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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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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31824870 |
2011년 7월 3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가복음 12장 25절
설교제목 : 무(無)의 영성
<아름다운 기도> * 이해인
당신 앞엔
많은 말이 필요없겠지요, 하느님
그래도
기쁠 때엔
말이 좀더 많아지고
슬플 때엔
말이 적어집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음의 문 크게 열고
큰 소리로
웃어보는 것
가슴 밑바닥까지
강물이 넘치도록
울어보는 것
이 또한
아름다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어도
괜찮겠지요?
*********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 12:25)】
<책 이야기>
요즘 『절대무의 견성철학 - 니시다 기타로의 사상』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서양에서 무(無)는 오로지 유(有)의 결여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니시다는 오히려 그것을 모든 유(有)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 그리스에서 무는 모양의 결여나, 또는 아직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양에서 그것은 모든 모양의 근원이며, 모든 모양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을 말한다. 이 동양적인 의미의 무에 대해서 그리스인들은 알지 못했다. / 동양에서 무는 모든 유를 만들어 내는 근원으로서 적극적인 개념이지만, 서양에서 그것은 전통적으로 유의 결여태(缺如態)로서 소극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하나님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무의 세계는 악마의 세계, 혹은 무지의 세계, 더러움과 타락의 세계 … 부정적인 세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무화(無化)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우리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이 일반의 보통 사람들보다 ‘죽음에의 공포’가 더 크며, 이는 다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니시다 기타로의 ‘무 사상’을 높이 평가하며, 그런 세계, 그런 사상, 그런 영성을 도구로 하는 한국기독교의 사상 개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각 - 즉 무의 영성이 본래 하느님의 본질적 세계를 정말 제대로 밝혀주는 것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 12:25)】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 논쟁할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의 때가 온다고 했을 때, 그때의 상황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는 상황이 아니며, 그 상황이란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는 점입니다. 즉 그것은 무(無)의 상황입니다. 유(有)의 상황이 아닙니다. 장가를 간다든가, 시집을 간다든가 하는 것들이 없는 세계, 사랑한다든가 미워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없는 세계, 맛있다든가 맛없다든가 하는 평가가 없는 세계 … 모든 부질 없는 유(有)들이 없어진 해방의 무(無)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는 부정적이거나, 어둡거나, 싫거나, 아프거나, 뭔가 큰 일 나거나, 나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무는 모든 유를 잉태한 평안의 세계, 넉넉하며, 견딜만하며,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세계였던 것입니다.
<휴거 이야기>
1992년 육체적 부활을 신봉하는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이 한바탕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때, 저는 기자로서 현장에서 그분들의 긴장된 표정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하얀 옷을 입은 우리들은 직접 하늘로 들리워 올라갈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문제의 핵심은 그분들의 ‘부활에 대한 생각’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대다수 성도들의 생각이라는 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부활에 대해서도 그분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기독교 공원묘지에 가보곤 하는데, 세상을 떠난 그분들의 비석에 ‘휴거’를 이야기한 분들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부활의 때에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일어나리라는 소망이 그들 비문(碑文)에 적혀 있습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설교의 결론>
부활의 때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 12:25)】 그것이었습니다. 서양적 무의 세계가 아닌 동양적 무의 세계였습니다. 그 동양적 무의 세계는 절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들이 전혀 없는 ‘자유와 해방’의 세계였습니다. 편안하고 넉넉하지요! 물론 약간의 슬픔과 공포가 있기는 합니다만, 뭐 충분히 견딜만 합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무(無)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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