 배고픔과 진정성이 배어 있어야 한다. 배부른 소리는 하나마나다. '밥의 신성'을 지키지 못할 바에야 필(筆)을 잡지도 말 것이다. 무단히 낙양의 지가(紙價)나 올리고 열대우림을 울게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볼 일이다."

<영남일보> 조정래 논설위원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칼럼에서 한 말이다. 시인묵객의 존엄한 글쓰기에 비해 기자의 글을 겸손히 낮춰 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밥 고픈 경험이 글쓰기에 진정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록은 이처럼 생존을 거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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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 민변이 기록>(생각의길 펴냄 / 민변 지음

2014.9. / 208쪽 / 1만2000원) ⓒ 생각의길


진실을 기록하라...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나는 세월호 사건의 기록이 그 대표적 '식존(食存)'의 실존 기록이라 생각한다. 밥이 없으면 죽는다. 세월호 참사의 기록이 없으면 세월호가 앗아간 생명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은 죽는다. 그들은 운명처럼 기록을 남긴다. 한 오라기 터럭이라도 빼먹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이 그들 곁에 있다. 그들은 죽었으나 살았고, 살았으나 죽었다. 전자는 세월호와 함께 유명을 달리한 이들이고, 후자는 이 세상에서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는 유가족과 동역자들이다.

이런 뜻을 높이 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416 기억저장소'를 NCCK 인권센터가 주는 인권상 수상자에 선정했다. NCCK 인권센터는 인권상 수상에 대해 "우리 사회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아픈 기억을 마주하며 보존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416 기억저장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개인이나 단체 등이 가지고 있는 세월호 사건 기록을 모으고, 관련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영상·구술·르포 등의 다양한 기록물을 사회적 유산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카이브의 자생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는 그들의 말이 호모아키비스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세월호 보도를 접하고 즉각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내용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이들이었다. 사건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모으고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저장하는 자원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토록 기록은 생존과 관련되며, 그 생존은 자신을 포함한 인류 모두를 아우른다.

세월호 참사 기록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법적인 견지에서 모아 기록했다.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생각의길 펴냄)으로 발간되었다. 세월호 사건을 참사로 만든 이들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 책에 담겨있다. 어물쩍 넘어가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도 강하게 밝힌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여 구조적 원인을 시정하고, 그 원인을 만들어온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한 세월호 참사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형태로 재발될 수밖에 없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4·16의 값비싼 교훈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 7쪽

인간은 기록을 통하여 상처를 치유 받는다.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기록한다고 정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취사선택하고 정리하고, 진실과 사실을 기록함으로 인류의 발전과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기록은 위대하다. 진실을 기록하는 인간은 더 위대하다.

되지도 못한 글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아키비스트)으로서 진실을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과 만나게 만든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에 감사한다. 인류쯤은 못 가더라도(쌓이면 갈 수도 있으리라) 이 나라, 이 마을, 이 가정만큼이라도 '헬조선'이 안 되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프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기록하리라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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