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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33:2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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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63) 2015.12.28 |
행복한 사람
(신명기 33장 26-29절)
< 이스라엘의 행복의 이유 >
예전에 할아버지가 어떤 문제를 설명하면 할머니가 그 설명으로
그 문제를 맞히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방송에서 한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란 문제를 보고 설명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를 뭐라고 하지?” 할머니가 즉시 대답했습니다. “원수!” 방청객들이 크게 웃자 할아버지가 짜증난 표정으로 다시 손짓하며
설명했습니다. “두 글자 말고 네 글자!” 그때 할머니가 즉시 대답했습니다. “평생원수!”
사람마다 생각 차이로 오해가 생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행복은 환경보다 오히려 생각에 좌우됩니다. 불행한 사람은 어디서도 불행을 찾고 행복한 사람은 어디서도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은
조건이나 환경을 초월해서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행복을 놓칩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과 은혜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결국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자신들의 행복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에 대한 깨달음을 주려고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광야 40년 세월은
환경적으로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그 말은 행복은 환경에 달려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의
이유였습니까?
1. 과거의 구원
모세는 본문의 유언을 하면서 과거를 죽 회상해보았을 것입니다. 출애굽 할 때 앞에는
홍해가 있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큰 돌풍을 보내 홍해바다를 마른땅으로 갈라놓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매일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을 기적적으로 내려주셨고 옷도 낡지
않고 신발도 해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신 29:5). 그런 구원의 은혜를 역사를 상기시키며 모세가 그들에게 “너희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일은 부모나 목회자나 멘토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살다보면 가끔
절망적인 순간을 만납니다. 그때도 과거의 은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하나님이 이제까지 버린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그때부터 절망적인 문제들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그대로라도 훨씬 문제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를 비롯한 무수한 은혜를 되새기는 삶이 행복의 원천이 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딸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합니다. “얘야! 아무개 장로님과 권사님과 집사님과 같은 동역후원자 분들은 아빠 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단다. 그분들의 헌신의 손길을 늘 잊지
말아라.” 물론 그분들 입장에서는 저의 말씀으로 받은 어떤 감동이 있었기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해 헌신의 손길을 펼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그분들의 헌신의 손길을 통해 사역을 지탱할 힘을 얻었기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해서 가끔 딸에게도 그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권사가 뒤늦게 예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많이 못하고 천국에 간 남편을 추모하며 선교단체에 20억
원을 기증해 선교센터를 지어드렸습니다. 그 선교단체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 선교관 이름을 그 남편의 이름을 따서 <아무개
선교기념관>이라고 지었습니다. 무명의 헌신이 아름답지만 그렇게 이름을 밝히는 것도 결코 잘못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역을
후원했던 루디아나 뵈뵈 등과 같은 신실한 헌신자들의 이름을 성경에까지 기록했습니다. 그 이름들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름다운 이름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은 무명의 헌신자가 사역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월새기 영어판 사역>도 또 다른 누군가의 헌신에 의해 시작될 것입니다. 그 문서에 비록 <아무개 선교기념문서>란 명칭이
붙여지지 않을지라도 혹은 후원자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부모가 헌신한 것을
자녀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의식이 있는 자녀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은혜를 아는 분이었구나! 내게 이런 좋은 기억을 남겨준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자녀들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일은 자녀들의 행복과 축복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저나 저의 자녀들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제 사역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의 가정과 후손들부터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도 받은 감동을 기억하고 어떻게든 되돌려 갚으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받으신 감동을 기억하시고 어떻게든 되돌려
갚아주시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은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는 삶입니다.
2. 현재의 도움
본문
26절에 나오는 ‘여수룬’이란 ‘의로운 백성’이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별칭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비할 것이 없는
유일무비하신 분으로서 여수룬을 돕기 위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고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십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안전한 처소가 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로 그들을 대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해주심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27절). 왜
주일마다 교회에 오면 마음에 안정이 생기고 행복해집니까? 하나님의 품에 온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팔에 안긴 아기는 전혀
염려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을 의지하는 자는 더욱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든든한 보디가드만 한 명이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데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고 하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합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은 풍성한 축복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잘하는
인생과 가정과 국가는 대개 번성의 은혜를 입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떠날 때 미개척지인 북미보다
중남미 지역이 더 살기 좋았습니다. 그때 부둣가에는 살기 좋은 남미로 가는 <에스더호>란 배와 미개척지인 북미로 가는
<메이플라워호>란 두 배가 있었습니다. 그때 편하게 살겠다고 남미로 갔던 사람들은 신앙도 잃고 부도 잃었지만 북미로 갔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많은 희생을 해야 했지만 그 후에 세계 최대의 강대국을 이뤄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는 이런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도 받지만
풍성한 삶의 축복도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현실적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창조적 소수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행복과 축복은 하나님 밖에서
환경이 바뀔 때 주어지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환경을 극복할 때 주어집니다.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이 알아주심을 믿고 믿음과 헌신의 씨를 뿌리면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고 결국 그가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3. 미래의 승리
인생은 전쟁과 같습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은 방어하는 방패가 되어주시고 공격하는 칼이 되어주셔서 대적을 복종시키고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29절). 성도는
최종승리가 보장된 존재입니다. 그 승리로 가는 과정에 절망적인 일을 만나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결국
승리합니다. 사람이 실패하고 불행하게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존재입니다. 자연 적응력도 약하고 상처도 잘 받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만물의 으뜸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돕는 방패가 되어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있는
사람이 최종적으로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도와주어도 큰 힘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힘이 없어 보이는 교회와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대 로마 제국이 굴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엄청난 핍박과 순교가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을 극복하고 기독교는 짧은 시일 내에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기복주의와 외형주의로 인해 잠시 성장이 정체되는 기간을 거치고 있지만 교회와 성도가 겸손하게 제 자리를 찾으면 한국 교회는 다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최상의 복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 행복을 나누며 사십시오 >
성도는 과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현재에도 수시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미래에도 최종승리가 보장된 누구보다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 행복을 누리고 더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눠가며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행복을 나누며 살려면 무엇보다 원망하는 습성을 버리고 책임지는 성품을 길러야 합니다. 행복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게 보이는 일도 하나님이 맡긴 소중한 일로 가치를 부여하고 책임적으로 살면 늘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점차 책임지는
영역도 커지는 인물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가 가진 장자의 축복을 빼앗을 때 속인 야곱도 잘못했지만
사실상 속은 에서도 잘못한 것입니다. 그처럼 속았을 때는 속인 사람만 원망하지 말고 혹시 자기 욕심 때문에 속은 것은 아닌지 성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부인은 늘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해 불행하게 산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불평은 자기 성찰과 책임적인 삶을 막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무지해서 속기도 하지만 욕심 때문에 속기도 합니다. 즉 수고 없이 뭔가를 얻으려고 지나친 욕심을 가지면 사기당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또한 스스로 속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즉 자신도 잘못된 것임을 대략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이단 교주가 거짓 기적과 거짓 치유와 거짓 선전으로 능력자인 척 한다는 것을 자신도 짐작하고 교주의 언행이 목자답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도 그 공동체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자신도 이미 저런 남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도 혹시 하고 결혼했다가 크게 당한 후에 상대 탓만 하면 안 됩니다. 남 탓이 많으면 복이 주어지기 힘듭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속은 것은 장자의 명분보다 팥죽 한 그릇을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환경을 넘어 미래의 축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보이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적
생명력에 좌우됩니다. 사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자신의 행복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왜 사람들이 절망합니까? 절망이란 자기 능력으로 산다고 여기고
“내 능력으로는 안 돼!”라고 하면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부터 자기 능력으로만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서
실패했다고 쉽게 절망하지 마십시오. 자기 능력을 너무 오판해도 안 되지만 자기가치를 너무 평가절하해도 안 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해 자기 가치를 점차 극대화시키면 누구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천 원짜리 평범한 싸구려 쇠막대기를 가공해
말발굽을 만들면 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더욱 가공해 무수한 바늘을 만들면 30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극도로 가공해 무수한
정밀시계 부품을 만들면 25억 원을 벌 수 있습니다. 원자재가 부족하다거나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가진 것이나 지금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란 원자재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학생은 남들이
다 공부가 어렵다고 할 때 자신은 쉽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갈 때 3수를 했습니다. 그때
워낙 기초를 잘 닦아놔서 여기서 공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떤 문제로 고생하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고생도 나중에는 큰
유익이 됩니다. 자기나 자녀들이나 고생을 좀 할 필요도 있습니다. 자식을 전혀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녀를 더
고생시킵니다.
야구에서 홈런왕은 대개 삼진왕입니다. 실패를 바탕으로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내면이 잘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겉
자랑만 하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조금 부족해도 내면을 겸손하게 잘 가꿀 때 행복이 찾아옵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여기면 대개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아도 자기가 정말 잘난 것 같고 괜찮은 것 같은데 그것을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높아진
마음이 복을 멀어지게 합니다.
왜 회개가 중요합니까?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높아진 마음을 다 버리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는 “나는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을 통해 행복과 기쁨이 물밀듯이 심령에
차오르고 축복의 대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면 시원치 않게 보이는 사람도 기쁨과 행복을 넘치게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을 붙들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최대한의 행복과 축복을 만들어가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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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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