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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7: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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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새벽기도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65) 2015.12.30 |
시편(170) 인생의 최대 치료제 (시편 107편 10-20절)
< 치유의 은혜를 입는 길 >
가끔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부모의 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얘야! 공부가 다가 아냐? 하나님 잘 믿고 네 장점을 살리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너무 성적에 매이지
말고 네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해봐라.” 성공과 행복은 성적순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믿음과 성품을 배양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더 행복하게 잘살 수 있습니다.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부모의 기도를 배경으로 자란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눈물의 자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즉 기도의 눈물은 아픔의 눈물을
막아줍니다. 살다보면 늘 고통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기도할 때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적문제, 취직문제, 결혼문제, 가정문제, 육아문제 등이 계속 닥칩니다. 그처럼 인생은 죽을 때까지 기도제목이 계속됩니다.
어떤 교인은 가끔 말합니다. “목사님 가정에는 별로 근심과 걱정이 없지요?” 큰 오해입니다.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할뿐이지 걱정거리는 많습니다.
교회와 교인의 기도제목이 다 목회자의 기도제목이고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까지 기도해야 목회가 됩니다.
어떤 교인은 하루에 8시간 기도한다고 자랑합니다. 영적인 일을 자랑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 아닙니다. 기도를 위한 기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도 ‘삶으로 드리는 예배’이고 삶의 현장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도 ‘삶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8시간의 기도’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늘 기도제목이 넘치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몇
시간’이란 타이틀이 과시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인생의 최대 치료제 >
삶이란 끊임없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저 사람은 아무런 근심과 염려가 없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그에게도 말 못할 고통과
염려가 있습니다. 그처럼 사람에게는 남모르는 각종 고통과 질병이 다 있습니다. 그런 고통과 질병에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0절 말씀에서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것’은 나쁜 습관에 매여 사는 것을 뜻합니다. 왜 부모들은 자녀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까? 친구를 잘못 만나면 나쁜 일에 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즐겨 만나는 친구가
누구인지 살피며 그 친구가 신앙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방해가 된다면 그 친구 관계를 빨리 정리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곤고와 쇠사슬에 매입니다.
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멀리하십시오. 물론 세상
것을 다 끊고 완전히 거룩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싫으나 좋으나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오락이나 세상적인 것을
대할 때도 많이 생깁니다. 그래도 성도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오락놀이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에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완벽하게 살 수 없고 적절한 놀이문화도 필요합니다. 컴퓨터 게임도 성직자가 아니라면 심심풀이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위해 금방 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비슷한 기준으로 사십시오. 늦게 자도 새벽기도를 잘할 수 있으면
늦게 잘 수도 있지만 새벽에 기도할 수 없을 정도라면 일찍 자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완전히 단절하지는 못해도 그 즐거움에 포로가
되면 안 됩니다. 세상의 것에 매이고 세상의 즐거움에 포로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만 포로가 되십시오.
왜 그처럼 곤고와 쇠사슬에 매입니까? 고통과 시련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11절). 자기 뜻을 앞세우거나 너무 서두르는 삶이 고통을 초래합니다. 그 말은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말씀을 겸손하게 받고 말씀대로 실천하려는 삶은 고통과 질병을 치료해주는 인생의 최대
치료제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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