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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막10: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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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13절-22절: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13절-16절: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 어린아이들을 앉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안수하심이 그냥 손을 댔다가 아니라 안수를 할 때는 안수를 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떤 마음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를 했을까? 그 마음이 중요하다. 지옥? 천국? 세상?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을 담아서 안수를 하는 거냐? 세상 것? 천국 것? 천국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천국의 마음을 담아서 안수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이 어린아이들에게 천국의 정신, 천국의 사람으로 자라가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들도 그렇게 자라가라는 것이다. 주일학교도 천국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받들지 아니하면 주일학교를 가르쳐도 너는 질적 면에서 성질적으로 네가 된 것 없기 때문에 그 성질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이다.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라 이룰구원 면에서 주님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성분은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걸 풀어서 보면 자녀교육도 그래야 한다. 그게 축복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전에도 그렇게 살았고, 예수 믿고 난 후에도 그걸 못 고쳐서 이방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물질적 눈에 보이는 개념으로 들어가 있으면 그건 예수 믿어도 불행이다.
사람 뒤에는 돈도 따라가고 먹는 것도 따라가고 사건도 따라가고 일도 다 따라오는 건데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게 다 끊어진다. 원리가 그렇다. 예수를 안 믿어도 사는 원리가 그렇다. 사람이 바로 안 되면 나이를 먹어도 그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없고, 그러면 다 끊어진다. 그게 불행이다.
그냥 밥 먹고 살고 일하고로만 생각하지 말고 인인관계 인격적 그리고 교훈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과 인격적 수수관계가 다 끊어지면 그는 재앙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축복이라면 돼지가 축복을 많이 받은 거다. 그렇다고 해서 돼지처럼 살고픈 사람이 어디 있느냐?
사람은 인격적 애정적 결합적 세계다. 그 기쁨 그 행복 그 추진력 그 능력으로 다 이기고 나간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가견적 현실적인 면에 매이면 그는 배 안에 물이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서서히 가라앉는 거다. 자기 머릿속에 물질성적 개념으로 들어있으면 서서히 가라앉는 사람이다. 원리가 그렇다. 사람이 짐을 들고 있으면 처음엔 잘 모르나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17절-22절: 왜 첫째 계명서부터 넷째 계명은 말씀하지 않았을까?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함이고, 다섯째 계명서부터 열째 계명까지는 인간에 대해서이다. ‘이 계명을 어릴 때부터 다 잘 지켰다고 떳떳이 말을 해도 사실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심이다.
우리는 여기서 부자가 어떤 소원 목적으로, 어떤 개념으로 계명을 지켰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다. 계시는 영육이 결합된 우리에게 영을 위해서 영 주격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의 말씀을 가지고 영을 위해서 육은 소유성으로 살아야 한다. 영육 결합체인 우리는 영이 주격이요, 몸은 이룰구원을 위한 소유성이다.
그래서 영의 성장을 위해서는 육이 필요한 것이므로 우리의 몸도 귀한 것이다. 이룰구원,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사람으로 살아야겠기에 우리의 육신도 잘 보살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영을 주격으로 이룰구원을 위한 의의 병기로 쓰여지는 자기의 몸이다. 그래서 자기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자기 몸을 자기 생각대로 세상 소원 목적대로 함부로 쓰면 자기에게 성령은 떠난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다. 그렇게 살면 그 자는 사는 것이 하나님의 감화성으로 못 살고 늘 세상정신의 감화성으로 산다. 이건 정신자세부터가 상당히 피곤한 거다. 무거워진다. 이런 사람은 세상 눈에 보이는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그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다.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건 자유하는 것 같으나 실은 자유가 아니다.
첫째는 살인하지 말라. 사람의 몸 신체를 죽이는 살인이 있고, 영적 살인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 것이니 이것을 기준해서 가르치면 예수 믿는 사람의 경우 영인성장 면에서 다 죽는다. 이게 바로 영적 살인이다. 이렇게 되면 영의 성장은 없어진다. 예수를 믿어도 기형이 된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에 속한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신앙이라고 말을 해도 인격성장의 바란스가 기형이다.
교회에서 진리신앙을 가졌다면 그 신앙이 온전해져야 하는데 기형이 있다. 그 자기를 느껴봐라. 그러면 사람이 이상하게 보인다. 몸은 제대로 사대육신 오장육보를 가졌는데 신앙정신적인 면에 사람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 성경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건데 왜 그렇게 사느냐?
그래도 자기 고집대로 살면 되느냐? 아니다. 항상 자기는 인간기준이 아닌 하나님을 기준해서 온전하게 자라가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감정대로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좀 이상하구나.
우리가 영적 활동 면에서 깨닫고 보면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거라사인 땅의 공동묘지에서 사는 것과 같은 교인들이 참 만다. 즉 사망계 사망권에 사는 자가 많다. 그러면서 자기의 비석을 세우고자 하는 자가 참 많다. 그제 자기 기념비를 세우는 거다. 그런 신앙상태는 하나님의 의의 성품을 옷을 입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적으로 보면 깨달은 것이 없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옷을 벗은 사람과 같다. 그러면서 자기는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저기에 청개구리 공원이 있는데 거기 가서 운동할 때 만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늘 남의 말만 한다. 남의 말만 하는 그 사람은 자신은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고 주일도 제대로 지킬 줄도 모르면서 자기 교회 목사님도 마음에 안 들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교회에 다니고 있다.
자기부터가 하나님 앞에 사람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보면 사람이 참 이상하다. 그리고 같은 목회자로서 보면 그 교회 목사는 왜 교인들에게 옳은 걸 못 가르쳐 주느냐 그 말이다.
남의 말만 하는 그 사람이 그 전에는 시골에서 교회에 다녔던 모양인데 그 분이 도시로 나오면서 그 시골교회 전도사님에게 다른 교회에 간다고 하니까 그동안 전도사님이 그 분이 되게 미웠던지 하는 말이 ‘다른 교회 가더라도 제발 십일조를 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면 벌써 빤한 거다.
그것만 아니라 그 분의 어머니는 자기 딸인데도 그 분에게 욕심쟁이라고 하고 지독하다고 한단다. 그걸 가만 보면 우스꽝스럽구나. 말하자면 하나님의 절대 온전 완전 앞에 자기를 잘 비추어서 주 하나님의 온전으로 들어가야지 자기를 기준해서 보면 안 된다. 큰 실수고 교만이고 은혜를 못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사람을 고치도록 하고 깨닫게 하는 게 교훈인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교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문자대로면만 하면 다인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들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전도를 해서 완전히 마귀의 자식을 만들어 놓는다’ 고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에서도 일대 일로 사람을 살인하는 것만 알지 비진리적 이질적 세상적 교훈을 하는 게 영적 살인인 것을 모르고 그런 교훈을 하고 있으니 어찌 사람이 고쳐지느냐?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그나마 모세오경이라도 읽었지만 오늘날 예언 방언하는 사람들은 성경도 잘 안 읽는다. 그러니 어떻게 바른 신앙이 들어가겠느냐?
성경도 안 읽고 일반적으로도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해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보이느냐, 안 보이냐’ 말해줄 필요가 없다.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할 때 가르쳐 주는 거지 성경도 하나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책잡고 비꼬려고 하는 것이니 말을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 이룰구원에 대한 이치는 성경에 대해 깨닫고자 하고, 무슨 뜻인지 간절히 알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지 아무리 예수를 믿고 있고 성경을 읽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도리를 가르쳐 주면 자기 기준이 돼가지고 자꾸 비꼬고 이치도 아닌 말로 떠든다.
예를 들면 어느 사이트에서 누가 질문하기를 ‘광야에서 양떼를 많이 길렀고, 또 제사를 드릴 때 수천 마리씩 양을 잡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 많은 양떼들을 어떻게 먹여 살렸느냐’ 하고 물으니까, 광야라고 할 때는 산도 있고 풀도 있고 짐승들도 있고 한 건데 그 광야를 무슨 사막으로 생각을 한 것인지 답변해주기를 양떼들도 만나를 먹었지 않았겠냐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 만나는 누가 먹는 거냐? 만나는 사람이 먹는 거다. 당신의 백성이 먹는 거다. 양은 풀을 먹는다.
또 이삭이 모리아산에 바쳐질 때 수풀에 뿔이 걸린 양을 잡아서 대신 번제를 드렸는데 그러면 그 양은 뭘 먹었느냐? 풀을 먹었다. 그런데 양이 풀을 먹은 그것을 죄악의 풀을 먹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이상한 소리다. 죄악의 풀이 어디 있느냐? 별 희한한 소리도 다 있다. 생전 못 듣던 이상한 소리를 하면 사람들은 귀에 솔곳하게 듣는다.
하늘의 어머니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계시적으로 보면 차원 높은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건데, 그래서 교회에는 하늘에 있는 어머니들이 많은 거다. 그런데 그들은 비유적으로 말하는 그것을 자꾸 하늘에 있는 어머니라고 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머리가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자기 삶에 있어서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폭넓게 들어가는 건데 그렇지 못하고 ‘우리끼리 산으로 가자거니, 바다로 가자거니, 우리끼리만 살자 거니’ 하는 그건 안 된다.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 기독교인은 죄 많은 세상에 살면서 말씀을 배우며 그 가운데서 영능의 실력을 닦고 기르면서, 또한 구원 얻을 택자가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전도를 하며 사는 그게 우리 삶의 영역이다. 그런데 말씀의 이치를 바로 모르면 그 면에서 막히는 거다.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통하지만 젊은이라도 나이든 사람과도 막힘이 없어야 하고 아이들과도 막힘이 없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젊은이들끼리도 막혀있으면 누구하고 통하겠느냐? 주님은 누구하고 통하느냐? 말하자면 천국복음을 주는 일에 막힘이 있느냐?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자기가 일반차원도 몰라서 자기가 자기를 막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자기가 어떻게 막느냐? 성격적 성질적으로 공동의식이 없거나 공중도덕적인 면에서 저질이거나 이런 게 들어있서이다. 이건 고쳐야 한다. 안 고치면 자기가 자기를 자꾸 가로막는다. 이러면 사람의 사랑도 못 받는다.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건데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미운 짓을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내려가느냐?
세상 일반적인 면으로 보면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헐뜯고 깎아내린다. 이건 미움에서 나오는 인격의 살인이다. 말로써 다른 사람의 장래를 망가뜨리는 이것도 살인이다.
나라를 이끄는 정치가들이 다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고, 외국에 가서 박사니 석사니 받은 사람들이고, 지방의 유지요 돈도 많고 한 사람들인데 그들 속에 미움이 들어있고 욕심이 들어있다면 뭘 어떻게 할 거냐? 사람이 안 된 상태에서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면 뭘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이 안 된 상태에서 공부를 잘하면 뭐 할 거냐?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온전히 바로 놓이는 사람을 총리로까지 올리시더라.
영적 살인, 육적 살인, 인격적 살인이 있는데, 육적인 살인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이 살인성에는 여러 가지 수단 방법이 많다. 역시 따라서 영적 면의 살인성에도 수단 방법이 참 많다. 살인이 제일 많이 있는 곳이 교회다. 설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죄다 세상 쪽으로 붙여서 ‘예수 믿으면 세상에 부자 된다. 만사형통 된다’ 하고 교인들을 세상으로 끌고 가면 교인들은 영적 면에서 다 죽는다. 성장이 안 된다. 차단이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 이걸 잘 못 느끼면 실질적으로 봐라.
그 다음에 간음이 있는데, 부부가 아닌 자들이 신체적으로 혼외정사를 갖는 것이 간음이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 참 많다. 영적 간음은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이건 정신 사상적 간음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버리게 하고 진리이치를 버리게 하고 세상의 물질성적으로 사람을 내몰고 가르치면 그 다음에는 구별 분별이 없어지게 되니 그 후에 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 도둑질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남의 물건을 몰래 훔쳐가는 것. 영적으로는 세상 것을 가르쳐서 사람을 유혹 미혹해서 마음을 훔쳐가는 것. 그 안에는 자기 잇속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방법론적으로 수단이 교묘해서 교인들이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교회에서는 이걸 알아야 한다.
그런 데서는 말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홀린다. 교회의 청소년들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을 보면 ‘무슨 아카데미’ 하면서 그게 교회의 교육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이룰구원 면에서 보면 사람의 정신을 세상으로 끌고 가니 사람이 망가진다.
진리이치로 가고자 하는 우리교회에서는 교훈이 그렇고, 삶이 그렇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천국을 목적하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놀이를 가도 되고 산에 가도 된다. 왜냐? 거기에는 깨달음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바닷가의 콘도를 빌려서 하는 건 전부가 놀이문화로 돼 있다. 그런 데는 가수와 배우는 안 빠진다.
규모가 큰 교회들은 오케스트라니 성악대니 그런 게 있는데, 물론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끌어 모으자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면 뭘 가르치겠느냐? 그 다음에도 자꾸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여기에는 말씀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없다. 예수님께서 천국음악을 몰라서 말씀만 가르치고 간 것이냐?
그 다음에 네 번째는 거짓 증언이 있는데, 참은 시간적으로 영원히 가고 질적으로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바람에 날려가지 않는 그게 참이다. 영원히 가고 영원히 옳고 영원히 내 것으로 되는 것이 참이다. 거짓은 시간적으로 임시성이고 질적으로 변질 변동성이 있다.
설교의 메시지가 세상을 주면 세상은 시간 속에서 전부는 변질이 되는 것이니 사건이나 사람이 달라지면 그 사람도 변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참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변질되는 세상을 목적하는 사람들이니 참 삶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물질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는 자타의 구원에 이용 활용이다. 그건 참 삶이요 참 신앙이다. 그렇게 해서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면 누가 유익이냐? 자기가 유익이다.
말세에 거짓 종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 이 거짓 종들이 뭘 가르치는 것이냐? 세상과 세상에 관한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런 거짓적인 교훈이 워낙 많으니까 그것이 진짜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오늘날 교회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노아홍수 때와 소돔 고모라 때와 같으니라’ 한 그게 들어가 있다.
자기 눈에 그게 보이면 자기 신앙을 바로 세워라. 자기가 신앙하면서 개인이던 단체이던 자기가 하면 하는 그 쪽으로, 안 하면 안 하는 그 쪽으로 질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나오는 것이다. 진리본질로 가면 자기는 질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이룰구원의 신앙으로 사는 것이 즉, 성경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 옳은 건데, 이것이 아닌 세상적으로 신앙 믿음을 갖고 있다면 이건 무목적적인 삶이다. 구원이 없는 삶이다. 여기는 삶을 살아도 참 사람이 되는 목적은 없다. 그저 배부르고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게 전부다. 그러니 짐승이 사는 것과 똑같다.
거짓 증언에 있어서 실상적인 것을, 천국의 것을 현상적인 것으로 가르치는 게 거짓 증언이다. 눈에 보이는 가견적이고 현상적인 것은 실상이 아니다. 천국의 것, 하나님의 것, 영원히 가는 것이 실상이다. 실상적인 것이 아닌 현상적인 것을 실상인 것으로 바꿔치는 말이나 설교는 영원 궁극적인 효력성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니 이것이 거짓 증언이다. 우리 교인들은 이제 웬만하면 거짓 증언이 뭔지 알 거다.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도 ‘아, 이건’ 거짓 증언이다‘ 하면 그런 곳에 있으면 안 된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속여 취하지 말라.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한 선악과를 먹게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살게 된다. 교회에서 ‘물질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면 세상에서 부자 된다’ 하면 속여서 취하는 것이다. 그런 교회가 많다. 나쁘게 말하면 이건 사기꾼이다. 이게 거짓 증언과 뭐가 다르냐?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육신의 부모가 있고, 영적인 면에서 부모가 있는데, 영적인 부모라 할 때는 영적 양육자다. 모든 좋은 것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주 안에서 부모공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실습이다. 주 안에서 부모공경을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섬기는 실습은 없다. 부모를 공경할 때 주 밖에서 부모공경이 아니라 주 안에서 부모공경이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건 주 안에서 부모공경이냐, 주 밖에서 부모공경이냐? 주 밖에서다. 사람이 이치에서 벗어나면 미련퉁이가 된다.
주 안에서 부모공경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실습이므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으니 이 말은 사람이 신적 도덕성으로 잘 만들어지는 첫 단계라는 말이다. 자녀가 주님을 잘 믿으며 부모를 섬기는 것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이 있다. 그리고 부모입장에서도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교육이 돼야 한다. 그게 정확한 거다.
그런데 목사님들도 상당히 애를 먹는데, 왜 그런가 하니 목사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예수 믿기 전의 사고방식이 많이 들어갔는데 예수 믿은 후에 옳은 것으로 가르치려고 하니 고집이 있어서 힘들다. 그러니 ‘주 안에서’가 안 되는 거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거 참 불행이다.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약속이 부모로 통해 자식에게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게 이를 테면 신앙노선이다. 진리신앙의 노선이요 구원계대다. 노선이 없는 계대, 이거는 아니다.
예수님은 한 분이요, 따라서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교훈도 예수님의 교훈으로 질적으로 하나다. 이 말을 ‘목사가 하나다’로 듣지 말고 누가 어느 교회에서 외치던 천국복음의 본질로 외친다면 백 명이던 천 명이던 모두는 주님의 진실한 종들이다. 성도들은 그 질적 신앙의 노선을 타야 바른 것이다. 그게 적중성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믿는 거다. 그런데 주위에 그렇지 못한 교회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느냐? 죽을 때까지 손해를 보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절: ‘선생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님은 그 부자의 마음을 다 아신다. 그래서 ‘부자야, 너는 어릴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지만 내가 열거해준 인간에 대한 계명조차도 하나도 못 지켰구나’ 하시는 거다.
그러면 주님이 왜 물질부자에게 다섯째 계명부터 열거해 주셨을까? 이건 다 인간에 대한 건데,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으니 결과적으로 이 계명들을 하나도 못 지켰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 첫째 계명에서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대신관계다. 다섯째 계명부터는 대인관계다. 이 모두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관한 말씀이다. 이 모든 계명을 부자청년이 어릴 때부터 잘 지켰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것과, 성인이 돼서 부모님의 말을 듣는 것과는 느낌적으로 감각성적으로 같으냐, 다르냐? 다르다. 어릴 때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오각의 오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성인이 돼서 부모의 말씀에서 느껴지는 그게 다르다. 똑같다고 하면 자라지 못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지켰나이다’ 했는데, 어릴 때는 액면적 성문적으로 곧이곧대로만 하지만 성인이 돼서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순종을 하듯이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는 어린아이들처럼 성문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함이라는 지극히 존귀스런 존재로 영원히 만들어지라고 절대적 아가페 사랑에서 주시는 말씀이니 바로 주님의 이 마음을 잡고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한다.
당시의 바리새교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지킨 계명과, 부자가 지킨 계명은 같은 계명인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계명을 지켰다고 하는 것과, 부자청년이 계명을 지켰다고 하는 그게 마음속에서 느낌적으로 어떻게 다른 거냐?
부자가 계명을 지키는 마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문자적으로 행해서 영생을 얻고자 한 것이고,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교인들이 지킨 계명은 자신들이 의인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고, 또한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며 죄를 지적하는데 사용했고,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고 자기들을 의인 시하는 쪽으로 사용을 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처럼 닮아져 나오는 그게 깔려있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뜻은 모르고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셔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 하니까 참람하다고 하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거다.
하나님의 계명 속에 누가 들어 있느냐? 1 공자? 2 석자? 3 소크라테스? 4 교황? 5 대통령? 6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들어있다. 그런데 말로는 예수님이 들어있다고 말은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세상에서 대통령이나 사장이나 배우나 가수 등 뭘 하고자 하는 쪽으로 들어가 있으니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 말씀에 배우가 들어있고 가수가 들어있다는 말이 되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뭐가 되려고 하느냐? 우리가 알기로는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딱 들어있는 건데 예수 믿는 자기가 예수를 믿으면서 뭐가 되겠다는 것이냐? 말씀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있는 건데 자기가 세상에서 뭐가 되겠다는 그 목적과, 예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것과 비교 판단을 한다면 어느 것이 더 좋으냐? 자기가 정해놓은 게 좋으냐, 성경이 정해놓은 게 좋으냐?
일반 도덕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일반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더라도 살인을 안 하려고 하고, 간음도 안 하려고 하고, 욕심도 안 부리려고 하고, 도적질도 안 하려고 하고, 거짓말은 안 하고 참말만 하려고 하고, 부모공경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다. 계명이 아니더라도 일반적 양심적으로도 나쁜 줄 아는 것은 양심으로 안 하려고 하는 게 인간의 심성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나쁜 짓을 안 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것이냐? 아니다. 왜 아니냐? 우리 인간 자기는 일반 도덕성의 선의 사람이 아닌 천국에 적응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안 만들어진 상태에서 아무리 일반 도덕성적으로 나쁜 짓을 안 하려고 해도 그거는 이미 범죄를 하는 사람으로 놓여져 있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 적극적인 말씀의 사람으로 지식을 넣고, 그 지식을 넣으면 하나님의 지혜가 나오는 거다. 내가 신적인 하나님의 도덕성을 받으면 타에게 그 도덕성을 넣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늘 말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만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나왔다면 그 사람은 예수를 안 믿어도 되고, 성경을 안 봐도 된다. 그러니 우리가 산다는 게 말씀의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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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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