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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찬송은 오직 새 노래여야 한다"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목사............... 조회 수 506 추천 수 0 2016.04.17 2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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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찬송은 오직 새 노래여야 한다

고은교회 황 부 일목사

(공통적으로 요란해져만 가는 이시대 교회음악)

오늘날 찬송에는 거룩하고 경건됨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것이 아닙니다.
언제 부터였는지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찬송이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그 실제를 보면 세상의 대중음악의 흐름처럼 점점 요란해 졌고 또한 템포가 빨라졌고 사람을 흥분케 하는 세상의 많은 리듬 악기들이 교회 예배당에 들어와 버젓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마치 쇼 무대나 콘서트무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찬양시간을 보면 공연 무대지 예배당이라 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강렬한 비트의 드럼 세트와 3~5인조로 된 전자 밴드로 신자들을 감정적으로 뜨겁게 하며 더 나아가 광적으로 흥분시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찬양의 은혜라 하고 그흥분의
상태를 성령충만이라고도 합니다.
요사이 세속의 유행가처럼 유행적으로 불려지는 CCM을 들어보면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대분의 교회들이 찬송에 대해서는 공통적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보수주의요 그런 교단에 있는 교회들도 말은 개혁교회라면서도 교회 음악으로서 찬송에 대해서는 매우 개방적이고 무비판적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모두가 불협화음적인 혼성팀처럼 신비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나 진보주의자들이나 심지어 드러난 사이비 이단들이나 찬양만큼은 공통적으로 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부흥집회나 기도원이나에서 요란했던 찬양이
지금은 어디에서나 있는 것입니다.보수신학교 경건의 시간에도 군부대 교회에도 심지어 총회로 모이는.곳에서도
빠지지 안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찬송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찬송처럼 판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찬양이 공통적으로 요란해져
가는 요인)

이토록 오늘날 교회들은 니나 내나 교단 내지는 정통사이비 구별 없이 세속적인 찬송으로 통일되며 같아지고 있는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날 교회들이 끌어 모으는 식의 성장 일변도가 제일된 목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교단이 다르고 교파가 다르고 진보보수 차이가 있는 교회들인데도 하나같이 예배당을 콘서트 장처럼 꾸며놓고 요란하게 찬양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신나게 하는 이런 찬양들을 무지한 교인들은 대체적으로 뜨겁게 은혜가 된다고 느끼고 있으며 목회자들은 집회분위기를 잡아준다고 보며 열정적인 한 중심으로 몰두하게 하여 자기들 목적으로 이끄는 방편으로 매우 큰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된 모습으로 거룩하고 경건되게 서가야 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많이 끌어 모아 기쁘고 즐겁게 해주느냐에 모든 관심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교회가 세속화되어가든 찬송이 대중음악과 같아지든, 학생들이, 청년들이, 교인들이 거기에 분별없이 빠지든 그것이 염려될 리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욱 사로잡고 고조시킬 수 있는 것을 찾게 될 뿐입니다. 큰 문제는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하나님께 경건히 거룩하게 바르게 예배하려는 믿음의 의지가 대부분이 현대교회들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회중의 육신적 감정적 즐거움에 맞추는 집회요 인도하는 자의 인간적 목적을 위해 도취적으로 끌려가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경건함에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을 바르게 찾아 구원을 이루는 거룩함에 이르는 데는 소경되게 하고 결국 모두 모아 맹신케 되게 하는데 가장 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두려움과 삶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과 염려 등으로 전쟁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군인들을 요란하게 반복적으로 둥둥둥 북치고 나팔부는 음악으로 흥분시켜 현실을 잊고 사지로 뛰어나가게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교회로 들어온 세속적인 대중음악이 그런 음악 못지않게 놀랍고 광적인 마력을 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의 실험속에서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이 생명체들에게 돌발적인 현상과 무서운 해를 주고 있음이 판명되었는데도 지금 교회마다에는 이런 요란해진 음악이 찬양이나 찬송이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들어와 예배당을 요란하게 채워가며 교인들을 점점 광분하게 하고 심령의 상태를 황폐화하게 하고 맹신케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떤 잘못된 지도자들은 그런 요란한 찬양의 시간이 성령의 충만한 역사의 시간이요 충만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영성의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찬양의 찬송은 오직 새노래여야
한다)

찬송은 새롭게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부르는 하나님 나라의 새 노래입니다. 때문에 교회음악은 거룩한 찬송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찬송은 오직 새노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한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시편 96편 1절을 보면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98편 1절을 보면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했고 시편 149편1절에도 보면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인 성도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지었다고 말씀합니다(사43:21). 그러니까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를 찬송하도록 택함을 입고 부름 받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인데 그 찬송이 바로 “새 노래”인 것입니다.

여기서 새 노래는 옛 노래가 아닌 새롭게 지은 근간에 나온 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노래는 새 것 된 노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의 노래가 아닌 하나님 나라적인 차원의 거룩한 노래인 것입니다. 가사가 신앙적인 말이 있고 말씀이 인용되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들어있다고 새 노래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노래를 지은 것이라고 또한 새 노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새 것”이나 “새로와지다”의 개념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보면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죄로 죽었던 옛 죄인된 인간이 의인으로 구원받은 새 생명의 사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며 영혼이 거듭난 자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영원히 주안에서 그의 영광의 삶을 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고 의인된 새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었으나 아직 우리 모습에는 옛 사람의 본성인 오염된 옛 근성이나 습관들이 남아 있어 어둠의 모습이나 죽은자의 모습을 보이거나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모습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소욕들인데 이것이 많이 죽어지고 변화되야 새 사람다운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새 노래를 온전히 부르고 하나님께 합당한 새 노래를 지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3-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만 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 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여기에 보면 새 노래를 부르고 이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자는 분명 일반 대중들이 아니라 구속함을 얻은 자요 더 나가서는 하나님 나라 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자란 진실하고 흠없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증거한 것입니다(빌 1:11).
진정한 찬송의 새 노래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된 자다운 모습으로 자라며 구원에 이르러 가는 의로운 모습과 삶이 될 때야 비로서 하나님께 진정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5편 17절에서는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송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성도가 아닌 자는 하나님을 기본적으로 찬송할 수 없습니다. 열광적으로 부르고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에게 속해 죽은자로 되어진 가인의 제사가 그래서 열납이 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죽은자의 모습에 있고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육신에 속해 어둠 속에 거하는 자들도 하나님께 찬송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악하게 살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래하지 말라고 했고 비파소리도 그치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했던 것입니다(암 5:23-24).

시편 40편 3절에 보면 새 노래가 무엇인가를 다윗은 잘 증거 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 올린 찬송을 하나님께서 내 입에 두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입을 빙자하여 하나님을 높이게 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새 노래요 성도가 불러지는 참된 찬송인 것입니다. 바로 이 새 노래를 사도 바울은 “신령한 노래”라 했고 이 신령한 노래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령으로 사로잡힌바 되어 그 입술로 부르는 것이며 점진적인 거룩한 삶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골 3:16-17).

교회 음악이요 진정한 찬송은 바로 이것이며 또한 복음으로 구원 받고 계속 구원을 이루는 순전한 복음을 통해 깨달음의 은혜로 우리 속에 채워져 새롭게 하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고 변화되면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려지고 나타나지게 되는 것이 진정한 새 노래적인 찬송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된 모습과 삶으로 자라며 거룩해질수록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새 노래는 우리가 조성하고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됨으로 새롭게 되어가는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려지고 또한 그를 높여 드러내는 거룩하고 올바른 찬송은 그렇게 찬송을 하도록 새롭게 지은 바 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사 43:7, 21) 이들은 복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성령의 역사적인 은혜를 따라 거룩한 입술의증거와 삶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그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요 16:13-14).
오늘날 이 시대 교회의 음악이 세속화 되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독교 음악의 전문가가 없어서도 아니요 세상 문화가 강해서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보다 인간의 영광과 기쁨을 원하는 자들과 그들을 모으기 위해 거기에다가만 맞추어 주려는 잘못된 인위적 주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구원을 이루는 복음의 합당한 신앙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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