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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39-45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장 39절-45절: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편과 좌편에 앉는 자는 그날에 누구를 위해 예비 되었던 그들이 앉는다.’ 실력자가 앉는 거다. 앉을 자는 43절 44절에 있다.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를 달라는 두 제자의 소리를 듣고서 열 제자가 두 제자에게 분이 일어났다. 여기서 누가 제일 큰 소리로 분을 냈을까? 왜 분이 났을까? 그런 경우 누가 분이 제일 많이 날까? 일반적으로 성격 성질을 못 고치면 그런 장소에서 큰 소리가 많이 난다. 그러면 큰 소리가 난다고 해서 그게 옳은 소리냐 하는 그것도 문제다.


왜 분을 냈을까? 1. 두 제자의 실력이 열 제자 자기들보다 못한데도 두 제자가 건방지게 잘난 척을 해서 분이 났다? 2. 열 제자들이 천국은 지명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아서? 어느 게 맞느냐? 열 제자도 그 날에 앉는 것이 실력제라는 것을 몰랐다. 그렇다면 왜 분이 났을까? 어쨌든 인간요소로 육의 생각을 가지고 분을 낸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면 그 장면에서 우리의 태도는? 첫 번째는 ‘두 제자가 그러건 말건’ 그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열 제자들이 분을 내건 말건’ 그게 또 있고, 세 번째는 ‘우리는 43절과 44절의 말씀만 실천하면 된다’ 그게 있고, 네 번째는 ‘두 제자를 매장시켜야 된다’ 그게 있다. 정답은 3번째다.


42절에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이 나오는데,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은 선악과 먹은 지식이 기준이요, 모양새, 덩어리 큰 거, 자기 몸 밖의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기준을 내린다.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은 선악과 먹은 기준지식이니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데서 나오는 통치성 판단 기준이다. 그러나 신앙의 기준은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신앙의 기준을 내리는 게 아니고, 설령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내리더라도 눈으로 보이는 것에서 영인성장 면의 이치를 보고 자타의 구원을 위해 내리면 이건 생명과 먹은 기준이다.


안 믿는 사람들이 인간을 위한다는 것과, 우리 입장에서 이룰구원을 놓고 인간을 위한다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안 믿는 사람들이 인간을 위한다는 그건 우리가 표면적으로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적인 기독교가 이방인들의 기준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안 믿는 사람들이 인간을 위하는 그걸 신앙으로 붙이게 된다. 이러면 하나님의 온전은 없어져 버린다. 하나님의 온전을 위한 목적은 없는 상태에서 일반 사회 윤리 도덕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면 거기에서는 사람이 안 된다. 그 성품의 질은 세상이지 천국의 성품의 질이 아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선을 하나님의 도덕성인 것으로 알고 그 기준을 세우고 신앙을 말하는 게 문제다. 우리는 이방인들의 선악과 먹은 그 기준을 가지고 도덕성을 행하면 안 된다.


안 믿는 사람들의 도덕성에서 나오는 것과, 이룰구원에서 나오는 도덕성이 표면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룰구원에서 되는 것은 그 효력이 영원히 가는 거고, 이건 살리는 기준이요, 안 믿는 사람들의 기준은 임시성이요 우리에게는 그게 죄가 되는 거다. 그렇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거는 그들의 입장에서 좋은 거다. 인간을 위하고 사람을 위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그걸 하나님의 선으로 도덕성으로 붙이면 안 된다.


인간들이 만든 법으로 선적인 통치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법에서 보면 선악과 먹고 나온 법이니 그것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가지고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린다. 그게 세상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그 기준의 법을 갖고 와서 교회를 하게 되면 그 목사는 하나님 앞에 거짓 종이요 이단자요 적이 된다. 무슨 일을 해도 구원이라야 되는 거지 구원이 아니면 세상없이 해도 안 되는 거다.


예수님의 통치로 되는 곳에서 직분을 받아서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모든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것으로 들어있다. 교회로 하여금 덕을 세운다. 그리고 사람이 진리본질대로 하나님의 속 성품으로 만들어진다.


자기가 받은 것이 옳은 것이라면 자기 속에 신의 성품이 이뤄져가야 되고, 또 자기가 받는 교훈이 옳은 것이라면 자기도 그 교훈대로 들어가야 한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자기 속에서 순전히 남의 덕으로 살려고만 하면 안 된다. 이건 뭔가가 잘못돼 있다. 이건 그 사람이 사랑이 없다고 하면 사랑이 없는 거고, 교훈이 본질로 안 돼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속 성품 인격에 관한 것이다. 그게 빠진 가르침은 사람이 더 못써진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교훈이 옳은 교훈이라고 전제를 하고 본다면 우리 모두는 자기가 자기를 위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로 놓여져야 된다. 그 다음에 사람 사는 세계에는 관계성도 있으니 언행심사로써 어떤 모양으로 건 자기 속에 든 대로 나오게 돼 있다.


43절-45절: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옳으냐?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비춰봐라.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마다 으뜸이 되고 싶고, 큰 자가 되고 싶고, 모두 그런 마음 정신을 가지고 외치고 있다. 일반세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보면 어느 누가 섬기고 종이 되려고 하겠느냐? 모두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높임 받고 왕처럼 대우받기를 원하고 자기 기분을 맞춰주길 바란다.


그러면 일반세상은 어떤 면으로 크고자 하느냐? 무력으로, 또 물질적 개념으로 들어있다. 물질성적 정신 사상을 가지고 외부의 것을 끌어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그 다음에 큰 것을 자랑하고. 그러니까 모두는 임시성에 속한 거다.


우리의 이룰구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 움직이는 사람은 다 할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게 좋다. 사람이 사람을 진리로 위할 줄 알아야 한다. 위하는 여기에는 교훈이 들어가고 정신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는 으뜸이 되고 큰 자가 되고 하는 방법이 먼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귀에 안 들어오고 어느 누가 자기를 나쁘게 말하고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를 짓밟으면 성질이 나고,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우쭐해진다.


우리는 으뜸이 되고 큰 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으뜸이 되고 큰 자가 되려면 어디에서 섬기고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하느냐’ 이게 문제다. 아무 곳에서나 섬기고 종노릇하면 자기가 커지겠느냐? 어쨌든 좋은 자리건 나쁜 자리건 섬기면 그곳에서 큰 자가 되기는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준을 두고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을 해 줄 수 있는 곳에서 섬겨야 한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봤지만 교인들마다 다 충성봉사 한다고 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난 너희를 모르겠다’ 할 곳에서 섬기는 자가 많다. 그런 곳에서 큰 자가 되면 그게 주님이 보시는 큰 자냐? 그건 아니다.


예수님께서 ‘으뜸이 되고 큰 자’ 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이냐? 종교적 교세가 확장되는 데서 섬김이냐? 예배당 건축목적으로 섬김이냐? 예수님의 섬김의 뜻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그냥 섬기는 거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거냐, 자기 주관으로 섬기는 거냐, 그냥 막연하게 섬기는 것이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시느냐?


섬김이란? 1. 사람들이 해달라는 대로 상대방의 요구대로 섬김이다? 2. 나부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온전화 시키면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는 일에 섬김이다?


섬기는 것은 죽어도 싫고 목사간판부터 따놓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기 계획과 주관대로 건물 짓고 사람 끌어 모으고 종교행사로 부흥을 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섬김이냐? 오늘날 이런 정신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면 안 커진다. 목사부터 따놓고 그 다음에 이 진리를 배운다? 그러면 그 안에 이 진리가 들어가겠느냐? 자기 머리로 딱 돼 있는데 그 사람에게 진리가 들어가겠느냐? 목사가 뭐냐? 목사라고 불러주는 그 목사가 아니라 진리가 그 사람을 붙잡고 역사를 하는 것이 주님의 종이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그 일을 더 잘 하라고 교회에서 직분도 주어지고 하는 거다. 우리가 그 정신을 안다면 자기가 받은 직분을 통해서 자기를 키워야 한다.


성경에 보면 왕들이 많은데, 어린 왕도 많고 중간에서 튀어나오는 왕도 많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을 하게 하건 어린 왕을 왜 세우느냐? 우리가 이룰구원으로 보면 어릴 때부터 왕의 실력을 키우라는 뜻이다. 그리고 딴 데서 누굴 죽이고 왕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합 왕 밑의 직속부하가 예후장군인데, 이 사람은 전혀 왕 될 사람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는 경우는 생각지도 않은 은혜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니 겸손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성장해야 한다. 교만해서 날뛰다간 잘려버린다. 그런 걸 우리에게 다 보여주는 거다. ‘그럴 때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하나님의 물음이 있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을 섬기는 거냐, 자기 패거리 키우는 거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일에 섬김도 안 해 보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관한 인격도 모르고, 성격 성질도 고치지 못한 채 목사만 되면 복음에 섬김이 되는 것이냐? 그리고 그렇게 하면 으뜸이 되는 거냐? 으뜸이 되던 말든, 사망성공이 되던 말든 무조건 목사가 돼서 하면 되는 거냐?


천국에서 오신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 경우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그러면 누구의 일에 섬김이냐? 1. 세상 이방인들의 뜻을 이뤄주는 섬김이다? 2. 이방인들이 원하는 소원기도를 예수님이 대신 해 준다? 3.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뤄지도록 하나님의 일에 섬김이다? 3번이다.


자기는 주님의 일에 섬겨야 하는 건데 그 섬김의 방편이 교회로 들어가 있다. 말씀의 실습이 교회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진리로 섬기면 자기가 커진다. 자타의 구원의 일에 섬기면 자기가 커지고 으뜸이 된다. 안 섬기면 안 커진다. 이 섬김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많은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을 하는데, 첫째는 선악과 먹고 영이 죽은 것과, 두 번째 이룰구원 면에서도 깨닫게 해서 스스로 죄에서 탈출하도록 하고 영능의 실력을 키우게 하는 그 일을 하셨다.


그런데 대속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적중성이 돼야 많은 사람의 죄가 대속이 된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지공법에 말씀에 적중성이다. 우리의 이룰구원도 모든 정신 사상 이해타산 가치평가 소원 목적 모든 취미성이 말씀에 적중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구원 받은 우리가 이치적으로 보면 비진리 거짓된 곳에서 섬기면 멸망당할 거짓으로 커질 것이고, 진리본질의 곳에서 섬기면 으뜸이 되는 큰 자로 커질 것이다. 이런 자로 되어서 그 날에 예수님 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된다. 그러니 자기가 커지는 게 좋으냐, 쪼그라지는 게 좋으냐? ‘커지되 누구 앞에서 커지느냐? 누구 보기 좋도록 커지느냐’ 그게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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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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