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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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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상훈 목사 |
참고 : | 2015.4.12주일 설교 http://www.seungdong.or.kr 승동교회 |
내가 볼 때에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내가 볼 때에.”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그가 본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예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요한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며, 인자 같은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와 늘 함께 하시며 자신의 교회를 항상 돌보고 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셨습니다. 이는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그의 교회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그의 교회를 위한 대언자가 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머리와 털의 희기는 흰 양털 같고 눈 같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순결과 그의 거룩함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눈은 불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언제나 그의 교회를 두루 살피고 계십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습니다. 죄를 짓고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은 자신의 발로 밟으십니다. 예수님은 징계를 통하여 교회의 순결과 거룩함을 지켜나가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권세 있는 음성으로, 바로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권세 있는 말씀으로 그의 교회를 늘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권능의 손입니다. 능력의 손입니다. 그리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일컫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오른손으로 교회를 든든히 붙드시고 늘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어지럽히며 교회에 해를 끼치는 자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으로 무찌르시며 심판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친히 그의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또한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밝히 나타내십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볼 때에.” 오늘 본문은 요한이 예수님의 환상을 본 후에 일어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잘 박힌 못과 같이, 오늘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심령에 깊이 새겨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요한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제자였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눕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 그는 기뻐하며 반가워해야 옳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요한은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보고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크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그의 육신에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날 때는 달랐습니다.
변화 산에서 요한을 비롯한 세 제자들은 예수님의 빛나는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땅에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사울 곧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서는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삿13:22 말씀입니다.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의 아내에게 했던 말입니다. 마노아는 자기들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눈부시게 밝은 태양을 보면, 그 눈이 멀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사람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 앞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땅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도 같은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사6:1 말씀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은 52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나라의 모든 사정은 순조로운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만하여져서 제사장이 하는 일까지 하려고 들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동요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말하자면 웃시야 왕의 죽음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6:2∼3 말씀입니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스랍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서있는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각기 여섯 날개를 가졌습니다. 스랍들은 각기 두 날개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천사들도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조차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스랍들은 각기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곳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랍들은 각자의 나머지 두 날개로는 날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명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랍들은 서로 화답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스랍들은 거룩하다 하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로써 스랍들은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6:5 말씀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을 뵈었을 때, 자기는 망하게 되었다고 죽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그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에스겔이나 다니엘도 하나님의 환상을 볼 때, 그들은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요한도 예수님의 환상을 보자,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데, 요한은 죄인으로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거룩하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될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예수님 앞에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찬송으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곧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늘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요한을 위로하셨습니다.
계1:17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이 환상으로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는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 섬에서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 그의 나이는 구십이 넘었습니다. 따라서 너무 큰 충격에 휩싸이면, 요한이 심장마비에 걸려서 목숨을 잃을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요한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셨습니다. 조금 전에 일곱 별을 붙들고 계시던 예수님의 오른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던 예수님의 입으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하신 모습으로 그의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자하신 음성으로 요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사실 예수님이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그를 두렵게 하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환상으로 박해받는 성도들을 위로하셨습니다. 환상을 통하여, 예수님은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며,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을 지키시며,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수십 년 전 요한은 변화 산에서도 같은 위로를 예수님에게서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변화 산에서 요한을 비롯한 세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남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땅에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마17:7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예수님은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몇 가지로 요한에게 밝히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은 요한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됨을 깨우쳐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고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사44:6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우상들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헛된 신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두려움도 사망도 하나님이 위하시는 자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계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 있는 자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시42:2 말씀에 있는 바와 같이, 성경에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상들은 죽었습니다. 또한 이방 신들은 헛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요한은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서 죽으셨습니다. “내가 널 위하여 죽었었노라. 내가 나의 피로 네 죄에서 너를 해방하였노라.”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뜻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볼지어다” 하시면서 예수님은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이제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두 번 다시 죽지 아니하십니다.
롬6:9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으므로,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셔서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을 지키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이 역시 요한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18절 끝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음부는 사망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문을 열고 들여보내실 수도 있고, 또한 반대로 문을 닫고 못 들어가게 막으실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누가 죽고 또한 언제 죽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의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시고 “두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두려워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의 오른손을 우리에게 얹으시고,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요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계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요한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죽은 자 같이 되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있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미 11절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가 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죽은 자 같이 되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있으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요한에게 그가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보다 자세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 가지를 기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네가 본 것”입니다. 과거형입니다. 이제까지 요한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명에 따라, 요한은 그가 본 것을 요한계시록 1장에 기록했습니다.
다음으로 요한이 기록해야 할 것은 “지금 있는 일”입니다. 현재형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현재 상태를 그들에게 일깨워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당시 일곱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이 기록해야 할 것은 “장차 될 일”입니다. 미래형입니다. 장차 될 일은 요한계시록 4장 이하 마지막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로 그 내용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계1:2 말씀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말씀대로입니다. 요한은 사명에 충성하여, 그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요한계시록에 다 기록으로 남기면서 충실하게 증언했습니다.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예수님은 그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이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자는 교회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그의 오른손으로 든든히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도 예수님의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요한이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대는 어둠을 밝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금 촛대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금과 같이 귀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요한이 본 환상을 비밀로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환상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비밀스럽게 봉인된 책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계시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의 환상을 본 후에 일어난 일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요한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요한을 위로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요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죄인들인 우리가 거룩하신 예수님 앞에 서기란 두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위로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곧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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